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면  (마태복음 7장 12절)


[서론]
오늘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면’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우리는 누구든지 남에게 인정을 받고 사랑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서도 축복받기를 원하며 이웃에게 대접받기를 원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수 있겠습니까? 남에게 인정도 받고 사랑도 받고 하나님께 축복도 받고 대접도 받을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길이 있을까요? 공자의 제자중에 자공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자공이 공자에게 “선생님! 우리가 평생동안 실천할 도리를 한마디로 말씀해 주십시오.” 그렇게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공자는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 시키지 말라.” 이것이 바로 일생을 살아갈 삶의 모토라고 말했습니다. 소크라테스도 “너 자신에게 괴로운 일은 남에게 시키지 말라”고 했습니다. 유명한 유대교 랍비인 힌헬 역시 “네 자신에게 싫은 것은 아무에게도 하지 말라. 이것이 율법의 전부요, 나머지는 해설에 불과하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소극적으로 나가지 아니하시고 한걸음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대접을 받고자 하는데로 남에게 대접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행동윤리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바로 이와같은 하나님의 위대한 축복의 법칙을 사용한 분인 것입니다.

[본론]
1. 아브라함이 복 받은 이유 (A)
첫째로, 아브라함이 복을 받은 이유는 하나님과 이웃을 극진히 대접한 것입니다.
더구나 무엇보다도 그는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려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전쟁에 나가서 크게 승리하고 많은 전리품을 가지고 돌아올 때 하나님의 제사장 살렘왕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온전히 드리고 그 제사장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창세기 14장 18절로 20절에 보면 “살렘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멜기세덱은 그 당시 중동에 거하는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전쟁에서 승리하여 돌아올때에 그 멜기세덱이 환영하는 환영에 참석해서 떡과 포도주를 받고 난 다음에 축복을 얻고 모든 얻은 전리품중에 십일조를 다 계산해서 온전히 제사장에게 드렸습니다. 십일조는 하나님과 인간관계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건이 되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과 현실생활속에 함께 역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끊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우리의 삶속에 멸시하고 무시하는 행동이 되는 것입니다.
말라기 3장 8절로 10절에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여기에 성경에 하나님께서는 십일조와 헌물은 나의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삶속에 얻는 모든 물질중에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나의 몫이라고 말했습니다. “왜 나의 것을 도둑질하느냐. 그렇기 때문에 저주를 받았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는 십일조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몫을 도둑질한 것이요, 우리의 삶속에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아니하는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나라 볼펜의 대명사로 알려진 모나미 153 볼펜은 1963년 이름없는 회사에서 출세한 당시 한자루에 15원 했습니다. 이 볼펜이 나오고 난 다음에 잉크병도 철필도 사라지고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으며 관공서, 학교, 회사에 널리 사용되고 곧장 KS마크를 획득한 국민적인 볼펜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볼펜이 나온 유래가 있습니다. 한 회사가 가장 어려워 볼펜을 생산할 공장이나 기술도 없는 도산의 위기에서 송삼석 회장이 기도원에 가서 간절히 기도를 드리다가 하나님게로부터 직접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기도하면서 자기의 생애를 돌아 보았습니다. 그때까지 사업한다고 하면서 하나님게 범죄한 것이 너무나 많이 마음에 떠올랐습니다. 첫째, 주일성수를 못한 것을 회개했습니다. “주님 사업한다고 주일날 하나님을 섬기지 못한죄를 회개합니다. 이제부터는 절대로 주일성수하겠스빈다. 둘째로, 돈을 많이 벌고도 십일조를 온전히 하지 않은 것을 회개합니다. 하나님의 것을 떼어 먹었습니다. 이제부터 십일조를 절대로 떼어먹지 않겠습니다. 셋째로, 새벽기도 안한 것을 회개하고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했습니다. 이제부터 새벽기도를 하겠습니다. 이렇게 굳게 결심하고 기도한 후에 성경말씀을 읽는데 요한복음 21장 11절 말씀을 읽다가 크게 영감을 받게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이 지시한 곳에 그물을 던졌더니 153마리의 고기를 잡았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다! 내가 모나미 볼펜을 모나미 153으로 정해야 되겠다. 그러면 이 장사를 아무리 해도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한다. 망하지 아니할 것이다.’ 그래서 그는 기도원에서 내려와서 모나미 153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볼펜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기도하기를 ”하나님 전세계 모든 사람의 손에 이 볼펜이 다 들려지길 바랍니다. 50억 자루가 팔리게 해 주시옵소서. 