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마가복음 1:32~39)

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온 동네가 문앞에 모였더라 예수께서 각색 병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어 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시니라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만나서 가로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저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어 쫓으시더라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긍휼이 풍성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긍휼히 여김을 받아야 할 불행한 자를 절대로 방관 하지 아니하시기에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마5:7)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나를 아무리 긍휼히 여길지라도 나는 무능하여 나의 불쌍한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으나, 긍휼히 여겨줄 수 있는 능력 있는 분이 나를 긍휼히 여겨 주신다면 나의 불쌍한 문제는 곧 해결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며 찾는 이가 찾을 것이며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7:8). 만약 내 방법과 내가 가진 수단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가졌다면 나를 돕기 위하여 기다리시는 전능하신 예수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자기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해결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병든 자, 소외된 자, 고통당하는 자, 그리고 인간의 방법과 현대 문명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고통과 문제를 가진 자들을 찾으셔서 그들이 가진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치료해 주시려고 기다리시는 치료의 하나님이십니다(출15:26).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다 죄로부터 온 것이니 이 모든 인간들의 불행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역사하신 것이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사랑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인간의 모든 질병과 약한 것을 없애버리시고 오직 그분의 은혜의 축복으로 살게 하려 하심인 것입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마8:17).

예수는 최상의 복음
예수께서는 이처럼 우리의 연약하여 할 수 없는 불가능을 담당하시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지시고 우리의 저주를 해결하시기 위해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5-6). 예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고 말씀하십니다. 이 시간 자기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을 짊어진 사람이 있다면 예수께 나아와 그 모든 짐을 풀어놓고 예수로 자유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그가 우리의 고통을 해결하시기 위해 오셨다는 사실을 알아서 그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믿기만 하면 그가 역사하시는 체험의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신령한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사랑하시겠다고 하신 약속을 그 아들을 통해 이루셨습니다. 인간의 질병과 저주와 허물을 대신 담당하시고, 우리를 영원히 지옥에 보낼 원수 같은 죄를 담당하셔서 대신 죽으시기까지 그 아들의 생애로 우리에게 보이신 은혜와 사랑의 실천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위대한 축복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모든 죄와 고통과 문제를 그가 친히 담당하고 해결하셨으니, 예수가 해결하셨다는 사실을 믿는 자마다 죄에서 질병에서 저주에서 문제에서 자유 할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가시는 곳마다 병든 자를 고치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불행의 늪에 있는 인간에게는 최고의 소식이며, 최고의 기쁨이며, 최고의 해결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현대 문명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절망을 가진 자에게는 뜻밖의 최상의 기쁨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그를 만나는 자마다 죽은 자라도 살아나고, 문둥이라도 치료를 받으며, 귀신에 얽매인 자가 놓임을 받고 가난한 자가 부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만이 진정한 행복을 줄 수 있는 위대한 축복이며, 오직 예수만이 신령한 복음인 것입니다.

  

