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선택  (삼하 24:10 ~15)


10다윗이 인구수를 조사한 후에 그 마음에 자책하고 여호와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 11다윗이 아침에 일어날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윗의 선견자된 선지자 갓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12가서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네게 세 가지를 보이노니 너는 그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 내가 그것을 네게 행하리라 하셨다 하라 13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고하여 가로되 왕의 땅에 칠년 기근이 있을 것이니이까 혹시 왕이 왕의 대적에게 쫓겨 석달을 그 앞에서 도망하실 것이니이까 혹시 왕의 땅에 삼일 동안 온역이 있을 것이니이까 왕은 생각하여 보고 나를 보내신 이에게 대답하게 하소서 14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곤경에 있도다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니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기를 원하노라 15이에 여호와께서 그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 온역을 이스라엘에게 내리시니 단부터 브엘세바까지 백성의 죽은 자가 칠 만인이라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시편 90:10에서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 가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기간이 대체로 칠팔십 년 됩니다만, 일평생 환난이나 질고 없이 평안하게만 살다가 가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사람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하게 살다갑니다.
특별히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많이 받은 사람은 다를 것 같지만, 성경을 보면 다윗도 일평생 얼마나 많은 환난과 풍파를 겪으며 살았는지 모릅니다.

다윗이 왕이 되기 전에는 장인인 사울왕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피해 다니느라 하루도 평안할 날이 없었습니다. 사울이 죽은 후에야 비로소 그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왕이 된 후에는 계속해서 전쟁을 치러야 했으며,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인해 쫓김을 당하고 간신히 죽음을 모면하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3년 동안 기근으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기도 했고, 온 나라가 온역(전염병)으로 사흘동안 7만 명이 죽는 큰 재앙을 겪기도 했습니다.
최근 중국을 비롯하여 몇몇 나라에서 사스(SARS)로 인해 큰 곤욕을 치렀습니다만, 실제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통치 당시 한 지역에서 사흘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동안 7만 명이라는 많은 사람들이 일시에 죽은 것을 보면, 참으로 무서운 재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이 엄청난 재난이 오게 된 이유를 다윗이 인구조사를 지시한 죄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전쟁에 나가 싸울 수 있는 군사가 과연 몇 명이나 되는지 그 수를 조사했습니다.
사무엘하 24:9을 보면 『요압이 인구 도수를 왕께 고하니 곧 이스라엘에서 칼을 빼는 담대한 자가 팔십만이요 유다 사람이 오십만이었더라』고 집계한 것을 보면, 이스라엘이 130만의 큰 군대를 가진 나라임을 알수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사건을 기록한 역대상 21장을 보면 『사단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하나님이 이 일을 괘씸히 여기사 이스라엘을 치시매』라고 했습니다. 이는 한마디로 다윗이 행한 이 일을 하나님께서 괘씸하게 여기신 것을 보여줍니다.

왜 인구를 조사한 것이 죄가 됩니까?
사실 인구를 조사하는 것은 죄가 되지 않습니다. 한 나라 안에 백성들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세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행위가 죄가 된 이유는 근본적인 동기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늘 함께 하심으로 전쟁 때마다 승리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전쟁에서 이기면 진 나라의 모든 것이 다 이긴 자의 것이 되고 산 사람 또한 모두 승전국의 노예가 됩니다.
따라서 다윗이 통치하는 이스라엘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나라가 부강해졌고, 가장 넓은 국토를 가진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축복으로 된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단에게 속아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고 마치 자신의 군대가 강력해서 승리한 것처럼 은근히 과시해 보려는 우쭐한 마음에서 인구조사를 한 것입니다. 이는 대단히 잘못된 일입니다.

우리 교회도 부산에서 큰 교회 중에 속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칫 잘못 생각하면, 우리 교회에 교인이 얼마나 많이 모인다는 자기 과시와 같은 어리석은 행동을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교인수가 많다고 해서 모두 다 좋은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교인수가 적어도 성도들이 은혜를 받아 바른 신앙생활을 하며 이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끼친다면 좋은 교회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명심해야 하는 것은,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기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하고 우리가 대신 받으려고 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된 다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를 개척할 때 교회가 대단히 급히 성장하는 것을 보고, 제가 설교를 잘해서, 목회를 잘해서 교인들의 수가 느는 것으로 착각하고 잘못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얼마나 정확하신지, 제가 그런 교만한 생각을 가지게 된 그 주간의 수요일 저녁예배 때, 마치 교인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몽땅 나오지 않았고 아이들만 몇 명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개척교회에서 갑자기 교인들이 나오지 않으면 목회자는 앞이 깜깜해집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예배당이 꽉 차도록 교인들이 나왔는데, 왜 갑자기 나오지 않습니까? 제가 무슨 죄를 범했습니까? 내 죄를 알게 해 주세요. 가르쳐 주옵소서.’ 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저는 집에 가기도 싫고 저의 죄가 무엇인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계속 강단에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드디어 새벽녘에 주님께서 “네가 해? 내가 하지.”하는 분명한 음성을 세 번이나 반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수영로교회를 세운 것도 제가 세운 것이 아니라 주님이 세우시고, 매주 성도들이 이렇게 많이 오는 것도 제가 잘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막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주님, 용서해주세요. 몰랐습니다. 제가 잘해서 부흥되는 줄 알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주님이 우리 교회의 당회장이십니다. 저는 교육전도사와 같은 마음으로 충성하겠사오니 주님이 이 교회를 맡으시옵소서.’라고 참회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요한일서 2:15~16을 보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남들보다 돈도 많이 벌고 성공도 하고 잘 나갈 때,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우러러 보고 부러워하면 얼마나 기분이 좋습니까.

