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의 열매     (시편 144:12~15)        


그리스도인의 집단인 교회는 가장 행복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신분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에 사는 동안에도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축복을 최대한 즐기는 자들입니다.
본문 성경을 기록한 다윗은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성도의 가정에서 누리게 되는 축복의 열매가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고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자녀의 축복입니다.


성도가 세상을 사는 동안 하나님께로 부터 받게 되는 복이 많이 있지만 그중에도 자식들을 통하여 누리는 축복이 가장 큰 것입니다. 지혜자 솔로몬은 역사상 가장 많은 복을 누린 사람으로서 세상 사람가운데 축복의 상징적인 인물입니다(마 6:29). 그는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고 하였습니다(시 127:3).

1) 장성한 아들들

12절에 “우리 아들들은 어리다가 장성한 나무들 같으며…”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나무들”이란 재목을 의미하는데 이는 자식을 잘 키워서 유능한 인재로 배출하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옛날 어른들은 훌륭한 인물을 가리켜 동량지인(棟樑之人)이라고 했는데 이는 기둥과 들보와 같은 큰 재목을 일컫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의 야고보나 베드로 같은 인물을 “기둥같이 여기는 자”라고 하였습니다(갈 2:9). 계시록 3:12에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옛날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 레바논의 백향목으로 재목을 삼았습니다(왕상 5:8-10). 그리스도 안에서 신앙의 인격으로 장성한 아들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인류의 역사에 기여하는 훌륭한 인물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2) 아름다운 딸들

“…우리 딸들은 궁전의 양식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잇돌들과 같으며”라고 하였습니다(12절). 고대 국가에서 왕궁이나 신전을 건축할 때 웅장한 규모와 위용을 나타내기 위하여 최상의 자재와 최고의 기술로 가장 우람하게 지었습니다. 이런 건물들은 대부분 대리석과 같은 최고급 석재를 사용하였습니다.
본문 말씀에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잇돌”이라고 했는데 이는 장인들이 모든 솜씨와 기교를 동원하여 가장 예쁘게 모양 낸 것을 뜻합니다. 여자들은 아름다운 미모와 여성다운 품위를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솔로몬 왕은 신부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면서 “네 목은 무기를 두려고 건축한 다윗의 망대 같다”고 하였습니다(아 4:4).
성도의 가정에서 자라난 딸들은 외모뿐만 아니라 그 마음이나 속사람까지 아름답게 가꾸어 집니다. 사도 베드로는 여인의 미모를 금을 차고 화려한 의상으로 단장한 외모만이 아니라 마음의 숨은 사람으로 한다고 하였습니다(벧전 3:3-4).


3) 꿈과 희망을 뜻합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있어서 꿈이요 희망입니다. 시편 128:3에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고 하였습니다. 팔레스틴 지역에서 감람나무는 매우 귀하고 가치 있는 나무에 해당합니다. 감람나무의 기름은 하나님의 성전에 불을 밝히는 역할을 하여 하나님께 바쳐지는 헌신자를 뜻합니다(삿 9:8-9).
오늘날 세상에는 어두움 속에서 버림받은 사람이 많습니다. 생명의 존엄성을 느끼지도 못하고 살맛을 잊어버린 채 좌절하는 사람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신앙의 가정에서 하나님의 은혜 속에 자라나는 젊은이들은 매우 복이 있습니다. 이들을 통하여 더 밝은 미래가 그려지게 됩니다. 시편 127:4-5에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의 화살 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고 하였습니다.



2. 재물의 축복입니다.


13절에 “우리의 곳간에는 백곡이 가득하며 우리의 양은 들에서 천천과 만만으로 번성하며 우리의 수소는 무겁게 실었으며…”라고 하였습니다. 만복의 근원되신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토지 소산과 육축에 까지도 풍성한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신 28:2-6).


