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이 내게 임하시면  (행1:4-11)

마태,마가,누가,요한복음인 사복음서와 오늘 우리가 함께 펼쳐들고 있는 사도행전은 똑같은 성경이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사복음서와 사도행전은 무엇인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마치 땅에서 달리는 자동차와 하늘을 나는 비행기가 다른 거처럼 다릅니다. 땅위에서 달리는 자동차가 아무리 빨라도 하늘을 나는 비행기의 맛을 알 수는 없습니다. 사복음서와 사도행전의 내용은 마치 하늘을 나는 비행기와 대기군을 뚫고 우주를 날으는 우주로켓만큼이나 다릅니다.  

똑같이 하늘을 날지만 비행기는 무엇인가 높이 날기는 하지만 그 이상은 안됩니다.

비행기는 무엇인가 대단한 것 같지만 시간적으로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 이상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주 로켓은 똑같이 땅에서 출발하지만 높은 하늘 아니 대기권을 뚫고 올라갑니다. 이때부터는 시간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환경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제자들을 보십시오. 사복음서의 제자들과 사도행전의 제자들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마치 땅에서 달리는 자동차가 하늘을 나는 비행기가 된 것처럼 달라졌습니다. 아니 하늘을 날던 비행기가 대기권을 뚫고 날아가는 로켓이 되어버린 것처럼이나 달라졌습니다.



무엇이 저들로 하여금 이처럼 달라지게 한 것입니까?

조그마한 계집종 앞에서 부들부들떨면서 꽁무니를 빼고 달아날 궁리나 하던 베드로는 더 이상 그런 겁에 질린 불쌍하고 초라한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자기들에게 모여앉아 누가 크냐 다투기나 하던 제자들이 완전히 달라져 버렸습니다. 이제 사람이 달라지는 정도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나 잡아먹고 살던 바다비린내가 풍기던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 역사의 흐름을 바꾸기 시작합니다. 일찌기 바벨론이 느부갓네살이 페르시아의 사이러스가 그리고 마케도냐의 알렉산더가 로마의 시저가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난 일들이 이들을 통해 시작된 것이니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 시작된 것입니다. 저들은 이제 더 이상 땅이 아니라 하늘을 말하기 시작합니다. 이제 저들은 더 이상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저들은 육적인 만족과 육적인 즐거움 육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 영적인 만족 영적인 즐거움을 말하기 시작합니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서 안달하던 사람들은 방문을 걷어차고 한 길로 달려와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이 터져라 외쳐대며 자신들의 생명을 순교의 제물로 기꺼이 던져버렸습니다. 이제 저들에게는 두려움이 아닌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무엇이 저들로 하여금 이렇게 달라지게 한 것입니까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이토록 능력있는 사람들이 되게 했습니까?

무엇이 사복음서에서 사도행전으로 넘어오며 믿음의 색갈을 복음의 물결을 달라지게 한것입니까 바로 성령의 능력입니다. 성령의 오심입니다. 오직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신 그 성령이 약속대로 제자들에게 오신 것입니다. 성령의 오심은 어느날 갑자가 있어진 사건이 아닙니다.

   성령의 임하심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행1:4절에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짐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하였습니다.

성령은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이었습니다.

요엘2:28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 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하였습니다. 요엘2:29절에서는 그 때에 내가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줄 것이며 합니다. 성령님의 오심은 구약에서도 일찌기 예언된 바였습니다. 다른 말로 계획된 바였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고 말입니다. 요14:16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합니다. 왜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야 했고 왜 죽으셔야 했고 왜 부활하셔야 했습니까? 그리고 왜 승천하셔야 했습니까? 영원토록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무서운 하나님이 아니라 멀리 떨어져 있는 하나님이 아니라 이젠 우리와 함께 하시고 연합함으로 하나가 되기를 원하였습니다. 이 하나됨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토록입니다. 볼찌어다 세상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니라 하시며 영원히 함께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기에 예수님의 피로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 우리들 입장에서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기에 그래서 성령으로 임하신 것입니다.

