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이사야 45:18~25 (로마서 15:7~13 참조)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리고 해가 저물고 다시 새해가 시작될 때마다 우리는 뭔가 나름대로 삶의 교훈을 얻게 됩니다. 같은 시간의 연속이며 똑같은 삶의 반복임에도 불구하고 특히 마지막 달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다른 것 같지 않습니까? 아마도 앞만 보고 분주하게 달려가던 우리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진지한 마음가짐으로 삶 그 자체를 돌아보게 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 해를 마감하는 이 시점에서 다만 지나온 발자취를 돌아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어떤 다짐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아니면 그것을 단순히 준비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한 그 어떤 다짐이나 준비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과거를 거울로 삼아서 건강하고 밝은 미래를 건설하기 위한 무엇인가 결단이 필요한 것이 바로 지금이라는 말입니다.

오늘은 대림절 두 번째 주일입니다. 대림절 절기에는 우리는 그 무엇보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심의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온 세상 만민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다시 오실 그리스도 우리 주님을 반갑게 맞기 위해서 준비하고 기다리는 절기가 되어야 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오시는 그 주님을 반갑게 맞기 위해서 준비하고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때문에 오늘 우리에게는 특별히 영적으로 확실한 다짐과 결단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선지자 이사야는 자신이 보고 들은 참으로 놀랍고 신기한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가 뭐라고 외치고 있습니까? 선지자는 외칩니다. 모든 나라와 백성들이 우상들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고..... 그는 계속해서 외칩니다. 열방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참 하나님이심을 알게 될 것이며 때문에 그 하나님을 찾게 될 것이라고.....

과연 모든 나라와 백성들이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며 결코 다른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방 나라들이 일어날 때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우상들과 이방 종교들이 세력을 펴나갈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선지자는 소리 높여 외치고 있습니다.

그는 애굽과 구스와 스바와 같은 열방이 하나님께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분명히 예언하고 있습니다. 저들 열방의 백성들도 완전히 하나님께 속한 백성들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저들의 모든 재산과 소유까지도 하나님의 것이 될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저들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있을 수 없음을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장자 나라로서 영원한 구원을 얻게 될 것이며 다시는 그 어떤 부끄러움도 당하는 일이 없게 될 것입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애굽과 구스와 스바를 비롯한 열방의 정복자는 파사의 고레스 왕입니다. 그러나 그 고레스 왕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서 그리고 열방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고레스 왕을 도구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파사 왕 고레스의 전쟁을 할 때마다 승리하게 된 것도 알고 보면 복음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을 세계 만방에 전하는 간접적인 선교의 한 과정인 것입니다. 과연 고레스 왕의 승리의 역사는 이스라엘 백성을 포로 생활에서 구출하고 예루살렘을 재건하는 일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었습니다. 또 고레스 왕에게 정복당한 열방이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었고 많은 백성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일에 큰 영향을 끼친 것도 사실입니다. 과연 역사를 친히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께서는 파사 왕 고레스를 도구로 사용하셔서 세계 만방에 하나님을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셨겠습니까? 그 대답은 아주 분명합니다. 세상 모든 민족과 나라와 백성들이 믿고 구원을 얻게 하려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 외에는 결코 다른 신의 존재가 있을 수 없습니다. 오늘 선지자 이사야는 이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거듭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사야만 이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죽이겠다고 위협하고 있는 종교 지도자들 앞에서 성령 충만한 베드로가 뭐라고 외쳤습니까?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

예나 지금이나 우리의 믿음의 최종 목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세상 만민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온전히 이루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이 우리의 구원을 이룰 수 있다는 말입니다. 때문에 오늘 우리도 이렇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옛날 바울 사도가 고백했던 것처럼.....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롬 14:8)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때문에 오늘 선지자는 세상 만민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뭐라고 호소하고 있습니까? 땅 끝의 모든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앙망하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리하면 누구나 구원을 얻게 된다고 그는 분명히 선포하고 있습니다. 과연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는 그 어떤 제한도 없습니다. 그 누구나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을 바라면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무차별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과연 온 세상 만민을 위한 복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역사적 필연성을 가집니다. 쉽게 말해서 기필코 그 약속은 이루어지고 말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에 의지해서 우리는 새롭게 다짐해야 합니다. 온 세상 만민을 향한 구원의 복음이 오늘 우리에게까지 전해진 것은 전하는 자들의 수고가 있었기 때문에 비로소 가능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이 우리의 삶의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대림절 절기는 단순히 기다리기만 하는 절기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로마서의 말씀으로 바로 이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삶의 자세가 어떤 것이 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아니 하나님의 구원의 성취를 향해서 나아가는 모든 믿는 이들의 삶의 자세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가르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앙이란 막연하거나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인 것입니다. 때문에 작은 신앙의 경험들이 쌓여서 마침내 위대한 신앙적 결단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분쟁과 다툼의 현장에서 실제로 이루어져야 할 구체적인 행동을 지시하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오직 소망의 주님을 바라볼 것을 지시합니다.

