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갈라디아서 6장 9절)


지금 우리는 실로 충격적인 일을 당하고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 자원봉사 활동을 위해서 갔던 기독청년들이 탈레반 테러범들에게 납치되어 그중에 이미 두 명이 학살을 당하고 나머지 21명이 여전히 인질로 잡혀서 생사의 갈림길을 오락가락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아무리 내전 중이라고는 하지만, 비전투원인 민간인을, 그것도 순전히 의료봉사를 해 주기 위해서 찾아온 외국인을 불법적으로 붙잡아 놓고 기분 내키는 대로 죽이고 그 목숨을 담보로 흥정을 하려는 행위는 전 국제사회가 치를 떨지 않을 수 없는, 지극히 비인간적이며 파렴치하기 짝이 없는 짓입니다.
  하지만 우리 기독신자들에게는 거기에 덧붙여지는 또 하나의 충격은 바로 이 대한민국 안의 일부 몰지각한 자들로부터 나타나고 있는 반응 때문입니다.
  자국민이 테러분자들에 의하여 납치를 당하고 오늘 내일 그 생명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오직 전 국민이 이들의 구출을 위해서 마음과 힘을 다 모아야 마땅한 판에, 오히려 이 사건을 빌미로 기독교인들과 교회를 향하여 거친 비난을 마구 퍼붓는 자들이 있다는 사실은 정말 어이가 없고 기가 찰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더욱 안타까운 일은, 이런 불신자들의 말도 안 되는 비난 앞에 교회와 기독신자들 쪽에서 오히려 주눅이 들고 저자세를 취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 사랑'과 '하나님 경외'부터 전혀 모르고 있는 불신자들이 자기네들이 전혀 알 리가 없는 '선교'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한다고 해서 우리 쪽에서 당장 꼬리를 내리고 약한 꼴을 보인다는 것이 어디 당키나 한 일이겠습니까?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성경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 이런 격려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이유는, 우리 기독교인들의 신앙생활에 '낙심할 만한 일'들이 실제로 자주 생기기 때문이며,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사실상 '결코 낙심해서는 안 될 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과연 왜 우리 기독신자들은, 특히 교회를 중심으로 주님께서 명하신 사명에 충성하고 있을 때에는 결코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까?
  이 본문을 통하여 우리에게 일깨워 격려해 주시는 그 두 가지 이유를 이 시간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자신이 행하는 일이 '선한 일'인 줄을 깨닫는 신자는 결코 낙심하지 않습니다.

  본문 상반절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행하고 있는 일이 '선한 일'인 한에는 아무 낙심할 이유가 없고 또한 결코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잘못된 일'이나 '나쁜 일'을 하고 있다면 남으로부터 무슨 비판을 받기 전에 일찌감치 그만 두어야 할 것이고, 사실상 아예 시작을 하지 말았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선'을 행하고 있을 때에는 문제가 전혀 다릅니다.
  '선행'은 부끄러워 할 일이 결코 아니라 오직 자랑스러운 일일 뿐이며 조금 해 보다가 금세 실망하고 돌아설 일이 아니라 끝까지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밀고 나가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 '선'이라는 것을 어떻게 판단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과연 '선한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옳다고 인정해 주시는 일이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신자들이 말하고 실천하는 '선행'이라는 것은, 불신사회에서 공통적으로 인정해 주는 '도덕적인 선'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며 더욱이 사단이 기뻐할 일은 결코 될 수 없습니다.

  바로 여기에, 신자들이 선을 행하다가도 낙심하게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즉 우리로서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을 행하고 있는데, 그것을 오히려 비난하고 욕하는 자들이 이 불신사회에는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일들을 당할 때 조금도 당황하거나 낙심해서는 아니 되며 오히려 그것을 아주 당연한 현상으로 알고 의연하게 대처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번의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인질 사태'를 두고서 우리 기독교인들의 선교행위 그 자체를 맹렬히 비난하는 소리들이 지금 온 나라에 왁자지껄합니다.
  '우리 사회에도 도움 받아야 할 사람들이 많은데 왜 꼭 외국에까지 나가서 봉사활동을 해야 하느냐?,' '아프가니스탄이 위험지역이라고 정부가 경고를 해 주었는데도 왜 굳이 찾아갔느냐?'라는 둥의 비난성 댓글들이 인터넷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이들이 구출 받고 돌아올 때가 문제다. 다 고개 숙이고 들어와야 한다."라는, 기상천외한 소리까지 나온 것입니다.

