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한 믿음'을 가진 백부장!  ((마8:5-13))

어느 방직공장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공장에서는 여공들이 실을 풀거나 감다가 얽히게 되면 무조건 공장장에게 가서 보고를 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 여공이 작업을 하는 도중에 그만 실이 얽혀버렸습니다.
여공이 보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는 즉시 공장장에게 가서 보고를 하지 않고, 자기가 쉽게 해결하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쉽지 않습니다. 이렇게도 해보고 또 저렇게도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실이 더 복잡하게 얽혀버리고 억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때서야 여공은 자기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하는 수 없어 공장장에게 실이 얽힌 것을 보고했습니다.
공장장은 와서 복잡하게 얽힌 실을 보고서는 노발대발하며 "실이 얽힌 즉시 와서 보고를 해야지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만들었느냐?"고 하자 여공은 겁먹은 표정으로 "공장장님, 사실 저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그만 이렇게 실이 얽혀버리고 말았습니다"
공장장은 그 소리를 듣고서 기가 막힌다는 듯이 "이런 상황 속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바로 공장장인 내게 와서 보고하는 것이야.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없게 해!"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고 합니다.
인생살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뜻하지 않게 삶이 얽힐 때가 있습니다. 이런저런 문제가 생길 때가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 힘과 노력으로 해 보겠습니까? 그러면 문제가 더 복잡해집니다. 하나님께 가지고 와서 보고하면 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해결해 주십니다. /믿/ 이것이 바로 믿음의 태도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인생의 복잡한 문제를 예수님에게 가지고 와서 보고하는 사림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로마의 백부장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으로 가셨을 때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 예수님께 나아와 자기 하인의 중풍을 고쳐달라고 간구를 합니다. 그 간구를 들으신 예수님께서 직접 가셔서 고쳐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백부장은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만 하옵소서. 그리하면 내 하인이 낫겠나이다"라고 말을 합니다.
이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이 놀라시며 백부장에게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다"라고 감탄하시면서 "가라 네 믿은 대로 될 지어다"라고 선포하시자 그 순간 그 시에 백부장의 하인이 병에서 나았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감동시킨 백부장의 큰 믿음, 우리도 그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저는 ◀이만한 믿음을 가진 백부장!▶이라는 제목으로-
1. '이만한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10절)

"내가…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이만한 믿음"이라는 말은 위대한 믿음, 엄청난 믿음, 큰 믿음이라는 뜻이요, '네 믿음대로 되어지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믿음은 혈통으로, 가문의 전통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신앙생활 잘 했다고 해서 아들이 신앙생활 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 아들, 장로 아들이라고 해서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 많이 했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눅7:9절에 보면 예수님도 백부장의 믿음을 기이히 여기셨습니다.
왜냐하면 이방인들은 그때까지만 해도 하나님과 그의 율법에서 제외된 상태였고, 예배와 말씀 속에서 자라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이방인인 백부장의 믿음이 예수님을 놀라게 했습니다.
큰 믿음, 위대한 믿음, 예수님도 놀라실만한 믿음이 백부장에게 있었을 때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놀라실 만한 믿음이 있을 때 백부장의 하인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이만한 믿음, 큰 믿음, 놀라운 믿음, 상식을 뛰어 넘는 믿음"을 가질 때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 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임합니다.
기적은 "이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 "놀라운 믿음"을 가진 사람, "위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 "예수님을 놀라게 한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일어납니다. /할/

