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충만의 3대 비결   (사도행전 4장 13-14절)


사도행전 4장에는 놀라운 장면이 나옵니다. 전문교육을 받지 못하고 어부로만 지냈던 베드로와 요한이 성령의 권능을 입어 능력 있는 설교를 하는 장면입니다. 그때 매일 수천 명의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베드로와 요한은 체포되어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 요한, 알렉산더 등 대제사장의 모든 문중이 다 참여한 가운데로 이끌려 나가게 되었습니다(6절).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가운데 세워 두고 도대체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그와 같은 일을 행하는지를 물었습니다.

당대의 쟁쟁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별 볼일 없는 두 명의 어부가 서 있는 광경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아마 웬만한 담력이 있는 사람도 그 앞에서는 위축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 앞에서 그들은 궁지에 몰아넣는 대답을 거침없이 합니다. 이 장면을 보면 사람에게 복음을 잘 전하는 지혜로운 구변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요새는 말을 잘하는 정치인을 덜 신뢰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사람을 잘 설득할 수 있는 말을 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릅니다. 한번의 말로 사람을 웃기고 울리면서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으면 그 사람은 어느 누구보다 성공할 확률이 큽니다.

요새는 ‘말을 잘하는 사람’을 ‘진실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말과 동의어로 쓰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을 잘하면 엄청난 유익이 있습니다. 말을 진실하게 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말을 잘하고, 눈물이 나오는 감동적인 말을 잘하고, 웃음을 주는 상큼한 말을 잘하고, 특별히 복음을 설득력 있게 잘 전하는 것도 하나님이 믿음 안에서 주신 은혜입니다.

그처럼 베드로의 설득력 있는 대답을 들은 자들은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되었습니다. 본문 13절에는 그들의 놀라움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 말씀을 보십시오. “저희가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없이 말함을 보고 그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그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베드로와 요한이 무식한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서 이상하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사도행전 4장 8절에 그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가로되.”

베드로가 그렇게 놀라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성령 충만’ 때문이었습니다. 그처럼 교육은 많이 받지 못했어도 성령 충만한 사람이 교육은 많이 받았어도 성령 충만하지 못한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능력 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령 충만 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도행전 1장 4절에서 승천하시면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명하셨던 것입니다.

사실 성령 충만한 상태에서 행하는 단 하루의 일이 성령의 권능 없이 몇 년 동안 행하는 일보다 때로는 더 효과적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다릴 필요가 있다면 기다려야 합니다. 분명한 어떤 목적과 필요에 의해서 기다리는 것이라면 기다리면서 소비된 날들이 결코 헛된 날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 성령 충만의 3대 비결 >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성령 충만한 생활을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어떻게 성령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성령 충만의 3대 비결이 있습니다.

1.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우리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섭리를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세운 계획이나 그 계획을 이루어달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애 자체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통해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을 수행하시려고 하십니다.

창세전부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한 계획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어떤 분은 그 사실을 믿지 못합니다. 만약 그 사실을 믿지 못하면 이 세상에 믿을 만한 것이 달리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이슬 한 방울에도 목적을 두셨고 들풀 하나에도 뜻을 두셨습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아무런 계획을 갖고 있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믿기 어려운 사실일 것입니다.

그런데 왜 많은 인생들이 자신을 목적 없이 흐르는 하나의 물결처럼 생각하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자기의 마음속에 자기의 계획으로만 가득 차서 하나님의 계획을 선명하게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헌신되지 않은 자신의 계획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대한 영적 시야를 차단시키는 베일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자신의 삶을 온전히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그 베일을 벗기시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선명하게 보여 주실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비극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영혼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비참한 것은 ‘우리의 삶과 시간을 무의미하게 소모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뜻과 섭리를 신뢰하지 않고 세상만을 위해서 살게 된다면 우리는 가장 위대한 것을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혹시 어려움을 당하시거든, 그리고 마음 아픈 일을 당하거든 이곳저곳 기도원이나 문제를 해결하게 해준다는 집회를 찾아다니지 말고, 여기저기 능력 있다는 사람을 찾아다니지 말고 상담하러 다니지 마십시오. 그런 시간은 거의 낭비이고 자신의 영혼을 더욱 혼란하게 만들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을 찾고, 먼저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처럼 하나님을 신뢰하는 모습을 보일 때 성령 충만한 삶이 주어질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합니다. 뱃속에 아기가 태어날 때 일찍 태어나기 위해서 어금니를 악물로 노력해도 한두 달 만에 태어나지 못합니다. 만약 예정보다 너무 일찍 태어나면 그 다음이 좋지 못하게 됩니다.

성공이나 모든 축복도 예정보다 너무 빨리 주어지는 것은 대개 좋지 못합니다. 축복이 빨리 오는 것만이 축복이 아닙니다. 때로는 축복이 늦어지는 것이 더욱 큰 축복입니다. 내가 원하는 면이 늦어지면 또 다른 면에서 축복이 주어지고 있는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넉넉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숨은 역사를 신뢰해야 합니다.

