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구원 하심   (역대하 20:14-23)

논 지 :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것을 믿고 바라보면(17),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게 된다.

생각지도 않았던 전쟁이 갑자기 벌어졌습니다. 갑작스런 위기가 닥쳐 온 것이지요. 유다의 왕과 모든 국민들은 이런 갑작스런 위기에 다같이 모여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금식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성전에 모여서 다같이 합심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전력투구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인간적인 모든 방법과 계획을 완전히 포기하고 오직 주만 바라봤습니다.

가. 기도의 응답 (14-19)

1. 말씀의 임재 (14-17)

1) 이렇게 전력투구해서 기도하면서 주님만 바라보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여호와의 신이 기도하는 회중 가운데 한 레위 사람에게 임하셨습니다.(14)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 전력투구하며 기도하는 자들 속에 응답을 하시고 그들 속에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방법과 계획을 포기하고 주만 바라보고 하나님 앞에 전적으로 엎드린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것이지요. 기도하는 사람들 속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2) 성령에 감동된 그 레위 사람이 지금 그들이 겪고 있는 위기와 전쟁의 성격을 규정하였습니다.(15) 이 전쟁은 인간이 주도하는 전쟁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군대가 몰려와서 얼마나 군사력이 강한가 하는 것은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이지요. 하나님께만 관계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 군대가 얼마나 몰려오나 관계없이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고 말씀을 합니다.

3)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약속을 모든 백성들에게 전했습니다.(17) 오늘 17절 말씀을 보면 그 하나님의 약속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7절 말씀을 보면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항오를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시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며 놀라지 말고 내일 저희를 마주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이 약속은 2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 그 첫번째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17a)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 전체에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의 말씀들이 많이 나옵니다만 그것을 단순화시켜서 그 약속 가운데 세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첫째는 나는 네 하나님이다, 둘째는 너는 내 백성이다, 셋째는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있겠다는 약속이야말로 다른 무슨 약속보다도 가장 중요한 약속이고 가장 기본적인 약속입니다. 지금 전쟁이라는 위기 가운데 처해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선지자가 똑같은 약속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임마누엘의 약속을 가장 기본적인 약속, 가장 든든한 약속을 그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에 적이 아무리 많이 침략해 오지만 그러나 드려워하며 놀랄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지요.

(2) 약속의 두번째는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17b)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니다. 온 우주만물의 주인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만물 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를 다, 모든 백성을 다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사람들만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방사람들, 저 연합군을 구성해서 지금 침공해 오는 적들, 그 사람들도 역시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분들이시고, 그 사람들도 역시 하나님의 아래 있는 사람들이란 말씀이지요.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면, 적이 아무리 숫자가 많더라도 다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길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고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고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 때문에 두려워하며 놀랄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지요.

(3) 그러면서 권면을 하기를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고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 때문에 지금 이 전쟁에 있어서는 너희들은 하나님을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그런 말씀을 합니다. 지금 전쟁이 벌어지게 생겼으니까 얼마나 바쁩니까? 전쟁 준비를 해야지요. 군대도 모으고 훈련도 시키고 여러가지 점검하고 바쁘고 분주합니다. 그런데 그 바쁘고 분주하게 설칠 필요 없이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고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는 약속을 믿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다리라는 말씀이지요. 여러분,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시면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하는 사람들은 바쁘게 분주하게 자기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멈춰 서서 기다리면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봐야 하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구원하신다고 약속을 하셨으니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어떻게 일하시는지 우리는 바라보고 기다리면서 그것을 봐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위기와 고난이 닥칠 때에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사람들이지요. 기도한 다음에는 하나님이 어떻게 그 기도에 응답하시는가 약속하신 것을 어떻게 이루시는가, 바라보고 그것을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 함께 하시다는 약속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 약속을 믿고 그리고는 약속하신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 기다리고 한 번 보십시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이루시는 것입니다.