믿음은 제한하지 않는 것
예수의 능력은 당신의 몫입니다. 예수의 부요는 바로 당신의 몫입니다. 예수의 축복은 다름 아닌 바로 당신의 몫인 것입니다. 그러나 허다한 무리와 같이 예수를 그저 구경하기만 한다면 그 능력과 부요와 축복은 절대로 당신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앞에 구경꾼이 되지 말고 예수를 당신의 기업으로 갖기를 바랍니다.
예수가 누구입니까? 우리는 예수에 대한 소문을 잘 들어야 합니다. 교회에 와서도 예수에 대한 소문을 잘못 들으면 참으로 억울한 일입니다. 예수는 박애주의 사상가나 윤리 도덕의 창시자가 아닙니다. 인간이 할 수 없는 수준을 뛰어넘어 무엇이든지 제한 없이 하실 수 있는 능력자이십니다. 어떤 사람은 그와 같이 말합니다. “내가 병든 지가 30년이 넘었습니다. 30년이나 된 병을 어떻게 고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썩어서 냄새가 나는 송장을 말씀 한마디로 살려내셨습니다. 이 시간도 그분은 우리를 도와주시려고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말고 믿어야 합니다. 믿음은 제한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믿음을 제한하기 때문에 “기도해도 안 되네”라고 자기 스스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합니다.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요? 주님이 우리의 믿음을 인정하실 때까지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해도 안 된다고 좌절합니까? 우리의 적은 지식과 상식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해서는 안 됩니다. 현대문명을 기준으로 제한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현대문명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나님도 하실 수 없다고 제한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제한하여 예수께서 우리를 향한 뜻을 손해 보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상은 예수가 없이는 영원한 고통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불가능이 충만한 세상입니다. 하나님은 그 사실을 아시기에 우리의 불가능을 해결해 주시려고 예수를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는 믿는 자의 몫
이 세상의 어떤 종교에도 예수가 없는 곳에는 복음이 없습니다. 예수가 없는 곳에는 능력도 없습니다. 또한 아무리 예수를 부를지라도 믿음이 없는 곳에는 절대로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게서 주님은 일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고 했습니다. 기도의 응답은 그가 주시는 상이며, 치료도 그가 주시는 상이며, 구원과 축복도 그가 주시는 상이니, 찾는 자들에게 주시는 이 모든 상을 기어이 자기의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주님이 원하시는 믿음의 분량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만나기 전에는 절대로 물러서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를 만나서 문제의 모든 근원을 해결해 버릴 때까지 예수를 붙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9장에 한 사람이 귀신들린 아들을 예수께 데리고 왔습니다. 예수께 말하기를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도와달라고 합니다. 그 때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아이의 아버지는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소리 질러 말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의 믿음을 보시고 현장에서 그 아들에게 들어온 귀신을 쫓아 내셨습니다. 이렇게 믿음 안에는 능치 못함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는 예수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일을 자기 스스로 한계를 정하고 그 이상의 것은 바라지 않는 것입니까? 예수는 믿음 없이 종교적 의미로 모인 자들에게는 절대로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예수의 소문
고통과 문제와 질병과 악한 영에서 그리고 죄에서 해방된 사람들은 그 현장을 본 자들을 통하여 예수의 소문이 제한 없이 퍼져나가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왜 예수의 소문이 예수를 믿으면 좋은 사람이 되고, 잘 살게 된다고 하는 거기까지만 소문이 났을까요? 예수는 죽은 자를 살리시고, 문둥이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며 당신의 불치병까지도 치료하시는 분이십니다. 여기까지 소문이 나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을 통해 온 세상에 예수의 능력과 이적이 퍼져나가기를 원합니다. 예수는 지옥 가야할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죽으셔서 우리의 지옥 갈 죄를 해결했다고 세계만방에 소문이 퍼져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만난 만큼, 예수를 체험한 만큼 예수의 소문은 퍼지게 되어 있습니다. 당신은 예수를 어떻게 만났다고 소문내시겠습니까? 예수가 어떤 분이라고 소문을 내시겠습니까? 예수는 이 땅에 오셔서 천지간에 힘을 합해도 할 수 없고, 인간의 모든 힘을 합해도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분이십니다. 이 죄 때문에 저주가 오고 질병도 오고, 이 죄 때문에 수많은 고통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죄로 인해 고통당하다가 이생에서 인생을 마감하는 순간, 그 죄가 그를 끌고 영원히 고통당할 수밖에 없는 지옥으로 끌고 갑니다. 이 죄는 오직 예수로만 해결할 수 있으니 예수로 말미암아 죄가 해결되는 순간, 죄로 인해 왔던 수많은 저주와 질병과 문제는 함께 해결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 예수를 만나 구원받았노라고, 그 예수로 인해 건강하게 되었노라고, 예수를 만나 수많은 문제에서 해방되었노라고, 그렇게 예수의 소문이 세계만방에 퍼져 나가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출처/윤석전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