  저는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들의 정신구조가 도대체 어떻게 되어먹어 있는지 어이가 없습니다.
  그 23명의 기독청년들이 아프가니스탄에 가서 했던 일은 두말할 필요 없이 '선한 일'이었습니다.
  거기에 무슨 논리가 필요하며 설명이 따라야 하겠습니까?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볼 때에 그것은 '간접적인 선교활동'이니까 틀림없이 '선한 일'이지만, 그냥 불신자의 입장에서만 보더라도 그런 자원 의료봉사는 분명히 '선행'임에 무슨 사족이 필요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단이 신자의 선행을 칭찬할 리가 있겠습니까?
  악한 영의 사주를 받은 자들이 교회가 성도가 하는 일을 두고 쓸데없는 짓이라고, 무모한 행위라고, 이 사회에 필요한 일이 아니라고 비난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반응입니다.
  그들은 우선 선과 악에 대한 정의와 이해부터가 우리와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아프가니스탄까지 굳이 찾아간 것은 실상은 아주 용기 있는 행동이었고 정말 '예수 사랑'에 충만한 사명감 때문이었습니다.
  정 그들이 실수한 것이 있다고 한다면, 테러분자들이 그렇게까지 악독하게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던, 너무나 순진한 생각만 가졌다는 사실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대한민국 정부나 아프가니스탄의 정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비록 우리 정부가 '주의'나 '경고'는 주었다 할지라도 그 곳을 '여행금지구역'으로까지는 지정해 놓지 않았던 이유와,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그 청년들에게 입국비자를 발행해 주었던 이유는, 설마 탈레반 무리가 그처럼 '선한 일'을 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까지 납치하여 그 생명을 위협할 줄이야 꿈에도 생각해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그 '설마' 했던 일,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는 기본적인 상식과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기본적인 양식을 완전히 뒤엎는, 믿기지 않을 비인도적인 만행을 이 테러분자들이 저지른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생겼는가, 이것이 누구의 책임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지극히 간단명료한 것 아니겠습니까?
  바로 그 탈레반 테러분자들이 적어도 사람이라면 저질러서는 안 될 극악한 일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그저 악을 악이라고 말하면 그 대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초등학교에서 '바른생활' 정도만 제대로 배워도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사태에 대하여 가장 악한 쪽, 가장 비난 받아야 마땅한 대상이 누구인지는 너무나도 분명한 것입니다.

  그런데 기가 막히게도, 그런 악을 비난하는 대신에 엉뚱한 쪽, 아니 그 악에 의하여 끔찍한 피해와 희생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오히려 비난한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들입니까?
  그 청년들이 선교하러 갔든지, 순수 봉사활동하러 갔든지 간에, 적어도 같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지금 이 상황 이 시점에서는 오직 이들을 안전하게 구출해 내는 일에만 모든 마음과 여론과 힘을 다 모아야 마땅합니다.
  만약 어떤 우리나라 사람이 그저 외국에 휴가 여행을 갔다거나 혹은 회사 출장으로 나갔다가 그런 일을 당했다 해도 그럴 수가 없는 것인데, 하물며 숭고한 정신으로 남의 나라 사람들을 도우려고 나갔다가 납치를 당한 우리 청년들에게, 더욱이 그들이 총에 맞아 비참하게 살해되고 있는 가운데, 그들을 향하여 오히려 '돌을 던지는 것'이 과연 같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할 수 있는 일입니까?

