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삼상16:4-13)


   우리는 앞서서 영광스럽게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첫 왕이 된 사울이 비참하고 치욕스러운 죽음을 맞아야 했던 과정을 살펴본 바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철저히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교만과 탐욕과 거짓이 커졌습니다. 하나님보다 백성을 더 두려워하여 하나님에게서 멀어졌고,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울이 아직 왕으로 살아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 새 왕이 될 사람으로 다윗을 택하시고 그에게 기름을 부으신 일을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과 결별한 일로 슬픔에 잠겨있는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삼상16:1). 이에 사무엘이 대답하기를 "제가 어찌 갈 수 있겠습니까? 사울이 들으면 저를 죽일 것입니다" 했습니다(삼상16:2).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사무엘의 이 반응 속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였고 사울을 왕으로 세운 하나님의 사람이었던 사무엘조차도 두려워할 만큼 사울은 이미 포악한 군주로 변해 있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사실 사무엘의 본거지인 라마(본문 13절)에서 이새의 가족이 사는 베들레헴으로 가려면 사울이 거하는 기브아(삼상15:34)를 지나가야 했기 때문에 사울이 아직 왕위에 있는데 다른 왕을 세우려고 그리로 지나간다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대로 제사를 드리려고 가는 모양새를 갖추어 암송아지를 끌고 베들레헴 이새의 집으로 향했습니다(삼상16:2-3). 베들레헴에 도착한 사무엘은 제사에 참석하라는 명분으로 이새로 하여금 그의 모든 아들들을 불러 자기 앞에 나아오게 했습니다(본문 4-5절). 이새가 제일 먼저 그의 맏아들 엘리압을 사무엘 앞에 서게 했을 때에 사무엘은 그를 보자마자 그의 외모에 매료된 것 같습니다. 그는 마음속으로 말하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본문 6절) 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말씀하시기를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본문 7절) 하셨습니다. 외모로 사무엘을 사로잡았던 엘리압을 하나님께서 왜 택하지 않으셨는지 짐작할만한 일이 나중에 발생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사무엘에게 그 이유를 전혀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자 사무엘은 아무 의문이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승복했습니다. 이에 이새는 둘째 아들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 앞을 지나가게 했지만 그도 아니었습니다(본문 8절). 이새가 또 셋째 아들 삼마로 하여금 사무엘 앞을 지나가게 했으나 그도 역시 아니었습니다(본문 9절). 이렇게 이새는 그와 함께 있던 아들 일곱을 다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했으나 사무엘은 그 누구에 대해서도 하나님으로부터 "바로 이 사람이다"라는 답을 듣지 못했습니다(본문 10절). 그래서 사무엘이 이새에게 물었습니다: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로부터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하는 대답을 들은 사무엘은 그에게 이르기를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했습니다(본문 11절). 이새의 그 막내가 바로 다윗이었습니다. 이 다윗이 돌아와 사무엘 앞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가리켜 말씀하셨습니다: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본문 12절). 이에 사무엘은 두 말 하지 않고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이새와 그의 모든 아들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다윗의 머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본문 13절). 과연 다윗은 어떤 사람이었기에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그를 새 이스라엘의 왕으로 택하셨는지 우리는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윗의 인물됨이 처음으로 드러난 것은 블레셋과의 전쟁터에서였습니다. 이스라엘이 다시 블레셋과 싸워야 했고 그래서 양쪽 군대가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을 때에(삼상17:1-3) 블레셋 진영에서 골리앗이라 하는 자가 싸움을 돋우러 나왔습니다. 그는 키가 여섯 규빗 한 뼘이라 했습니다(삼상17:4). 여섯 규빗 한 뼘은 현대적인 단위로 환산하면 2미터 90센티에 해당합니다. 어떤 사본에는 네 규빗 한 뼘이라고 되어 있기도 한데 그래도 2미터 3센티는 됩니다. 거인입니다. 그는 머리에는 놋 투구를 썼고 몸에는 비늘 갑옷을 입었는데 그 갑옷의 무게가 놋 오천 세겔이라 했습니다(삼상17:5). 즉 56킬로나 나가는 갑옷이었습니다. 그의 다리에는 놋 각반을 쳤고 어깨 사이에는 놋 단창을 메었는데 그 창 자루는 베틀 채 같고 창날은 철 육백 세겔이며 방패 든 자가 앞서 행했다고 합니다(삼상17:6-7). 창날만 해도 철 육백 세겔이라 했는데 이것은 6.8킬로가 나가는 무게였습니다. 또 방패 든 자가 그의 앞에서 행했다고 합니다. 큰 방패를 들고 적군의 화살 공격으로부터 장수를 보호하는 책임만 전담하는 부하가 골리앗의 앞에서 그를 가리고 있었음을 말합니다. 그러니 골리앗은 그 자신의 체격과 체력만 해도 엄청나고 무시무시했을 뿐 아니라 공략하려 해도 어디를 공략해야 할지 그 틈이 보이지 않는 완전무결한 방비를 하고 싸움을 걸어왔던 것입니다.