  성령의 임하심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주님과 성령은 하나이셨습니다. 주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실 때 성령으로 잉태하셨습니다. 마3:11절에 세례요한의 증거를 보십시요 “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론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를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늘 성령과 함께이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전에도 제자들에게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시리니 내가 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주시고 싶은 선물이 무엇일까요? 성령님입니다. 마7:7절에 주님은 약속을 주십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니 11절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하십니다. 그냥 주시는 것이 아니라 구하는 자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는 눅11:10절에도 기록된 말씀입니다. 주님이 가장 주시고 싶은 것은 바로 성령입니다. 가장 좋은 것이 성령입니다. 몸에 병이 있거나 가정에 얽혀 있는 문제가 있으십니까? 성령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소화해 내야 할 두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당신은 구원을 받았습니까? 거듭났습니까? 직분을 묻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다음에 성령을 받았습니까? 성령충만하십니까? 입니다. 구원은 믿는 자에게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라면 성령은 사모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기도로 구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7:7절을 제대로 이해하면 구하라 성령을 주실 것이요 찾으라 성령을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그리하면 성령이 열릴 것이니입니다. 사모하지 않으면 성령 충만은 없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성령안에 모든 해답이 있습니다.


  성령의 임하심은 교회의 시작이었습니다.

성령의 임하심은 교회의 생일입니다. 교회의 시작입니다.

비로소 약속한 성령이 임하심으로 회당이 교회되신 날입니다. 교회가 무엇입니까? 구원받은 백성들의 모임입니다. 이 모임에 가장 큰 재산은 무엇입니까? 바로 성령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재산은 돈도 사람도 아닙니다. 바로 성령의 능력입니다. 교회의 시작은 마가요한의 다락방에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의 임재로 시작되었습니다. 교회의 내용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교회가 이것에 무너지면 세상과 같은 곳이 됩니다. 교회에 좀더 좋은 대학출신들 더 출세한 사람들이 있어야 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는 성령이 있어야 됩니다. 이 성령의 역사로 사람을 달라지게 했습니다. 제자들이 제자답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르쳤고 보내주었고 능력행하는 원리도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나 성령충만하기전에 제자들은 제자답지 못했습니다. 성도가 성도다워지는 것은 부자가 되는 것 건강해져서가 아닙니다. 이런것들로 성도의 모습을 갖출려니 지치는 것입니다. 성도가 성도다워지는 것은 성령의 능력으로 입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부탁드립니다.

성령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8절을 보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으로 시작됩니다. 그렇습니다. 놀랍게도 성령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십시오 인생이 풍부해질 것입니다. 좋아하는 것이 달라집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 묵상하지 못하고 자신을 묵상합니다. 인간의 마음속에 선한 것이 있습니까 인간의 마음속에 자랑스러워 할 만한 것이 있습니까 그런데도 인간은 끊임없이 자기중심적으로 내생각만을 합니다. 사복음서의 제자들도 모두가 자신의 생각들뿐이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느냐가 중요했습니다. 성령의 능력 드디어 내 생각을 깨뜨리는 날이었습니다. 성령의 능력 드디어 가짜 믿음을 박살내는 날이 됩니다. 성령의 임하심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바뀌어 버린 날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구원받았습니까? 성령받았습니까?

기억하십시오. 구원은 한번구원이 영원한 구원입니다. 성령세례도 한번 임하시면 영원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임하심은 계속적으로 충만으로 임해야 합니다. 제자들도 전도하다 두려우면 모여 기도하고 충만해졌습니다. 주님은 여러분안에 성령으로 임하길 원하십니다. 주님은 여러분안에 성령으로 활동하길 원하십니다.


성령의 임하심 그리고 성령충만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승리자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두려워말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무엇으로입니까? 성령으로입니다.
                                                        
출처/유재명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