▶성경에 보면 믿음이 적으므로 예수님께 책망을 들었던 사람과, 믿음이 좋으므로 예수님께 칭찬을 들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에서 풍랑을 만난 두려워 할 때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고 주님이 책망하셨습니다. 또 베드로가 주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모습을 보고,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위로 오라 하소서' 그 때 '오라'고 명하자 그 말씀을 붙잡고 물위로 걸어 가다가, 바람과 물결을 보고 무서워 빠져들어 가고 있을 때 주님께서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책망하고 꾸짖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 본문의 백부장은 하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주님께 나왔다가 그의 '이민한 믿음'을 보시고 큰 칭찬을 받았습니다.
주님 앞에 칭찬 받는 믿음이 귀합니다.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복의 근원은 바로 믿음입니다.
큰 믿음을 가지면 큰 축복을 받지만 믿음이 적으면 적은 축복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들 큰 믿음을 가지고 '믿음대로 되어지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는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아만'인데, 어린아이와 어머니의 관계를 뜻합니다. 어린아이는 무력합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지만 어머니의 품안에 있으면 어머니가 모든 것을 다 해결해주고 책임져줍니다. 믿음은 엄마 품에 안긴 어린아이처럼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셰익스피어'는 "문제를 해결하는 비결은 긍정적인 믿음밖에 없다"고 했고, '스펄전' 목사님은 "믿음은 삼손의 머리카락과 같다"고 했습니다. 삼손은 머리카락이 잘리면서 능력이 없어져 포로로 잡혀가 두 눈을 뽑히는 끔찍한 일을 당하고 비참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믿음의 기본이 있습니다.
①하나님을 창조주로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창1: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이 믿어질 때 성경 66권을 다 믿을 수가 있습니다.
진화론자들은, 사람도 단세포가 진화돼서 동물이 되고 원숭이가 되었다가 진화돼서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데, 과학자들도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원숭이가 사람으로 진화되었다면 지금도 어느 산 속에서 원숭이가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에 있는 것을 보거나, 사람이 되어 걸어 내려오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본 사람은 인류 역사상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당신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생기 즉 영혼을 불어 넣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영생하는 존재이며 하나님을 섬겨야 참 만족과 행복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②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책은 인간의 사상이나 뜻을 적은 작품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계시하여 쓰게 한 말씀입니다. 이 성경말씀에 생명이 있고, 천국 가는 길이 적혀 있고, 온갖 축복이 다 들어있습니다.
'조지 워싱턴'은 "하나님과 성경이 없이는 이 세상을 바르게 다스릴 수가 없다."고 했고, '아브라함 링컨'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최대의 선물은 성경이다"라고 했습니다.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은 "내가 아무리 피곤해도 성경을 읽지 않고 하루 밤이라도 침실로 들어간 일이 없다"고 했고,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성경을 읽는 것은 영혼이 힘을 얻고 믿음이 새로워지는 아름다운 땅을 여행하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이 성경을 받아들이고 예수 믿는 나라는 다 문명하고 잘 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미국, 영국, 스위스, 노르웨이, 덴마크 등 다 복을 받고 문명한 나라가 되었으나, 하나님이 없다고 하고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하면서 성경을 불태우고 교회를 다 파괴한 공산주의 국가들은 예외 없이 다 거지같이 가난하고 비참한 나라가 되고 말았습니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석유도 나고 지하자원이 풍부한데 가난하고 비참한 나라가 되고 말았습니다.

③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생명의 구주로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나이아가라 폭포상류에 두 사람이 배를 타고 놀다가 폭포 가까이 와서 배가 뒤집혔습니다. "사람 살려!"하고 소리치니까 항상 대기하고 있던 구조대원들이 밧줄을 던져 주었습니다.
한 사람은 그 밧줄을 붙잡고 끌려나와 살았는데, 다른 한 사람은 그 밧줄을 붙잡지 않고 마침 떠내려오는 큰 나무토막을 붙잡고 매달렸습니다. 밧줄보다 든든하고 믿음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나무토막은 강가의 구조대원들과 연결이 안되었기 때문에 잠시 후에 폭포 밑으로 떨어져 흔적도 없이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예수와 연결이 안되면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④오늘도 성령님을 인정하고 모셔들이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은 '이만한 믿음'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사45:18-25절에 보면 '이만한 믿음'으로 가는 성장 과정이 나옵니다.
①하나님께 나아가는 단계입니다.
20절 "너희는 모여오라 한 가지로 가까이 나아오라"
믿음의 첫 출발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히4:16절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②하나님과 상의하는 단계입니다.
21절 "너희는 고하며 진술하고 또 피차 상의하여 보라"
하나님께 나아온 사람들은 이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교제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하나씩 둘씩 이해가 됩니다.
마치 메마른 대지 위에 단비가 내리듯이 자신의 심령에 하나님의 은혜가 내리고 있음을 느낍니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도 믿어집니다. 하나님과 자기가 과거에 생각할 수 없는 특별한 관계로 발전해 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③하나님을 앙망하는 단계입니다.
22절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여기 하나님을 앙망한다는 것은 하나님만 바라본다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 바라보던 것을 중단하고, 사람 바라보던 것을 중단하고 하나님만 바라본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40:31절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④하나님을 자랑하는 단계입니다.
25절 "이스라엘 자손은 다 여호와로 의롭다 함을 얻고 자랑하리라" 우리가 이 단계까지 가야 합니다.