정말로 간큰 기도를 했습니다. 50억 자루의 모나미 153을 팔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전성기인 1978년에는 일년에 12억자루를 팔았습니다. 다양한 필기류가 나와 주춤했으나 IMF 이후에 다시 뛰어 이제는 50억 짜리를 팔수있게 된것입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진지하게 회개하고 성수주일 안한 것 돌이켜 고백하고 11조 떼먹은 것 회개하고 자복하고 기도를 등한히 한 것을 회개하고 자복하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출발하자 하나님이 함께 역사하여 주셔서 크게 복을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도 그의 축복받은 가장 근복적인 비결이 하나님 앞에 십일조를 드리고 주의 종 제사장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주의 종 제사장의 축복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축복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창세기 15장 1절에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그리고 창세기 15장 4절로 6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말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축복받은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께 십일조 드리고 제사장의 축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자기 마음대로 떼서 이리주고 저리주고 하면 축복이 안되지요. 십일조는 하나님이 집에 드리고 주의 종 제사장의 축복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주의 종 제사장의 축복을 받으면 하나님의 복이 임합니다. 왜 하나님은 제사장에게 축복의 고난을 주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민수기 6장 23절로 27절에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찌니라 하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찌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제사장이 복을 축복하면 그 복이 백성에게 임하겠다고 주님께서 말씀한 것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생각하기를 “내가 심방한다고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우리 성도들이 새로 집을 지었으니 와서 축복 예배를 봐주십시오. 새로 사업을 시작했으니 축복해 주십시오. 공장을 지었으니 축복해 주십시오.” 그런 초청을 받을 때 내가 누구게 그곳에 가서 예배 드린다고 축복이 임하겠는가. 굉장히 비관적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훌륭하고 네가 위대해서 복을 내리는 것이 아니다. 네 직분이 위대하고 훌륭한 것이다. 주의 종이란 제사장의 직분을 준 것은 내 백성에게 복을 주라고 임명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네가 가서 예수 이름으로 예배를 드리고 축복을 하면 내가 복을 내리는 것이다.” 나는 거기에서 깨달았습니다. ‘아~ 주의 종 제사장이 가서 축복을 하면은 하나님이 그 축복을 받아서 복을 내리시는 것이구나.’ 바로 아브라함이 그러한 분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십일조를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 멜기세덱에게 드리고 멜기세덱에게 복을 받고 난 다음 그의 생애속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과 축복이 임하시게 된것입니다. 저는 덴마크의 흐넹에서 집회를 할 때 피터 목사님으로부터 놀라운 간증을 들었습니다. 덴마크가 불황으로 힘들때였는데 피터 목사님 교회에 출석하는 한 성도가 건축업을 하다가 파산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하루는 5만크로네 한국돈으로 약 1천만원을 들고 와서 “목사님 제가 여태까지 주님 중심으로 사업을 하지 않아서 이렇게 파산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제게 있는 재산이라고는 이 5만크로네 전부입니다. 그동안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제는 이 물질을 하나님께 드리고 오직 하나님의 도움만 의지하겠습니다. 그러니 목사님이 제게 기도를 해주십시오.” 그래서 피터 목사님이 5만크로네를 놓고 “당신이 하나님께 물질을 심었으므로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이분에게 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간절히 축복을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3개월이 지난후에 이분에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 성도님이 정부에서 주도하는 5백만 크로네 상당의 공사에 입찰했는데 자기보다 훨씬 나은 많은 회사들을 제키고 이 사람이 공사 낙찰을 받았습니다. 그 다음부터 하나님께서 그 성도님의 사업에 문을 열어 주셔서 파산했던 사업이 다시 일어날뿐 아니라 왕성하고 창대하게 복을 받고 이 피터 목사님의 교역사업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간증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의 종의 축복을 통해 자기 모든 것을 드린 그에게 능력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2. 아브라함이 복받은 이유 (B)
둘째로, 아브라함이 복을 받은 이유는 부지불식간에 하나님과 천사를 대접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대접하기를 원했었습니다. 대접하기를 좋아했습니다. 더구나 그 당시에 중동에서는 사람이 객으로 지나가면 나와서 그 사람을 집으로 초청하여 발도 씻겨 주고 대접을 했습니다. 또 밤에 잘자리가 없는 사람은 시중이 앉아 있으면 청해다가 집에서 잠자리를 제공해 주는 것이 습관이었습니다. 사람을 대접하는 것이 그들의 전통이었는데 아브라함은 더구나 손님대접하기를 즐겨했었습니다. 부지불식간에 그는 하나님과 천사를 대접했습니다.
