미스바로 모이라  (사무엘상 7:3-9)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강성함과 침략으로 인하여 몹시 두려워하게 되었음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외부의 적과 내부의 문제로 인하여 몹시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사무엘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겪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하여 백성들을 다 함께 불러모으고 국가 회복을 위한 강도 높은 회개와 기도를 부탁하였습니다. 사무엘은 이것만이 그들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이라고 말합니다.

1. 죄악을 버리라
(삼상 7:3)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위의 구절에서는 조건절이 포함됩니다. 즉, 만일 너희가 여호와께 돌아오려면, 하나님만 섬기라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만 섬긴다'는 것은 먼저 소극적 의미에서 죄악을 버린다는 것을 뜻합니다. 참된 회심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를 끊어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죄악된 행실을 슬퍼하고 죄송한 마음을 갖는 것만은 아닙니다. 참 회개는 그 죄악된 행실을 미워하고 그것으로부터 자신을 완전히 분리시키고 결별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죄짓는 그 자체를 싫어하고 증오하는 것입니다. 즉 마음의 근본적인 생각이 바뀌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이 섬기고 있는 모든 우상을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섬기던 신은 대표적으로 바알신과 아스다롯신을 말합니다. '바알'(Baal)은 '주'(主)라는 의미인데, 가나안 땅에서 이 바알 신은 원래 '엘(EL) 신'의 아들로 비와 풍년을 가져다주는 신으로 간주되었습니다.
한편 '아스다롯'(Ashtaroth)은 예레미야서에서 '하늘의 여신'으로 언급되는 여신이었습니다(렘 44:19). 이 여신은 가나안 사람들에 의하여 미(美)와 유연성을 지닌 '성(性)의 여신'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오늘날 우리를 풍요롭게 하는 출세, 재물, 권세의 유혹과 육적이고 성적인 미혹 등과 같이 현대인이 추구하는 세상적인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바알 신과 아스다롯 신은 보통 가나안 사람들에 의하여 함께 모셔졌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게 될 때에 이런 신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구약성경은 바알과 아스다롯을 함께 묶어 이스라엘 백성이 절대로 금해야 할 대상으로 언급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멀리 하도록 했으며, 또 하나님의 백성을 타락시키는 악한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요즈음 청소년들이 많이 애용하는 목걸이나 시계, 티셔츠 등에 부적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미신적인 요소들은 그들이 미처 알아차리기 전에 어느새 그들의 삶 깊숙히 파고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에 긴장을 하고 무분별하게 우리를 위협하는 우상을 경계해야 합니다.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하고..."라는 말에서 '제하다'는 말은 '제껴두다', '떠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특히 우상의 흔적도 없애 버린다는 뜻으로 많이 사용되며(창35:2;수 24:14;왕상 15:14;대하 15:17), 찍어 버리는 것(왕하 18:4)과 불살라 재로 만들어 버리는 것(왕하 23:4-6)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의 어떤 감동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며 단호한 행동으로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자신을 완전히 결별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에게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고자 열망하는 마음이 넘쳐나야 합니다.
(잠 8:1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이제 우리는 세상에 미혹되어 있는 것, 악습에 빠져 있는 것, 알면서 계속 범하는 죄, 무관심과 비신앙적 생활방식 등에서 과감히 떠나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그만 섬기라
(삼상 7:2)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 년 동안을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당시 실로 장막 성전에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던 하나님의 언약궤가 없었고, 그 궤는 기럇여아림 아비나답의 집에 있었습니다. 기럇여아림은 큰 성읍으로서 옛날 법궤가 있었던 실로와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2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에 법궤를 성막에 옮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궤가 개인의 집에 방치된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갈망이 미약했고, 그들의 영적 무관심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궤가 한적한 곳에 있을 동안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 이방 우상에 그들의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문제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었고 하나님 앞에 나오기는 하지만 그들의 신앙이 형식적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의 영향권 아래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게 되자 비로소 그들은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없는 20년 생활 후에야 비로소 그들은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하나님을 생각할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그들처럼 하나님을 사모할 때가 된 것입니다.
여기서 '사모하다'(나하)란 말은 본래 '크게 울다', '부르짖다'란 뜻입니다. 따라서 성경에서 이 말은 흔히 신세를 몹시 한탄하거나 과거의 잘못을 깊이 뉘우쳐 크게 울면서 부르짖을 때 사용하였습니다. 이 때에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엄중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삼상 7:3)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라고 한 말은 중요합니다. "향하여"란 말은 마음을 확고히 정함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확고히 하고 결심하는 것은 매우 값있는 일입니다.
