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   (엡 2 : 8)

1.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푸신 모든 복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 즉 그의 부요하심과 호의에서 오는 것입니다. 이는 전혀 과분한, 사람이 그의 자비(창32:10)의 가장 적은 것도 요구할 권리가 아주 없음에도 불구하고-거저 주시는, 과분한 호의로부터 주어진 것들입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 넣으사 생령이 되게 하셨으며'(창2:7), 그 영혼에 하나님의 형상을 새겨 넣으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케 하셨던 것도'(시8:6,고전15:27) 거저 주시는 은혜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에게 생명과, 호흡 그리고 만물이 지속되는 것도 그 같은 거저 주시는 은혜에 의한 것입니다. (행17:25)
왜냐하면 하나님 손에 있는 가장 적은 것이라도 그것을 당연히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우리의 존재·소유·행위 속에는 없습니다.
'오 하나님, 우리가 한 모든 일은
당신께서 우리 안에서 행하신 것
입니다'.(사26:12)
그런고로 이것들은 모두 거저 주시는 자비의 더욱 많은 표적들입니다.
사람 안에서 발견될 수 있는 의가 무엇이든, 이것도 또한 하나님의 은사입니다.

2. 그런데, 죄 가득한 사람이 무엇을 가지고 자기가 지은 죄의 가장 적은 어떤 것이라도 그 죄를 대속하겠습니까? 사람 자신의 업적들을 가지고 하겠습니까? 아닙니다. 그것들이 아주 많이 있거나 혹은 거룩하다면, 그것들은 인간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그러나 실로 그것들은 모두 불결하며 죄로 가득차 있어, 따라서 그것들 하나하나가 다 새로운 대속이 필요합니다. 나쁜 열매만이 나쁜 나무 위에서 맺는 것이지요.(마7:17)
그리고 사람의 마음은 전적으로 부패했고 혐오스러우며, '하나님의 영광', 곧 인간의 위대한 창조주의 형상을 따라 태초에 사람의 영혼 위에 찍어넣으신 영광스런 의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롬3:23)
그러므로, 사람에게는 탄원할 아무 것도, 어떤 의나 업적도 없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입이 아주 굳게 닫힐 수 밖에 없습니다'(롬3:19)

3. 그런데 만일 죄 가득한 사람이 하나님의 호의를 발견한다면, 그것은 '은혜 위에 은혜'(요1:16)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럼에도 우리에게 새로운 복들-네 그렇습니다, 모든 복들 중의 가장 위대한 복,구원을 퍼부어 주신다면, 우리는 '그 분의 말로 다할 수 없는 이 은사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고후9:15)이외에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실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키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확증하심'(롬5:8)으로 된 것입니다.
그러니, '은혜를 인하여' '여러분들은 믿음을 통해서 구원받은 것입니다.' 은혜는 구원의 원천이요, 믿음은 구원의 조건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미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것을 조심스럽게 탐구하여 보도록 합시다.

Ⅰ. 우리가 구원 받게 되는 것은 어떤 믿음을 통해서 입 니까?
Ⅱ. 믿음을 통해 얻는 구원은 어떤 것입니까?
Ⅲ. 몇 가지 반대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할 것입니까?



우리가 구원받게 되는 것은 어떤 믿음을 통해서 입니까?

