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재충전입니다  (마가복음6:45-52)                                  

1980년대 말 처음 핸드폰이 나왔을 때는 거의 무전기수준이었습니다. 이 큼직한 것을 들고 다닌 것은 부의 상징처럼 느껴졌습니다. 요즈음은 핸드폰은 깜짝 놀랄 정도의 다양한 기능에다 크기와 모양도 정말 세련되었습니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핸드폰은 얼마동안 사용하면 반드시 배트리를 재충전을 해야 합니다. 하루 동안 사용한 핸드폰은 잠자리에 들 때, 배트리 충전기에 꽂아두었다가 다음날 아침 다시 사용합니다. 충전된 핸드폰은 새 것처럼 계속 쓸 수 있습니다. 만약에 재충전을 제 때 시키지 않으면 그것이 값이 얼마짜리이든지, 기능이 얼마나 다양하든지, 모양이 어떻게 세련되었든지, 어느 회사 재품이든지 상관없이 그것은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재충전만 하면 항상 새 것처럼 다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다행한 것은 충전에 필요한시간이 사용시간에 비하여 훨씬 짧다는 것입니다. 짧은 시간 충전하여 긴 시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재충전이 필요합니다.
피곤한 육체를 위하여 적당한 운동을 하고, 휴식을 취함으로 재충전을 합니다. 인간은 흙으로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에 자연으로 돌아가서 자연에서 나는 것을 먹고, 자연과 호흡하면서 육체의 피로를 푸는 것이 참 좋습니다.
그리고 영적인 피로는 하나님과의 관계성의 회복을 통하여 재충전합니다. 마치 핸드폰 배트리를 전원에다 연결된 충전기에 꽂아 충전을 시키듯, 우리의 영혼은 영혼의 목자이신 하나님의 품에 안기어 예배하고, 기도함으로 성령의 능력을 공급받습니다. 비뚤어진 것은 회개함으로 바로 잡히고, 연약해진 것은 강해집니다. 상처 난 것은 치유되고, 무엇이나 잘 할 수 있는 능력을 얻습니다.
그리고 엿새가 지나 주일이 되면,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 앞에 나아와 풍성한 은혜로 영육간의 재충전을 받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 창조의 원리를 저버리고, 육신의 안식만 추구하며 살려고 함으로, 하나님은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이 진정한 안식을 누리며 살도록 안식의 법을 재정해 주셨습니다.

출애굽기20:8-11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여세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출애굽 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나아가던 성도들에게 주신 십계명의 한 부분입니다. 이 열 가지 계명을 들여다보면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나는 10가지 계명 중에 ‘안식일’ 계명이 가장 길게 만들어 졌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20:4부터 17절까지 기록된 14절의 십계명 가운데, 안식의 법에 네 구절이나 할애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많은 말씀으로 명령하셨을까요?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으면서도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쉽게 망각하고, 영육간의 안식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주일은 하던 모든 일을 쉬고, 하나님께 나아와 하나님을 예배함으로, 영육이 쉼을 얻고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재충전되는 날입니다. 이것을 많은 말씀으로 명령하신 것입니다. 선택사양이 아닙니다. 반드시 지켜야 하는 법이요, 명령입니다.  
다른 하나는 일과 안식의 비율이 6:1로 배정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6일 동안은 우리 모든 일을 힘써 행하여야 합니다.”

370장 찬송가 가사입니다.
“1.어둔 밤 쉬되리니 네 직분 지켜서 찬 이슬 맺힐 때에 즉시 일어나 해 돋는 아침부터 힘써서 일하라. 일할 수 없는 밤이 속히 오리라.”
“3.어둔 밤 쉬되리니 네 직분 지켜서 지는 해 비낀 볕에 힘써 일하고, 그 빛이 다하여서 어둡게 되어도 할 수만 있는 대로 힘서 일하라.”

하나님의 사람들은 세상사는 동안 적당하게 어영부영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명령6일 동안 힘서 일하는 것입니다. 일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합니다. 이렇게 일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매일 밤을 주셔서 육체가 쉼을 얻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밤에 잠을 자는 것은 우리에게 필수 입니다. 누구든지 잠을 자지 않고 계속 살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시간이 부족한 사람일지라도 잠은 반드시 자야 합니다. 할 수만 있으면 하루 24시간 가운데 8시간을 자야 합니다만 그렇지 못할 때에도 육체의 피곤을 충분히 풀 수 있을 만큼 자야합니다.
제가 매일 새벽에 나오니까 누가 물었습니다. “어제 밤에 그렇게 늦게까지 일하시고 또 나오셨습니까? 목사님은 잠을 언제 얼마나 주무십니까?” 저는 매일 새벽에 3시30분에는 일어납니다. 물론 주일 아침은 더 일찍 일어납니다. 새벽은 내 영혼이 가장 맑은 시간입니다.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하루의 삶을 시작합니다. 사실 잠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잠잘 수 있는 시간은 최대한으로 확보합니다. 저녁에 집에 들어가면 산책을 나가는 시간이 이외는 잠을 자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차를 타고 이동할 때는 책을 보지 않으면 잠을 잡니다.
새벽 시간 영적인 안식으로 새 힘을 얻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입니다.
내 육체가 쉼으로 새 힘을 얻는 것처럼 내 영혼은 날마다 새벽에 하나님 앞에 나가 하나님의 품에 안김으로 쉼을 얻고 새 힘을 얻게 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새벽의 은혜를 애가3:22-24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심으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저를 바라리라 하도다.”  

