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운동의 모델   (열왕기하 23:1~23)
    

위대한 사상가요 신학자인 칼빈(J. Calvin)은 「교회는 날마다 개혁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개혁」(Reform)이라는 말은 기존의 체제를 무너뜨리고 새로 판을 짜는 혁명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변질되고 탈선된 것을 본래의 길로 돌려놓고 그 원형을 되찾게 하는 것으로 그 개념을 정립할 수 있습니다.
성경적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이 그 가야될 본래의 바른 길을 이탈하고 죄악된 길로 달리며 멸망을 재촉할 때 이를 깨우쳐주고 그 길에서 돌이켜 생명의 길로 가게 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6:16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중세기 기독교가 로마 카톨릭의 교권주의와 우상숭배 및 인본주의의 형식 종교로 타락했을 때 개혁자들이 일어나서 「오직 하나님의 영광」(Soli Deo Gloria)을 제창하며 말씀으로 돌아가는 개혁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그 이후 지금까지 건전한 교회는 개혁신앙을 계승하며 발전시키는 일에 진력하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은 유대나라 16대왕(B.C 639-608) 요시야의 개혁운동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조부 므낫세와 부친인 아몬이 저지른 우상숭배의 죄악으로부터 하나님 종교로 개혁하는 일을 과감하게 단행하였습니다. 어느 시대나 교회가 타락하고 종교적 본질에서 이탈하게 되면 백성은 정신적인 혼미에 빠지게 되며 죄악으로 방황하게 됩니다. 이런 때는 깨어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경고의 신호를 울리며 분연이 일어나 개혁운동을 전개하여야 합니다.
인류의 역사는 이와 같이 살아 있는 생명운동의 몸부림으로 인하여 변화되고 발전되어 왔습니다. 지금 우리는 구약시대 하나님 종교의 개혁자였던 요시야의 사적을 보고 이 시대 개혁운동의 모델을 삼고자 합니다.



I. 말씀 운동입니다.


요시야는 여덟 살에 왕위에 올라 삼십 일 년 간 치리 하였습니다. 왕이 된 요시야는 하나님의 말씀이 정해준 법도를 따라 선한 정치를 펼쳤습니다. 열왕기하 22;2에 보면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그 조상 다윗의 길”이란 하나님의 율법을 의미합니다. 일찍이 다윗은 왕위를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물려주면서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릇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찌라”고 하였습니다(왕상 2:3).


(1) 율법책을 발견했습니다.

요시야는 왕위에 오른 지 십팔 년에 폐허가 된 성전을 수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제사장 힐기야가 성전 수리의 책임을 맡았는데 그가 성전에서 인부들과 함께 퇴락한 곳을 수리하다가 하나님의 율법책을 발견하였습니다.
요시야는 율법책의 말을 듣는 순간 자기의 옷을 찢었습니다. 이는 극도의 충격을 받았다는 표현입니다. 그는 즉시 서기관 사반과 왕의 시신 아사야에게 명을 내렸습니다. 곧 “너희는 가서 나와 백성과 온 유다를 위하여 이 발견한 책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 물으라 우리 열조가 이 책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며 이 책에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모든 것을 준행치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발하신 진노가 크도다”고 하였습니다(왕하 22:13). 그동안 앞서 많은 왕들이 지나갔으나 모두 다 하나님의 성전을 멀리하고 우상숭배와 각종 세속문화에 젖어있었습니다. 율법책을 성전 안에 방치해둔 채 말씀과는 상관없이 살았습니다.
오늘날도 우람한 건물은 있으나 말씀이 없는 교회가 많이 있습니다. 진정한 개혁은 방치된 말씀을 가까이 하고 거기에 얽매이는 말씀의 회복운동에서 시작됩니다.


(2) 말씀 앞에 굴복하였습니다.

서기관 사반이 힐기야에게 받은 율법책을 가지고 요시야 왕의 어전에서 낭독하였습니다. 이 때 왕은 옷을 찢으며 무릎을 꿇었습니다. 왕의 권위나 자존심을 벗어던지고 말씀 앞에 엎드리는 모습입니다.
일찍이 모세는 이스라엘의 열왕이 하나님의 계명에 따라서 왕도를 지키며 백성을 다스리도록 그의 율법서에 명시해 두었습니다. 신명기 17:18-19에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 보관한 이 율법서를 등사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서 그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개혁교회의 성경관은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앙과 행위에 대하여 정확무오한 법칙’으로 믿는 것입니다. 이 고백 문에는 왕이나 교황이나 그 어떤 권력자도 말씀 앞에 굴복하여야 되는 죄인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중세기 개혁자들이 「오직 성경」(Sola Scriptur)을 외치며 일어선 것도 말씀의 권위를 회복하자는 운동이었습니다.