  대한민국의 정부가 이들의 구출을 위해 전력을 기울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것은 그 피랍자들이 어떤 사람이며 어떤 경로로 그렇게 되었는지 하는 문제와는 아무 상관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대한민국의 국적을 가지고 대한민국의 여권을 받아서 외국에 나갔던 청년들이 지극히 악한 무리에 의하여 인질이 되어 생명의 위협을 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자국민을 보호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적인 책임입니다.
  우리 정부는 바로 이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을 뿐이지, 무슨 기독교에 대한 특혜를 베푸는 것이 결코 아닌 것입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다가 길에서 납치를 당해서 지금 유괴범이 협박 위협하고 있는 판인데, 그 죽을지 살지 모르는 아이를 두고 "너 왜 모르는 사람을 함부로 따라갔니?", "돌아올 때가 문제다. 고개 숙이고 집에 들어와야 한다."라고 야단칠 수 있겠습니까?
  정 그 아이에게 무슨 말 한 마디 한다면, 일단 무사히 집에 돌아오게 된 후에 "너 다시는 그러면 안 된다."라고 주의를 주는 정도 아니겠습니까?
  유괴 당한 아이 때문에 부모가 피눈물을 흘리면서 호소하고 있는데, 그 경황에 "왜 당신은 아이가 학교에서 집으로 혼자 돌아오게 내버려 두었소? 그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 줄도 몰랐다는 말이요?"라고 비난할 수가 있겠습니까?
  규탄한다면 당연히 유괴범을 규탄해야 할 것이고, 부모의 실수가 있었다면 주위에서 그런 말 하지 않아도 일단 자식을 다시 안게 된 후에는 이전보다 몇 배로 조심하게 될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경우란 것이 그 유괴 당한 아이가 교회에 다녀오다가 그랬다거나 놀이공원을 갔다 오다가 그랬다고 해서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그 아이가 기독신자이든지 아니든지 하고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사람을 유괴하고 살해하려는 자체가 최고로 악한 일이며 여기에는 아무 이견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지금 이 사회에서는 오히려 그 '아이'와 그 '부모'에게만 비난의 화살들을 쏟아 부을 뿐 아니라, 정말 기가 막히게도 그 '국제적 유괴범'들을 두둔하면서 "그네들 입장을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라고까지 말하는, 정말 삐딱해도 너무나 삐딱한, 정말 사람의 입에서 나올 수 없는 소리를 함부로 내뱉는 자들이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이 탈레반 테러분자들의 납치행위 자체를 정면으로 비난하는 인터넷 댓글은 정말 가뭄에 콩 하나 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걸핏하면 그렇게도 잘하던 무슨 규탄대회 하나도 열리지 않고 플래카드 한 장 어디 걸려 있지도 않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길거리에 나서기 시작하나 했더니 웬걸 갑자기 미국을 규탄하기 시작합니다.
  만약 미국이 처음부터 개입했더라면 틀림없이 '내정 간섭'이니 '제국주의적 본성'하고 야단이 났을 자들이, 이제 와서는 '미국이 책임을 지고 사태를 해결하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 납치 사건의 원인이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파병한 것에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 미국으로 하여금 테러분자들과 전쟁을 시작하게 만든 '9.11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들에게는 왜 책임을 묻지 않는 것입니까?
  순전히 '실수로' 일어난 '미선이와 효순이의 사고'를 가지고 반미운동을 부추겼던 무리들이 이제는 탈레반이 '의도적으로' 저지르고 있는 만행을 목격하면서도 그 '악의 축'들에 대하여서는 일언반구 없이 엉뚱하게 미국을 욕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피랍자 가족들이 자기네들을 위해서 해 준다는 '촛불시위'를 거부하고 오히려 '반미운동 반대 성명'을 낸 것이겠습니까?

  바로 이런 무리들을 두고 잠언 17장 15절은 "악인을 의롭다 하며 의인을 악하다 하는 이 두 자는 다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입느니라"고 한 것입니다.
  선과 악을 뒤바꾸는 자들,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이들을 반드시 심판하고야 마실 것입니다.
  그리고 기독신자들은 우리가 행하는 일이 오직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는 선한 일이기만 하면 그처럼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들이 무슨 소리를 지껄인다 해도 아무 거리낄 것도, 움츠려들 일도, 두려워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불신자가 눈에는 '선행'이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사단의 세력으로부터는 오히려 '악행'이라고 매도당하기까지 한다 할지라도, 오직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일'을 결코 낙심치 말고 준행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때가 이르면 반드시 '열매 거두게 될 것'을 확신하는 신자는 결코 피곤해질 수 없습니다.

  본문 하반절에서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했습니다.