1. 첫째로, 이 믿음은 이방인의 것과는 다릅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명하사 그들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사실을 믿으라고 요구하십니다.
'먼저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과 또한 하나님은 자신을 부지런히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히11:6) 그리고 '모든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림으로써'와 도덕적인 덕, 정의, 자비, 진리를 그들의 모든 동료들에게 주의 깊게 실천함으로써, '하나님으로서의 그 분에게 영광을 돌리므로'(눅2:20)말미암아 찾아야 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 말입니다.
그러므로 헬라 사람이건, 로마 사람이건, 인도 사람이건, 우리 나라 사람이건, 만일 그가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 또는 장차 받을 상벌이나, 의무로서 해야만 할 도덕적 덕의 본질에 대해서 믿지 않았다면, 그는 변명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이방인들이 갖고있는 사실 그대로의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2. 둘째로, 이 믿음은 마귀의 믿음과도 다릅니다.
마귀의 신앙은 이방인의 신앙보다도 훨씬 앞섭니다. 왜냐하면 마귀는 하나님이 은혜로우셔서 상주시며, 의로우사 죄를 벌하시는, 지혜로우시고 능력 많으신 분이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세상의 구주이신 바로 그 그리스도이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예수님을 만났을 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오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눅4:34)라고 분명히 말하였던 것입니다.
불행한 영이지만 그는 그 거룩한 분의 입에서 나온 모든 말씀들과 옛 거룩한 분들에 의해 기록된 모든 말씀을 믿고 있다는 것을 의심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마귀일지라도 두 사람의 거룩한 사도에 대하여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들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들이요'(행16:17)라고 영광스런 증언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 만큼, 하나님과 인간의 큰 원수도 '하나님이 육신으로 나타나셨음'(딤전3:16)과 또 그 분이 '그의 모든 원수들을 당신 발 아래 밟으시리라'(고전15:25)는 것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졌다'(딤후3:16)는 것을 믿고 있으며, 또한 믿는 가운데 떨고 있는(약2:19) 것입니다. 마귀의 신앙은 이 정도에 까지 이르는 것입니다.
3. 셋째로, 이 믿음은 그리스도가 아직 이 세상에 계실 때에 사도들이 가졌던 믿음과는 다른 것입니다.
사도들은 그리스도를 믿어 '모든 것을 버리고 그 분을 따랐으며'(막10:28), 그 때 기적을 행하고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마10:1)을 가졌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사도들은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눅9:1)를 가지고 있었죠.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기 위하여'(동9:2)그들의 주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러한 모든 전능한 일을 행하고 돌아온 후에, 주님으로부터 '믿음이 없는 세대'(눅9:41)라고 불림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사도들에게 '불신앙 때문에, 그들이 마귀를 쫓아 낼 수 없었다'(동9:41,막6:6)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랜 후에, 사도들은 자신들이 이미 어떤 믿음을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고는, 주께 '우리의 믿음을 더하소서'(눅17:5)라고 말씀드렸을 때, 주님은 사도들에게 그들이 전혀 소유하고 있지 않은 이 믿음 - 즉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 - 에 관해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겨지라"해도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눅17:6)

4. 그러면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그것은 어떤 믿음을 통해서 입니까?
먼저, 일반적으로 말해, 이는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이 바로 이 신앙의 적절한 대상입니다.
그러므로 이점에서 이 신앙은 고금의 이방인들의 것과는 전혀 또는 전적으로 구별됩니다. 또 이 신앙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마귀의 신앙과 완전히 다릅니다.
이 신앙은 어떤 사변적이고 합리적인 것으로서의 냉냉하고 생명없는 지적인 동의 즉 머리 속에 있는 관념들의 나열에 그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마음을 내어맡기는 행위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고백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 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롬 10 : 9-10)

5. 이런 점에 있어서 이 신앙은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제자들이 가졌던 그들의 신앙과도 구별되는 것입니다.
이 신앙은 예수님의 죽으심의 필요성과 공로를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즉 이 신앙은, '예수께서 우리의 범죄함 때문에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4:25) 한 바와 같이, 예수님의 죽으심을 영원한 죽음에서 인간을 속량하시는 유일한 충족방법으로 보며, 또한 예수님의 부활을 우리를 생명과 썩지 않을 것으로 회복하시는 것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그리스도인의 신앙이란, 그리스도의 복음 전체에 대한 승인일 뿐 아니라 또한 그리스도의 피를 전적으로 의뢰하는 일, 즉 예수의 생명과 죽음과 부활의 공로를 의지하고, '우리를 위하여 내어 주신바 되고 또한 우리 안에 살아 역사하시는' 우리들의 대속이시요 생명이신 그리스도에게 기대는 일입니다. 그 결과 '우리의 지혜 즉 우리의 의와 거룩함과 구속함'(고전1:30)이 되신 그리스도, 혹은, 한 마디로 말해, 우리의 구원이신 그리스도에게 바짝 다가가 그분과 굳게 결합하는 일입니다.



