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의 길은 순종 입니다   (계3:14)


1. 무조건 순종 (창7:5)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는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일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을 창조하신 다음부터는 어떤 뜻을 정하시면 그 일을 함께 할 사람을 찾으셨습니다.


사람들의 죄악을 보고 땅을 멸하시기로 작정하신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택하시고 방주를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창6:22에 보면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고 했습니다. 7:5에서도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고 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다'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도'(히11:8)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다'고 했습니다.


또 아브라함이 백세에 얻은 아들 이삭이 십대 소년이 되었을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밤에 찾아 오셔서는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를 번제(燔祭)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번제라는 것은 사람을 잡아서 태워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다음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창22:3)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데리고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어도 자기 기준을 가지고 자기 기분을 따라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아무리 직분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영적으로는 초신자입니다. 기분을 따라 믿어서는 안되고 말씀을 따라 믿어야 합니다.


지난 주간 부흥회에 오셨던 목사님께서 하신 이런 간증을 들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당시에 염병이라고도 했던 장질부사에 걸려 휴학을 하고 있을 때 고향 후배의 전도를 받고 시골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나간지 두 주 밖에 안되었는데 그 교회 목사님께서 교회에 나온 지 두 주 밖에 안된 그 학생에게 새벽종을 치라고 하시더랍니다. 지금 생각을 해보면 그 목사님께서 어떻게 무엇을 믿고 자기에게 그런 부탁을 하셨는지 모르겠는데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하고는 그날부터 새벽종 치는 것을 배워서 새벽마다 종을 쳤고 그것이 축복의 끈이 되어서 오늘날의 그 축복을 받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나중에 저에게 개인적으로 이런 간증을 더해 주셨습니다. 그 시골교회는 많은 성도들의 축복을 받아 침례교단에서는 아주 대표적인 모델 농촌교회가 되어 있답니다(그때부터 지금까지 목회자와 사모21명 배출)


그리고 그때 어떻게 그 종을 치게 되었느냐 하는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자기가 종을 치게 되기 전까지는 교회 바로 아랫집에 사는 박집사라는 분이 종치는 것을 담당하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그 박집사라는 사람은 자기 기분에 맞고 자기 기분이 좋으면 종도 잘 치고 교회도 잘 섬기다가도, 자기 기분에 안 맞는 무슨 일이 생기면 며칠이고 몇 달이고 종을 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다시 자기 기분이 풀리면 종을 치던 그런 사람이었답니다.


그렇게 자기 기분에 따라서 믿음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때도 마음에 틀리는 것이 있어서 종을 치지 않고 있을 때라서 자기에게 종을 치라고 했던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아무리 종을 칠 사람이 없어도 어떻게 목사님께서 교회에 나온 지 두 주 밖에 안되는 고등학교 학생에게 새벽종을 치라고 하셨겠습니까? 그러니까 성령님께서 그렇게 역사하셨던 것이였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면서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그 교회는 시골교회지만 아까 말씀을 드렸던 것처럼 교인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참 잘된 사람들이 많은 교회로 유명한데 그 박집사란 사람은 그 동네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예수 믿으면서도 복받지 못한 사람으로 소문이 난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내 기분에 안 맞는다고 주님의 일 안하면 하나님께서 그 일 못하시는 것 아닙니다. 그 일은 다른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 하십니다. 그러나 불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에서 제외되는 것입니다.


어떤 말씀이든지 하나님의 말씀에는 무조건 순종하면 복이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씀을 순종하는 자 속에서 역사(役事)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대낮에 베드로에게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고 하셨습니다.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말씀이셨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순종해서 던졌을 때 고기가 잡혔는데 그물이 찢어지기 직전까지 많이 잡혔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는 무조건적으로 '아멘'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을 준비하고 계시지만 아무에게나 주시는 것이 아니라 준비된 사람에게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하라는대로 순종하는 사람에게 주십니다.


2. 배워서 순종(고전11:1)


오늘 성경말씀을 보면 예수님을 가리켜서 '아멘'이시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의 성품이 아멘 그 자체이셨다는 것입니다.


