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열매 - 평화      (사26:1-7,엡 2:11-22)

평화 - 하나님의 선물

오늘은 성령의 세 번째 열매인 평화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평화'란 말은 누구나 다 사랑하는 말이요 즐겨 쓰는 말 가운데 하나입니다. 특별히 민족이 남북으로 분단되어 전쟁을 하였고, 지금도 서로 대치된 상태에 있는 이 땅에 사는 우리에게 있어 평화는 너무도 절실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평화가 무엇이냐고 물을 때 정확하게 정의하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막연히 전쟁이 없는 상태를 평화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평화를 깨트리는 것은 전쟁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휴전 이후 이제까지 전쟁을 하지 않았지만 독재 정권에 시달리면서 평화를 맛보지 못하였습니다. 평화를 누리지 못하게 한 요인은 외부의 침략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솟아난 독소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경제적으로 상당히 향상되어 옛날보다는 훨씬 잘 살고 있습니다만 가난한 때보다 우리가 더 많은 평화를 가졌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아직도 절대적 가난으로 노숙하는 사람들을 비롯하여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고, 정치가 안정되지 못하므로 사회적 불안이 우리를 짓누르고 있기에 우리가 진정한 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런 사실들을 통찰할 때 우리가 평화를 누리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작용하는 악의 세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에덴동산의 평화를 깨트린 뱀의 간교한 유혹 ­ 이것은 온 인류의 평화를 깨트리고 있는 사탄의 계략을 단적으로 상징해 주고 있는 이야기라 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진정한 평화란 사탄의 준동(蠢動)이 그치고 하나님의 원래 창조하신 그 상황으로 돌아갈 때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평화란 인간의 어떤 노력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평화란 하나님 편에서 역사 하시지 않으면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입니다. 평화란 결국 하나님의 선물이요, 그래서 성령의 열매라고 한 것입니다.

평화 -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이다.


히브리어로 평화는 '샬롬'입니다. 이 말은 '완전하다''건전하다'는 뜻을 가진 샬렘이란 동사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이 어근은 완전과 일치의 상태, 회복된 관계의 상태에 들어가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샬롬'이란 말이 여러 가지로 번역이 됩니다. 평화, 번영, 안녕, 건강, 완전, 안전 등으로 번역이 됩니다. 결국 구약에서 '샬롬'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약 관계를 올바로 지킬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올바른 계약 관계 속에 있지 않으면 평화를 누릴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축복이 될 것이요,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르면 저주를 받으리라." 신 11:26-28


하나님의 명령을 좇아 바르게 행하면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샬롬'을 얻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렇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다른 신을 섬기게 될 때 저주를 받아 약속의 땅에서 쫓겨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신명기의 교훈을 사실로 보여 주는 것이 사사기입니다. 이스라엘이 범죄 하면 이웃 나라의 침략을 받아 평화를 잃어버리고 고난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그들이 고난 중에서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이키면 하나님께서 저들을 구원하여 다시 평화를 누리게 하여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속에 있을 때는 번영하였고 안전하게 보호를 받았습니다. '샬롬'은 바로 하나님이 내리시는 은총 속에서 안전하고 평안한 삶을 누리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샬롬'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것이지 그 외에 인간적인 어떤 수단이나 방법으로는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이사야서 26장 12절에 보면 "주님, 주님께서 우리에게 평화를 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우리가 성취한 모든 일은 모두 주께서 우리에게 하여 주신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평화를 주시지 아니하면 어디에도 평화는 깃들이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또 이사야서 26장 3절에 보면 "주님, 주님께 의지하는 사람들은 늘 한결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니, 그들에게 완전한 평화를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주를 의뢰하는 심지가 견고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완전한 평화를 주신다는 믿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끝까지 올바로 유지하는 자에게 평화를 주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평화를 지키는 든든한 성은 바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임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된 일"라고 한 말씀도 바로 진정한 평화는 무기를 증강하고 든든한 성을 쌓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고 그 계명을 좇아 바르게 사는데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구약에 나타난 예언자들은 겉으로 보기에 평화롭고 문제가 없을 때에 나타나 하나님의 심판을 선고하곤 하였습니다. 예언자들은 지금 그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서 누리고 있는 평화는 거짓 평화이며, 곧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임을 미리 내다보았던 것입니다. 거짓 예언자들이 '평안하다 평안하다'고 말할 때 예레미야나 에스겔 같은 예언자들은 그것이 거짓 예언임을 지적하고 회개할 것을 촉구하였던 것입니다. 거짓 예언자들은 정치적인 상황 판단을 통해 전쟁의 위험이 없다고 보기 때문에 평화를 선포하지만,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서만 평화가 가능하다고 본 예레미야는 지금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지 않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평화가 아닌 재앙이 임박했음을 예언하였던 것입니다.

