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신 30:19-20)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세계적인 테너로서 많은 사람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는 인물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여러 번 초청되어서 공연을 했습니다. 그는 어려서 축구와 성악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답니다. 그의 어머니는 체육교사가 되기를 바랬고 아버지는 성악가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테너가수에게 전문적인 사사를 받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체육교사가 되기 위해 사범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느 길을 가는 것이 좋을지 몰랐습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아버지는 그의 고민을 듣고 "만일 네가 두 개의 의자를 앉으려고 하면 하나도 못 앉고 중간에 떨어질 것이니 바람직한 인생을 위해서는 의자 하나만을 택해야 한다"고 충고하였습니다. 그는 결국 성악을 택하여 오늘의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최상의 선택을 한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떤 인생관을 선택하느냐가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인생관에 따라서 생각과 행동이 달라지고 생활방식이 달라집니다. 인생관에 따라서 인격도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어디에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데 이것을 결정짓는 것이 바로 인생관입니다. 무신론적 인생관을 갖느냐, 유신론적 인생관을 갖느냐하는 것은 더없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무슨 직업을 택하느냐, 어떤 배우자를 택하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말씀은 출애굽의 지도자였던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인생의 선택을 바르게 하도록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모세는 사람이 살아가는데는 두 갈래의 길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생명의 길이요, 다른 하나는 사망의 길입니다. 생명의 길을 택하는 사람은 생존하며 번성하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것이요, 사망의 길을 택하는 사람은 화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바른 길을 택하여 살길을 찾으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여러분들도 이 말씀을 통하여 복된 인생의 길을 선택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첫째로 생명의 길을 택해야 합니다

알렉산더 솔제니친은 소련의 반체제 운동가라는 죄명으로 시베리아 강제 수용소에 들어가 하루에 12시간씩 노동을 강요당했습니다. 가족까지 잃고 강제노동에 시달리던 그는 암진단을 받습니다. 그는 더 이상 살아갈 희망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들고 있던 삽을 집어던지고 털썩 주저앉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신음하며 좌절하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누군가 자기 곁에 다가선 것을 느꼈습니다. 전혀 본적이 없는 노인이었습니다. 그 후에도 다시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 노인은 막대기를 가지고 솔제니친 앞에 있는 모래밭에 십자가를 그렸습니다. 그 십자가를 보는 순간에 그는 세상에 있는 어느 권세보다도 강한 하나님의 능력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그 능력이 그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었습니다. 그는 1년 후 석방되었고 미국으로 망명하였습니다. 그리고 그후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라는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새로운 생명으로 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생명을 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능력입니다. 생명을 소생시키는 힘입니다. 어떤 길이 생명의 길입니까?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는 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는 길이 생명을 택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이 사는 길은 하나님을 섬기며 사랑하는 길임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생명과 사망의 길에 서있을 때 우리는 머뭇거려서는 안됩니다. 즉시 생명의 길을 택하여야 합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망하는 길로 갈지라도 살기 원하는 사람들은 생명을 택해야 합니다.

현대아산의 정몽헌 회장은 천하보다 소중한 생명을 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생명을 사랑하십시오. 생명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분은 자살하기 전에 현대 임직원 등에게 남긴 것으로 보이는 유서에서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이 어리석은 행동을 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이 어리석은 행동을 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끊임없이 문제만을 바라봅니다. 지나간 과거 속에 파묻혀 삽니다. 불나방처럼 이리저리 방황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쉽게 절망하고 좌절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노예나 입력된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이는 로봇으로 만드시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의 삶을 자신이 책임지도록 창조하셨습니다. 따라서 운명론은 기독교사상이 아닙니다. 우리의 운명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운명론은 사람을 쉽게 체념하게 만듭니다. 진취성, 모험심을 갖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나약한 인간을 만들어 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운명을 정하지 않으시고 스스로 선택하게 하셨습니다. 인간은 생명과 복 받는 길을 택할 수 있습니다. 망하는 길도 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택하고 운명을 바꿔야 합니다. 생명 길을 택하여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야 합니다. 유전적 요인에 굴복하지 말고 소망을 갖고 생명 길을 택하여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생명 길을 택하면 삽니다. 우리도 살고 자손들도 삽니다. 힘들어도, 희생이 요구되어도 생명 길을 택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사는 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복의 길을 택하여야 합니다

