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삼상17:41-49,빌4:10-13)


생명과 능력에 연결되어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혹은 "주안에서"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말들은 바울의 사상과 신앙을 이해하는데 열쇠와 같은 말들입니다. 오늘의 본문인 빌립보서 4장 13절에서도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말씀에 보면,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20절)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음이 무엇을 뜻하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습니다. 비슷한 사상이 요한복음 15장 포도나무 비유에 나옵니다. 그리스도께서 포도나무의 원줄기요 우리는 그 가지라고 하셨고 우리가 그 안에 거하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의 삶이 연결됨을 뜻합니다. 연결된다는 것은 그의 생명의 능력이 우리에게 연결됨을 뜻함이요, 그의 능력이 우리 속에 들어오게 됨을 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이 세상에 오시어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이를 통해 세상의 모든 죄가 용서함을 받았고 세상을 지배하던 죄와 죽음의 세력이 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새로운 생명의 세계를 여셨습니다. 하느님의 생명의 세계에서 떨어졌던 세상을 다시 연결하여 놓았습니다.

기차역에 나가보면 기차들이 많이 있는데, 그 기차들을 움직이는 것은 기관차들입니다. 객차들이 기관차에 연결될 때 그 객차에 불도 들어오고 난방도 되고 힘차게 달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객차만 달랑 떨어져 있으면 움직이지도 않고 난방도 되지 않으며 불도 들어오지 않습니다. 객차가 편안하게 손님들을 실어 나르기 위해서는 기관차에 반드시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와 같이 세상은 그동안 달랑 기관차에서 떨어져 나온 객차와 같았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이 객차를 기관차인 하느님의 세계에 연결시켜 놓았습니다. 그러면서 어둠으로 덮였던 세상에 빛이 들어오기 시작하였고, 죽음으로 얼어붙었던 세상에 생명의 봄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영원한 생명의 기운이 이 세상에 깃들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생명이라는 기관차에 연결되는 사람은 모두 변화되기 시작하고 새로운 생명의 역사를 이루게 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 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특별히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을 강조하였습니다. 기관차의 강력한 힘이 많은 객차를 힘차게 달리게 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능력은 죽음의 세력을 부수어 만유의 생명을 새롭게 하는 능력이며, 그 생명을 풍성케 하며, 영원히 멸망하지 않게 하시는 능력입니다. 우리가 바로 이런 그리스도의 능력 안에 연결되었기에 우리의 생명이 새로워지고 강력한 생명의 힘을 나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주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사실상 우리에게는 아무 능력도 없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으므로 그의 능력이 우리 속에 들어와 우리를 능력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모세는 80세나 된 무능력한 노인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느님께 부름을 받고 그의 능력에 연결되면서 그는 바로 앞에 나아가 열 가지 재앙을 불러 내리는 기적을 행할 수 있었고, 마침내 그 히브인들을 출애급 하게 하여 약속의 땅으로 이끌 수 있었습니다. 홍해가 앞을 가로막고 이집트 군대가 추격하여 올 때에도 그는 홍해를 갈라 그 백성들을 건너게 하였고, 추격하던 군대는 물에 빠져 죽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물이 없을 때는 반석을 쳐서 물이 나게 하였는데, 이 모든 능력이 모세의 것이 아닌 하느님의 능력이었습니다.

오늘 읽어 드린 다윗의 이야기는 우리가 너무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소년 다윗이 물매돌 다섯 개만을 달랑 들고 나가 블레셋의 거인 장군인 골리앗을 넘어뜨릴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하느님의 능력을 의심치 아니한 그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자기 안에 하느님이 능력이 함께 하심을 조금도 의심치 않았기에 큰 승리를 이끌어 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약함 속에 깃드는 능력