아멘이라고 하는 말은 히브리말 ???을 그대로 음역, 그러니까 소리가 나는대로 번역한 것입니다. 헬라어로도 ???이라고 하고 영어로는 Amen이라고 쓰는데 발음은 :mn 이라고 하기도 하고 imn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헬라는 엑센트를 아주 중요시합니다. 그래서 헬라어 문법교제를 보면 제1과가 알파벳이고, 제 2과가 액센트에 대한 것입니다. 그만큼 액센트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 ? - 남성 단수 관사 ? - 중성 관계대명사, ??? - '누구'라는 의문대명사 ?? - '어떤' 이라는 부정(不定)대명사다)


액센트도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가 종류가 있습니다. 그리고 명사의 액센트 법칙이 따로 있고 동사의 액센트 법칙이 따로 있을 정도로 액센트를 중요시합니다. 그래서 이 헬라어에 뿌리를 둔 말들인 영어나 독일어 불어 등은 다 액센트와 말의 리듬을 아주 중요시합니다.


그런데 우리말은 (물론 말의 고저 장단은 어느 정도 있지만) 액센트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한글 사전에는 액센트가 표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멘이라는 말이 처음 쓰인 이스라엘 말도 우리말처럼 액센트가 별도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아멘' 할 때 어디를 강하게 하고 약하게 해야 하는가 또 어디를 길게 하고 어디를 짧게 해야 하는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멘, 아-)


그리고 이 아멘이라는 말의 뜻은 '예, 맞습니다. 꼭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영어사전을 찾아보니까 agree 동의한다는 말을 그냥 'say amen'이라고 쓰기도 한다고 해 놓았습니다)


대상 16:36에 보면 다윗이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놓고는 백성들 앞에서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할찌로다' 하니까 모든 백성들이 '아멘'하고 답을 했습니다. '예, 꼭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느8:6말씀을 찾아서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에스라가 광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응답하고 ......' 했습니다.


그러니까 광적으로 믿는 사람들만 아멘 아멘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또는 기도를 할 때 '아멘, 아멘'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한 시간 들으면서도 아멘을 한번도 안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 사람이 비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신명기 27장에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런 명령을 했습니다. 레위 사람들이 (즉 제사장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장색의 손으로 조각하거나 부어 만든 우상은 여호와께 가증하니 그것을 만들어 은밀히 세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이렇게 큰 소리로 외치면 모든 백성은 '아멘'하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도 보면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은 전하면 그 말씀이 끝날 때마다 '아멘, 아멘' 하라고 했습니다.


시41:13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송할찌로다. 아멘 아멘'


시89:52

'여호와를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아멘 아멘'


영어에 Amen Corner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교회의 강단 가까이에 있는 좌석 그러니까 열심있는 성도들이 앉는 자리라는 말입니다. 우리 양정중앙교회 성도들도 이 Amen Corner를 귀하게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아멘이라는 말은 '맞습니다. 꼭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제가 그대로 순종하겠습니다' 하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신앙에 있어서는 많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아멘하는 자세 즉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잘 믿고 하나님의 복을 받으며 살 수 있습니까? 특별한 비법(秘法)을 찾으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왕도(王道) 그러니까 어떤 특별한 길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벧전2:21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본(本)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고전11:1에 보면 사도바울은 '내가 그리스도를 본 받은 것 같이'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을 본 받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니까 배우려고 애를 썼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고전9:27에 보면 '자기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먼저는 예수님을 배워야 합니다. 아까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대해서는 언제나 아멘이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아멘이시라고 했습니다. 고후1:19에 보면 '예수님은 언제나 예만 하고 아니라 한 일이 없으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을 붙좇아 아멘 아멘하면서 예수님을 배우다 보면 내 속에 있는 것 중에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은 빠져버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채워집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평생에 거쳐서 해야 할 일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배우고 자신을 치면서 순종하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방법으로 여러분들을 사용하실 것입니다(딤후2:20-21).


다윗은 '내가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시131:1).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 들어서 사용하셨습니다.


