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  (시145:9-17,엡1:20-23)


오늘은 교회력으로 마지막 주일입니다. 다음 주일부터는 다시 대림절(待臨節)이 시작되면서 새로운 해로 접어들게 됩니다. 교회력 마지막 주일은 "왕이신 그리스도의 날"로 지키면서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고난 당하시므로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하느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신 그 모든 역사를 기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왕이 되실 수 있는 것은 그가 바로 만물을 충만케 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충만'(프레로오마)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충만한 것'(고전 10:26, 롬 15:29) 혹은 '성취 또는 완성'(롬 13:10)을 뜻합니다. 충만이란 목표량을 가득 채웠기 때문에 더 이상 채울 필요가 없는 상태, 처음 목표대로 모든 것이 완성된 상태를 말합니다. 따라서 만물을 충만케 하신다는 것은 만물을 완성하신다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느님의 창조를 완성하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처음부터 완성하신 것이 아니라 지으신 만물이 하느님 안에 있으면서 점진적으로 완성되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범죄하여 하느님을 떠나므로 만물이 그 성장을 멈추고 죽음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는 마치 태아가 10개월을 다 채우지 못하고 태어난 것과 같습니다. 미숙할 뿐 아니라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성자 그리스도께서 성육신(成肉身)하셨고, 하느님께로부터 떨어져 나왔던 인간과 만물을 다시 하느님께로 이끌어 그 생명 안에 두시므로 처음 창조의 목적대로 점점 완성을 향해 자라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재림(再臨)하실 때 마침내 그 모든 창조가 완성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과 생명이 되셨습니다. 그분은 만물을 죽음 가운데서 구원하여 완성하셨기 때문에 만물의 왕이시며 주가 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 아래에 굴복시키시고 그분을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습니다."

오늘 교회력 마지막 주일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성자 그리스도를 만물의 왕이 되게 하신 하느님의 큰사랑과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만물의 충만함의 의미를 되새기며 성삼위 하느님께 올바른 경배와 영광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삼위 하느님의 일체 되심의 놀라운 신비

먼저 우리는 성부와 성자의 놀라운 사랑과 협력과 하나됨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성부 하느님께서 성자 그리스도 안에 성부의 권능과 속성을 모두 부어 주셔서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리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쪽에 앉게 하셔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성부의 오른쪽에 앉는다는 것은 동등한 인격과 권능과 영광을 갖게 하셨음을 뜻합니다. 그리고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굴복시키시고 그분을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성부(聖父) 하느님께서 모든 주도권을 장악하신다면 만물을 성자(聖子)의 발아래 굴복시키실 것이 아니라 성부의 발아래 굴복케 하시고, 성부 자신이 친히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가 되실 법 한데 성자에게 그 모든 것을 내어 주셨습니다. 여기에 삼위일체 되신 하느님의 놀라운 사랑과 일치의 신비가 깃들여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삼위 하느님의 일체 되심을 빌립보서에서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 9절 이하에 보면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이들 모두가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고백하게 하셔서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빌 2:9-11

사도 바울은 아버지께서 아들을 영화롭게 하시므로 그를 통하여 아버지께 영광이 돌아가도록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결국 아버지는 아들을 영화롭게 하시고, 아들은 아버지께 영광이 돌아가도록 하시므로 아버지가 아들 안에 계시고 아들이 아버지 안에 있는 완전한 일치를 이루셨습니다.

이 삼위 하느님의 완벽한 일체를 이루심이 그대로 만물에게로 확장되는 것이 바로 만물의 충만입니다. 모든 피조물이 서로 대립하고 싸우고 분열하지 않고 서로 협력하고 서로 사랑하면서 유기적으로 한 몸을 이루는 일, 더 나아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하나되심에 함께 참여하여 완벽한 일체를 이룰 때 만물은 충만해지고 완성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유일신 하느님을 믿는 것과 삼위일체 되신 하느님을 믿는 것은 크게 다릅니다.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유일신을 믿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부인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일찍이 일신론(一神論)을 이단(異端)으로 규정하였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각각 독립된 인격이시면서도 각각 다르게 역사하시지 않고 서로가 서로 안에 계시고 서로에게 자기를 양보하고 희생하면서 그리고 서로를 높이면서 하나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여기에 놀라운 조화와 사랑과 겸손과 협력의 신비가 깃들여 있습니다. 그래서 삼위일체 되신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바로 그런 사랑과 희생과 조화를 그대로 따르며 배움을 뜻합니다.

