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와 회복  (왕상19:1-10)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환경이나 정황이 어려워질 때 침체를 경험하기도 하며, 우울증에 시달 리기도 합니다. 집안에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사업이 어려워질 때, 직장생활이 불안할 때, 자신의 삶의 길이 불투명하고 불안해 보일 때,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또는 영적으로 침체의 늪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방황하며, 좌절해 버리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심지어는 위대한 선지자들도 이 침체의 늪에 빠지기도 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사람이 엘리야입니다. 엘리 야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대결해서 통쾌한 승리를 거두었 으며, 3년 6개월 비오지 않던 땅에 하나님은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단비를 내려 주셨습니다. 이런 엘리야도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기에 믿음이 약해질 때가 있었고, 용기를 잃어버릴 때도 있었으며, 절망과 불안에 빠져 헤어나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엘리야가 그럴 수밖에 었었던 것은 왕후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기로 작정을 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2절을 보면 "내가 내일 이 맘때에는 정녕 네 생명으로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같게 하리 라.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위에 벌을 내임이 마땅하니라"고 했습니다. 이세벨의 말은 한마디로 "내가 만일 하루안에 너를 죽이지 아니하면 나는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엘리야는 3년간을 두려움 을 모르고,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이루었지만 이세벨로 인하여 생명의 위협을 느낀 엘리야는 광야로 도망 가서 깊은 좌절과 절망에 빠진채 로뎀나무아래 앉아 죽기를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소서"라고 죽기를 소원하는 약하고 곤비해진 모습이 인간의 참모습이기에 엘리야는 그 절망에 몸부림치며 죽기를 자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엘리야가 왜 이런 침체의 자리에 빠져 절망하고 있습니까?

첫째는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4절을 보면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엘리야는 지금 자신을 자기 열조와 비교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자기 열조보다 못하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자신은 못난 놈이라는 것입 니다. 자신은 보잘 것 없고 못난 놈이기에 자신의 생명을 거두어가 달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 지입니다. 왜 사람들이 침체에 빠지며 절망합니까?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 구와 같으면 좋았을 것을, 내가 누구와 같으면 행복할 텐데. 나는 왜 다른 사람과 같지 않을까? 나는 왜 이렇게 못났을까?" 하는 자학에 빠지게 되고, 그것이 우리를 정신적, 영적 침체의 늪에 빠뜨리게 됩니다. 성경은 그것이 지혜롭지 못하고, 자기에게 해가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0:12절을 보면 "우리가 어떤 자기를 칭찬하는 자로 감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노라. 그러나 저희가 자기로서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서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 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다 각각 유일한 인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지구상의 수많은 사람들 중에 오직 나라는 인간을 유일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나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살아가면 우리도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침체의 늪에 빠질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하나 님이 나를 만들어 놓으신 그 모습 그대로 나를 사용하시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이 믿음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일에 결과가 없을 때입니다. 오늘 본문 10절을 보면 "내가 만군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 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했습니 다. 엘리야는 "자신이 열심히 하나님을 위하여 일을 했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전히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오지 않고 있으며, 내가 노력을 많이 했지만 그러나 여전히 그들은 과거와 같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사람이 무슨 일을 하든지 자기 하는 일에 열매가 있을 때 사람들은 그 일에 대한 보람과 긍지와 자부심을 갖게 됩니다. 일의 결과가 좋아야 그 일을 계속하고 싶은 욕망도 갖습니다. 그러나 일은 열심히 했는데 결과가 좋지 못할 때, 또는 열심히 노력해서 일했는데도 열매가 없을 때 실망하고 좌절하고 침체에 빠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우리의 열심이나 노력만으로 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고 힘써 일하는 것이며, 일의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했습니다. 엘리야는 자신이 하나님을 위하여 열심과 특심이 되도록 일을 했는데도 열매가 없고, 결과가 없자 침체의 늪에 빠진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우리의 열심이나 노력으로 모든 것이 다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더 겸손히 기도 하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는 엘리야가 침체에 빠진 것은 부정적인 생각 때문입니다. 본문 10절 하반절 말씀을 보면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취하려 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14절에도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고 물었을 때 "주의 선지자들이 죽고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들이 내 생명을 취하 려 하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은 사람 7천명을 남겨 두셨는데도 엘리야는 자신만 살아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하나님 나 혼자 남아있는데 홀로 남은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으며 또 그나마도 저들이 내 생명을 찾고 있습니다"라고 한 것입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침체에 빠지는 이유는 자기는 혼자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누구도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고, 함께 해 주는 사람이 없고,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자기를 이해해주는 사람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살심리학은 사람이 아무도 자기를 알아주고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을 때 자살을 하려 한다는 것이며, 자기를 이해해 주고, 알아주는 사람 한사람만 있어도 자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왜 로뎀나무 아래 앉아 죽기를 자처하고 있습니까? 자기 혼자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결코 혼자일 수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침체에 빠져 죽기를 자처하는 엘리야를 하나님은 어떻게 회복시키셨습니까?