2. '이만한 믿음'을 가진 백부장을 조명해 보며 은혜를 받기를 소원합니다!

①백부장의 신분과 그의 인격을 알아보자!
가버나움에는 분봉왕 헤롯의 궁이 있었고, 갈릴리 지방 사람들이 곧잘 반란을 일으켰기에 로마 제국은 그곳에 군단급의 군대를 주둔시켰습니다.
그 로마 군단은 이탈리아 본토인들이 아니라 시리아나 레바논인들 같은 용병들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장교급들은 대부분 로마 출신으로 로마 정규 사관학교를 거친 자들입니다.
로마 군대는 한 군단이 6000명인데, 이것을 100명씩 60단위 부대로 하여 그 지휘권을 백부장에게 주었습니다. 이 같은 로마의 장교들은 마치 유대교의 산헤드린 공회원처럼 그 출세 가도가 열린 행운아들이요 엘리트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지위가 대단했습니다. 부자였습니다. 세도가 높았습니다. 여하튼 그가 유대인이 아니었음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눅7:5절에 보면 유대인들이 가버나움의 백부장을 가리켜 '저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고 했습니다.
로마인은 유대인을 경멸하고, 유대인은 로마인을 증오하며, 서로 적대감을 품고 살아가던 그 당시에 이 백부장만은 달랐습니다. 그는 유대인을 사랑했다고 했습니다. 적대 관계에 있던 유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 마음인줄 믿습니다.

②백부장은 간구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5).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 와 간구하여"
▶마태복음에는 백부장이 직접 예수님께 나아와 간구한 것으로 기록이 되어 있는데 반해, 똑같은 배경을 기록한 누가복음에는 유대인 장로 몇을 보내어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것은 곧 성경의 오류라고 헛된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태는 기사를 축소하여 중개자(유대인 장로들)를 생략함으로써 사건을 간결하게 묘사하면서 백부장의 믿음을 더욱 강조하고 있는데 이것이 곧 누가복음의 관점과 다른 차이점입니다.
가버나움은 갈릴리 해변에 위치해 있는데 예수님은 이곳을 사역의 중심지로 삼으시고 활동하신 곳이었습니다.
여기 '간구'는 기도의 한 형태입니다. 이것은 곧 기도의 애절함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간구'라는 말은 어떤 목적이 성취될 때까지 간절하게 요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땀과 눈물을 흘려 가면서 간절히 간절히 매어 달리는 것을 뜻합니다. 백부장은 고급 장교였지만, 나사렛 예수 앞에 나와서 '주여 주여' 하면서 겸손히 부르짖으며 간구했습니다.
간구하는 기도에는 힘이 있습니다. 약5:16절에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고 했습니다.

③예수를 생명의 구주로 고백하는 믿음이 그에게 있었습니다(6)
여러분! 유대인들이나 그 제자들도 예수님을 처음부터 '주여'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밤중에 찾아온 니고데모도 예수님을 부를 때 '랍비여!' 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방인이 그것도 권세가 있는 백부장이 30세 창년 예수를 보고 "큐리에" 주여 라고 불렀습니다.
로마의 주 '큐리에'는 황제 한 사람뿐입니다. 로마의 장교가 식민지 유대 청년을 보고 '주여'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그렇게 불러서는 안됩니다.
그런데도 그는 예수님을 향해 주여! 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에 놀라운 믿음이 있습니다. 이런 믿음이 기적이 일어나고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을 놀라게 한 것은 바로 이방인이자 로마의 군대장관이 예수님을 향해 '당신이 바로 온 세상 피조물들을 창조하시고 통치하시는 주님'이라고 고백한 믿음이었습니다. 이런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할/