그러나 우리가 신약성경에 와서 예수님의 생애를 보면 별로 능력 있는 삶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에게 쫓겨다니신 때가 많았고, 마침내는 그들에게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총독에게 넘겨져 십자가형을 받으신 후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 올라 십자가에 못 박혀 높이 달리셨습니다. 어디에도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능력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무기력한 모습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십자가의 죽음이 사탄의 모든 계략을 깨뜨리신 것이며, 그래서 세상을 억압하던 죽음의 굴레를 벗기신 놀라운 능력이 되었으며, 마침내는 이 세상을 하느님의 생명의 세계로 이끌어 거기에 연결시켜 놓으신 승리의 능력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통틀어 부활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란, 죄로 말미암아 떨어져 나가므로 깨어졌던 세상이 다시 하느님의 세계에 연결되어 회복되었음을 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단순하게 나사렛 예수라는 한 청년의 부활이 아니라 죄로 말미암아 죽었던 세상의 부활이며, 세상이 떨어져 나가므로 손상되었던 하느님의 영원한 세계의 부활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보는 능력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능력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기에 연약한 것처럼 보였던 예수의 죽음은 실상은 온 세상을 구원하여 하느님의 나라를 회복하는 막강한 능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 있으므로 얻은 능력은 어떤 물리적인 능력이나 경제적 혹은 정치적 능력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주저할 필요가 없는 영적 능력을 말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이란 어떤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 전파 때문에 환난과 궁핍과 곤경과 매 맞음과 옥에 갇힘과 난동과 수고와 잠을 자지 못함과 굶주림을 겪으면서 그 모든 것을 견뎌낼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그런 고난 가운데서 낙심하고 좌절하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목표를 향해 달려갈 수 있는 능력―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능력의 실체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능력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는, 순결과 지식과 인내와 친절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일을 해 왔습니다." 고후 6:6-7

바울은 이런 영적 능력을 오히려 육적으로 약할 때에 더욱 크게 체험하고 있음을 고백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바울이 체험한 영적 능력은, 바로 그가 육체적인 약함이나 능욕, 궁핍, 핍박과 같은 고난 속에 있을 때였습니다. 따라서 성경에서 말하는 능력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물리적인 힘이나 경제적 능력이나 정치적 권력, 혹은 학문적 역량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런 모든 것에서 낮아지고 약하여질 때 체험할 수 있는 하느님의 능력임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땅에서 말하는 어떤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할 때는 영적 능력을 체험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오히려 우리가 가난해지고 고난 당할 때 그래서 우리 자신을 비울 때 거기에 하느님의 능력이 깃들고 그 능력은 우리의 생명을 약동하게 하면서 이로써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서 하느님의 나라를 세워가도록 만듭니다. 한 마디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은 바로 나는 죽고 그리스도만이 내게 사시는 것을 뜻합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도 영적 능력을 별로 체험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죽지 않고 나 자신을 비우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울은 이 능력을 얻고자 그가 전에 가졌던 모든 것을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날마다 죽는다고도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위대한 신학자, 능력 있는 전도자가 되었던 것은 이와 같이 자신을 모두 비우고 그리스도 안에 거하였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하늘의 능력을 그에게 채우셔서 하느님 나라의 모든 일을 할 수 있게 하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함을 간구하지만, 우리 자신을 비우지 않고서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실 수 없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주간 부흥사경회를 통하여 은혜를 받았습니다. 말씀을 통한 은혜조차도 우리가 마음을 비우지 않고서는 체험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좀더 겸손하게 자신을 비워 성령께서 주시는 영적 능력을 받아서 교회를 봉사하고, 복음을 전하며, 하느님의 나라를 세워가야 할 때입니다.