이 믿음을 통하여 얻는 구원은 어떤 것인가? 이것이 두번째로 생각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1. 무엇보다도 이는 현재적인 구원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얻을 수 있는 것, 그렇습니다 이 땅에서 이와같이 이 신앙에 참여한 자가 실제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있는 신자들에게 아니 모든 시대의 신자들에게 '너희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이것도 진리이기는 하지만) 라고 한 것이 아니라,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느니라'(엡2:8)고 말했던 것입니다.

2. 당신들은 (한 마디로 모든 것을 포함하여) 죄로 부터 구원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맏아들을 세상에 보내시기 전에 미리 천사를 통하여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분이심이라'(마1:21)고 예언 한 바 그 위대한 구원인 것입니다.
성경의 어디를 보나, 어떤 제한이나 제약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 모든 성경에 표시된 대로,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은 '그들의 모든 죄'에서 구원하십니다.(행10:43) 원죄, 자범죄, 또는 과거의 죄나 현재의 죄를 막론하고 육과 영의 모든 죄에서 구원하십니다.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하여 저들은 죄의 책임과 죄의 권세에서 구원 받는 것입니다.

3. 첫째로, 이는 과거의 모든 죄의 책임으로부터의 구원입니다.
'온 세상이 하나님앞에서 죄의 책임이 있어서'(롬3:19), 하나님께서 '잘못한 것을 매우 엄하게 지적하신다면, 이를 버텨낼 자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시130:3) 그리고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해 줄 뿐이지', 죄로부터의 해방은 갖다 주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써 하나님 앞에 의롭다하심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롬3:20)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의가(혹은 긍휼이) 나타났으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믿는 모든 사람에게 미치는 것입니다'.(롬3:21,22)
이제 믿는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속량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거저 의롭다하심을 받습니다.'(동3:24)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를 -그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한- 화목제물로 삼으셔서, 지금까지 지은 죄를 용서하기 위한(혹은 용서하심에 의한) 당신의 의를 천명하셨기(명백히 알리셨기) 때문입니다'.(동3:25)
이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저주가 되사 율법의 저주를 없이하셨습니다".(갈3:13)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신 것입니다".(골2:14-15).
'그러므로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롬8:1)