3. 즐겁게 순종(사1:19)


이번에 부흥회에 오셨던 강사 목사님을 보니까 개척교회를 하시며 정말 많은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 목사님 뿐만 아니라 훌륭한 목사님들을 보면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정말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늘 좋은 교회에서 좋은 성도님들을 만나 사랑을 받으면서만 목회를 해왔습니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하나? 주님을 위해서 받은 고난이 없으니'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성경 사1:19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꼭 고난을 받아야만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게 된다. 다시 말하면 꼭 고난을 받아야만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다고 하시지 않고 하나님을 즐거워하고(출25:2 삿5:2 시119:35) 즐겨 순종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들에게 맡기신 길이 다 똑같지 않다는 것을 성경에서 봅니다. 아무도 모세가 여호수아보다 덜 훌륭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어릴 때부터 죽을 때가지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아주 극한 어려움도 많이 당했습니다. 그리고 조그마한 어려움만 닥쳐도 백성들이 원망하고 덤벼들어서 속이 많이 썩었습니다. 그러고도 마지막에는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두고도 그곳에 들어가 보지를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어땠습니까? 모세가 죽고 모세의 후계자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큰 능력과 권위를 가지고 있던 모세 때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주 모세에게 대항을 했었습니다. 그러니 젊은 사람이 그 후계자가 되었으니 사람들이 얼마든지 더 마음대로 흔들려고 덤벼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전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수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오셔서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고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수1:18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에게 와서는 '누구든지 당신의 명령을 거역하거나 당신이 시키시는 말씀을 청종치 아니하는 자가 있으면 그는 죽임을 당하리니 오직 당신은 마음을 강하게 하시며 담대히 하소서' 했습니다.


신약에 와서 행12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요한의 형인 야고보가 헤롯왕에게 잡혀 가서 죽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죽이는 것을 보고는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헤롯이 이번에는 베드로를 죽이려고 잡아 들였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 하나님께서 기적을 일으켜서 베드로를 살려 주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는 기적을 베풀어 살려 주시고 야고보에게는 기적을 베풀어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야고보의 사명과 베드로의 사명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베드로를 만나셨을 때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띄우고 (네가)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너를) 데려가리라' 하시고는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분명하게는 모르겠지만 늙게 되었을 때 무엇인가 자기에게 어려움이 닥치게 될 것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요한이 옆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주님, 그럼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내가 (다시)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할찌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각자에게 주신 축복과 사명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반적인 은혜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있습니다. 일반적인 은혜가 고생하지 않고 평안하게 사는 것이라면 특별한 은혜는 분명히 은혜는 은혜지만 고생도 많이 하는 은혜입니다. 사도바울은 평생을 죽을 때까지 인간적으로 볼 때는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도 그러셨고, 그렇게 사랑으로만 살으셨던 손양원 목사님도 그러셨습니다.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반적인 은혜는 자녀가 있고 잘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는 특별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명이 있기 때문에 자녀를 안 주실 수도 있는 것입니다.


잘되고 많이 누리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복입니다. 저도 여러분 모두가 그렇게 되기를 빕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다는 아닙니다. 각자에게 주신 사명과 은혜가 다르다는 것을 꼭 명심하셔야 합니다.


금요일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설교를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토요일 먼 곳에서 있는 결혼 주례를 맡았기 때문에 금요일까지 다 써놓아야 하는데 결론 부분이 정리가 되지를 않아서 무거운 마음으로 아침을 먹기 위해 집으로 갔습니다. 집에 다와 가는데 하나님께서 지금 말씀드린 이런 말씀을 주셨습니다. 무겁던 마음이 시원해졌습니다.


8시가 다 되었을 때였습니다. 9시까지 출근을 하려면 씻고 밥먹고 나오기가 빠듯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감사하고 좋아서 다시 교회로 달려 왔습니다. 머리에 기억을 하거나 집에 들어가서 메모를 해 두었다가 출근을 해서 정리를 해도 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했습니다.


아까 말씀을 드렸던 것 같이 저는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고난 당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대신 하나님을 더 즐거워하고, 하나님의 일을 더 즐거워하기로 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셨습니다(시112:1)


저처럼 하나님께 드린 것이 없는데도 하나님의 사랑만 많이 받고 있다고 생각되는 분들은 더 열심히 즐겁게 헌신하십시오.


그리고 열심히 헌신하시면서도 야고보처럼, 베드로처럼, 바울처럼 또 주기철 목사님이나 손양원 목사님처럼 고난 중에 계시는 성도님들도 믿음의 선조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면서 즐거워했던 것처럼(히11:13) 즐겁게 헌신하며 순종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