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길(道)  (빌립보 2:5-11, 고전1:18)


할렐루야!!
오늘 저녁에도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와 사랑과 평강이 이 시간 예배를 드리는 모든 성도들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행로에는 좁은 길과 넓은 길이 있는데 “좁은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7:13-14) 고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은문이니, 이 길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님 자신이 걸어가신 길로서 우리는 그 길을 가리켜 십자가의 길이라고 합니다.
좁은문이 되는 십자가의 길은 고통과 괴로움의 길이며 희생과 죽음의 길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만 “좁은 길을 가라 좁은문으로 들어가라” 고 하시지 않고 주님이 친히 좁은 길을 가셨고 주님이 친히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주님에게는 좁은 길이 아닌 넓은 길들이 많이 열려 있었습니다.
먼저 돌로 떡을 만들어 자신도 배불리고 많은 사람들의 배고픈 문제도 해결해 주므로 자기 백성을 기아 가운데서 건져낼 수 있는 경제적 메시아의 길도 있었으며,
드높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되 발하나 상치 않음으로써 민중의 박수와 갈채를 받는 종교적 메시아의 길도 열려 있었고,
마귀에게 엎드리어 절을 하고 세속적 권력을 장악함으로써 박해받는 유태 민족을 로마의 악 정권에서 해방해 내는 정치적 메시아의 길이라든지, 철학자 헬라 사람과 같이 헬라로 가서 저들의 랍비가 되어주므로 쓴잔을 도피할 수 있는 안락한 메시아의 길도 열려 있었습니다.
하늘 아버지께 구하여 하늘 군사를 불러 하나님 앞에 파리 떼와 같은 로마 병정 일당을 물리칠 수 있는 군사적인 메시아의 길도 없지 않았습니다.
열두 영의 천사를 불러 예수님을 잡으러 온 대제사장들의 관원이나 로마 병정들을 삽시간에 물리칠 수도 있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을 잡는 무리를 향하여 칼을 휘둘러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자른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마26:52-54) 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하고 호산나를 부를 때 로마의 정권을 몰아내고 당시 부패한 종교 지도자들을 심판하고 정권을 잡아 왕이 되실 수도 있었습니다.
이 모든 길은 예수님에게 있어서 얼마든지 구미가 당기고 매력이 있는 길들이었고, 따라서 제자와 백성들로부터 인기와 환영과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이 모든 입신양명의 길을 거부하시고 가장 좁고 험하며, 괴롭고 쓰라린 십자가의 길을 향하여 눈물과 땀과 피를 흘리며 걸어가셨던 것입니다.
본문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그러면 우리 주님께서 걸어가신 생명과 진리의 길인 이 십자가의 길은 어떻게 출발하시어 어떠한 노정을 밟으시며, 그 종점과 결과는 어떠하셨는지 이 시간 “십자가의 길(道)”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함께 상고하겠습니다.


1. 십자가의 길은 그 출발이 자기 부정(부인)입니다.

본문 빌립보 2장 6절 말씀은 도성인신(道成人身)을 가르치신 말씀으로,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등 되는 자격을 취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은 주님의 철저한 자기 부정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6장24절에 주님은 친히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고 하셨습니다.

(1) 신앙생활의 첫째 조건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마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주관과 의식이 뚜렷한 현대인에게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 무리한 요구가 아니겠느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겠으나, 자기 부정은 신앙생활 입문에 첫 관문이요, 주님의 제자가 되어 그 뒤를 따르려는 데 첫 조건이 됩니다.
세상에서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던 청년들이 군대에 들어가면 세상의 생각들을 다 버리고 백지로 돌아가서 새로운 군인 정신으로 무장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물며 생명의 구세주가 되신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로써 어찌 자신을 비우지 않고, 자신을 부정하지 않고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2) 우리 인간들은 주님 앞에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는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밤새도록 그물질을 하였어도 허탕만 친 시몬에게 예수님은 찾아오셔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라 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시몬은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눅5:5)하고 그물을 내렸을 때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이 잡혔습니다. 이때 시몬은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자신의 실수투성이며 교만과 아집으로 가득찬 자신을 부인하고 예수님 앞에 엎드려 자신의 죄인임을 고백할 때 사람을 낚는 어부 즉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수많은 영혼들을 구원하는 구원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나는 참된 의미에서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어리석고 무능한 사람입니다. 라고 하는 겸손한 고백이 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이 우리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마치 다메섹 도상에서 하나님의 빛 앞에 엎드러진 사울이 바울이 되어 고백하기를, “나는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자요, 만물의 때만도 못한 자요, 죄인 중에 괴수라” 고 고백했을 때 새로운 생명을 주시고 이방 선교의 사도로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십자가의 길을 따르려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먼저 철두철미한 자기 부정에서부터 새로 시작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고 했으며,
(고전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라고 했습니다.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기 부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2. 십자가의 길은 그 가는 길이 자기를 낮추는 겸손의 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빌2:7-8절에 보면, 하나님과 동등 되시는 예수님께서는 인생의 밑바닥까지 낮아져서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낮아지셨고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셔서 십자가에 죽으셨다고 하였습니다.
그 예수님이 얼마나 낮아지셨습니까?
예수님은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출생하신 것을 비롯하여 나사렛 촌 목수의 아들로 세상에 오시어 천대와 멸시로 일생을 보내시며 가난한 자와, 고아와, 과부와, 소외된 자들과 함께 하시며 병자를 고치시고 약자를 도우시며 죄인의 친구가 되어 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일생 동안 풍찬노숙(風餐露宿)하시며 집 없는 생활을 보내시며 말씀하시기를,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마8:20)고 하신 것이 그의 생활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죄인을 용납하시고, 병든 자를 고쳐주시며,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제공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의 우리들도 자신을 낮추고 비하시켜서 겸손과 성실로 일관하여야할 것이며 열심히 전도하여 영혼을 사랑하며 이웃의 슬픔에 동참하는 성도가 되어 하나님이 높이 들어 비쳐 주시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자기 몸을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지고 인간 세상에 와서 겸손과 봉사로, 무저항주의로 일관하신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그러했고,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그러했습니다. 다니엘이 그러했고, 리빙스톤이 그러했으며, 슈바이처가 그러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손양원 목사님이나, 이용도 목사님이나, 길선주 목사님이 그러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을 낮추고, 타인을 섬기며, 자기를 비어 주님이 주신 십자가의 사명을 완수하여야 하겠습니다.


