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십일조로 헌신합시다   (말3:10-12)  


대한 예수교 장로회 헌법 정치 제 12조를 보면 교인의 의무가 나옵니다. 첫째 교인은 주일을 거룩히 지키며 교회의 정한 각종 예배와 집회에 출석한다. 둘째 교인은 성경을 힘써 배우며 그 말씀대로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셋째, 교인은 성심껏 교회를 봉사하고 발전에 힘을 써야 한다. 넷째, 교인은 십일조 등의 헌금과 교회의 각종 사업을 위하여 의무 금을 드려야 한다. 다섯째, 교인은 미신 행위, 음주 흡연, 구타행위, 도박행위, 마약사용 등 경건 생활에 거리끼는 일을 하지 않아야 한다. 여섯째, 교인은 교회의 법규를 잘 지키며 교회의 치리에 복종하여야 한다. 등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교회의 회원이 되었으면 멤버로서의 할 일이 있는 것입니다.

이 의무를 다할 때 복된 교인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교인들은 반드시 두 가지 일을 성실하게 행하여야 하는데 첫째는 주일 성수요, 둘째는 십일조 생활입니다. 그 중에 오늘은 온전한 십일조의 의무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미리 말씀드릴 것은 헌금이 헌법에 교인의 의무에 명시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드려야 한다라고 생각하면 잘 못 생각하는 것입니다. 헌법이 먼저 나온 것이 아니라 성경, 즉 하나님의 말씀에 명시되고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일인고로 우리가 헌금을 드려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1. 헌금을 드려야 하나?

먼저 생각할 것은 헌금은 반드시 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상 이 질문은 별로 해 볼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헌금한다는 것은 상식이요, 예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극장에 가도 돈을 내고 음악회에 가도 돈을 냅니다. 또 추석이나 성탄 때에 이웃과 친척을 위해서 선물을 주기도 합니다. 이런 것은 상식 아닙니까? 안 믿는 사람도 교회에 처음 오면 헌금할 줄 알고 헌금합니다. 특별히 우리가 쓰고 있는 물질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데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사는  삶이 참 멋지지 않습니까?

물질을 바친다는 것은 옛날부터 인류가 늘 해 오던 것입니다. 벌써 창세기 4장에서 가인과 아벨이 예물을 드리는 것이 나오지 않습니까? 양 한 마리, 소 한 마리가  얼마나 중요한 것입니까? 그런데 그런 것을 정기적으로 하나님께 바치며 사는 것이  고대로부터 내려온 인류의 종교적인 관습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  뿐만 아니라 우상을 섬기는 사람마저도 헌금과 제물을 우상 앞에 바쳤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헌금을 할 것이냐 안 할 것이냐는 별로 큰 논란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2. 헌금드리는 태도는?

그러면 헌금하는 태도가 문제입니다. 헌금 드리는 정신이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은 헌금을 할 때 아까워합니다. 또 하나님이 하라고 했다 해서 의무감에서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헌금을 하되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기쁘고 즐겁게 합니다. 성경에 보면 헌금은 기쁨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출35:5,21,22,29)

그러면 얼마를 드리면 좋겠습니까? 어떤 분은 십 년 전에 천 원을 했는데 십 년  후에도 천 원을 합니다. 그동안에 수입이 많이 늘고 생활의 씀씀이가 커졌는데도 헌금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인상이 되었는데도 헌금은 늘 그대로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참 궁금합니다. 특별히 알만한 사람들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난감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얼마를 헌금해야 하는가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서 다릅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때, 어떤 사람은 비둘기를 바치고, 어떤  사람은 양을 바치고, 어떤 사람은 염소를 바치고, 어떤 사람은 황소를 바칩니다.  헌금도 자기 능력에 따라서 바치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만약에 염소를 바칠  수 있는 능력을 받은 사람이 양을 바치면 그것은 적합하지 않은 것입니다. 황소를  바칠 수 있는 은혜를 받은 사람이 비둘기를 바치는 것 역시 적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은혜대로 헌금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가정에 황소의 은혜를 주셨는지 염소의 은혜를 주셨는지 양의 은혜를 주셨는지 비둘기의 은혜를 주셨는지는 다른 사람이 모르고 자신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비둘기의 은혜를  주신 가정에서 자라났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아버지가 예물을 바칠 때 비둘기를  가져갔습니다. 제일 작은 헌금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헌금의  액수는 여러분 모두의 능력에 따라서 결정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3. 헌금에 대한 성경의 증거들  

