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유대인의 왕이라!    눅 23:38~43 (예레미야 23:1~6 참조)


작년 여름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매스컴을 통해서 우리가 본 김정일 위원장의 모습은 매우 파격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 위원장은 거의 일방적으로 김 대통령과의 대화를 이끌고 갔습니다. 처음 만난 상대요 또 자기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대화 상대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하는 것 같지 않았습니까? 그는 전혀 어색하지 않게 대화를 이끌어 갔으며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을 감탄하게 만들었습니다.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들리는 바에 의하면 김정일 위원장은 어릴 때부터 제왕학이라는 것을 배웠다고 합니다. 그 제왕학에서 가르치는 바에 의하면 왕은 언제나 혼자서 말하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또 항상 명령과 지시만 하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왕은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는 일에는 익숙하지 못하게 마련이라고 합니다. 어떤 만남에서든지 오직 왕만 자유롭게 말하고 또 명령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김 대통령과의 만남과 대화에 있어서 그가 일방적으로 분위기를 주도했다는 것은 그다지 감탄할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모습은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에게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 김 대통령도 국무회의 같은 자리에서 다른 국무위원들의 말을 많이 듣는 편이라기보다는 혼자서 말을 많이 하는 편에 속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물론 칭찬도 많이 하겠지만 대체로 잘못된 것을 따지거나 꾸짖는 일이 더 많지 않겠습니까? 또 자연히 지시하는 일이나 명령하는 일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해서 그것은 옳은 방법이 아닙니다.

사실 대통령이 할 일은 장관들이 소신껏 맡겨진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하면 그만입니다. 또 장관들은 차관이나 국장, 과장 같은 부하 공무원들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맡겨진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하면 그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작건 크건 어떤 조직의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일방적으로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듣는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말은 쉽지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지도자가 되어서 입을 다물고 귀를 열어 다른 사람들 특히 아랫사람들의 말을 경청하기만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기의 생각을 부인할 때 가능합니다. 자기의 경험과 지식을 부정할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다른 말로 자기를 희생하지 않고서는 결코 엄두도 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도자가 올바른 자세를 취하지 않을 것 같으면 모든 사람들이 다 불행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런 희생적인 지도자를 우리는 찾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그런 희생적인 지도자를 어떻게 찾을 수 있습니까? 전혀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런 바람직한 지도자를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통해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올바른 지도자의 모습은 세상의 제왕학이 가르치고 있는 것과는 전혀 그 모습이 다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진정한 의미의 지도자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혼자서 사람들 위에 군림하며 그 사람들을 지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도자 자신이 섬김을 받기 위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섬김을 강요하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지도자의 모습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나타난 섬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서 자기의 목숨을 버린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올바른 지도자의 모습은 군림하고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희생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는 공주병과 왕자병에 걸린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모두 자기만 섬겨 주기를 원합니다. 모두 한결같이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고만 합니다. 그 결과 우리의 삶의 현장에 양보와 희생이라는 것은 전혀 찾아 볼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아주 살벌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왕이고 왕비이며 또 공주이고 왕자입니다. 결과적으로 섬기려는 사람은 전혀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결코 희생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인 것입니다. 이 나라와 이 민족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결코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정치적, 사회적 혼란이 아닙니다. 대통령뿐 아니고 각계 각층의 지도자들이 올바른 지도자의 모습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한 것입니다. 때문에 오늘 우리는 다시 한 번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나타내신 진정한 의미의 지도자의 모습을 살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올바른 지도자들을 찾음으로써 우리 모두의 행복한 삶을 회복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나타내신 바람직한 지도자의 모습을 과연 우리가 어떻게 회복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진정한 의미의 지도자가 되는 것은 자기를 아낌없이 내어 줄 때 비로소 가능하다고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올바른 지도자 즉 진정한 의미의 왕이 되신다는 사실은 예수님을 비난하고 조롱하던 사람들에 의해서 오히려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사람들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향해서 "네가 진짜 메시야라면 네 자신을 스스로 구원해 보라!"고 빈정거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십자가 위에 "유대인의 왕"이라는 명패를 붙였습니다. 예수님을 니난하고 조롱하기 위해서.....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자신을 구원하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침묵으로 일관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심으로써 모든 인류를 위한 대속의 사업을 완성하셨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과연 그 누가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십자가에 못박혔던 적이 있습니까? 자기가 마땅히 짊어져야 할 짐도 할 수만 있으면 회피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아니 스스로 그 죄의 짐을 질 수조차 없는 것이 우리 인간이 아닙니까?

분명히 말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을 결코 가볍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죽을 수밖에 없었던 온 인류를 살리는 놀라운 능력의 십자가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진정한 의미의 선한 목자가 누구이며 진정한 의미의 왕은 어떤 모습을 해야 하는가 하는 것을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 주셨습니다. 온 인류를 위해서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 주신 그 예수님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왕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아야 할 모습인 것입니다.

또한 성경은 진정한 의미의 지도자가 되는 것은 희생적인 섬김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꺼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써 우리를 살리셨다고 했습니다. 그 분은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입니다. 그 분은 태초에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동참하신 분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위에 군림하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죽기까지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셨고 또한 놀랍게도 죽기까지 우리를 섬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으심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지도자의 모습은 희생적인 섬김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분은 섬김을 받으려 오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섬기기 위해서 오셨고 더 나아가서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기 위해 오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죽음이라고 하는 희생을 통한 섬김으로 진정한 의미의 왕이 무엇인가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희생을 통한 섬김의 삶을 살아야 비로소 하나님의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마지막으로 성경은 진정한 의미의 지도자가 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써 가능하다고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능력으로 얼마든지 십자가를 물리치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천군 천사를 동원해서 원수들을 제압하시고 마치 개선 장군처럼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권력자들이 즐겨 쓰는 방법이지 우리 예수님의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방법은 오직 아버지의 뜻에 철저히 순종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당장 원수 대적들을 물리치시고 승리하실 수 있었지만 그것은 아버지의 뜻과 방법이 아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그 방법을 쓰시지 않았습니다.

과연 예수님께서 이렇게 죽기까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을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예수님을 높이셨습니다. 바로 여기서, 십자가 위에 나타난 예수님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진짜 왕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왕 같은 제사장인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만 복종함으로써 영광스러운 그 나라가 이 땅에서 전파되고 확장되는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는 도구들이 다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솔직히 말해서 문제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이 문제가 아니고 또 정치인들이 벌이는 추태가 문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진짜 문제는 바로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라는 말입니다! 나 자신과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내어 주지 않았습니다! 남들이 나를 섬기는 것만 원했지 내가 남들을 희생적으로 섬기는 것은 꿈도 꾸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보다는 항상 나의 뜻이 우선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그 결과가 과연 무엇입니까? 오직 낭패와 실망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 모두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내가 먼저 회개하고 내 가족이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가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주님을 본받아서 기꺼이 내어 주는 삶을 삽시다! 주님을 본받아서 희생적으로 섬기는 삶을 삽시다! 그리고 주님을 본받아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철저히 복종하는 삶을 삽시다!

그 때 비로소 주님은 여러분을 그 나라 건설에 있어서 귀한 도구로 들어 쓰실 것입니다! 마침내 여러분의 희생과 봉사와 충성을 통해서 주님은 큰 영광을 받으실 것이며 그 주님이 만세 전부터 예비하신 신령한 복과 은혜를 여러분 모두의 삶에 넘치도록 부어 주시리라는 사실을 확실히 믿습니다!

강석공목사 설교자료 중에서(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