첫째로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쉼을 주셨습니다. 로뎀나무 아래 앉아 죽기를 구하던 엘리야가 피곤에 지쳐 잠들자 그때에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일어나서 먹으라" 하였습니다. 엘리야가 일어나 주위를 둘러 보았 더니 머리맡에 숱불에 구운 떡과 한병의 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워 잤습니다. 천사가 두 번째 와서 어루만지며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했습니다. 엘리야가 침체에서 회복되는 첫 번째 요소는 쉼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육신적으로,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피곤할 때 침체에 빠져들어가게 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안식과 숨을 주셔서 침체에 바진 사람들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우리 주님은 오늘도 침체에 빠져 지쳐 있는 인생들을 부르십니다.

둘째로 우리의 좌절을 하나님께 내어 놓아야 합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이 주신 음식을 먹고 힘을 얻어 40일을 걸어서 호렙산에 도착하여 굴로 들어가서 밤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하나님이 그에게 "엘리 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라고 물었습니다. 엘리야는 "내가 3년동안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하고 노력을 다 기울였어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오지 않고 여전히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의 선지자들 을 죽이고 나만 남았는데 나 마저 죽이려해서 내가 이러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다 쏟아놓았습니다. 엘리야의 불평에 하나님은 전혀 놀라지 않으시고 새로운 사명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이 겁쟁이야!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야단을 치지도 않으시고 그를 정죄하고 무시하지고 않으셨습니다. 침체에 빠져 있는 엘리야의 모습을 그대로 받으셨습니다. 때로 우리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마음의 상처나 아픔이나 고통을 하나님께 내어 놓아야 합니다. 또한 다른 중보 기도자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로 하여금 내어 버리도록 하셨습니다. "엘리야야! 너를 좌절하게 하는 것이 무엇이냐? 너를 근심하게 하는 것이 무엇이냐?"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침체가운데 있을 때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우리의 침체를, 우리의 문제를, 우리의 아픔과 성처를 하나님께 내어 놓는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서 있으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가 운데 여호와가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가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후에 불이 있으나 불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시더니 불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하셨습니다. 이 소리를 듣고 엘리야가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웠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바람과 지진과 물을 보여 주셨지만 그 어느 것으로도 주님은 엘리야에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엘리야는 주님의 세미한 음성속에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바람이 나 지진이나 불과 같은 크고 극적인 것들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세미한 음성으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오늘 우리를 침체의 늪과 좌절에서 회복시켜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음성이며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결론입니다. 우리 모두 누구라도 침체에 빠질 수 있습니다. 좌절하고 절망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좌절이 하나님의 좌절이 아닙니다. 우리의 침체가 하나님의 침체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침체의 자리에 찾아오셔서 우리에게 쉼을 주시기를 원하시며 우리의 모든 좌절을 하나님께 내어 놓으시기를 원하시며, 세미한 음성으로 우리의 침체와 좌절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출처/극동방송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