(3) 말씀을 가르치게 하였습니다.

본문 말씀 1-3절에 보면 요시야 왕은 장로들에게 명하여 모든 백성을 한 자리에 모으고 그 앞에서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왕은 백성들 앞에 높은 단을 만들고 그 위에 서서 자신이 먼저 여호와께 순종하여 그 계명과 법도를 준수할 것이라고 선언 하였습니다. 이렇게 되니 모든 백성들도 왕을 따라 그렇게 하겠다고 언약하였습니다. 왕은 감추어져 있던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읽어주며 그들이 직접 듣고 깨닫고 결단하게 유도하였습니다.
이것은 개혁운동이 말씀운동임을 나타내주는 증거입니다. 중세기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성전 깊숙히 묻어 놓고 백성들에게는 저희가 필요한 부분만 외우게 하는 등 말씀과의 만남을 차단시켰습니다. 이런 시기에 개혁자 루터가 라틴어로 된 성경을 독일말로 번역하여 백성들이 직접 읽게 하므로써 백성들의 마음에 불을 붙였고 그 일은 마침내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Ⅱ. 성별 운동입니다.


어느 시대에나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하게 살지 못하면 하나님의 진노와 징벌로 멸망하게 됩니다.
요시야는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으나 그가 철이 들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오랜 세월 흉년이나 기근, 또는 질병과 온역들의 재앙을 만나거나 전쟁으로 인하여 이웃의 강대국들에게 짓밟히게 된 것이 모두 하나님의 진노로 인한 징벌로 보았습니다.
그는 여선지 훌다의 입을 빌려 “이는 이 백성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에게 분향하며 그 손의 모든 소위로 나의 노를 격발하였음이라”(왕하 22:17)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 원인을 찾았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로부터 풀려나는 길은 철저하게 회개하므로 거룩을 되찾는 일입니다.


(1) 성전을 청결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자기 백성이 지킬 율법을 계시하면서 그들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백성이 될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9:5-6에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애굽에서 올라온 후 고달픈 광야생활을 하면서도 성막을 짓고 거기서 매일 같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을 쉬지 않았습니다. 이 성막에서 드린 제사가 훗날 가나안 땅에서 성전 예배로 발전하였습니다.
다윗 왕 때에 성전 예배를 위하여 제사장의 반열과 레위인의 찬양대원들과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리는 모든 기구와 조직, 인원까지 제정하였습니다(대상 23:1-26:32). 그 후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지은 후 안정된 예배 행위를 통하여 하나님과 호흡을 같이하며 영육 간에 풍요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요시야 이전의 여러 왕들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멀리하면서 오랜 세월 성전을 방치 하였고, 그 결과 성전은 퇴락하고 폐허가 되었습니다. 이는 그 백성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행위입니다. 이에 요시야는 하나님 전에 바친 은을 가지고 성전을 수축하게 명령하였던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 대한 예배의 회복을 뜻합니다.


(2) 우상을 척결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율법을 어기고 하나님께 배도한 행위는 그들이 각종 우상을 만들며 음란하듯 거기 빠져 있는 일들입니다. 이에 요시야 왕은 그들 가운에 있는 우상을 철저하게 정리하고 척결하므로써 하나님의 노여움을 풀어드리고자 하였습니다.
본문 말씀 4절에 보면 왕이 대제사장 힐기야를 위시하여 버금 제사장들과 문을 지킨 자들에게 명하여 바알과 아세라와 하늘의 일월성신을 위하여 만든 모든 기명을 여호와의 전에서 내어다가 기드론 시내에서 불살랐다고 하였습니다. 또 유다 전역에 세워져 있는 바알과 아세라 상이며 우상의 잔재들을 모조리 제거하고 그것들을 빻아 가루를 만들어 묘지에다 뿌리고 또한 범죄의 소굴인 산당과 미동의 집을 헐었습니다.
특히 그의 조부 므낫세가 예루살렘 성전 마당에 세워 놓은 우상의 단들을 헐고 가루를 만들어 기드론 시내에 쏟아버렸습니다(왕하 23:12). 북조 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이 벧엘에 세워둔 단과 산당도 헐고 가루를 만들었습니다(15절). 그는 이처럼 철저하고 완벽하게 우상을 척결하므로써 회개의 모범을 보였습니다.