우리가 성부 하느님을 믿는다고 고백할 때, 그것은 그가 아들에게 그의 모든 권능과 속성을 그대로 다 부어주시고 그를 높여 자기 우편에 앉게 하시고 만물의 으뜸이 되게 하신 그 놀라운 사랑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할 때 그것은 아들로서의 영광과 존귀를 모두 비우고 자기를 낮추어 종의 형체를 입고 오셔서 고난 당하시고 죽으시므로 아버지의 뜻을 그대로 이루신 그 놀라운 희생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믿는다고 고백할 때 자기 뜻을 전혀 내세우지 않고 온전히 아버지의 뜻과 그 뜻을 받들어 이루신 아들의 뜻을 따라 역사하시는 그의 겸손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을 고백하는 크리스찬들은 지배와 억압, 권력과 영광을 추구하는 대신에 겸손과 양보, 희생과 사랑을 따라 행동하고 마침내 자기를 내어주기를 주저하지 않는 자리에 이를 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우리가 비록 이 땅에 사는 동안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다 되지 못한다 할지라도 낙심할 것이 없음은 우리가 죽음 후에 영원한 생명에 들어갈 때에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놀라운 일체됨의 비결을 우리도 배우고 그대로 따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을 통하여 한 몸을 이룬 세계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역사를 좀더 세분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20절에 "하느님께서는 이 능력을 그리스도 안에 역사하셔서 그분을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쪽에 앉히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 가운데서 부활케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단순하게 예수님 자신만의 부활이 아닙니다. 만물을 대표하여 대신 죽으신 그리스도의 부활은 곧 만물의 부활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는 말씀은 곧 만물을 다시 살리셨음을 뜻합니다. 에베소서 2장 6절에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그분과 함께 살리시고, 하늘에 함께 앉게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실제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代贖)하셨기 때문에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막혔던 모든 죄와 죽음의 장벽이 거두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하느님의 생명의 세계로 받아드려지게 되었습니다. 골로새서 1장 20절 말씀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분의 십자가의 피로 평화를 이루셔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만물을,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다, 자기와 기꺼이 화해시켰습니다.

하느님과 화해한 만물은 하느님의 생명의 돌보심을 통해서 다시 완성을 향해 성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만물의 부활입니다. 하느님께로부터 떨어져 나와 죽음에 던져졌던 만물이 다시 그에게로 돌아갈 수 있게 되어 생명을 얻게 되었기에 이를 부활이라고 말합니다.

만물을 충만케 하시기 위한 그리스도의 첫 번째 사역이 바로 그들의 죄를 대속하므로 하느님의 생명의 세계로 돌아가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만물이 하느님께로 돌아가 생명을 얻게 되면 완성을 향해 자라나게 됩니다. 물론 거기에는 그 생명을 자라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가 항상 따르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부활케 하셔서 새로운 생명으로 자라게 하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감사와 찬양을 드림이 마땅합니다.