2. 말씀을 받음 – 믿음 (18-19)

1) 한 레위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약속으로 주어지게 되니까, 왕과 모든 백성들이 다 겸손히 땅에 얼굴을 대고 하나님 앞에 경배를 했습니다.(18)  땅에 엎드렸다는 것은 자기를 최대한 낮춘다는 것입니다. 왜 낮춥니까? 하나님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서 자기를 낮추는 것이지요.

한 레위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지만, 대제사장도 있고 제사장도 있고 하나님 말씀 전할 사람이 많이 있는데, 레위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어요. 사람으로 보면 시시하기가 짝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람을 보지 아니하고 그 사람에게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왕도, 모든 백성도 다 자기를 완전히 낮추어서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 선지서에 보면 하나님의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그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않는 겁니다. 교만해서, 마음이 완악하고 목이 곧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으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못받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으니까 평안과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만약에 유다의 왕과 모든 백성들이 레위사람 저 시시한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전한다니까 우습게 생각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 그들은 계속해서 적군 앞에 두려워 떨고 있었을 것입니다. 불안해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을 주셨지만, 그 약속이 자기하고 아무 관계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볼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것을 볼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침략하는 적의 군대 앞에 유린되고 아마 멸망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그들은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들이니까 두려움이 그들 가운데 몰아내지게 되고 하나님의 구원하신다는 그 약속이 믿어지게 된 것이지요.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니까 그들은 결국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들에게 유익이 된 것이고 그들에게 승리가 된 것이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 주시는 약속을 겸손하게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볼 줄로 믿습니다.

2) 온 회중 앞에서 레위 사람들은 찬송했다.(19)

나. 약속의 실현 (20-30)

1. 믿음 강화 (20)

이제 전쟁터에 나가게 됐습니다. 군대가 죽 행진하면서 나가는 중에, 여호사밧왕이 모든 백성들을 멈춰 세우고 그리고는 그들에게 전쟁에 임하기 전에 그들의 믿음을 강화하기 위해서 연설을 했습니다.

1) 20절 하반절 말씀을 보면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강조를 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해라, 그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를 신뢰해라, 신뢰하라고, 약속이 지금 주어졌는데, 그 약속한 것을 믿으라고 강조를 해서 연설을 했습니다. 이 신뢰한다는 말은 우리가 기도하고 제일 마지막에 ‘아멘’이라고 응답을 하는데, 그 아멘과 같은 말입니다. 어원이 같고 다 같은 말이에요. 아멘이 뭡니까? 우리가 믿는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되어지리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선지자가 신뢰한다는 것은 그 분의 약속을 믿는다는 것이고, 그 약속이 주어졌을 때에 아멘으로 받아들이고 믿는다는 것이지요.

2) 오늘 20절 하반절 말씀에는 아멘으로 믿고 받아들이면 어떻게 되느냐,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멘으로 믿고 받아들이면 어떻게 되느냐, 형통하고 성공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아멘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우리 자신에게 유익이 있는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고 견고한 유익이 있는 것입니다. 형통하고 성공하는 유익이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졌을 때에 그것을 아멘으로 믿고 받아들이므로 견고하고 형통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지금 전투를 하러 나가는데, 적을 향해서 행군을 해 나가는 겁니다. 행군을 해 나가는데 전투대열이 지금 아주 이상하게 나가고 있습니다. 전투대열 제일 앞에, 제일 앞에 있다는 것은 적군과 제일 먼저 만나서 제일 먼저 싸운다는 뜻인데, 그 제일 앞에 성가대를 내보낸거예요. 성가대가 제일 앞에서 찬양을 하면서 나가고 그 뒤를 다른 군대가 가는 겁니다. (21)