우리를 향하신 무궁하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아침마다 새롭게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을 바라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기도생활을 보면 새 가지로 요약이 됩니다.
첫 번째가 새벽기도입니다.

마가복음1:35입니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이 새벽기도가 이루어졌던 전날의 예수님의 하루는 정말 분주하였습니다.
마가복음1:21-34의 내용이 예수님의 하루 스케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이었습니다. 가버나움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습니다. 그 가르침을 받는 모든 사람들이 그 가르침의 탁월함에 다 놀랐습니다. 마침 회당에 귀신들린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을 온전케 하셨습니다. 그 가르침과 귀신을 명하여 온전케 하신 주님의 소문은 삽시간 온 갈릴리 사방에 퍼졌습니다.
회당에서 나와 곧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심방 가셨습니다. 열병을 앓고 계신 시몬의 장모를 고치셨습니다. 그곳에서 얼마동안 쉬시다가 해 저물 때에 모든 병자, 귀신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왔는데 온 동네가 문 앞에 모였습니다. 예수께서 각색 병든 많은 사람들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 내셨습니다. 이 일이 해 저문 시간부터 이루어졌으니, 모든 일은 꽤 늦은 시간에 끝났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님은 일어나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새벽은 매일 기도로 시작하셨습니다. 잠언8:17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가 나의 사랑을 입을 것이라. 나를 새벽에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이 말씀대로 예수님은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는 아들로서 매일 새벽 하나님의 품에 안기어 안식을 얻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새 힘을 얻었습니다. 그것이 매일 승리하는 비결이었습니다.

다음은 예수님의 저녁기도입니다.