그리스도의 화해의 십자가는 만물을 하느님과 화해하게 할 뿐 아니라 인간과 인간, 인간과 피조물 사이에 화해를 이루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2장에서 원수와 같은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화해하고 한 몸으로 만드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이 양쪽으로 갈려 있는 것을 하나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는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에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된 것을 없애셔서… 이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나님과 화해시키려는 것입니다. 엡 2:14-16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민족과 민족 사이뿐 아니라 주인과 종, 할례자와 무할례자, 남자와 여자 사이, 인종과 인종 사이에 막혔던 모든 담을 헐어 화해하게 하시고 그들을 한 몸으로 만드셨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개인적으로 하느님과 화해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뉘어져 갈등하며 싸우던 모든 인종과 민족과 나라와 계층의 사람들이 화해하고 한 몸을 이루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서로 다양한 모습을 갖춘 이웃들이 어우러져 함께 살아가는 세계가 되도록 만드는 일이 바로 믿는 이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양극화(兩極化)되어 다투던 모든 세력들이 한 몸을 이룰 때 만물은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세계가 서로의 다름을 강조하면서 대립하고 전쟁을 하는 것은 죄악입니다. 다르지만 서로 화해하고 협력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관현악단이 각기 다른 악기들f로 구성되어 다른 음색을 가졌지만 그것이 함께 어우러질 때 놀라운 화음으로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 냅니다. 사상과 이념과 문화가 각각 다르지만 평화를 위해 서로 협력하고 가진 자들이 없는 자들과 함께 나눌 때 세계는 평화를 이룩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남북 관계도 다른 것이 많지만, 얼마든지 협력하고 함께 나눌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적대시하면서 점점 더 담을 높이 쌓을 것이 아니라 협력하면서 담을 낮출 때 마침내 통일이 이루어지고 평화롭게 더불어 살아가는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이런 화해와 협력과 평화를 만드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만물을 충만케 하는 사명입니다.

하늘과 땅의 통일

한 가지 더 생각할 것은 그리스도께서 만물을 충만케 하심은 바로 하늘과 땅을 하나로 통일시키는 일입니다. 에베소서 1장 10절에 보면 "하느님의 경륜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통일시키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늘과 땅이 하나로 통일이 되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갖습니다. 주석에 보면 하늘에 있는 천사와 땅에 있는 사람의 영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곧 영의 세계와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하나로 통일됨을 뜻합니다. 지금은 우리가 영의 세계를 넘나들 수 없습니다. 넘나든다 하여도 지극히 제한적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너무 제한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영을 감지하지 못하며 영적인 것들에 대하여 둔감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로 통일이 된다는 것은 영적인과 육적인 것이 서로 막힘이 없이 소통됨을 뜻합니다. 지금은 우리가 하느님을 눈으로 뵈옵지 못하지만 하늘과 땅이 통일이 되면 결국 우리는 눈으로 하느님을 분명하게 뵈옵게 될 것입니다.

하늘과 땅이 통일이 된다는 것은 이상과 현실이 하나됨을 뜻하며, 하느님의 약속이 현실화됨을 뜻합니다. 죽음 너머의 세계와 이 땅의 삶이 하나로 통일됨을 뜻합니다. 영원과 시간이 통일됨을 뜻합니다. 결국 우주적 통일이 이루어짐을 뜻합니다. 이렇게 하늘과 땅이 하나로 통일이 될 때 만물은 충만함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아직 제한을 받으며 이 땅에 살기 때문에 영적인 세계를 잘 경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깨우치시고 우리를 감동케 하시며, 우리로 영적인 눈을 뜨도록 역사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런 성령의 역사를 따라서 우리 자신을 잘 다스리면 우리의 영적 감각이 살아나면서 영의 세계를 느끼고 감지할 수 있게 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육체의 욕망을 억제하면서 영적 각성을 위해 절제할 때 우리의 영성이 서서히 살아나면서 과거에 체험하지 못하였던 영의 세계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이런 노력이 가능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하늘과 땅을 하나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늘과 땅을 막았던 담을 허셨기 때문에 비록 부분적이지만 영의 세계를 향하여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죽음 속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하게 되면 그때는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분명하게 보게 될 것이며, 삼위일체 하느님의 놀라운 일치와 사랑을 분명하게 깨달아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의 보좌를 떠나 종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고난 당하심으로 성부 하느님께서 그를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셨고 모든 무릎으로 그 앞에 꿇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심으로 그의 창조를 완성하십니다. 놀라운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와 더불어 부활하여 그 영광의 자리에 함께 앉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사람들 사이에 막혔던 모든 담을 헐고 서로 사랑하여 한 몸을 이루어야 하며, 더 나아가 피조세계 전체와 한 몸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역에 힘써 협력하므로 만물의 완성에 영광스럽게 참여하여 하겠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함으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협력하고 그 영광에 참여하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유경재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