1) 여러분 지금 성가경연대회에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전쟁하러 나가는 거예요. 전쟁을 하러 가는데 아무 무장도 하지 않은 성가대가 제일 앞에 간다 말이지요. 무장한 군대들은 그 뒤에 따라갑니다. 이것은 전투를 할 줄 모르는, 가장 기초적인 것도 모르는 위험한 일입니다. 무장도 안한 성가대가 제일 앞에서 가다가 적군을 만나면 무장도 안한 사람들이 다 전멸되어 버리고 말 것 아니겠습니까? 아주 위험한 일이지요. 전투하러 나가기 위해서는 본대가 나가기 전에 먼저 앞에 척후병이 나가고, 그 다음에 선발대가 나가고 그 다음에 본대가 나갑니다. 앞에 적의 동태가 어떤가 탐지하는 사람이 먼저 가고 또 큰 타격을 받지 않도록 선발대가 먼저 나가서 장애물들을 제거하고 그리고는 본대가 나가는 법입니다. 그래야 병력의 손실을 보지 않는 것이지요. 최소한도로 희생을 줄이는 것입니다. 요즘 현대전에 있어서는 전쟁을 할 때에, 보병, 사람이 총을 들고 나가기 전에 공군이 가서 적진을 포격한다든지, 포병이 가서 포격한다든지, 혹은 탱크가 가서 포격한다든지 먼저 적을 다 무력화시키고 다 잠잠히 만든 다음에 그 다음에 사람이 나갑니다. 그래야 희생이 적지요. 그런데 이것은 무장도 하지 않은 성가대가 찬양하면서 소풍가는 것도 아닌데, 노래를 하면서 제일 앞에서 지금 행군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유다의 왕과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실 것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겠다는, 함께 하시고 구원하시겠다는 이 약속을 믿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성가대를 제일 앞에 내세워서 행군을 하는 것입니다.

2) 성가대가 찬양을 하면서 나가는데, 그 찬양의 내용이 아주 재미있습니다. 21절 끝의 말씀을 보면,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 찬송을 합니다. 지금 전투가 시작된 것이 아니에요. 적이 있는 곳을 향해서 지금 행군해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아직 전쟁이 시작된 것도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전쟁에 이겼는지 졌는지 결과가 나타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가면서 미리부터 감사를 하는 겁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전쟁에 이기게 할 줄을 알고 감사하니다. 미리부터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리는 것이지요.

여러분, 감사는 보통 언제 하십니까? 여러분 감사헌금 할 때에 언제 감사헌금을 합니까? 다 일이 끝나고 결과를 보니까 아름답게 만족하게 나타나서 너무나 감사하다, 그래서 그때 감사도 하고 감사헌금도 그 때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사람들은 전쟁이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미리부터 하나님 앞에 감사를 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이루실 줄 알고 미리 감사를 하는 것입니다. 일이 다 끝난 다음에 아름다운 결과를 보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것도 아름다운 일입니다만, 그러나 감사 중에 더 최상의 감사는 아직 일이 다 끝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약속대로 다 이룰 줄 믿고 미리 감사하는 것이 더 아름다운 감사고 최상의 감사가 될 것입니다. 지금 이 사람들이 그런 감사를 했어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이루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감사를 했습니다.

3. 하나님의 일하심 (22-23)

그런데 성가대가 찬양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적과 만나서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 가면서 지금 찬양을 하면서 가는데, 성가대가 찬양을 하며 가는 중에 하나님께서 지금 일을 시작하셨어요. 적군 사이에 혼란을 일으켰습니다. 세나라가 모여서 지금 연합군을 만든 것 아닙니까? 그 연합군을 만들었기 때문에 세 나라간의 팀웍이 아주 탄탄해야 하는데 그 속에 혼란을 일으켜서 팀웍이 깨졌어요. 그래서 두나라가 한 나라를 상대로 해서 공격해가지고 그 한 나라가 전멸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나머지 두나라가 자기끼리 싸워 가지고 다 자멸을 해버리고 말았어요.