4. 죄책으로부터 구원 받은 자는 또한 두려움에서도 구원을 받습니다.(롬8:15)
자식이 부모를 거스리므로 갖게 되는 어떤 두려움에서가 아니라, 모든 노예근성적인 두려움, 즉 사람을 '괴롭히는 두려움'(요일4:18), 형벌에의 두려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의 구원입니다.
믿는 이들은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을 대할 때, 엄격한 주로서가 아니라 관대한 아버지로 여깁니다. '저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 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으며, 성령이 친히 저희 영으로 더불어 저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는 것입니다.'(롬8:15-16)
저희들은 또한, 전혀 가능성이 없다는 것은 아닐지라도,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져서(살후2:3) 크고도 귀중한 약속에 미치지 못하리라는 두려움에서도 구원을 받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기업의 보증이 되는 약속의 거룩하신 영으로 인치심을 받은 것'입니다(엡1:13).
그런고로 저희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고 있으며,...........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는 가운데 즐거워합니다. ............... 그리고 '저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저희 마음에 부은 바 된 것입니다'(롬5:1,2,5). 이에 의하여 저희들은 (아마도 늘 같은 충만한 확신 가운데 있는 것은 아닐지라도) '사랑이나 생명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어느 다른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롬 8:38-39)고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5. 둘째로, 이 믿음을 통하여 저희들은 죄책으로부터의 구원뿐만 아니라, 죄의 권세로부터 구원받습니다.
그리하여 사도 요한은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나신 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그 분 안에 거하는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느니라'(요일 3:5)고 선언합니다.
또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동3:7,8), '믿는 이는 누구나 하나님께로서 난 자요'(동5:1),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 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죄를 질 수 없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기 때문입니다'(동3:9)고 하였고
또 5장 18절에는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자는 자신을 지키나니, 악한 자가 저를 해할 수 없느니라'고 거듭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6.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난 사람은 죄짓지 않습니다.
1) 어떤 습관적인 죄에 의해서 죄를 짓지 않습니다. 습 관적인 죄는 모두 사람을 지배합니다. 그러나 믿는 자의 마음 속에서는 그 죄가 지배할 수 없기 때문입 니다.
2) 어떤 의지적인 죄에 의해서 죄를 짓지 않습니다. 왜 냐하면 믿음 안에 거하는 동안은 그의 의지가 전적 으로 모든 죄에 대항하며, 또한 죄를 치명적인 독과 같이 혐오하기 때문입니다.
3) 어떤 죄된 욕망에 의하여 죄를 짓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그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거룩하고도 완전한 뜻 (롬12:2)을 바라며, 어떤 불결한 욕망이 생기는 때에 그는 하나님 은혜로 이것을 질식시켜버리기 때문입 니다.
4) 그는 행동, 말, 혹은 생각에 있어서의 연약성에 의해 죄짓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연약성에는 그의 의지의 협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의 의지의 찬동 이 없다면, 그것들은 적절히 말해 죄가 아닙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지 않습니다'(요일3:9).
그는 지금까지 범죄한 일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그러나 '지금은 범죄치 않습니다'(동5:18)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7. 그러므로 이것이야말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입니다! 이는 현세에서도 얻을 수 있는 구원입니다. 죄로부터의 구원과 그 죄의 결과로부터의 구원을 일컬어 종종 칭의( justification )란 말로써 표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광의로 취할 때, 지금 그를 믿는 죄인의 영혼에 실제적으로 적용된 그리스도의 대속에 의한-죄책과 형벌로부터의 해방을 뜻하며, 또 '그 신자의 맘 속에 형성된'(갈4:19) 그리스도를 통한-죄의 권세로부터의 해방을 포함합니다.
그리하여 이와 같이 의롭다하심을 얻은 자, 곧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자는 진실로 '거듭난' 것입니다. 그는 '성령으로 거듭난'(요3:3,5) 즉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인 바 된 새 생명'(골3:4)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 난 아기처럼, 그는 즐겨 순전한 말씀의 젖을 사모하며, 그것을 먹고 자라가는 것입니다'.(벧전2:1)
주 하나님의 능력에 의하여 '믿음에서 믿음으로'(롬1:17), '은혜에서 은혜에로'(요1:16) 나아가, '마침내는 완전한 사람, 곧 그리스도의 충만함의 온전한 분량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엡4:13)



그러면 이상에서 설명한 것에 관한 몇 가지 반대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할 것입니까?
1. 즉 '믿음으로만 의롭다하심을 받고 구원 얻는다고 설교하는 것은 거룩함과 선한 행위를 반대하여 설교하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하여는 짧은 답으로 족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떤 이들처럼 거룩함과 선한 행위로부터 분리된 믿음을 전한다면, 그러할 것입니다. 그같은 믿음이 아니라, 모든 선행과 모든 거룩함을 필연적으로 산출하는 믿음을 우리는 전파합니다.