누가복음22:39-43입니다.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 그 곳에 이르러 저희에게 이르시되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이 날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보내신 마지막 날 밤이었습니다.
제자들과 오랜 시간 함께 만찬을 드신 다음, 베드로 요한 야고보 세 제자와 함께 게세마네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는 이 밤의 기도를 가리켜, “습관을 좇아” 한 기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밤은 길었습니다. 오늘처럼 전등이 발달되지 못했고, 그렇다고 등불도 그리 쉽지 않았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니, TV앞에서 한가하게 시간을 보낼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밤늦게까지 성경을 읽으며 공부하시지도 않았습니다. 그 밤에 심방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그 긴긴 밤을 뒤척이면서 허리가 아프도록 주무시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두운 밤이 되면 습관을 쫓아 게세마네 동산으로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하루의 일과를 돌아보며 하나님과 함께하는 조용한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밤의 깊은 기도는 시간이 없는 시간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6:18에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엡6:18)고 했습니다. “무시로” 라는 말을 “늘” “모든 시간에”라는 말로 번역합니다. 다른 표현으로 한다면 영의 세계에서 기도의 무한의 시간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5분, 30분간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계산하지 않는 기도를 통해서 주님과 함께 하는 영원의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신비였습니다. 우리 선배들과 선조들의 기도시간에는 이런 신비가 있었습니다. 저녁에 “주여-!” 하고 엎드리면 새벽시간을 맞이하곤 하였습니다. 이 날 밤 예수님의 기도는 “무릎을 꿇고,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 같이 되더라” 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기도는 온 마음을 다하는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일이 끝난 후의 기도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재촉하여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도록 하셨습니다.
이 상황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벳새다 광야에서 온 종일 사역하셨습니다. 점심 식사시간도 없이 일하시다가 날이 저물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5천명의 굶주린 사람들을 먹이시고 열 두 광주리를 남기는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놀라운 기적이었습니다.
이 엄청난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임금으로 세우자고 하였습니다.
이 마당에 신바람이 난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드디어 제자 된 보람을 찾을 때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기대했던 일이 눈  앞에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흥분한 제자들은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주님이 임금이 되신다면 우리는 한몫 잡는 거지!” 제자들이 훗날 ‘누가 더 높으냐?’ 하는 문제로 은근히 암투가 벌어진 것도 이런 배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공연히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두 아들을 부탁할 때 하나는 당신의 나라에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해달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야말로 예수 믿은 보람이 무엇인지를 생각하였습니다. 예수 제자 되기를 참 잘했다고 우쭐하였습니다.
이때가 바로 우리 이생의 위기입니다. 우리는 어렵고 힘들 때가 위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때는 우리 스스로 긴장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에 힘은 들지만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을 성취하고 난 다음 모든 일들이 잘되고 있다고 판단할 때, 두 가지 면에서 위기입니다. 하나는 영적으로 곤비한 상태이기 때문에 위기입니다. 그 일을 이루기까지 우리의 영의 힘을 다하였기 때문에 사실상 영의 상태는 곤비합니다. 그리고 이루어놓은 일로 인하여 나 자신보다 훨씬 높은 평가를 받게 되기 때문에 바람이 들어가서 위기입니다. 이때는 영적인 안식과 힘을 얻어야 할 때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넘어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재촉하여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신나하는 제자들의 모습 속에서 정말 필요한 것이 쉼이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제자들은 하루 종일 일을 통하여 몹시 피곤해져 있었습니다.
일에 지친 사람들에게 오는 특징 하나는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여유를 잃어버리면, 일의 전후좌우를 살필 안목을 잃게 됩니다.
현재의 자기 자신을 정확하게 볼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중요하지 작은 일에 집착하게 됩니다.
중요하지 않은 문제를 크게 보거나 중요한 일을 소홀히 여기게 됩니다.
작은 일에 쉽게 흥분하게 됩니다.
냉정한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합니다.
본질에서 벗어나게 되어 실수하게 됩니다. 피곤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그러했습니다. 이것은 육체적인 피로도 피로이지만 사실은 영적으로 하루 종일 수많은 병든 사람들, 귀신들린 사람들을 섬기느라 영혼의 피로가 극도에 달하였습니다.
이때는 먼저 그 현장에서 떠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현장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곳으로 가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기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재촉하여 서둘러 그 현장을 떠나 배를 타고 바다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도록 하였습니다.
제자들을 떠나보내신 다음 예수님은 그 많은 무리들을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셨습니다.”(46)
이것이 중요합니다. 하루의 일과가 끝난 시간 예수님은 사람들을 떠나고 그 분주했던 장소를 떠나서 조용히 하나님과 대면하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그 곳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영적인 재충전입니다. 영적으로 충전이 되면 인생을 바로 볼 수 있는 눈이 열립니다. 바른 분별력과 판단력이 생깁니다. 흥분하지 않습니다. 좌충우돌하지 않습니다. 불필요한 문제를 만들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상황 판단이 안 되고 문제가 복잡하게 얽히고 있다고 생각이 될 때는, 정말 쉼이 필요한 순간임을 아십시오. 그리고 조용히 주님께 안기십시오. 기도는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것입니다. 주님께 당신의 모든 것을 맡기고 그 안에서 안식하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인도를 받으십시오. 그곳에 평안이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아주 작은 일에도 마땅히 그러합니다.

한 번은 차를 꼭 필요한 책을 찾고 있었습니다. 분명히 그 자리에 있어야할 책인데 없습니다. 누가 치웠는지 물었습니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없을 리가 없는데 찾아지지가 않습니다. 한참 찾아 온 서가를 다 뒤집니다. 그래도 없습니다. 시간이 흐릅니다. 마음에 조바심이 생깁니다. 은근히 화가 치밉니다. 이때는 옆에서 누가 끼어들면 좋지 않은 반응이 나갑니다. 마음에 조급증이 생기고, 아주 강퍅해집니다. 이때는 극도로 피곤해지는 시간입니다. 육체의 피곤보다, 영혼의 피로를 느끼는 시간입니다. 바로 이 때 기도가 필요한 시간입니다. 생각을 현장에서 돌이켜야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길던 짧든 하나님께 영혼을 맡겨야 합니다. 그리고 감사하며,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덧입어야 합니다.
그리고 충전된 영혼으로 조용히 책을 찾으면 책은 그 자리에 있습니다.

어떤 때는 장례식을 집례하면서 슬픔을 위로하며 슬퍼하는 자들과 함께 하다가 곧 바로 첫 애기 돌집에 가서 기뻐하는 자들과 함께 기뻐하며 축복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때는 옷을 갈아입고, 넥타이를 바꾸어 매고 잠간이나마 앉아 차를 한 잔 마시며, 조용히 주님께 마음을 맡깁니다. 그리고 다시 출발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은 언제나 우리를 도우실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영혼의 피로를 아십니다.
그런 모습으로 나가면 실패할 것을 뻔히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이게 기도하라 하십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위한 시간이 아닙니다.
우리 영혼이 탈진 상태에서 재충전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이 기도의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고, 우리의 스승이시며 모범이십니다.
주님을 믿음으로 신앙 위에 서고
주님을 본받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승리하는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최이우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