또 "그만 섬기라"는 말은 "오직 한 분뿐인 하나님" 즉 유일신(唯一神) 하나님을 뜻합니다. '섬기다'( , 아바드)란 말은 '노동하다'(신 5:13), '봉사하다'(민 8:11)의 뜻인데, 이것은 농부가 비지땀을 흘리며 밭을 경작하듯,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법칙이듯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에게 있어서도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분명히 그 중 하나는 등한시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이 세례받는 것은 마치 결혼식과 같습니다. 이 예식을 통하여 내가 이제부터는 세상에 대하여 죽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맹세하는 표시입니다.
(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약 4:4)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우리는 이제 마음의 성전을 회복하며, 법궤를 모시듯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심중에 모셔야 할 것입니다. 그냥 떠드는 입술과 형식에 따른 예배에서 벗어나 우리의 중심으로 하나님을 인정하며, 그를 사모하며, 참되신 하나님만을 섬겨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능력있는 그리스도인, 생명력이 넘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대하 16:9)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3. 미스바로 모이라
(삼상 7:5) 사무엘이 가로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사무엘이 백성을 미스바로 모은 이유는 블레셋 사람의 침공을 분쇄하기 위한 영적인 힘의 근거지로 삼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이 소위 '미스바 성회'라고 불리우는 영적 대각성운동을 벌린 이유는 이스라엘의 당면 문제점을 신앙과 기도로 해결하려 한 것입니다.
미스바 모임의 목적은 구체적으로 대회개 운동을 통하여 국운을 회복하고, 블레셋으로부터 정치·종교의 자유와 독립을 회복하기 위한 거국적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타락하고 피폐해진 이스라엘 사회를 혁신하는 대전환의 모임이었습니다.
이같은 미스바와 같은 대성회는 이전에도 국가적으로 중대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루어졌었습니다(삿 20:1; 21:5,8). 더구나 중앙 성소였던 실로(Shiloh)가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던 그 당시의 상황에서 볼 때 미스바 모임의 의의는 실로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편 '미스바'는 '파수대'라는 뜻을 가진 곳으로 예루살렘 북쪽 약 13km 지점에 위치한 해발 784m의 베냐민 지파의 땅이었습니다. 사무엘은 미스바가 지리적으로 모이기에 가장 좋은 지점이었기 때문에 이곳으로 불러 모은 것 같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미스바와 같이 모이기 좋고, 기도가 있으며, 하나님의 은혜가 있고, 축복받을 수 있는 장소로 모여서 이곳에서 기도하고 은혜받고 믿음생활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저녁부터 있을 부흥성회에 참석하여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으시길 바랍니다.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스바에 모여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행했는가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삼상 7:6)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날에 금식하고 거기서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첫째, 여호와 하나님 앞에 단을 쌓았습니다. 당시 단을 쌓는 것은 모든 족장들과 선지자들의 갖는 일관된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단을 쌓았다'는 의미는 그들이 하나님께 진실되게 예배드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삼상 7:9)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을 취하여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여기에서 '온전한 번제'는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이 해결할 수 없었던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모이는 하나의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당면한 육적, 영적 문제의 해결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히 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둘째, 금식하며 회개하였습니다. 금식은 회개의 구체적이며 의지적인 결단을 내보인 행동이었습니다. 이것은 회개가 형식이 아니고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양심의 표현이며 마음을 나타내는 행동임을 보여줍니다.
일본 사람들은 원래 반성과 토론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최대의 흑자를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통화 위기를 계기로 전체가 참회록을 쓰고 있는 느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 음식점이나 호텔의 예약이 평소보다 2배 늘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금융 분야에 대한 세미나나 강연회로 조찬 모임이 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일본 경제 부흥의 원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자기 반성보다는 국민, 정부, 정치인, 경제인 상호간에 모두가 서로 책임 전가에만 급급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A. 쇼펜하우어는 "과실을 부끄러워하라 그러나 과실을 회개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결 론
우리 모두 미스바 성회의 결과를 주목해 봅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번제를 드릴 때에 하나님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우뢰를 발하여 그들을 격퇴시켰습니다(7:10). 그러므로 이들의 집회는 이적의 역사가 나타났던 성회였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집회였습니다.
(삼상 7:12)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가로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에벤에셀"은「도움의 돌」이란 뜻입니다. 이 돌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기념비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를 계기로 하여 이들이 사는 날 동안 해마다 여호와께 단을 쌓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여기까지 도와주신 하나님 앞에서 영적으로 결산하며 이제 힘을 다해 은혜의 자리에 나와야 하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여호와 하나님께로 향하는 결심적인 선언 즉, 여호와 하나님만 섬길 결심을 갖고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에 나와야 하겠습니다

      
안재은목사 설교자료 중에서(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