  앞의 '낙심'이란 말은 심적으로 약하여지는 것을 말하고 여기 '피곤'이란 말은 육신적으로 지치게 되는 것을 뜻하며, 물론 이 둘은 서로 연관관계에 있습니다.
  선을 행하다가도 낙심되고 피곤해지기 쉬운 두 번째 이유는 그 노력에 대한 결과가 속히 나타나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신자가 행하는 선한 일에 대한 결과가 그때그때 즉시 따라오지 않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그 '열매를 거두게 되는 때'는 바로 하나님께서 정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처럼 겨우 칠팔십년 사는 인생과는 달리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은' 영원의 시간대에 살고 계시며 '우주와 역사의 태초부터 종말까지'를 통하여 당신의 구속사를 위한 시간표를 짜 두고서 진행시키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그 '때'라는 것이 우리가 보기에는 너무 늦은 것처럼 여겨지는 경우도 자주 생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쨌든 그 선한 일에 대한 열매가 거두어지게 만드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한에는 그 때는 반드시 '이르게' 될 것 또한 확신해야 합니다.
  즉 신자가 행하는 선한 일이 하나님의 뜻을 좇은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일이라면 반드시 성취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까닭에 기독신자와 교회는 선을 행하다가 중단은 두말할 것도 없고 조금이라도 피곤해져서도 아니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렇게 낙심하고 도중하차 하게 되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갈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악한 일을 하는 자들은 절대로 중간에서 포기하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도둑질이나 강도질 하는 자들은 절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이 인류사회가 존속하는 한 그 악한 일을 계속할 것입니다.
  테러분자들 역시 결코 '피곤치 아니하고' 예수님 재림하시기 직전까지 더더욱 악을 쓰면서 저 잔인무도한 짓을 더 극심하게 자행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아니 바로 지금도 "우리는 앞으로도 납치와 살해를 계속할 것이다."라고 아예 공언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저들이 '악의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도 저렇게 열심을 내고 있는데, 교회와 신자들이 선을 행하던 손을 놓아 버린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선'을 행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거두실 열매'만을 목표로 삼고 계속 달려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사태를 두고서 "너희들이 예배당 팔아서 몸값 지불하고 데려와라."라는 악담을 서슴없이 뱉어내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저 해외에 여행하러 갔다가 납치를 당하게 된다면 자기 집을 팔아서 몸값 지불해야 합니까?
  기업에서 파견된 사원이나 노동자들이 그런 일을 당하게 되면 그 회사를 팔아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런 악한 댓글에 편승해서 "우리나라에 왜 이렇게 교회가 많으냐? 그 건물들 다 팔고 십일조 다 모아서 가난한 사람들 구제나 해 주지 않고."라는 따위의 비난들 또한 줄을 잇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이 대한민국에 도대체 무슨 해를 끼쳤습니까?
  교회가 많이 세워진 것 때문에 이 사회에 가난한 사람들이 생겼다는 소리입니까?

  그렇다면 왜 하필이면 교회만 그렇게 이 사회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까?
  그런 논리대로 한다면, '우리나라에 대학교들이 왜 이렇게 많은가? 그 학비 낼 돈, 그 교수들 월급 줄 돈 다 모아 가지고 가난한 사람들 좀 나누어 주지?'라고 하든지, '지금도 빈민층이 있고 달동네가 있는데 왜 기업들은 초고층 빌딩들을 호화롭게 지어 올리고 있으며, 우리나라 안에도 실업자가 가득한데 왜 외국에다가 투자를 하고 있나? 그 천문학적인 돈을 사회사업에 내놓지 않고.'라고 말할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물론 그것이 얼마나 엉터리 논리인지는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대학교들이 많이 세워져야 가난한 학생들도 실력만 있으면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기회균등의 사회가 될 수 있고, 기업들이 자체 개발과 해외 시장 확장까지 해야 더 많은 일자리들이 창출되고 안정된 중산층을 넓히면서 실제로 빈부의 차이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은 상식에 불과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사회의 각 단체들은 그 자체의 목적을 위하여 투자하고 노력하고 그것을 성취함으로써 결국은 사회 전체에 이익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하고 그저 학비 다 모으고 기업 빌딩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 나누어 주어 버린다면, 그 일시적인 도움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 문제가 해결될 리도 없으며 그 사회의 장래는 완전히 끝나버릴 것이 뻔하지 않습니까?