④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믿음이 있었습니다(6).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백부장은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백부장이 예수님께 나아와 병든 사람을 고쳐달라고 했던 그 병든 사람은 백부장의 아내가 아닙니다. 아들도 형제도, 친척도 아닙니다. 자기의 종이었습니다.
그는 크고 작은 전쟁을 치르면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또 죽는 것을 목격하기도 한 군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죽음을 대수롭잖게 여길 수도 있는 사람입니다. 더욱이 그 당시의 종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인이란 (헬)[파이스]인데 이 말은 '종', 또는 '노예'라는 뜻입니다. 당시의 종(노예)은 하나의 물건으로, 재산으로 취급되었습니다.
지금은 자유를,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하는 미국 땅에서도 불과 150여년 전에 흑인 노예가 시장에서 소, 돼지와 함께 거래되었습니다.
100년, 150년 전에도 사람이 물건처럼 시장에서 매매되었는데 2000여년 전 백부장의 노예, 종은 말할 것도 없이 하나의 물건에 불과합니다. 재산이었습니다. 종이 죽는다 해도, 종을 죽인다 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백부장은 자기 하인의 아픔을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얼마나 인자한 사람입니까?
백부장은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촌에는 병든 부모를 버리는 자식이 있는가 하면, 병든 자식도 버리고, 형제도 버리는 세상인데, 오늘 본문의 백부장은 자기 종을 끔직히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아름다운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어야 되어야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⑤백부장은 겸손한 믿음의 소유자입니다(7-8).
백부장의 간청을 듣고 주님께서는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고 선뜻 승낙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라는 말을 사용하여 치유의 주체가 자신이라는 사실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러자 백부장은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습니다"고 하면서 사양을 했습니다.
이것은 백부장이 얼마나 겸손한 사람인가를 단적으로 보여 줍니다. 그는 점령국의 장교였습니다.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는 위세 높은 로마의 백부장은, 나사렛 촌에서 자란 무명의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었으니, 이것은 그의 놀라운 겸손을 보여 줍니다.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이는 백부장의 집이 초라하고 누추해서 주님이 그의 집까지 오시는 것이 싫다는 것이 아닙니다. 당시 백부장 정도의 집이라면 집의 규모가 대단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왕중의 왕, 사령관 중의 사령관 되시는 주님께서 나 같은 이방인의 하인을 고쳐주시기 위해, 일부러, 우정, 수고스럽게, 집에까지 오시는 것은 송구스럽고 황송하다는 그의 겸손한 인격입니다.
하루는 '어거스틴'에게 그의 제자들이 찾아 와서 '가장 크고 놀랍게 변화되는 축복의 비결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첫째도 겸손이요, 둘째도 겸손이요, 셋째도 겸손이라'고 했다는 말은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산은 물을 배척하지만, 계곡은 물로 채워져 있다'고 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교만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께서 그를 대적하시지만,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를 구원해 주십니다. 겸손한 자는 명예를 얻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어주십니다.