그러나 이와 같은 ‘이생의 자랑’은 “내가 잘났다. 너보다 낫다. 내가 성공했다.”라고 하는 자신이 높아지고 자신이 영광을 받으려는 교만이 그 중심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생의 자랑’은 마귀로부터 온 것이며 이 세상으로부터 온 것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결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이런 사람은 결국 타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언제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예수님을 자랑하고 어떻게 하나님을 높일까 생각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예레미야 9:23을 보면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고 하셨습니다. 그 대신에 우리가 자랑해야 할 것은 내게 명철함을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된 것과 그 하나님은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분임을 깨닫게 된 그것을 자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무엘상 17:45~47을 보면, 다윗이 적군의 장수 골리앗과 싸울 때 하나님께 멋지게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고 우렁차게 선포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다윗이 골리앗과의 대결에 앞서 하나님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이기고 지는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고 선포함으로써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을 자랑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자랑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괴로운 일 슬픈 일이 내게 있다할지라도 그 일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만 돌릴 수 있다고 하면 축복으로 바뀔 줄 믿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좋은 일이나 슬픈 일이나 어떤 일을 당하든지 간에, 항상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생각하며 살 때 누리게 되는 즐거움과 기쁨과 행복을 맛보며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사도행전 12:21~23을 보면, 어느 날 헤롯이 백성들에게 연설할 때에, 그곳에 모인 백성들이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고 큰소리로 외치자 그만 헤롯이 으쓱해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즉시 주의 사자를 통해 헤롯을 치시니 충(蟲)이 먹어 죽었습니다. 헤롯은 마치 자신이 신이나 된 것처럼 행세하고 그 영광을 자신이 받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너 같은 인간은 벌레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즉시 벌레로 인해 죽게 하신 것입니다.
이사야를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 “너는 나의 종이요 내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이라”고 하셨습니다.
다시말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명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이들을 창조하시고 선택한 목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42:8에서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라고 단호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하나님이 받으셔야 할 영광을 남에게 주지 않으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고 사람에게 돌리든지 또는 다른 것에 돌리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창세 전에 택하시고, 독생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시어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주시고,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시어 예수 믿어 거듭나게 하셨으며,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셔서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신 목적을 에베소서 1~2장에서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말씀이 세 번이나 반복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살도록 하기 위해 특별히 저와 여러분을 구별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간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할 것입니다(고전 10:31).

오늘 본문을 보면, 다윗이 인구조사를 시킨 죄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큰 재앙을 내리시면서 세 가지 중에 한가지를 택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7년 기근과 3달 동안 대적에게 쫓기는 재앙과 3일간의 온역을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은 이 세가지 중에 3일간의 온역을 택했습니다.

다윗이 3일간의 온역을 택한 이유는?


1.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믿었습니다.

본문 14절을 보면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니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사실 다윗은 왕이 되기 전에 사울에게 시달리고 도망다니며 말로다 할 수 없는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잔인한 사람의 손에 빠지기보다는 자비하신 하나님의 징계를 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시편 103:8~11에서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항상 경책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을 보면, 저와 여러분이 과거에는 이 세상 풍속을 좇고 마귀를 따라 육체의 욕심대로 제멋대로 살았기 때문에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그러나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크신 사랑으로 인하여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리시고 은혜로 구원얻게 해주셨습니다. 이는 자비하신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를 장차 올 모든 세대에게 나타내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2.절대주권이 오직 하나님 손에 있음을 믿었습니다.

다윗은 생사화복과 죽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죽이고자 하시면 기근을 당해도 죽고, 대적에게 쫓기며, 설령 건강해도 불의의 사고로 죽을 것이고, 심지어 잠자리에서 자다가도 갈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하나님이 우리를 살리시고자 하시면 어떤 일이 있어도 죽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리 죽을병이 들고 무서운 전염병이 돌아도 절대로 죽지 않을 것입니다. 다윗은 이런 사실을 굳건히 믿고 하나님만 의지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3.하나님의 사랑을 믿었습니다.

믿음이 어린 사람들은 평안하고 만사가 잘 되면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이라고 좋아합니다. 그러나 조금만 어려움이 닥쳐와도 낙심하기 쉽습니다.

특히 하나님이 징계하시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환난이나 재난이 오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섭섭해하며 교회를 떠나갑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끝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믿기 때문에 어떤 환난이나 재앙이 와도 인내하며 감사함으로 이기고 하나님을 떠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12장을 보면, 우리가 범죄했을 때 하나님의 징계가 있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잘못된 길로 가도 하나님의 징계가 없으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십니다. 징계가 그 당시에는 슬퍼보이고 괴롭고 고통이 되지만, 하나님의 징계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룩하게 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느 날 무디 목사에게 어떤 여자 교인이 찾아와 “제가 아무리 죄를 지어도 하나님은 저를 그대로 놔두시는 것을 보면, 하나님이 안 계시는 것이 분명해요.”라고 말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무디는 “부인! 부인은 지금 스스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부인이 대뜸 “왜요? 내가 교회를 얼마나 오래 출석했는데요”라고 반문했습니다. 무디는 다시 “만일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은 당신을 그대로 놔두지 않았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나쁜 짓을 많이 해도 아무 일이 없다고 좋아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를 똑바로 믿고 신앙생활도 바로 해야 합니다. 제멋대로 살고 하나님을 저버리고 살면 하나님께서 절대로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여러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이 징계하십니다. 아마 이 자리에도 징계 중에 계신 분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큰 환난과 고통을 당할 때에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여전히 사랑하시며, 심지어 우리가 죄 가운데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어떤 환난과 고통과 죽음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사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출처/정필도 목사 설교자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