창세기 18장 1절로 5절에 “여호와께서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오정 즈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았다가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섰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가로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컨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옵시고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서 쉬소서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쾌활케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가로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
처음에 이렇게 말할 때 아브라함은 그 세분이 하나님 일행이신줄 모르고 단지 나그네인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두 천사를 데리고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을 아브라함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냥 나그네인줄 알고 그는 손 대접하기를 즐거워하기 때문에 이분들을 청해서 대접하기를 원했습니다.
히브리서 13장 1절로 2절에도 보면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정성어린 대접을 했습니다.
창세기 18장 6절로 8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에 들어가 사라에게 이르러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아브라함이 또 짐승 떼에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취하여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아브라함이 뻐터와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의 앞에 진설하고 나무 아래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고 말했습니다.
정말로 하나님과 천사 두사람이 잡수셨습니다. 하나님은 소고기를 좋아하시는가 봐요. 살찐 송아지로 요리한 것을 하나님은 기쁘게 잡수셨습니다. 여기에 아브라함이 대접하는 그 정성을 보십시오. 고운 밀가루로 빵을 만들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방앗간도 시원찮아서 손으로 밀가루를 찍었기 때문에 고운 밀가루를 만들려면 상당한 힘이 들었습니다. 대개 거친 밀가루를 먹었는데 고운 밀가루는 특별히 귀한 손님이 오실때만 대접하는 것인데 그가 고운 밀가루를 가지고 빵을 구우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한국 최고의 밀가루는 어느 회사가 만든겁니까? 대한제분입니까? 대성제분입니까? 영남제분입니까? 한국 동아제분입니까? 제일제당입니까? 손님이 오면은 제일 좋은 제당회사에서 제분회사에서 만든 밀가루로 아브라함처럼 우리가 대접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보면 소떼중에 들어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골랐습니다. 빼빼 마른 송아지 고르지 않으셨어요.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입니다. 그런데 세 사람의 손님을 대접하는데 송아지 온통 한 마리를 다 잡아 요리했습니다. 얼마나 정성을 다하고 풍성하게 손대접하기를 힘쓴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버터와 우유를 가져왔습니다. 담백질이 풍부하고 지방과 칼슘이 많은 버터와 우유를 대접해서 여행하는데 피곤을 풀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렇기 하니까 그 세분이 이 음식을 다 맛있게 드시고 그리고는 축복을 해주었습니다.
창세기 18장 9절로 10절에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그가 가라사대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정녕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깜짝 놀랬습니다. 보통 나그네인줄 알았는데 이제 알고 보니 야웨 하나님이 두천사를 데리고 지나가다가 아브라함의 장막을 방문하게 된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3절에 보면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고 말했습니다.
손 대접을 잘하면 하나님을 대접할수 있는 기회도 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읽은적이 있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한 문둥병 환자가 성 프란시스를 찾아와 하룻밤을 자고 가게 해달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그의 얼굴과 손은 문들어져 있었고 또 다 헤어진 신발사이로 썩어가는 발가락이 보였습니다. 그런데도 성프란시스는 자신의 그 옷을 벗어 그를 감싸안고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프란시스는 따뜻한 물로 짓물나는 그의 상처를 씻어주고 저녁식사를 극진히 대접한 후 하나밖에 없는 방에서 그와함께 잠을 잤습니다. 그날밤 프란시스의 꿈에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손을 잡으며 “프란시스야 오늘 대접 잘 받았다. 고맙다.” 깜짝 놀라 프란시스가 깨어나 보니까 같이 잠을 자던 문둥병 환자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향기만 물씬하게 나더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는 문둥병 환자인줄 알고 대접을 했는데 주님이 문둥병 환자의 모습으로 그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나그네를 대접하자 부지불식간에 예수님을 대접하게 됩니다. 언제 어떤 모습으로 예수님이 우리를 방문하실지 우리는 알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대하듯 정성껏 나그네를 대접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가난하지만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던 노부부의 어느날 꿈속에 주님이 “내가 오늘 너희집에 가겠다.” 