메시야가 가져올 평화


예언자들은 이스라엘 백성의 강퍅함을 보면서 저들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보고 오직 새로 오실 메시야만이 이 관계를 회복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평화는 메시야가 오실 때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이사야서 9장의 메시야 예언에 보면 흑암의 땅에 빛이 비치고 즐거움이 온 땅에 충만하고 무겁게 메었던 멍에와 압제가 사라지고 모든 전쟁이 끝나는 날이 이를텐데 그것은 평화의 왕이라 불릴 한 아기가 탄생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메시야를 통해서만 진정한 '샬롬'이 올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또한 이사야서 11장의 메시야 예언에서도 이새의 줄기에서 한 가지가 날텐데 그는 공의로 다스리는 자가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맹수와 어린양이 함께 노닐고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서 장난하여도 해함이 없는 평화의 동산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메시야가 오시므로 평화는 공의와 더불어 실현될 것이라고 예언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서만 '샬롬'이 가능한데 그것은 결국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만 하실 수 있는 일임을 구약성경은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평화 -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다.


그러므로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의 탄생은 바로 하나님의 평화를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 땅의 평화를 깨트리는 악의 세력이 준동하고 있어 평화의 왕으로 탄생하신 예수님은 이들과 정면으로 충돌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탄의 세력은 온갖 사람과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예수님의 평화를 위한 사역을 막으려고 하였습니다. 평화의 왕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어쩔 수 없이 평화를 위하여 싸우실 수밖에 없는 투쟁의 삶이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내가 땅 위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마 10:34)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시는 평화는 그 옛날 로마가 이룩한 평화 즉 팍스 로마나나 혹은 오늘날 미국이 전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하며 이룩하는 평화 즉 팍스 아메리카나 같은 것이 아님을 뜻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강력한 국가를 세우시고 그 국가를 통해 이 세계를 지배하면서 이룩하는 그런 평화를 주러 오신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거슬려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을 거스르는 그 죄를 없이하므로 우리를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속에 두시므로 평화를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히려 팍스 아메리카나를 심판하시기 위하여 오신 것이기에 그것은 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자신의 죄악을 도려내는 아픔 없이는 진정한 평화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이 땅의 왕들이 평화를 만든다고 하면서 이룩한 모든 죄악을 심판함 없이 진정한 평화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려는 평화는 근본 문제를 덮어둔 채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무마시키므로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속에 자리 잡은 죄의 뿌리를 송두리째 뽑아 내므로 하나님 앞에 바로 서게 하는 근본적인 치료를 통한 평화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인류의 죄의 근원인 사탄과 맞서 투쟁하셨고 스스로 십자가를 지심으로 마침내 사탄의 세력을 꺾고, 그가 주장하던 죄와 죽음으로부터 모든 인류를 자유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로막고 있던 죄와 죽음을 제거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게 하여 주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 롬 5:1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통하여 모든 인간을 새로 지으심으로 평등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기 때문에 그 안에서 모두가 평등한 관계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종이나 주인, 남자나 여자,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이 모두 없어지고 믿음으로 구원받은 완전히 평등한 새로운 인간관계가 맺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에베소서 본문에 보면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를 가로막았던 율법을 십자가로 폐하시고 이 두 민족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되게 하시어 평화를 누리게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인간을 완전하게 평등하게 하시므로 평화를 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두가 새로 지음 받지 아니하고는 평등하게 될 수 없고, 평등함 없이는 진정한 평화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하게 하시고, 동시에 모든 사람을 새로 지으심으로 하나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가 전한 평화의 복음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받은 평화의 복음입니다. 이런 평화의 복음을 우리가 믿도록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그 결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평화를 누리게 되므로, 평화는 성령의 열매인 것입니다.