(3) 거룩을 회복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레 11:45). 이는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 사람과 구별된 신분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게 하신 것도 거룩한 백성의 증거를 남기기 위함이었습니다(창 17:11-14).
이와 같은 하나님의 명령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빌립보서 2:15에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나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 반드시 척결하지 않으면 안 될 많은 우상들이 있습니다. 물밀듯이 밀려오는 세속주의 우상, 육체의 정욕을 추구하는 쾌락주의 우상,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의 생각을 앞세우는 모든 인본주의 우상들을 무너뜨려야 됩니다. 우리 속에는 하나님의 요구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기보다 자기도취에 빠져서 하나님과 상관없는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깨우쳐 주어도 자신을 꺾고 무너뜨리기를 싫어합니다. 자기 자신이라는 우상에 얽매여 있는 것입니다. 말씀의 거울 앞에서 자기를 성결케 하는 철저한 회개를 통해서만이 개혁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Ⅲ. 회복 운동입니다.


21-23절에 “왕이 뭇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이 언약책에 기록된대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매 사사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대부터 이스라엘 열왕의 시대에든지 유다 열왕의 시대에든지 이렇게 유월절을 지킨 일이 없었더니 요시야왕 십 팔년에 예루살렘에서 여호와 앞에 이 유월절을 지켰더라”고 하였습니다. 요시야는 개혁운동을 마감하면서 온 백성들과 함께 여호와의 절기를 성대하게 치렀습니다.


(1)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입니다.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기적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 외에 일 년 중 율법으로 정해 놓은 절기를 지켰습니다. 신명기 16:16-17에 “너희 중 모든 남자는 일 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찌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절기를 제정하시고 그 후손들에 이르기까지 해마다 이 절기를 지키도록 명령하였습니다. 출애굽기 12:24-25에 “너희는 이 일을 규례로 삼아 너희와 너희 자손이 영원히 지킬 것이니 너희는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대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이를 때에 이 예식을 지킬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시야 이전의 왕들은 이 명령을 어겼습니다. 여호수아가 길갈에서 유월절을 지킨 후 사사시대와 열왕들의 시대에까지 이 귀중한 절기가 지켜지지 못했습니다(22절). 그것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이 무시당했고,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이 훼손되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2) 은혜에 감사하며 보답하는 행위입니다.

시편 116:12-17에 보면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고 하였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최대의 명절입니다. 야곱의 가족들이 애굽에 내려가서 사백 삼십 년 동안이나 종살이 하다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해방되어 나온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출 12:1-11). 그 날 애굽에는 바로의 아들로부터 모든 사람의 장자와 짐승의 초태생이 죽었으나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 집에는 죽음의 사자가 넘어갔습니다. 그러므로 유월절의 가장 큰 상징물은 피를 흘린 어린양이며 이는 장차 인류의 죄와 죽음을 대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벧전 1:19).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 절기를 지킨 것은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신앙 행위입니다(레 26:13). 이것은 오늘날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의 은총에 감사하며 보답하고자 하는 예배 행위를 의미합니다.


(3) 하나님께 대한 헌신과 서원을 뜻합니다.

요시야 왕의 개혁은 이 시대 그리스도 교회와 성도들에게 표본이 됩니다. 잃어버렸던 율법을 되찾고 그 말씀의 조명을 받으며 우상숭배의 어두운 죄악들을 과감하게 정리하였습니다. 모든 백성을 모아 놓고 오랫동안 잊혀졌던 역사를 되새기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보답으로 회복의 절기를 지켰습니다. 또한 왕이 스스로 백성들의 선두에 서서 다시는 죄악된 과오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서약하는 행사를 가졌습니다. 옛날 여호수아는 죽기 전에 백성들을 모아 놓고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고 선언하였습니다(수 24:15).
오늘날 개혁교회의 이름을 표방하는 우리들이 요시야와 같은 개혁정신으로 자신의 신앙을 가다듬어야 하겠습니다. 참으로 개혁신앙의 생명력을 행사하는 것만이 이 시대를 주도하며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