계시를 주었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노부부는 너무 기뻐서 설레임을 가지고 온갖 집안 청소를 다했습니다. 먼지를 털고 거미줄을 없애고 마루를 닦고 깨끗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정성스럽게 식사준비를 하고 주님 오시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녁무렵이 다 되도록 주님이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때에 노크 소리가 나서 드디어 오셨다고 뛰어나가 보니까 거기에는 한 늙은 거지가 서서 배고파 죽겠으니 음식좀 달라고 했습니다. 그 노부부는 굉장히 실망했으나 그러나 정성으로 그 거지를 청해 들여서 음식으로 배불리 대접하고 보냈습니다. 그리고 또 예수님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다시 노크 소리가 들려서 뛰어나와 보니 이번에는 굶주린 지친 소년 거지가 서있었습니다. 노부부는 거지소년을 배불리 먹이고 옷까지 입혀서 보냈습니다. 늦도록 기다려도 기다려도 주님은 오지 않아서 노부부가 다시 지쳐서 잠이 들었는데 꿈에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래서 노부부가 말했습니다. “주님 오신다고 해놓고 왜 안오셨어요?” 주님께서 말씀하기를 “나는 오늘 너희집에 두 번이나 갔는데 왜 안왔어. 한번은 늙은 거지로 한번은 소년 거지로 갔는데 너희가 나에게 따뜻히 대접해 주어서 나는 정말 고마웠다. 내가 너희에게 반드시 갚아주마.” 성경에는 내가 주릴 때 너희가 먹여주었으며 내가 목마를 때 너희가 마셨으며 내가 병들었을 때 돌보아 주었으며 감옥에 갇혔을 때 찾아봐 주었다. 주님 언제 우리가 그렇게 하였나이까. 너희 이 지극히 적은 소자중 한 사람이 한 것이 바로 내게 해준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이웃에게 그리스도를 대접하는 심정으로 대접하고 돌보아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예수님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장막을 지나가던 세 사람의 손님을 지극한 정성으로 대접한 결과로 하나님과 천사들을 대접하고 형언할 수 없는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예전에 한 잡지에 실린 기사를 보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이기주의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31%나 되고 비인격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23%나 되고 위선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19%나 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안믿는 사람들은 우리 예수믿는 사람들을 부정적인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와같은 결과에 대해서 우리가 가슴아프게 생각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접하는 마음으로 이웃에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 주었으면 오늘날 불신의 사회가 우리 예수믿는 사람에게 이와같은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판단을 내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3. 아브라함이 복 받은 이유 (C)
셋째로, 아브라함이 복을 받은 이유는 그에게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이 원하셨을 때 그 말씀에 순종한 것입니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재물로 드리라고 말했습니다.
창세기 22장 1절로 2절에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여러분 이것이야 말로 정말 감당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어느 일본 목사님이 설교를 하면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외독자를 바치라고 했는데 아브라함은 순종했으나 자기는 딸이 둘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를 바치라하면 도망을 치고 말겠다고 했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그렇게 할것입니다. 어떻게 내 자식을 불로 태워서 드릴수가 있습니까?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자기에게 가장 귀중하고 귀중한 독자라도 하나님 명령에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절대 순종했습니다.
창세기 22장 3절에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7절에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고 말했습니다.
정말로 어려운 일이지만 자기에게 가장 귀한 것이라도 하나님이 내놓으라면 내놓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복을 받은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복종한 것입니다.
사무엘상 15장 22절로 23절 다같이 우리 한번 읽어 보십시다.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크게 기뻐하시고 말씀에 불순종 하는 것은 우상 사신에 절을 하고 사수를 행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귀합니까? 아브라함은 그 외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에 사흘길을 걸어가서 산위에 올라가서 제단을 만들고 장작을 펼쳐 놓고 그 아들 이삭을 장작위에 얹어 놓고 발로써 목을 밟고 칼로써 그 경동맥을 끊으려고 했었습니다.
창세기 22장 15절로 18절에 보면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하나님에게 자기의 가장 귀한 것을 성령의 음성을 쫓아 드리면 하나님 반드시 갚아 주십니다. 복을 내리십니다.