다음으로는 헌금에 대한 성경의 지침입니다. 성경에는 헌금에 대한 지침이 있습니까? 물론  있습니다. 우리 수입의 10분의 1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모델이 있습니다. 창14:20절에서 아브라함이 멜기세덱 제사장에게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바쳤습니다. 이것은 4천 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창28:22절에 보면, 야곱이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에서 10분의 1을  바치겠다고 벧엘에서 결정하고 약속한 내용이 나옵니다. 레27:30-33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십일조에 대한 규례를 모세로부터 가르침 받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도 유대인이기 때문에 십일조를 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유대인들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마23:23, 눅11:42,18:12)

특별히 말3:8-10절에 보면, 십일조를 할 때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축복을 해 주시는지 시험해 보라고 말씀합니다. 창고에 쌓을 곳이 없도록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는지 아닌지 시험해 보라고까지 하셨습니다. 이렇게까지 하나님은 십분의 일을 헌금하는 것을 모델로 보여 주시면서 권고하셨습니다.

사실 교인들은 헌금 설교를 하면 좋아 안 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들도 좋아 안 하는 설교를 무엇 하러 하겠는가 해서 헌금 설교를 잘 하지 않습니다. 시험도 될 것 같고, 없어서 못하는 분들의 심정이 어떠하겠나 싶어서! 은혜 받으면 하겠지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리석은 일이요, 목사님들이 잘 못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을 제가 깨닫습니다. 왜 그런지 아시겠습니까?

성경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최소한 십분의 일을 헌금하는 것이 하나님의 복을  받는 지름길이라고 했습니다. 창고에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까지  하신 하나님의 크신 축복의 길이었는데! 그것을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에 복을 받지 못하였으니 얼마나 제가 나쁜 사람이고 잘못하는 일입니까? 그래서 오늘 이 설교를 잘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방법으로 얼마를 바칠 것인가 하는 것은 우리들 스스로가 결정해야 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있다가 주일날 헌금 시간에 호주머니에 있는 돈을 꺼내서 드리는  것은 적절한 신앙 생활의 표현 방법이 아닙니다. 가족 가운데에서 십일조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에 대해서 논란이 있는 것을 제가 잘 압니다. 그러나 이 십일조 생활만은 부부가 서로 협력해서 온전하게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이 생활이 정상화되어야 신앙 생활도 정상화가 되고 가정의 살림도 정상화가 됩니다.

우리들이 정상적인 헌금 생활을 하고 헌금할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우리의 경제 생활이 정돈됩니다. 하나님 앞에 십분의 1을 바침으로써 10분의 9를 가지고 가정 생활을 해야 하니까 생각 없이 함부로 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십일조를 하는 사람들은 경제 생활에 계획성이 생기고 가정 생활에 질서가 잡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은혜가 그 가정에 나타나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십일조를 하는 가정은 절대로 모자람이 없습니다. 경제 생활이 정돈되고 하나님의 은혜가 그 마음과 삶 속에 나타나기  때문에 풍성할 뿐만 아니라 평안이 넘칩니다.