당시 유대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 모두에게 지시했던 서로 용납하라는 지시는 오늘 시대를 초월하고 대상을 초월하여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초월하여 우리를 받아 주신 것처럼 우리도 또한 모든 것을 초월하여 서로 받아 주는 것이 지극히 마땅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는 그리스도께서 유대인에게 약속하신 것을 이루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또한 그 그리스도께서는 이방인에게 긍휼을 베푸사 그들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도록 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했습니다. 때문에 더욱 서로 서로 받아 주어야 할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던 것입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열방의 백성들에게도 소망이 된다는 사실을 선포했습니다.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하고 참된 소망은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이 소망 가운데서 서로 받아 주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은 서로 받아 주기 힘든 것도 사실입니다. 또한 참기 어려운 일도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참된 소망이 되시기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신 그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모든 것을 참고 또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지난 금요일 삼성의료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를 심방했습니다. 고등학교 동기 동창이며 현재 모교의 수학 선생으로 일하고 있는 친구가 얼마 전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막상 방문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예수를 믿지 않는 친구였기 때문에 별로 방문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함께 근무하다가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간 선생님이 며칠 전 저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목사님, 윤 선생님이 예수님을 영접했어요! 병원으로 한 번 심방해 주시면 고맙겠어요!" 반갑기는 했지만 믿기지 않아서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하여간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병실에 들어서면서 저는 두 번 크게 놀랐습니다. 너무나 초췌해진 친구의 모습,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약병들, 그리고 친구의 얼굴을 뒤덮고 있는 산소 마스크를 보면서 한 번 크게 놀랐습니다. 그러나 그 친구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본 저는 다시 한 번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얼굴이 얼마나 평화스러운지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의 사연을 지금 여기서 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그 친구의 가족들은 원래 예수를 잘 믿었다고 합니다. 그 친구도 고등학교 시절에 세례를 받았고 열심히 교회에 출석했으며 한 때 고등부 회장도 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무슨 까닭인지 몰라도 그 후 교회를 점점 멀리하게 되었고 40년 가까이 교회와 담을 쌓고 지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난 10월 하순경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서 급하게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친구의 심장 기능은 정상인의 10%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심장이 워낙 약하기 때문에 자연히 폐의 기능도 약해져서 최근에는 집이나 학교에서도 산소 호흡기의 도움이 없으면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었다고 합니다.

하여간 응급실을 통해서 입원했는데 전과는 달리 이상한 생각이 자꾸 들더라는 것입니다. 어떤 생각이었느냐 하면 먼저 이번에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다른 문제는 별로 걱정되는 것이 없는데 죄의 문제가 자꾸 떠오르면서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되겠는데 도저히 해결할 방법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슬그머니 예수님이라면 해결하실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마음과 그 예수님을 의지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솔직히 너무 염치없는 생각 같아서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의 부친이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위해서 40년을 쉬지 않고 기도했는데 바로 오늘이 그 40년 되는 날이란다." 바로 그 때 그 자리에서 그 친구는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기기로 결단했습니다. 알고 보니 저에게 전화를 한 그 동료 선생님도 지금까지 2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그 친구를 위해서 기도했다고 합니다. 정작 친구인 저는 부끄럽게도 그 친구에 대해서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역사가 참으로 신기하고 놀랍지 않습니까? 아울러 성경이 중언하고 있는 것처럼 의인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은 대림절 두 번째 주일입니다! 대림절 절기는 단순한 머무름이나 기다림의 절기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기대를 이루어가는 절기입니다! 소망의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와 내가, 나와 이웃이, 그리고 교회와 민족이 진정 하나가 되어 온 세상 만민의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헌신할 것을 결단하고 다짐하는 절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출처/강석공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