2.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하여 더 충분히 생각하는 것이 유익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반대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 때부터 있어 왔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냐?'(롬3:31)라고 하는 반문은 그 때부터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에 대해, 첫째로, 다음과 같이 답변합니다. 믿음을 전하지 않는 모든 이들이 공공연하게 율법의 요구를 수포로 돌아가게 합니다. 즉 저들은 성경 본문의 모든 참 뜻을 먹어치우는 취약한 해석과 설명에 의해, 직접적으로 그리고 전체적으로, 율법을 헛되게 하던가, 혹은 율법의 성취를 가능케 하는 그 유일한 수단인 믿음을 지적하지 않음으로써,간접적으로,율법을 헛되게 만들든가 합니다.

반면에, 둘째로, 우리는 율법의 완전한 범위와 영적인 의미를 보여줌으로써, 또 '율법의 의가 그들 안에서 성취될 수 있는'(롬8:4) 저 생명의 길(믿음)로 모든 사람을 초대함으로써, 율법을 굳게 세웁니다.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피을 완전히 신뢰하는 한편,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모든 규례를 사용하며, 저들이 그 안에 걸어 가도록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모든 선행을 행하고(엡2:10), 그리고 모든 거룩한 하늘의 성정 곧 그리스도 안에 있었던 동일한 마음(빌2:5)을 즐거이 맛보며 드러내 보입니다.

3. 그러나 이러한 신앙을 전파하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교만으로 인도하지 않느냐? 고 반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답변합니다. 자칫하면 그렇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신자는 각별히 주의를 하여야 합니다. 위대한 사도의 말 가운데 다음과 같은 경고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믿지 않으므로 잘려 나갔고, 여러분은 오직 믿음으로 접붙여졌으니, 교만한 마음을 품지 말고 오히려 두려워하십시요. 하나님께서 원 가지인 이스라엘도 아끼지 아니하셨다면, 이방인인 여러분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인자하시고 엄하신가를 보십시요. 믿음에서 떨어져 나간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준엄하시지만, 당신이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당신에게 머물러 있게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당신은 잘리게 될 것입니다.'(롬11:20-21).

그리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는 동안, 사도 바울이 이미 예견하고 답변한 다음과 같은 반문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즉, '그런즉 자랑할 데가 있느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롬3:27)
만약에 사람이 자기 행위에 의해 의롭다하심을 받는다면, 이로 부터 영광을 받을 것이 있겠지요. 그러나, '아무공적도 없고, 다만 불경건한 자를 의롭다하시는 분을 믿는'(롬4:5) 이에게 돌아갈 영광은 없습니다.

동일한 의미의 말씀이 다음과 같은 본문을 전후하여 또 있습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어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오.'(엡2:4-5,7-8)