   골리앗은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외치기를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 보내라. 그가 나와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겨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삼상17:8-9)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이스라엘을 향해 싸움의 규칙을 제안할 뿐 아니라 이스라엘을 전투에로 끌어내기 위해 모욕적인 언사로 이스라엘을 자극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소리 지르기를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였으니 사람을 보내어 나와 더불어 싸우게 하라"(삼상17:10) 했습니다. 그런 모욕적인 말을 듣고도 대응을 하지 않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같이 다 겁쟁이들뿐임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불러일으켜 이스라엘 병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전의를 완전히 상실하게 만들어 싸우지도 않고 이스라엘을 굴복시키려는 계산이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 골리앗의 심리전은 적중해서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그의 그 말을 듣고는 놀라 크게 두려워했다고 합니다(삼상17:11). 사울도 다른 모든 이스라엘 백성보다 머리 하나 만큼 더 큰 장수였으나 골리앗에 맞서 싸우러 나서지 못하고 백성과 같이 숨어서 떨고만 있었던 것입니다.

   이때에 다윗이 사울을 따라 전장에 나가있던 세 큰형들에게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식량을 전달하려고 갔다가 골리앗이 이스라엘에게 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삼상17:12-23). 골리앗이 사십 일 동안이나 아침과 저녁마다 그 큰 체구를 드러내고 나와서(삼상17:16) 이스라엘을 모욕하며 싸움을 돋우고 있었지만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그를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칠 뿐이었습니다(삼상17:24). 다윗은 골리앗이 하는 소리와 겁에 질린 이스라엘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삼상17:25)을 듣고는 곁에 서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삼상17:26) 그때에 다윗의 큰형 엘리압이 다윗이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듣고는 화를 내며 다윗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양들을 누구에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삼상17:28).  앞서서 우리는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흡족해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택하지 않으셨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도 하지 않으셨음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 될 재목이 아니었음을 보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이라 하면서도 사십 일 동안 아침과 저녁으로 하나님을 모욕하는 이방인 앞에서 벌벌 떨고만 있는 이스라엘을 보고 의분을 참지 못하는 동생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끼기는커녕 나라와 민족이 존망의 위험에 처했는데 들에 있는 양들 걱정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한 다윗의 말 속에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비록 어린 다윗이었지만 그에게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다윗은 블레셋 사람을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이라 불렀듯이 그들에 대비하여 이스라엘은 할례 받은 백성 즉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라는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그런 이스라엘이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성별하신 백성답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음에 의분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어린 아우에게서 발견되는 신앙의 모습을 맏형 엘리압이 소유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한 것은 그가 왕이 될 재목으로 부적격 판정을 받은 이유로서 충분한 것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다윗이 한 이 말은 어떤 사람에 의해 사울에게 전해졌습니다(삼상17:31). 그러자 사울이 다윗을 불렀습니다. 사울 앞에 불려간 소년 다윗은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그런 자 때문에 낙담해서는 안 됩니다. 제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겠습니다"(삼상17:32). 사울은 다윗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가서 저 블레셋사람과 싸울 수 없으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삼상17:33). 다윗이 다시 사울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 가면 제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저를 해하고자 하면 제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나이다. 제가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라고 안 되겠습니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저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저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실 것입니다"(삼상17:34-37). 이 다윗의 말 속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소년 다윗의 신앙의 면모를 발견합니다. 첫째로, 그는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은 짐승이나 다름없다고 여긴 것입니다. 다윗은 제 아무리 장대하고 완벽한 무장을 한 적장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에게 맞서는 자는 한 마리 짐승 이상으로 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둘째로 다윗은 자기가 사자와 곰을 물리친 일을 하나님께서 사자나 곰으로부터 구해주신 사건으로 이해하고 있었으며 그 하나님께서 골리앗이라는 짐승에게서도 구해주실 것이라 확신했다는 것입니다. 그 골리앗을 쳐 죽이는 것도 자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실 것이라 믿었다는 것입니다.

   사울은 더 이상 다윗을 만류할 수 없으리라 여기고 말했습니다: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삼상17:37). 사울은 자기의 군복을 다윗에게 입히고 놋 투구를 그의 머리에 씌우고 또 그에게 갑옷을 입혔습니다(삼상17:38). 그러나 다윗은 익숙하지 못한 그 군장을 거추장스럽다고 벗어버리고(삼상17:39) 손에 막대기와 매끄러운 물맷돌 다섯 개와 물매만 가지고 골리앗에게로 나아갔습니다(삼상17:40). 이스라엘 진영에서 드디어 한 사람이 나오는 것을 본 골리앗도 방패 든 사람을 앞세우고 다윗에게로 점점 가까이 나아왔습니다(삼상17:41). 그러나 자기 앞으로 나아온 소년 다윗을 보고서는 어이가 없는 듯 그를 업신여기며 말하기를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의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며 다윗에게 말하기를 "내게로 오라. 내가 네 살을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했습니다(삼상17:42-44). 이에 다윗은 골리앗에게 대답하여 말하기를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삼상17:45-47) 했습니다. 전장에 나갈 수도 없이 어린 소년에게서는 참으로 듣기 힘든 놀라운 신앙고백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하나님의 이름 앞에서 칼과 창은 쓸데없는 것이라는 단순명료하고 확고한 믿음입니다.