3. 십자가의 길은 그 마지막 종점이 자기를 희생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8절 하반 절에 보면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으심이라"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몸을 비어 낮추실 뿐 아니라 마침내 자기 몸을 인류를 구원하는 속죄의 제물로 십자가상에서 희생하셨습니다. 인류를 죄악 가운데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주님은 십자가의 희생으로 보혈을 흘려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야 할 마지막 길입니다.

삼상6장에는 이스라엘이 불레셋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겼는데 불레셋 나라가 하나님이 내리는 독종의 재앙을 견디지 못하고 돌려보내는 내용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새 수레에 법궤를 싣고 두 마리의 암소가 그 법궤를 끌고 불레셋 나라에서 이스라엘 나라의 벧세메스까지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곧장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수레를 패서 장작을 만들고 그 암소를 잡아 번제로 드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성도들이 가야할 마지막 십자가의 길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희생의 길입니다. 죽음의 길입니다. 이 길은 아무도 막을 수가 없고 또 피할 수도 없는 것이며 벗어 날 수도 없는 길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마16:22)라고 할 때 오히려 주님은 베드로를 책망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3-24)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십자가의 희생정신으로 살아야 할 것을 부탁하셨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그 종점이 바로 자기희생의 길입니다. 사도가 그러하였고, 오늘까지의 수많은 순교자가 그러했습니다.
예수 믿으면 성공과 축복만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희생과 고달픔이 먼저 올 때가 많으며 괴로움이 많아집니다. 그러나 그 언덕 너머에 영원한 안식과 영생이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아 멘!>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십자가의 길은 자기 부정과 자기 부인으로부터 시작을 해서 자기를 낮추고 겸손하여야 하는 것이며 결국은 자기희생으로 마치는 것입니다.

한때 구라파 천지를 마음대로 뒤흔들던 불란서의 영웅 나폴레옹이 센트 헤레나로 유형을 가서 죽기 전에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나는 칼을 가지고 온 구라파를 정복하려 하였으나 내가 최후에 얻은 것은 나를 파묻을 한 평의 무덤밖에 없다. 그러나 자기를 못 박은 사람들을 위하여 복을 빌던 나사렛 예수의 사랑은 오늘날 땅 끝에서부터 땅 끝까지 온 세계를 정복하고 말았구나." 고 한탄했습니다.
주님이 베드로에게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하리라” 고 말씀하신 대로 자기의 혈기나 자기의 방법대로 살게 되면 결국은 망할 수밖에 없지만, 십자가의 뒤를 따라 그의 사랑 안에서 사는 성도에게는 자기 부정과, 자기 비하와, 자기 회생을 통하여 영원한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아멘!>

우리 앞에는 영생과, 영광의 부활과 승리가 있으니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때로는 우리에게 고통과 환난과 시련이 닥쳐 올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전후좌우가 모두 막혀서 어찌할 수가 없을 때도 있습니다.
아무리 부르짖어 기도해도 우리의 기도가 응답이 안 올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낙망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것이 십자가의 길인지도 모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눅18:1) “항상 기도하고 낙심치 말라”
(마24: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들은 어떤 길을 가고 있습니까?
좁고 험한 십자가의 길을 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넓고 가기 쉬운 세상길로 가고 있습니까?
주님 가신 십자가의 길을 가기 바랍니다.
그 길은 구원의 길이며 영생의 길이며 생명과 행복의 길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갈 때 주님이 인도해 주시고 동행하시고 지켜주십니다.
아무쪼록 우리 창정교회 성도들은 십자가의 길을 가므로 날마다 순간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출처/박한응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