시인이며 미술가인 제임스 스메탄은 경제적으로 매우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가난하게 살면서도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것을 보며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당신은 왜 교회에 나갑니까?" 그러자 그는 서슴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복 받으려고 나갑니다.". "무슨 복을 받고 있습니까?" 아마 가난하게 사는 것이 무슨 복이냐는 조롱 섞인 물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때 스메탄은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분노와 경멸, 그리고 냉대를 갖게 하는 유혹이 사라지고 기쁨과 만족이 가득 차게 되고, 하나님의 섭리에 만족하게 되는 것이지요. 어둡고 복잡한 생각으로 가득 차서 교회에 나가지만 돌아올 때는 평안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돌아오지요. 모든 근심은 사라지고 내가 구원받은 기쁨과 나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복들을 받고 있습니다." 스메탄은 비록 가난했으나 다른 사람들이 누리지 못하는 복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복잡한 생각이 많았지만 평안했습니다. 살아가는데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만족을 느끼며 살았습니다. 더구나 그에게는 구원의 기쁨이 늘 충만했습니다. 심판과 사망의 길에서 생명의 길로 구원받은 기쁨을 어디에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구원받은 기쁨은 이 세상의 모든 걱정과 부족함을 채우고도 남았습니다.

복의 길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규례와 법도를 따라 사는 길입니다. 저주의 길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며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지 않고 사는 길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을 복되고 즐겁게 살수도 있고 저주와 화를 받으며 살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복과 저주의 길이 타고난 운명이 아니라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선택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선택에는 반드시 책임이 뒤따릅니다. 자기가 선택한 길은 스스로 책임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법도를 지키며 살면 번성하며 장수하는 복을 받으며 삽니다. 그러나 우상을 섬기며 세상의 일락을 즐기는 길을 택하는 사람은 망하고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모세는 이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과 후손을 위하여 살길인 생명의 길을 택하라고 호소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 때 우리는 높은 차원의 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섬김의 길을 택해야 합니다

스탠리 죤스가 어느 날 길을 건너가려 할 때 어떤 여자가 그의 팔을 끌어당기면서 말렸습니다. "빨간 불을 보세요!". 죤스박사는 그 여인에게 미안한 듯 작은 소리로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기 건너가는 사람들을 보세요!". 그러자 그 여자가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힘있게 충고하더랍니다. "그 사람들을 보지말고 신호등을 보고 따라가세요".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생명의 빛이요, 축복의 빛이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세상사람들을 보고 따라 가다가 낭패를 당하고 사고를 냅니다.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만을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세상 죄악들을 바라보아서는 안됩니다. 결코 좌로나 우로 치우쳐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세상의 빛이 찬란하고 아름다워도 그 곳을 바라보아서는 안됩니다.

한 잡지에서 한때 뉴욕에 살았던 두 가문에 대해 아주 흥미 있는 통계를 발표하였습니다. 맥스주크라는 사람은 기독교를 믿지 않았는데 자기와 같은 불신자와 결혼했습니다. 이 결혼에서 도합 1,025명의 후손이 나왔는데 그중 300명은 단명했고, 100명은 교도소에 수감되었으며, 190명은 아주 부도덕하게 살았고, 100명은 술주정뱅이였으며, 그 가문이 뉴욕에 끼친 손해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기독교의 가르침을 믿었습니다. 그는 자기와 같은 그리스도인과 결혼했습니다. 이 결혼에서 도합 729명의 후손이 나왔는데 그중 300명은 설교자였고, 65명은 단과대학 교수였으며, 13명은 종합대학 교수였고, 6명은 좋은 책들을 지은 작가였으며, 3명은 국회의원, 1명은 미국의 부통령을 지냈다고 합니다. 이 가문에서는 뉴욕에 한 푼의 손해도 끼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두 가문이 빚어 낸 엄청난 차이를 들으면서 여러분은 무엇을 느끼십니까? 오늘 내가 무엇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나뿐만 아니라 나의 후손들까지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입니다. 행복은 오늘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우리의 후손들의 미래도 나의 선택이 달려있습니다.

여호수아는 백성들을 모아놓고 말합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은 하나님을 섬기는 길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행복의 절대조건이 되기 때문입니다.

어느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선택은 여러분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 책임은 스스로 져야 합니다. 이제 생명의 길을 택하시기 바랍니다. 복된 길을 택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것을 가능케 하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길을 택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김광일목사 설교자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