옛날 평안북도 정주에 백사겸이라는 농부가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게 되자 열심히 전도하고 교회일에 충성을 다해 봉사했는데 그 마을에 선교사가 들어와서 교회를 지으려고 땀을 흘리며 벽돌을 쌓고 고생했으나 교회당을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백사겸 성도님은 전답 1천평 전부를 다 팔았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를 짓는데 바쳤습니다. 그후 선교사님은 미안해서 백사겸 성도를 사찰로 임명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농사를 지을수 없습니다. 전답을 다 팔아서 교회에 바쳐 버렸으니 농사지을수 없으므로 교회 사찰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아들을 학교에 보내 교육을 시키고 나중에 미국 유학까지 시켰습니다. 그 아들은 미국 파커 대학을 졸업하고 프린스톤신학교와 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예일대학에서 철학박사, 파커대학에서 신학박사, 스프링필더 대학에서 인문학박사, 디포대학에서 법학박사, 연세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분이 바로 연세대 총장을 했고 문교부장관을 지낸 한국기독교의 거장인 백낙준 박사였었습니다. 그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재산을 성령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사업에 다받쳐 놓고 난 다음에 하나님은 그 아들을 한국 역사에 우뚝하게 남는 위대한 인물로 복을 나리어 주신 것입니다.
성경 시편 25편 12절로 13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뇨 그 택할 길을 저에게 가르치시리로다
저의 영혼은 평안히 거하고 그 자손은 땅을 상속하리로다”고 말한 것입니다.
미국의 존 필립스라는 사람이 지난 2백년 동안 하나님을 잘 섬기며 순종하며 십일조 드린 가정과 그렇지 못한 가정을 무작위로 골라 통계를 낸후 그중 대표적인 예를 발표했습니다. 그의 발표에 의하면 교회를 해치고 주의 종을 교회에서 쫓아내고 자신도 교회를 떠났던 일본계 미국인 마쓰시꼬의 가문에서는 2백년 동안에 거지가 306명이 탄생했고 강도가 63명 살인자가 7명 매음자가 26명 저능아가 203명, 하급관리가 73명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설교가요, 신학자요, 하나님의 종이었던 요나단 에드워드 목사의 가문에서는 2백년 동안에 목사가 203명, 대학총장이 13명, 교수가 108명 부통령이 1명, 정권대사가 1명, 국회의원이 21명, 기자가 80명이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고 받든 가정과 그렇지 못한 가정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숨어계시고 잠잠하게 계시니까 무력한 하나님, 역사하지 않는 하나님이라고 무시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숨어 계시며 고요하고 잠잠하지만 하나님은 우주를 다스리시고 역사를 주장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고 계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예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마음속에 확인해야 되는 것입니다.

[결론]
한국의 소망이 무엇입니까? 외형적으로 우리 한국을 바라보면 한국 사람은 단결이 잘안되고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주의적이며 퍽 부정적입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신문에 보면 늘 분열하고 싸움하는 것입니다. 남북이 갈려있어 늘 투쟁하지요. 동서가 갈려서 비난공격하지요. 노사가 끊임없이 분쟁을 하고 있지요. 계층간에 투쟁이 있지요. 연령간에 투쟁이 있습니다. 어느곳에 가나 분쟁이요, 혼란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국이 망할 것 같으면서도 안망해요. 항상 떨어지면 낙동강. 떨어지면 낙동강하는데도 안떨어지거든. 그것 왜 그러느냐.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람이 복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세계에서 한국 사람만큼 푸짐하게 손대접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제가 옛날에 이것을 체험했습니다. 미국에서 한국의 선교사로 오신분 또 강사로 오신분을 우리 교회에서 굉장히 푸짐하게 대접을 했지요. 저도 우리집에 청해서 있는 것 없는 것 다 내놓고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대접을 했습니다. 그다음제가 미국에 선교를 가면서 그러한 분들의 집에 대접을 받기 위해서 갔습니다. 청했으니까 내가 일부러 대접받으러 가는 것이 아니고. 그래서 내 생각에는 머릿속에 내가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대접을 했으니까 이분도 어마어마하게 대접을 해줄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식사에 닭다리 하나가 딱 나왔어요. 