여러분의 믿음도 여러분의 구원도 여러분에게서 온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구원받게된 그 믿음,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것에다 동반케하시는 구원과 마찬가지로- 당신 자신의 선한 즐거움 곧 자신의 순전한 호의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선물이요',(엡2:8) 거저 주시는, 분수에 넘치는 선물입니다.
여러분이 믿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한 예요, 여러분이 믿어 구원받은 것도 하나님의 은혜의 한 예입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아무도 자랑치 못하게 하려 함입니다'(엡2:9).
왜냐하면 믿기 이전의 우리의 모든 행위, 모든 의란, 믿음만큼 가치있기는 커녕, 그러한 것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낼 것이라곤 다만 정죄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믿음이란, 그것이 주어질 때는 언제나, '행위로 부터 오지 않기' 때문이지요. 또한 우리가 믿을 때 얻어지는 구원도 우리가 하는 행위에서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 때에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엡3:20,빌2:13,고전12:6)).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보상도 결국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행하신 일에 대한 보상입니다. 따라서 찬양할 것은 오직 하나님의 자비의 부요함 뿐이요, 우리가 영광받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4.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긍휼에 관하여 말하는 것, 즉 믿음만으로 구원 얻는다거나 의롭다하심을 받는다고 이야기하는 일이 사람들로 하여금 죄 짓도록 장려하게 될 수 있지 않습니까?
진실로 그렇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 많은 사람이, '은혜 풍성케 하기 위하여, 죄를 계속하여 지으려고'(롬6:1) 합니다. 그러나 저들의 피가 저들 머리 위에 머무를 것입니다.
하나님의 양선은 저들을 인도하여 회개케 할 것이 분명합니다.(롬2:4) 진실한 사람은 그렇게 회개합니다. 저들이 아직 용서의 여지가 남아있음을 알게 될 때에, 역시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도말하여 주시기를 바라, 크게 부르짖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간절히 부르짓으며, 낙심치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모든 수단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께서 오실 때까지 위로받기를 거절한다면, 하나님은 '찾아 오실 것이며, 결코 지체치 아니 하실 것입니다'.(히10:37)
그리고 하나님은 단 시간 내에 많은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하늘로부터 떨어지는 번갯불처럼 빠르게, 하나님께서 사람들 마음 속에 이 믿음을 일으키신(생기게 하신) 예가 사도행전에 많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과 실라가 설교하기 시작하는 그 시간에, 간수장이 회개하며 믿고 세례를 받은 것이(행16:30-34) 바로 그와같은 예입니다. 오순절 때에도 베드로의 첫번째 설교에 3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두 회개하고 믿은 것도 마찬가지 예입니다.(행2;37-41)
그러니, 여호와를 송축하십시요. 하나님은 그와같이 여전히 '구원하시는 데에 능하시다'(사63:1)는 산 증거가 지금도 많이 있습니다.




1. 그러나 그 같은 진리에 대하여 아주 다른 각도에서 반대를 하는 이가 있습니다. '만약에 사람이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함으로써 구원받을 수 없다면, 이것은 사람을 절망시키는 것이 아닌가?' 라고 말입니다.
사실인즉, 자신의 행위나 공로나 의로 구원받는다면 절망뿐입니다. 그리고 그래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그 자신의 공로를 전적으로 부인할 때까지는, 아무도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할 수 없습니다.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애쓰는'(롬10:3) 사람은 하나님의 의를 받아 들일 수 없습니다. 믿음에서 오는 의는 율법에서 오는 의를 의지하고 있는 동안에는 주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2. 어떤 이는 이것을 언짢은 교리라고 말합니다.
마귀가 그렇고 그렇다고 사람에게 제시할 때에는 자기 생긴 모양대로 말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즉 진리도 수치도 개의치 않고 말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전적으로 파멸되고 자책하는 모든 죄인에게 '위로로 가득찬'(고후7:4), 유일한 위안의 교리입니다.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 라'.(롬9:33) '같은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롬10:12)

여기에, 하늘만큼 높고, 죽음보다 강한, 위로가 있습니다!

정말이지! 모든 사람을 위한 긍휼이 아니겠습니까? 공공연한 강도 삭개오를 위한, 천한 매춘부 막달라 마리아를 위한 긍휼이 아닙니까? 나는 어떤 이가, '아 그러면 나, 나같은 사람도 긍휼을 기대할 수 있겠구나!' 하고 말하는 것이 들리는 듯 합니다. 그래서 고통하는 당신, 아무의 위로도 없는 당신도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당신의 기도를 물리치지 않습니다. 도리어 하나님께서는 그 다음 시각에 말씀하실 것입니다. '기뻐하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마9:2)
그렇게 죄를 용서함 받았기에, 죄는 더 이상 당신을 지배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당신의 영과 더불어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실 것입니다'.(롬8:16)

오! 기쁜 소식, 대단히 기쁜 소식, 만민에게 주어진 복음이 아니겠습니까!(눅2:10)

'오,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사라'(사55:1). 그리고 너희 죄가 '진홍같이 붉을지라도'(사1:18) 또한 '머리털보다 더 많을지라도'(시40:12), '여호와께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다. 우리 하나님께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사55:7).