1) 수고의 열매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축복을 약속하실 때 그냥 손발을 묶어놓고 있어도 마구 쏟아 부어주겠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먼저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수고와 노력을 당부 하였습니다(창 1:28).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하였습니다(살후 3:10). 농사를 짓는 사람은 시기를 놓치지 말고 씨를 뿌리며 가꾸어야 됩니다(약 5:7). 장사를 하는 사람도 가진 밑천으로 열심히 노력하여 많은 이익을 남겨야 됩니다(마 25:21). 소나 양을 몰고 다니며 목축을 하는 사람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더위와 추위를 가리지 않고 성실하게 돌보며 가꾸어야 합니다(창 31:40). 자기가 할 일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축복만을 기다리는 것은 올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솔로몬 왕은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줄을 또한 알았도다”고 하였습니다(전 3:13).


2) 풍성한 소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수고와 노력위에 풍성한 결실을 거두도록 축복하십니다.
본문 말씀에 소개한 것처럼 곳간에 쌓인 곡식이나 목장에 있는 소와 양들의 번성함도 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축복의 열매입니다. 씨를 심고 물주며 가꾸는 일은 사람이 하여도 이것을 자라고 열매 맺게 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고전 3:6).
베드로와 안드레는 저희들이 밤을 새우며 수고를 하고도 소득이 없었던 그곳에서 주님의 말씀과 축복에 의하여 엄청난 소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눅 5:4-6). 시편 84:6에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사람의 경우 비록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지라도 그곳에 많은 샘이 솟아나고 이른 비가 은택을 입힌다고 하였습니다.


3) 오래도록 보존되는 축복입니다.

세상에 있는 재물은 대부분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재물을 땅에 쌓아두면 좀이나 동녹이 해하고 도둑이 훔쳐가 버리지만 그것을 하늘에 쌓아두면 영원히 보존된다고 하였습니다(마 6:19-21). 성도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축복의 열매를 하나님의 방법으로 보존하고 또한 선용하여야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축복으로 받은 물질을 자기 욕심에 따라 악용하기 때문에 얼마 못가서 그것을 잃어버리고 맙니다(약 5:1-4). 사도 바울은 세상의 재물은 정(定)함이 없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딤전 6:17). 그것이 내 손안에 머물게 되었을 때 기회를 놓치지 말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선용하여야 된다는 뜻입니다(잠 11:24).



3. 평강의 축복입니다.


14절에 “또 우리를 침노하는 일이나 우리가 나아가 막는 일이 없으며 우리 거리에는 슬피 부르짖음이 없을진대”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전쟁이 없게 하시고 재난과 질병과 죽음과 같은 불행의 요소를 없게 하여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1) 평화를 보존하십니다.

전쟁은 고대 국가들 사이에 흔하게 있었던 일이며 특히 이스라엘의 주변에 있는 강대국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침노해 들어오곤 하였습니다.
본문 말씀 중 “우리를 침노하는 일이나 우리가 나아가 막는 일이 없으며”라고 한 말씀은 외적으로부터 침략을 받거나 전쟁으로 야기되는 피해를 없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현대 국가에서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안보 문제는 평화를 위협하는 가장 큰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시편 127:1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고 하였습니다.


2) 슬픈 일이 없게 합니다.

앞서 침노하는 일과 나가서 막는 일을 외적인 재난이라고 한다면 슬피 부르짖는 일이란 내적인 문제로서 질병이나 죽음 같은 것을 의미합니다. 범죄한 인간이 사는 세상에는 재난과 질고가 그침이 없기 때문에 언제든지 불안한 마음을 떨쳐 버릴 수가 없습니다.
옛날 선지자 하박국은 외적이 침략해 온다는 소문을 듣고 창자가 떨리며 뼈가 썩어 들어가는 것 같은 근심에 쌓였으나 그 순간에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평강을 맛보고 감사와 찬송을 하였습니다. 하박국 3:18에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고 하였습니다.


3) 하나님과 함께하는 축복입니다.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언제나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들입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곳에 평강이 있음을 알고 항상 이를 사모하였습니다(민 6:24-26). 포로시대의 선지자 에스겔은 하나님께 받은 계시의 언약을 선포하면서 “그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고 하였습니다(겔 48:35).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는 축복의 메시지입니다.
신약의 바울도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살후 3:16).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섬기는 성도의 가정에 이와 같은 축복의 열매가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출처/손상률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