누구든지

한 가지 더 생각할 것은, 누구나 능력 주시는 자 안에 있으면 영원한 생명을 갖게 되고, 그 생명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예수를 믿는 사람들 가운데는 자기는 교회나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는 무능한 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일에 참여하지 않으며, 직분을 받아도 별로 활동을 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능력에 연결되어 있는데도 그 능력을 전혀 사용하려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마치 전기가 연결되어 불을 켜기만 하면 환하게 방을 비출 수 있는데도 불을 켜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나는 전기(電氣)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전등(電燈)을 켤 수 없다고 한다면 그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전기를 알지 못해도 스위치만 누르면 불은 들어오게 되어 있기 때문에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어서 그 능력에 연결되어 있다면 전등 스위치를 누르는 것처럼 누구나 그 능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면, 그 당시 사회에서는 작은 자들, 보잘 것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부자도 없고, 많이 배운 자도 없으며, 권력이 있는 자도 없었습니다. 어부이거나 세리, 혹은 열혈당원으로 폭력으로 나라의 독립을 취하려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삼년이나 따라 다녔지만 별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였고, 붙잡혀 가실 때는 모두 도망가 숨어버렸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승천하신 후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할 때 성령이 임재 하시면서 이들은 변화되기 시작하여 진정으로 능력 있는 사도들이 되었습니다. 반대와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 하였고, 박해를 받을 때 담대하였고 오히려 기뻐하였습니다. 그들은 위대한 사도가 되어 초대교회를 이끌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를 믿기 전에는 교회를 핍박하는 자였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부터는 변화되어 능력 있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가리켜 '죄인의 괴수'라고 말할 만큼 형편없는 자였으나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변화되어 위대한 영적 능력의 소유자가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에 보면, 하느님께서 택하신 일꾼들은 오히려 세상에서는 작은 자들이었다고 하였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을 때에 그 처지가 어떠하였는지 생각하여 보십시오. 육신의 기준으로 보아 지혜 있는 사람이 많지 않고, 권력 있는 사람이 많지 않고, 가문이 훌륭한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택하셨으며,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고전 1:26-27

세상에서 지혜 있는 사람, 권력 있는 사람, 공부를 많이 한 사람만이 교회에서도 훌륭한 일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에서는 별로 존경을 받지 못하는 작은 자들을 부르셔서 하늘의 일꾼을 삼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 나라 일은 하느님 자신이 하심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하느님의 능력은 작은 자에게나 큰 자에게나 골고루 역사 하시기 때문에 누구나 상관없이 그 능력 안에서 하느님의 일을 할 수 있음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교회만 다녔지 전도도 하지 않고, 교회 봉사도 하지 않으며, 하느님 나라를 위한 어떤 일도 하지 않는 분들이 계십니까? 그러면서 그 핑계를 아무 것도 모르고, 아무 재주나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대는 분들이 계시다면, 이제부터는 그 핑계를 거두시고 바울처럼 "내게 능력 주시는 분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고백하면서 그 능력을 발휘할 일감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별로 내세울 것이 없다고 뒤로 물러서지 마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능력을 받아서 그 능력으로 하느님의 일들을 하시기 바랍니다.

예배와 교육과 봉사와 친교와 전도 이 모두가 영적 능력으로 행할 일들입니다. 언제나 주안에 있어 그 능력에 연결된 자로 그 능력을 따라 이 모든 일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하느님은 여러분이 일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누구나 다 위대한 사도와 같은 일꾼이 될 수 있으며, 바울과 같은 전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는 항상 여러분이 스스로 나서서 하느님의 일을 찾아내고 그 일을 감당하실 수 있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때로 우리의 봉사가 하느님의 능력이 아닌 자기 지혜나 경험으로 할 때 거기에 불평이 생기고 자랑하고픈 마음이 생기며 그래서 분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것은 잘못된 봉사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어서 그 능력을 힙입지 않고서는 올바른 봉사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런 경우 힘이 들고 짜증이 나며 불평이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여러분이 봉사를 하다가 힘이 든다면 봉사를 멈추고 기도부터 먼저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힘입었다는 확신이 설 때 다시 봉사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두 구원을 받아 하느님의 생명과 그 능력에 연결되어 있는 거룩한 백성들입니다. 그러므로 그 생명과 거기에 따른 영적 능력을 사장시키지 말고 활용하여 봉사하며 전도하며 열심히 교회가 하는 모든 일에 참여하여 하느님의 나라를 세워 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임을 기억하고 그 능력을 백분 발휘하여 하느님이 기뻐하실 큰 역사들을 이루어 가시기 바랍니다. 나는 아무 재주도 없고 가진 재물도 없으며 배운 것도 없다고 생각하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던 분이 계시다면 이제부터 생각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나같이 보잘 것 없는 자라도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먼저 하느님께 기도하면서 전도도 하고 모든 집회에 열심히 참여하면서 교회를 부흥시키고, 기쁨으로 교회 청소도 하고,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일에 발벗고 나서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전에는 생각도 못했던 큰 일들을 해내는 귀한 일꾼이 될 것입니다.

이제 누구나 그 삶의 뿌리를 그리스도 안에 내리므로 위로부터 오는 생명과 영적 능력을 받아서 교회를 부흥시키고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유경재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