나는 더 나올줄 알고 기다리고 있는데 그것이 끝이라고 그래요. 굉장히 마음에 충격을 입었습니다. “야~ 한국에서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대접을 했는데 세상에 대가가 이것이냐.” 요사이는 외국에서 와도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대접하지 않습니다. 왜 우리 한국 사람은 손대접하기를 원합니다. 자기들은 굶을지라도 손님은 아주 풍성하게 대접을 합니다.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과 똑같이 하나님께 복받을수 있는 자격을 얻는 것입니다. 이 한국 성도들은요 주의 종들 대접을 잘해요. 아무리 그러지 말라고 해도 심방가면 정성스럽게 주의 종을 대접을 합니다. 그래서 역효과가 나기도 많이 합니다. 그 어려운 생활에 주의 종이 오면은 거마비 드린다고 주머니 다 털어 가지고서 주의 종을 대접합니다. 실상은 그렇게 하지 말아야 되는데도 그렇게 합니다. 아무리 하지 말라고 해도 해요. 그러나 제가 일본이나 미국이나 구라파에 다녀보면 아무리 가도 아무것도 안줘요. 진짜로 안줍니다. 아주 입싹닦아 버리고 안주는 것입니다. 그래도 한국 사람은 그래도 섭섭하다고 어디가도 무엇이라도 하나 내놓거든. 그러지 말아야 되겠지만은 그러나 그러한 심성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한국인만큼 푸짐하게 손대접하는 나라가 없어요. 또 한국인은 선물주기를 좋아합니다. 아주 선물도 푸짐하게 줘요. 일본에 가도 선물을 주는데 선물 조그만한 과자봉지 하나 줍니다. 조그만한 과자봉지. 한국에는 그런 선물주면 부끄럽게 여기고 그런 선물 안줍니다. 미국이나 구라파에는 가면 장미꽃 한포기. 달랑 들고 갑니다. 한국 사람은 큰 보따리에 선물을 싸서 방문도 하고 또 선물도 받기도 하는 것입니다. 물론 한국 사람이 너무 선물주기를 좋아다 보니까 그것이 빗나가서 뇌물천국이 되어서 아무리 선물을 주지 말라고 해도 학부모들이 교사들에게 촌지를 주어 가지고서 학교 분위기를 흐리고 또 요사이 신문에 굉장히 난 것처럼 대학교수 임용에 차관까지 동원해 가지고서 부탁을 하다가 지금 사회적인 물의가 생기고 왜냐 한국인들의 부조전례로 살아오면서 뼈속에 사뭏힌 습관입니다. 왜 선물주기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눈으로 볼때에는 좋은 품성입니다. 자기는 먹지 않고 쓰지 않으면서 남에게는 선물을 주는 그런 푸짐하고 좋은 성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뇌물만 안주면 돼요. 한국 성도들은 헌금과 십일조 드리기를 열심히 합니다. 세계 교회에서 한국 교회만큼 드리라고 하는 교회가 없어요. 십일조 있지요. 주정헌금있지요. 월정헌금있지요. 남선교회 회비있지요. 여선교회 회비있지요. 권사회비있지요. 또 구제헌금있지요. 선교헌금있지요. 다 계산하면 정신이 아뜩해요. 다른 나라에는 그런 것 없어요. 다른 나라에는 십일조 헌금만 있으면 되는데 한국은 그렇지가 않아요. 그래도 한국 성도들은 불평하지 않고 있는 힘을 다해서 교회 물질을 드립니다. 그 때문에 한국교회가 세계 기독교의 역사상에 유래를 볼수없을 만큼 축복을 받고 발전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 자그마한 나라가 미국 다음으로 선교사를 제일 많이 보내고 있습니다. 역사를 통해서 보게 될 때 선교사를 반을 보낸 나라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옛날에는 구라파와 영국이 온세계 선교사를 보낼때 구라파가 세계 강대국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미국이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선교사를 보내고 있고 미국이 하늘아래 가장 강대한 국가인데 미국 다음으로 한국이 이 조그마한 나라에서 선교사를 가장 많이 내보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그러므로 한국 사람들은 여러 가지 단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복을 받을수 있는 나라가 되있는 것입니다. 결점도 많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장점을 보시고 복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아브라함에게 오늘 배워야 될 것은 하나님 앞에 십일조를 드리고 제사장의 축복을 반드시 받고 하나님과 천사를 부지불식간에 대접하는 것처럼 이웃을 하나님처럼 소중히 여기고 대접을 하고 하나님 음성이면 독자라도 바친 아브라함의 헌신과 충성한 마음을 받아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무엇이든지 우리가 뼈를 깎고 살을 찢더라도 주님께 헌신하면 이러한 삶을 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복받고 복받고 창대케하고 창대케한 것처럼 오늘날도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들에게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복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출처/극동방송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