   서로 할 말을 다한 골리앗과 다윗은 드디어 싸우기 위해 서로를 향해 나아갔습니다. 갑옷을 입지 않아 몸놀림이 민첩했을 다윗은 골리앗을 향하여 돌진하며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돌을 꺼내 물매로 던졌습니다. 다윗의 물매를 떠난 돌맹이는 골리앗의 이마에 적중했고 그 이마에 박히며 그를 땅에 쓰러뜨렸습니다(삼상17:48-49). 칼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다윗이 달려가서 골리앗을 밟고 그의 칼을 빼서 그를 죽이고 그의 머리를 베자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들 용사의 죽음을 보고는 다 도망치기 시작했고 이스라엘 백성은 일어나서 소리 지르며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여 많은 사람을 살상하고 큰 전과를 올리고 승리를 거두었습니다(삼상17:50-54). 다윗은 골리앗의 머리를 손에 들고 사울 앞에 불려가 서게 되었고(삼상17:57) 사울은 다윗을 그의 아버지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자기 곁에 머물게 하며(삼상18:2) 자기의 신하장수로 삼았습니다(삼상18:5). 다윗은 일약 전국적으로 이스라엘의 영웅이 되었고 여인들은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노래하며 뛰놀았습니다(삼상18:6-7). 개선하는 자신이 듣는 데서 여인들이 그렇게 노래하는 것을 들은 사울은 몹시 불쾌해 하며 크게 노했고(삼상18:8) 그 이후부터 다윗을 경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삼상18:9) 틈이 있을 때마다 다윗의 생명을 노렸으며(삼상18:11, 19:9-10) 모든 신하들에게도 다윗을 죽이라고 지시했습니다(삼상19:1). 이때부터 오랜 세월 동안 다윗은 사울을 피해 도망다니며 고통과 인내와 연단의 기간을 지내야 했습니다. 다윗은 두 번이나 사울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가졌으나 그 때마다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며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자기 사람들을 금하곤 했습니다(삼상24:6-7, 26:7-12). 다윗의 이 확고한 입장에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다윗의 깊은 경외심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비록 자기를 해하고 죽이려고 끈질기게 쫓아다니는 사울이었지만 그가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한 가지 사실 때문에, 그에게 기름 부으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 때문에 그에게 손 대기를 자신뿐 아니라 남에게도 끝까지 금한 다윗, 바로 이 다윗의 중심을 하나님께서는 보시고 그를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오늘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다윗에게서 발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에게는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답지 못할 때 의분을 느낄 줄 알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모욕하는 자는 한낮 짐승에 불과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용사이었지만 전쟁의 승리와 구원은 칼과 창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손에서 오는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경외심이 있었고, 그가 자기를 언제나 지켜주시리라는 신뢰가 있었습니다.

   사무엘이 기름을 부은 날 이후로 다윗은 하나님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었다고 오늘 본문 마지막 절은 전하고 있습니다. 반면 바로 그 다음 절에서는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16:14) 합니다. 성령이 떠나시고 악령에 사로잡힌 사울과 성령에 크게 감동된 다윗, 이 두 사람의 그 후의 삶을 사무엘서는 극명하게 대조시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울은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나라와 민족을 구한 영웅이며 자신의 충직한 신하이고 자신의 생명을 끝까지 존귀하게 여겨준 다윗을 죽이기 위하여 광분하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며 비참하고 치욕스런 최후를 맞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이런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니며 고통과 인내와 연단의 세월을 지내야 했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과 오직 그의 구원하시는 손길만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시련을 이기고 왕위에 올라 하나님의 백성의 나라 이스라엘의 영광스러운 시대를 열었던 것입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그렇지 않아도 우리 교회의 장로를 선출하려고 하는 시점에서 참된 하나님의 일꾼을 판단하는 기준에 관해서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할 것이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예나 지금이나 언제나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외모나 나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중심을 보고 사람을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다윗에게 기름 붓는 과정에서 사무엘이 보여준 태도도 유의할 만합니다. 그는 처음 이새의 맏아들 엘리압을 보고는 "아, 이 사람이구나" 생각했었지만 하나님께서 아니라 하시자 곧바로 아무 의문이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승복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은 곧바로 포기할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혈연이나 지연이나 학연이나 개인적으로 주고받은 인간관계 등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사람을 택하는 불충을 저지르지 말아야 합니다. 다윗처럼 성령에 크게 감동된 사람을 택해야 합니다. 성령에 감동된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기도 많이 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며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철저히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적인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것을 신실하신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사람입니다. 성령이 떠난 사울처럼 시기와 의심에 가득 차서 남을 헐뜯고 해하는 일에 광분하지 않는 사람을 택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사울처럼 자기 자신과 공동체를 함께 망가뜨리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말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신앙적으로 바른 판단을 하는 오늘이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이수영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