  교회 역시 꼭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선한 일, 곧 '복음전파를 통한 구령사업'을 위하여 세워진 공동체입니다.
  만약 교회가 이것저것 다 모으고 다 팔아서 구제사업만 한번 크게 하고 문을 닫아 버린다면 누가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명하신 최고의 사명'을 수행한다는 말입니까?
  이 대한민국에 정말 애국하는 국민, 국법을 지키고 세금을 속이지 않고 국민의 의무를 다하는 시민, 새벽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영적 파수꾼들을 누가 키워내겠다는 것입니까?
  사회의 단체들이 그 고유의 목적을 위해서 존재하며 또한 바로 그 목적을 완수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사회에 이바지 하듯이, 교회 역시 교회 자체의 목적을 완수함으로써 사회와 국가에 이바지하고 있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교회는 교회 원래의 사명에 충실하고 그 열매를 거둠으로써 결국 그 나라와 백성을 실로 이롭게 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기독청년들의 납치 사건으로 인하여 국내에서 기독교의 선교활동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게 되니까, 기독교계에서도 '선교활동에 대한 자체 반성'의 선언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자성을 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이지만, 저는 지금 그런 것을 공표할 시기는 아직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유괴된 어린이가 돌아오지도 않았고 사실 무사히 돌아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판국인데, 이런 시점에서 '어린이를 학교에서 혼자 돌아오게 했던 것'을 공개사과하거나 '새로운 등하교 방법을 모색'하겠다고 천명하는 것이 어디 경우에 맞는 일이겠습니까?
  무엇보다도 지금 국내에서 들끓고 있는 비판의 소리들은 '선교의 방법'만을 두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선교활동 그 자체'를 아예 부정하는 것이며, "너희는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명령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도 전혀 모르는 불신자들이 제멋대로 하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런 상황에서 교회가 그런 성명을 발표한다는 것은 선교행위 자체를 잘못된 일이라고 규탄하고 있는 불신자들의 부당한 비난을 합리화시켜 주는 격이 될 수 있으며, 또한 지금 당장 끔찍한 악행을 당하고 있는 인질들과 그 가족들과 그 교회 쪽에 무슨 근본적인 잘못이 있다고 우리 쪽에서도 인정하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충격적인 일을 당했으니 그 반성과 대책이란 것은 구구히 성명서를 내지 않아도 이 모든 일이 해결된 후에 자연히 세워지게 될 것 아니겠습니까?

  시편 43편 1절에 "하나님이여 나를 판단하시되 경건치 아니한 나라에 향하여 내 송사를 변호하시며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나를 건지소서"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경건치 아니한 나라'에 속한 자들이 있기 마련이며, 이 대한민국 안에도 이런 '간사하고 불의한 자'들이 아주 많이 있음이 이번 사건에서 더욱 뚜렷이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송사를 변호해' 주십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 앞에서 '판단' 받을 때 옳은 편에 서 있기만 하면 충분한 것입니다.

  기업이 해외에 나가서 사업을 할 때 그것을 여론에 따라서 합니까?
  법을 벗어나지 않는 한, 당연히 자기 회사의 방침에 따라서 자기 회사 이익을 위해서 일을 추진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렇다면 하물며 선교의 방침이 어떻게 사회의 여론을 따라서 결정될 수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방법이 어떻게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미워하는 사람들의 비난 때문에 수정되어야 한다는 것입니까?
  교회는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성경 말씀이 명하시는 방법대로 하기만 하면 그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이를 때 반드시 열매를 거두고야 말게 되는 것을 확신함으로써, 결코 피곤치 아니하고 끝까지 선한 싸움을 힘써 싸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고린도전서 6장 2절에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라고 말씀했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세상을 판단하는 '왕 같은 제사장'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고전 6:3)라고 했는데, 천사까지도 판단할 수 있는 교회와 성도가 불신자들로부터 판단 받는 꼴이 되어서야 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선을 행하다가 '사슬에 메인 사신(使臣)'된 형제자매들을 변호해주는 말이 연예인 기독신자 한두 명 외에 우리나라의 기독교계에서는 왜 이리 나오지 않고 있는 것입니까?
  팬들의 인기도로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사람들조차 그처럼 용기 있게, 의리 있게 당당한 글을 쓰는데, 왜 목사들의 입이 이렇게 잠잠한지 모르겠습니다.
  인터넷의 저질 댓글들이 그렇게 두렵고 사단의 영을 받은 자들의 악담이 그렇게도 겁이 납니까?

  우리 교회와 성도 모두는 결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아야' 하며 '열매를 거둘 때가 올 때까지 피곤치 아니하고' 계속 나아가야 합니다.
  대한민국에는 교회가 더 많이 세워지고 기독신자가 더 많이 생겨서 이 조국과 민족을 위한 '선한 일'을 더 크게 행해야 하며, 아프가니스탄 정도가 아니라 '땅끝까지 이르도록' 줄기차게 선교사들을 파송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한 '구령의 열매'들을 더 풍성히 거두어들여야만 합니다.
  우리가 낙심하거나 피곤해지면 절대로 안 됩니다.
  이 나라에 이처럼 무법하고 불의한 자들이 고개를 쳐들고 있는데, 이들을 대항하여 선한 싸움을 싸울 수 있는 사람은 바로 기독신자들뿐이며, 이 사회가 이토록 선악을 분변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데 이를 바로 이끌어서 조국의 미래에 축복의 열매를 가져올 수 있는 희망은 오직 교회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선'을 행할 때 결코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열매를 거두는 때'가 오기까지 조금도 피곤치 아니하고 끝까지 선한 싸움을 싸우며 영광의 면류관을 함께 받는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출처/석기현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