그러므로 헌금할 수 있는 기회만 오면 언제나 특권으로 생각하고 즐겁게 하십시오. 헌금은 자원해서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하라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색함으로 하지 아니하고, 생각 없이 하지 아니하고, 율법적으로 하지 아니하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 마음으로 하되 성경에서 가르쳐 준 하나의 모델을 놓고 우리들 스스로가 헌금해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너그러운  마음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헌금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의 가정에 넘치게 되기를 바랍니다. 헌금 생활을 믿음으로 잘 하면 가정에 은혜가 넘칩니다. 성경은 헌금하는 것을 은혜라고 했습니다.(고후8:1,4,6,7)


4. 순종함으로 바칠 십일조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믿고 순종하지 아니하면 그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3만 가지나 되는데 그 약속의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우리에게 현실로 나타납니다. 여러분이 의식적으로 형식적으로 드리는 제사보다 믿고 순종할 때 큰 은혜가 됩니다.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인간의 탐심으로 얼마 되지 않는 재산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모두 의탁하는 태도가 십일조의 순종의 태도입니다. 어떤 사람은 때때로 탐심 때문에 평생 십일조도 못하고 일생 교회의 나그네처럼 살아가는 분도 있는데 순종하지 못함으로 복을 받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성도들이 십일조 생활을 성실하고 온전히 행할 때에 교회는 지역 사회를 위하여 사회 사업을 많이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 방법이 바로 온전한 십일조로 헌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은 존귀히 여김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존귀히 여기시는 분은 하나님이 존귀히 여기는 인생이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수모 받는 인생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눅6:38)고 하십니다. 온전한 십일조의 원리입니다.

우리 말3:1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것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기독교의 신앙은 구체적으로 체험적인 신앙입니다. 여기서 "나를 시험하여"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나를 체험하라"는 말입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될 것이며 그때! 감격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실천할 때에 "하나님이 살아 계시구나!"하는 신비스런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체험 없이는 신앙은 추상적이고 교과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릴 때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모든 것을 책임지시고 축복하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권사님은 십일조에 관한 설교를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해 보라는 말씀도 들었습니다. 실직하신 분이셨는데 그분의 퇴직금을 매달 30만원씩 찾아다가 십일조를 냈습니다. 한 달이 지나도 소식이 없고 두 달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습니다. 석 달째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어느 회사에서 전무로 오라는 제의를 받았는데 그 봉급은 한푼도 틀리지 않는 300만원이라는 것입니다. 이분이 하시는 얘기가 소름이 끼친다고 하셨습니다. 너무 하나님이 정확하시기 때문입니다. 십일조를 드리시는 분만이 소름이 끼치는 하나님의 정확하심을 체험하실 수 있습니다. 다른 것으로가 아니라 십일조를 통해서 하나님을 시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눅5장에 베드로가 자기의 방법대로 자기의 생각대로 밤새 고기를 낚으려 했지만 빈 그물을 싣고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대낮에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하셨습니다. 어부의 상식에는 불합리하고 비상식적이었지만 순종했을 때 자기의 생각으로는 물고기 한 마리 낚지 못했던 그의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를 낚는 체험을 합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안될 것 같지만 순종의 십일조를 통해 신비스런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신비스런 체험도 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자신 앞에 자신의 신실함을 시험해 보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십일조의 원리입니다. 그렇기에 십일조를 시험해 보라고 까지 하신 것입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서 성실한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온전한 십일조에 온전한 축복이 있습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통해서 하나님의 선한 사업에 참여하고 선한 사업을 행할 때에 그 축복을 우리가 받을 수 있습니다. 형식적이고 외식 적인 십일조가 아닌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시라고 여러분에게 간곡히 호소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실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십일조도 드리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께 열납 되지 아니하였고 드리고도 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사람 총독도 받지 않을 무성의하고 자기 마음대로, 감정대로, 들쭉날쭉 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고도 자기들의 잘못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믿어도 소용없다고 원망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온전히 잘 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이 그래서는 안되지 않겠습니까?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의 원하시는 대로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말3:11,12절을 함께 읽고 마치겠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짐으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부디 온전한 십일조로 온전한 축복을 받아 금년 한해도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는 한해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윤정현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