2.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

성경 로마서 12장 1절에는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자기 자신을 거룩한 하나님의 산 제사로 드리라는 말은 하나님께 항복하라는 말입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은 ‘내가 무엇을 잘하는 것’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항복을 잘하는 것’에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마치 수영을 배우는 것과도 같습니다. 수영을 못하는 사람이 수영을 하려고 노력하면 더 가라앉게 됩니다. 그래서 수영교사가 처음 수영을 가르칠 때 긴장을 풀고 먼저 물에 뜨는 법부터 배우게 합니다. 수영은 우리가 물과 싸우지 않을 때 자연적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처럼 우리의 긴장을 풀고 하나님께 항복해야 합니다. 그처럼 매일 우리의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며 살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성령 충만함을 주실 것입니다. 그때 우리들은 마치 아침 햇살을 맞는 꽃과 같이 생기 있게 될 것이고, 계속 내 안에서 솟아나는 생수가 있기 때문에 우리 인생이 시드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성령은 무엇보다 자기의 마음을 깨끗이 비운 사람에게 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헌신하고자 하는 모습은 성령 충만의 문이 열리게 하는 대문의 축과도 같은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뜻을 순종해 보십시오. 죽음을 각오하고 하나님께 헌신해 보십시오. 힘들 때에도 변함없이 순종하고 헌신하십시오. 순종과 헌신, 여기에 성령 충만의 비결이 있습니다.

순종은 성도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축복의 조건을 말씀하시면 순종을 제일 먼저 말씀하실 것입니다. 다른 어떤 것도 순종에 대치할 만한 것은 없습니다. 아무리 부르짖어 기도하고 아무리 기다려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간절히 호소하며, 아무리 하나님 앞에서 고민해도 순종이 없으면 슬픔과 좌절만이 기다릴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기도가 왜 응답받지 못합니까? 순종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은 하지 않고 기도만 합니다. 기도가 순종과 함께 드려진다면 올바른 것이지만 기도조차도 순종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예배도 중요하지만 순종하는 삶이 없는 예배는 형식적인 예배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상 15장 22절에서는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 충만의 비결은 바로 하나님의 뜻에 헌신적으로 순종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최선을 다해 헌신하는 성도님들이 되어 보십시오. 그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 오늘날의 세찬 폭풍 가운데서도 생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임을 꼭 기억하십시오.

3.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는 것

헌신된 삶은 축복의 문을 여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런데 축복이 끊이지 않고 계속적인 축복이 되려면 이 헌신의 행위가 매일의 삶 가운데서 실현되어야 합니다. 헌신은 성령 충만의 절정이라기보다는 성령 충만으로 들어가는 문턱을 넘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날 많은 분들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순종함으로 성령 충만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 중에서도 성령의 지속적인 나타남이 결여되어 있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은 잘하지만 ‘사람을 사랑하고 이웃과의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 부족한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는 이기주의가 제일 좋은 생존 수단인 것 같지만 하나님의 법칙에서는 사랑이 제일 좋은 생존 수단입니다. 가끔 보면 교회에서는 열심히 봉사하면서 가정에서는 봉사를 등한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남편을 사랑하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기도원에 계속 간다고 성령 충만하게 되지 않습니다.

가끔 보면 남을 미워하면서 열심히 성령 충만을 위해 기도하는 분들을 봅니다. 그런 분들은 결코 성령 충만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진정 성령 충만을 원하면 남을 미워하지 말고 남을 미워하는 나를 미워해야 합니다. 이웃을 질투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이웃을 더 사랑하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도 인색한 사람, 각박한 사람, 용서가 없는 사람, 자기만 아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난리 브루스’를 춰도 성령 충만은 없을 것입니다.

성경 고린도전서 12장을 보면 성령님께서 주시는 아홉 가지 은사가 나와 있습니다. 지혜의 은사, 지식의 은사, 믿음의 은사, 병 고치는 은사, 능력 행함의 은사, 예언의 은사, 영분별의 은사, 방언의 은사, 방언 통역의 은사가 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은사가 많이 있습니다. 왜 성령님께서 이러한 은사를 허락해 주셨겠습니까? “나는 이러한 재주가 있다!”고 자랑하라고 주셨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7절 말씀을 보면 우리에게 은사를 주신 이유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은사는 자랑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 은사를 활용해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고 사랑하기 위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 은사 중에서 가장 큰 은사를 사랑이라고 한 것입니다(고전 12:31). 사랑의 실천이 없으면 성령 충만도 있을 수 없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성령 충만의 3대 비결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말씀처럼 하나님을 철저히 신뢰하고, 하나님 말씀에 최대한 순종하며, 사랑과 나눔을 실천함으로 언제나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함이 있을 때 우리의 삶에 기쁨과 보람이 넘치고, 얽힌 문제로 풀리고, 성공과 기적과 축복과 행복도 주어질 것입니다. 항상 성령 충만함으로 언제 어디서나 승리하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출처/이한규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