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유 1:17-23 )  

오늘 말씀은 거짓 교사들로부터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초대교회의 성도들을 보호하려는 야고보의 형제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유다가 쓴 편지입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사단의 미혹을 따라 많은 이단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은 이들과 끓임 없는 싸움을 해야 했습니다.

오늘의 말씀인 본 성경을 기록한 유다는 야고보의 형제로써 예수님의 동생이었습니다. 처음에 유다는 예수님을 세상의 구주로 믿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혈육의 형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며 병자를 고치며 천국복음을 전하러 다니는 3년 반의 공생애 기간동안 자기의 형이 미쳐서 저런다며, 치료를 받아야 한다며 오히려 잡으로 다니기까지 했습니다(막3:21, 31 ; 요7:5). 그러나 예수께서 장사한지 사흘만에 다시 부활하신 것을 목격한 후 유다는 신자가 되었습니다(행1:14). 이렇게 신자가된 유다는 자신을 예수그리스도의 형제라 말하지 아니하고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소개합니다.

아마도 유다는 누구보다도 예수그리스도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잘못된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을 묵과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성도들을 사단의 미혹으로부터 지켜야겠다는 강한 책임의식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는 오는 본문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의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


그러면 여기서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도베드로, 요한, 바울과 같은 분들이 이미 지적한바 있는 적 그리스도 즉 이단의 출현에 대한 언급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말한 적 그리스도 즉 이단들의 출현에 대한 언급은 성경 여러 곳에 나타나있습니다. 바울사도는 갈라디아서 여러 곳에서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갈1:7-8)고 했고,  베드로 사도 역시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드려 자기들을 피 값으로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니라"고 말하고 있고(벧후2:1), 사도 요한 역시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 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 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요일2:18)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유다도 "그러한 사람들은 당을 짓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서 유다는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를 미혹케 하는 자들을 따르지 말고 주의 계명을 따라 다음과 같이 하여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이 권면하고 있는 내용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첫째: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건축하라는 것입니다.

20절 말씀에 보니까,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위에 자신을 건축하며"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언제나 자신을 거룩한 믿음 위에 건축해야 합니다. 이단 사술과 적그리스도의 유혹은 초대교회때에만 있었던 이야기는 아닙니다. 지금도 여전히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빙자하여 성도를 미혹하는 각종 이단 종파들이 득실거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바탕으로 하는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건축해야 하는 줄로 믿습니다. 믿음은 거룩한 것입니다. 믿음은 세상의 죄와 구별된 하나님의 축복이 있는 곳이고 하나님의 구원이 있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믿음을 따라 예수그리스도안에 있는 구원의 진리와 은혜 위에 자신을 건축하는 사람은 참으로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아벨은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건축해서 양의 첫새끼로 하나님앞에 거룩한 믿음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농사해서 거둔 곡식 중 아무것이나 되는대로 드렸습니다. 에녹 역시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건축하여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노아 역시 자신과 가정을 복된 믿음 위에 건축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심판을 위하여 방주를 예비하여 자신과 가족을 구원했습니다. 그러나 당대의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홍수가 나서 나 멸하기까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이 우선이었습니다.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건축하여 떡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사는 자고 복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아브라함 역시 거룩한 믿음위에 자신을 건축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조카 롯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죄악이 극에 달한 소돔과 고모라 성에 거처를 잡아 살았고 죄악이 관영한 소돔과 고모라성이 하나님의 진노로 불탈 때 그 모든 소유를 잃었고 유황불이 하늘에서 떨어지던 날 성을 빠져 나오던 아내는 하나님이 결코 뒤를 돌아보지 말라 했으나 두고온 재물이 아쉬워 뒤를 돌아 본고로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야곱 역시 복된 믿음 위에 자신을 건축했습니다. 그러나 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믿음 위에 자신을 건축해야 합니다. 요셉이 그랬고, 모세가 그랬고, 여호수아가 그랬고 사무엘이 그랬고 , 다윗이 그랬고, 솔로몬, 에스더, 느혜미야, 학사 에스라, 욥, 이사야선지자, 예레미야, 다니엘, 엘리야, 엘리사,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댜, 학개, 스가랴, 말라기, 신약시대의 가롯유다를 제외한 맛디아를 포함한 열두 제자, 빌립집사, 스데반집사, 사도바울, 디모데....,성경구절의 인용이 필요 없이 이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을 거룩한 믿음 위에 건축한 사람들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천지가 없어지기까지 그들의 신앙이야기는 아름다운 이야기로 모든 사람들 입에서 끓임 없이 오르내릴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한 천국에서도 그들의 믿음이야기는 화재 중에 화재가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늘도 이렇게 복된날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나아온 저와 여러분이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건축한 복된 사람들 인줄로 믿습니다.


둘째, 성령으로 기도할 것을 권면 하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기도한다는 말은 거룩한 믿음을 가지고 성령의 도우심을 따라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기도할때 중언부언 즉 의미 없는 말을 계속 반복하는 뜬구름과 같은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가지고 성령에 붙잡힌바 되어 살아있는 기도, 영적인 기도, 인격적인 지, 정, 의를 갖춘 기도를 해야 하는 줄로 믿습니다. 사도 바울께서는 고린도전서2장에서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했다"(고전2:4)고 말합니다. 그리고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신다.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 수 있겠느냐?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고전2:10-11) "신령한 것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는 것이다"(고전2:13)고 말씀했습니다.