평화 - 교회를 통하여 성취되어야 한다.


이 평화의 복음을 받은 교회는 이 복음을 세상에 분명하게 알려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땅에서 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려고 여러 가지로 노력하였습니다. 유엔이 창설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평화는 오지 않고 있습니다. 평화의 복음을 통하지 아니하고는 결코 이 땅에 평화가 올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교회는 분명한 목소리로 평화의 복음을 이 세계 속에 전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 세계의 평화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지 아니하고는 올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신 있게 선포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 민족의 평화와 통일도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가 형성되지 아니하고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확신을 교회가 분명하게 밝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만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정의가 이 땅에 실현되지 아니하고는 그와의 관계를 올바로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불의와 악이 있는 곳에서 언제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인간의 평등을 깨트리는 온갖 편견과 그릇된 사회 제도에 도전하여 이를 시정하지 않으면 진정한 평화는 실현되기 어렵습니다. 온갖 이념에 포로가 된 사람들로 하여금 그 이념에서 자유함을 얻게 하기 위하여 이념을 초월한 하나님의 나라를 분명한 목소리로 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우리는 이 땅에 평화를 실현하기 위하여 불의와 악과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동시에 교회는 평화와 전쟁에 관한 문제에 관심을 갖고 전쟁을 예방하며 전쟁을 일으키는 요인들을 제거하기 위하여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반전, 반핵 운동이 바로 이에 해당합니다. 역사상에 많은 전쟁이 일어났지만, 또한 전쟁을 예방하려는 선의의 의지들이 결집되어 미연에 방지된 전쟁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날에 군사 독재가 정권 유지를 위해 남북의 대립 양상을 더욱 첨예화시키고 적개심을 더욱 조장하였던 일을 기억합니다. 교회는 바로 이런 독재자들의 어리석은 전쟁 의지를 꺾고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싸워왔던 것입니다. 지금 교회들은 평화와 통일에 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며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좀 더 구체화되어 반전 운동에까지 전개되어야 하며, 마침내 이 땅에서 군대가 감소되고 모든 무기 공장들이 다른 산업시설로 전환되도록 계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평화는 내적인 평화로만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만약 내 마음의 평화만을 원한다면 깊은 산속 수도원에 들어가 혼자 있으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평화의 반쪽일 뿐입니다. 진정한 평화는 바로 이 세계 속에 실현되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의 열매로서의 평화는 바로 이웃과의 관계에서, 이 사회 속에서, 그리고 민족과 세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평화를 뜻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속에 역사하실 때 우리는 하나님과 화해하여 바른 관계를 가지면서 동시에 이 땅에 있는 모든 갈등과 싸움을 끝내고 서로가 평화롭게 사는 그 날을 위해 헌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작게는 내 가정에서부터 시작하여 교회의 평화, 이 사회의 평화, 더 나아가 이 민족의 평화를 이루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하나님의 통치를 이 땅에 실현시키는 하나님 나라 운동입니다. 성령은 우리로 평화의 열매를 맺도록 우리를 이끄시며 우리에게 능력으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말씀을 따라 산다고 할 때 그것은 바로 성령의 이끄심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요, 그 결과로 우리는 평화의 역군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가정의 평화, 교회의 평화, 이 민족의 평화, 더 나아가 세계의 평화를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삶을 이루어 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유경재목사님 설교자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