사람들이 하나님같이 되고 싶어서 교만해서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바벨탑을 하나 하나 쌓아 나갈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시고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습니다. 언어를 혼잡케 하니까 자재도 많이 있고 기술자도 많이 모였지만 서로 혼란이 일어나서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거예요. 다 흩어졌습니다. 많은 군대가 모였지만 하나님께서 그 속에 혼란을 일으켜서 그들이 군대다운 군대가 되지 못하고 서로 싸워서 다 자멸하고 전멸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일하신 것이지요.

4. 하나님의 구원하심 (24-30)

1) 유다군대가 행군을 해와서 적진 앞에 도착을 했습니다. 이제 전투가 벌어지게 됐지요. 다들 긴장한 마음으로 이제 싸움이 벌어졌구나, 비장한 각오로 전쟁하기 위해서 다가서고 있습니다. 그런데 적진이 너무나 조용한 거예요. 대낮인데 다들 낮잠을 자는가 궁금해 하면서 조심 조심 다가갔습니다. 조심스럽게 다가가보니까 다 죽었어요. 전쟁이 다 끝났습니다.(24) 17절에 약속하신 그대로 유다군대는 싸워보지도 않고 승리했습니다. 피 흘릴 필요도 없이 승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고 구원하시기 때문에 그들은 싸울 필요도 없이 승리하게 된 것이지요. 약속한대로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것입니다.

2) 그들은 전쟁도 안하고 승리하고, 그리고는 거기 있는 군대들이 다 놓아 둔 여러가지 좋은 것들, 혹은 보물들, 이런 전리품을 모아들이는 일만 열심히 했습니다. (25) 피는 안 흘렸구요, 전리품을 모아 들이기 위해서 땀만 흘렸습니다.

3) 사흘 동안 모으고 나흘째 되는 날 브라가 골짜기라는 곳에서 하나님의 축복에 감사하면서 하나님 앞에 찬양하면서 승리를 자축했고 그리고는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와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렸습니다.(26)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것을 너무나 확실하게 너무나 선명하게 체험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신다는 약속을 아멘으로 믿고 바라보니까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것을 확실히 체험할 수가 있게 된 것이지요.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전쟁 할 줄 알고 피 흘릴 줄 알고 긴장해서 갔다가, 싸우지도 않고 다 이기고 전리품만 모아가지고 승리의 개선행군을 하니까 얼마나 감사하겠어요, 얼마나 기쁘겠어요.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것을 눈으로 보고 체험하니까 얼마나 감격이 넘치겠습니까?

여러분 우리 성도들도 역시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죄 가운데 죽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었는데,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우리들을 죄 가운데에서 구원하셨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어요. 무슨 노력을 기울인 것이 없습니다. 수고하고 땀 흘린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주시고 놀라운 생명의 은혜를 주셔서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것을 우리가 확실히 체험할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여러분이 죄 가운데에서 구원 받고 새생명 얻었을 때,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체험했을 때 그 감격과 기쁨을 지금도 기억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하심을 보여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계속해서 자주 체험하며 삶을 살아갑니다. 낙심과 좌절로 혼란스러운 내 내면 속에서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것을 우리는 체험을 합니다. 깨어진 가정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체험합니다. 삭막한 직장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체험합니다. 생명을 포기했던 병원에서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체험합니다. 파괴된 인생들이 모인 감옥 속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날마다 계속해서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며 삶을 살아가는 그런 감격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7.8월 8주 동안에 걸쳐서 역대하 17장에서 20장 까지의 말씀을 통하여서 여호사밧왕와 유대사람들의 삶, 그들의 신앙과 인생을 우리가 살펴보았습니다. 모두가 다 그렇지만 그들의 신앙과 그들의 인생도 역시 기복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속에서 우리가 분명히 발견할 수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과 교제하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할 수 없다는 사실이지요. 그 인생은 실패로 끝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고,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면,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인생이 형통하고 성공하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날마다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성공하고 형통하는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이철신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