바울사도의 이러한 말씀들이 갖는 의미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 마음에 합당한 기도는 오직 성령으로 기도 할 때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육신의 정욕이나 지식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믿음을 따라 성령으로 기도해야 하는 줄로 믿습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비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 한즉 비가 삼년 육개월동안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다시 기도 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습니다.(약5:17-18) 성전 미문에 앉아서 구걸하는 나면서 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의 손을 붙잡고 베드로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나에게 있는 것으로 너에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령으로 명할 때에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기도 하며 걷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행3:1-10)   바울과 실라가 옥중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기도하고 찬송할 때 옥문이 열렸습니다.(행16:25-26) 거룩한 믿음을 따라 성령으로 하는 기도의 결과 인줄로 믿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킬 것을 권면 하고 있습니다.

21절 말씀에 보니까,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본문을 공동 번역에서는 알기 쉽게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으십시오" 할렐루야!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안에 머물러 있기를 소원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가장 안전하고 또 복된 삶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의 사랑 안에 사는 자녀, 남편의 사랑 안에 있는 아내, 친구나 애인의 사랑안에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듯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사는 성도는 행복한 성도인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죄인들을 살리시려 당신의 독생자까지 아끼지 아니하신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죄인을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십자가에서 속죄의 제물로 드리기까지 하신 사랑입니다. 긍휼과 자비와 오래 참으심이 한이 없으신 사랑, 조건을 제시하지 아니하신 사랑,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시는 그 사랑, 그 사랑 안에 거하며 사는 자는 행복한 사람인줄로 믿습니다.


또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라는 말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면서 그 사랑을 나타내라는 말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면서 부부간에 그 사랑을 나누며 사는 복된 여러분과 가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물면서 부모 형제간에 그 사랑을 나무며 살기를 바랍니다. 친구간에, 이웃간에, 직장 동료간에, 여러분 곁에 앉아 있는 성도간에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물며 그 사랑을 나누며 사는 행복한 삶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넷째: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고 권면 합니다.

21절 하반 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우리를 향하신 예수그리스도의 긍휼 즉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불쌍히 여김을 기다리며 사는 자는 복이 있는 사람인줄로 믿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사람은 주님의 위로를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불쌍히 여기시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줄로 믿습니다. 주님이 불쌍히 여기시면 막힌 것이 뚫어지고 묵인 것 매인 것이 풀어지는 줄로 믿습니다. 그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긍휼을 받아야 되는 줄로 믿습니다. 또한 예수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는 말은 주님의 심판의 때에 주님으로부터 불쌍히 여김을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마태복음25장에 나와 있는 최후의 심판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주님께서는 그날에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날에 당신의 심판을 도우실 천사들을 대동하고 오신다고 했습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서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그 왼편에 두리라, 그때에 임금이 그 오른 편에 있는 양들에게 (즉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내앞으로 나아와 창세로 부터 너희을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 받으라" 할렐루야!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떠나 살았던 왼편에 있는 염소들에게는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서 마귀와 그 졸개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유황 불 못에 들어갈지어다." 주님의 긍휼을 기대 할 수 없는 자들에게 내려지는 명령입니다.


주님이 저와 여러분을 불쌍히 여겨 죄와 사망에서 건지시고 그날에 주님의 생명책에서 저와 여러분의 이름을 불러 주실 줄로 믿습니다. 주님이 죄악된 세상에서 믿음을 따라 사느라 지쳐있는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죄에서 우리를 구하시러 속히 오실 줄로 믿습니다.


다섯째,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며 저들을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며 저들이 짓는 죄에 휩쓸리지 말며 조심스럽게 동정하라는 것입니다.

22-2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유 1:22)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유 1:23)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이라도 싫어하여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이 말씀을 현대인의 성경은 알기 쉽게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유 1:22) 여러분의 믿음을 의심하여 논쟁을 벌이는 사람에게 부드럽게 대하고 도와주십시오. (유 1:23) 악의 구덩이에 빠진 사람들을 마치 지옥의 불구덩이에서 끄집어내듯이 구원해 주십시오. 그리고 친절을 베풀어 그들이 주님을 발견하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들의 죄 가운데 끌려 들어가지 마십시오. 죄인인 그 사람은 동정하더라도 죄 그 자체는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미워하십시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의심하는 자들과 논쟁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믿음을 알지 못하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또한 예수를 부인하여 불과 유황으로 타는 하나님의 심판 길에 있는 자들을 끌어내어 전도하는 일에 우리의 믿음을 투자해야 합니다. 또한 그들에게 친절을 베풀어 우리의 모습을 통하여 그들이 주님을 발견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또한 내 자신이 그들의 죄 가운데 휩쓸려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죄인인 그 사람들을 동정하더라도 죄 그 자체는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미워하는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죄의 길과 의의 길을 분별하여 살며 지옥의 불구덩이에 빠져가는 자들을 그 구덩이에서 건져내는 일을 하라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속죄의 은총이 있는 거룩한 믿음 위에 우리의 길을 건축합시다.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는 성령에 붙잡힌바 되기를 사모하며 믿음의 기도를 합시다. 성도 행복의 요람인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안에 머물러 부부간에 부모 형제 간에 친구 이웃간에 그 사랑을 나누며 살아갑시다. 주님께 불쌍히 여김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 가난한 마음으로 주님의 긍휼을 기다리며 삽시다 믿음을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며 저들이 짓는 죄에 휩쓸리지 말며 조심스럽게 동정하며, 다음 주일은 목장별 초대 주일이니. 저들을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는 거룩한 일에 믿음으로 동참하는 복된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