⑥백부장은 말씀만을 의지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8-9).
백부장은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나이다"고 했습니다. 백부장은 주님의 말씀 한 마디로 자기 하인의 중풍병이 나을 것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고, 내 아래에는 졸병도 있는데 그에게 가라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고,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그런데 사령관 중의 사령관 되시는 주님께서 제 하인 하나 고치시기 위해 번거롭게 꼭 오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다만 여기서 한 마디 말씀만 하시면 제 하인이 낫게 될 줄을 저는 믿습니다. 그러니 구지 제 집까지 번거롭게 꼭 가실 것 없습니다.
백부장은 군인답게 주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군대는 명령에 복종하는 특수한 조직입니다.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사회가 군대입니다. 군인으로서 주님의 능력을 믿는 순수한 믿음을 가진 백부장은 주님께서 한마디 말씀만 하시면 종이 치료된다는 확실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시19편에 여호와의 말씀은 ▶영혼을 소생케 하며,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마음을 기쁘게 하고, ▶우리의 영안을 밝게 한다고 했습니다.
유명한 부흥사 무디는 말하기를 '참 믿음은 창1:1-계22:21절까지 아멘으로 받아들이는 믿음이다'고 했습니다.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도 말씀으로 세계를 지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 자체이십니다. 말씀 자체이신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말씀이요, 영생의 말씀입니다(요6:25,68).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고(요1:1-3), 말씀으로 인생의 목표와 방향을 바꾸어 놓았습니다(요21:15-19,행9:1-22).
말씀으로 병을 고치시고, 말씀으로 바다를 잔잔케 하셨습니다(마8:23-27). 또한 말씀으로 귀신을 내쫓았습니다(마8:28-34).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눅1:37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모든 난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과 원리가 이 말씀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믿음을 낳게 하는 유일한 요소는 말씀밖에 없습니다. 롬10:17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⑦주님이 칭찬해 준 믿음입니다(10).
주님께서는 백부장의 말을 듣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고 크게 칭찬을 하셨습니다.
여기서 '기이히 여겨'로 번역된 헬라어는 '감탄하다'는 뜻입니다. 우리 나라 말로 '최고다!'라는 뜻이요, 영어권의 사람들이 감탄할 때 쓰는 '원더풀!'과 같은 의미입니다.

⑧이방인의 구원을 계시하는 믿음입니다(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여기 "동서"는 이방 나라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늘나라에 많은 이방인들도 참여할 것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곧 구원은 민족이나 인종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메시야를 거부하며 불신앙에 계속 머무르고 있는 유대인들은 나라의 본 자손으로 태어났다 해도 교회의 일원이 되지 못하고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여기 '바깥 어두운데'는 절대 소외와 영적인 절망과 종말론적인 죽음과 형벌이 있는 곳을 의미합니다.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라고 했는데, 그것은 백부장과 같은 믿음을 가진 자들을 말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어 구원의 자녀가 된다는 진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⑨응답을 받는 믿음입니다(13).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으니라"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그대로 되었습니다. 이것은 곧 예수님의 전능성을 증거해 주는 표적이었습니다. 시공간을 초월한 말씀으로서의 치료이기 때문입니다.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이 축복의 선언 한마디로 그의 문제가 해결되고 말았습니다. 그 시로 하인이 깨끗이 치료되었습니다.
여기 '그 시로'는 '바로 그 순간부터'라는 말입니다. '네 믿은 대로 되라!' 하나님의 은혜는 무한정 하십니다.
'네 믿음대로'란 '네 믿었던 대로'라는 뜻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백부장의 믿음이란, 말씀만으로도 능히 질병을 다스리실 수 있는 권세가 예수님께 있음을 믿었던 백부장의 믿음을 의미합니다.
어거스틴은 말하기를 '믿지 않는 자에게는 하나님도 어쩔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우리는 어느 곳,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어느 부부가 있었는데, 부인은 아주 열심히 천주교를 믿는 신자였습니다. 그런데 술주정뱅이에 개망나니인 그의 남편이 성당에 나가기만 하면 죽이겠다고 협박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부인이 성당에 가서 신부님께 의논을 했습니다. "신부님, 무섭습니다. 남편이 한번만 더 성당에 가면 저를 죽이겠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고 하자, 신부는 "오, 가엽게도 그런 일을 겪고 있군요. 그렇지만 믿음을 가지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을 지켜주실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주일, 그 부인은 신부에게 찾아가 "신부님, 큰일났어요. 남편이 제가 성당에 또다시 가면 이제는 신부님을 죽이겠다고 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신부가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남편이 하라는 대로 따라하십시오"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 믿음의 한계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문제가 닥치면 믿음을 가지라고 말하면서, 자기 자신에게 문제가 닥치면 믿음을 저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믿었으면 끝까지 믿어야 합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고 믿을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믿으시면 아멘! /할/


출처/송수천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