3. 더 이상 반대가 일어나지 않을 때면, 우리는 어리석게도 '믿음만에 의한 구원'을 으뜸가는 교리로 설교해서는 안된다거나 또는 적어도 모든 사람에게 설교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이 닦아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그리스도 예수라'(고전 3:11).
그러므로 '저를 믿는 자는 누구나 구원을 얻으리라.'(막16:16,요3:16)는 것이 우리의 모든 설교의 기반이고 또 기반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첫번째로 설교하여야만 합니다.

그렇지만 이 교리를 모든 계층에 있는 사람들에게 설교할 필요는 없지 않는가 하고 반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누구에게 이것을 설교하지 말아야 합니까? 누구를 제외할 것입니까?
가난한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그들(마11:5)에게는 복음을 들을 특별한 권리가 있습니다.
무지한 사람들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배우지 못하고 무지한 사람들(행4:13)에게 이러한 것들을 처음부터 계시하셨습니다.
어린이들일까요?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그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금하지 말라' 하셨습니다.(막10:14)
죄인들일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케 하시러 오셨습니다'.(막2:17)
그러면 제외할 사람이 누구입니까? 부요하고 유식하고 평판이 높고 도덕적인 사람들을 제외할 것입니까? 그들은 매우 종종 자신들이 제외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주님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대 분부를 내리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고 하셨습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그 말씀을 왜곡하여 멸망을 가져오게 한다면, 그 책임은 스스로가 져야만 할 것입니다.(갈6:5) 그러나 아직도 '주님께서 살아 계신 만큼, 주님께서 우리에게 분부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우리는 전파할 것입니다'.(왕상22:14)

4. 이 때에 더욱 특별히 우리는 '여러분들이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엡2:8)고 말해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이 교리를 주장하는 일이 오늘날보다 더 적절한 때가 결코 없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 가운데 로마교회적인 미혹의 증가를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교리입니다. 그 교회의 모든 그릇된 점들을 하나하나 공격하는 것은 끝이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은 그 뿌리에 타격을 가하는 것이며, 이 교리가 확립되는 곳에서는 그 모든 잘못들이 한꺼번에 허물어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이 교리야말로 우리교회가 주장하는 바 그대로 기독교 종교의 강한 반석이요 기초인 것입니다. 이 교리가 교황을 이 오류들의 왕국들로부터 처음으로 몰아 내었습니다. 그리고 이 교리만이 그 일(쫓아내어 다시는 안으로 들이지 않는 것)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이것 이외에 어떤 것도 홍수처럼 이 땅위를 온통 뒤덮은 저 부도덕을 멈추게 할 수는 없습니다. 아주 깊은 대양을 한 방울 한 방울로써 비울 수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이 간언을 함으로써 어떤 특별한 악들로부터 우리들을 개혁시킬 수 있을런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의'(빌3:9)를 얻도록 하십시요. 그리하면 그 교만된 파도는 정지되고야 말 것입니다.(욥38:11) 이 교리 이외의 어떤 것도 '부끄러움을 자기의 영광으로 삼으며'(빌3:19), '자기를 값 주고 사신 주님을 공공연히 부인하는'(벧후2;1)사람들의 입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마음 안에 율법이 기록된 사람 만큼이나, 그들은 율법에 대해서 고상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이 항목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듣노라면, 그것은 듣는 이로 하여금 그들이 하나님 나라에서 멀지 않다고 생각하게끔 합니다.
그러나 저들을 율법에서 복음으로 끌어 내십시요. 믿음의 의, 즉 '믿는 모든 자에게 율법의 끝마침이 되신 그리스도'(롬10:40)와 함께 시작하십시오.
그러나 현재 그들이 거의 다 된(almost) 그리스도인 처럼 보이지만 온전한 그리스도인(altogether christians)이 아니라면, 그들은 결국 멸망의 자식(요17:12,살후2:3)이 될 것이며, 마치 지옥의 밑바닥이 하늘의 꼭대기로부터 먼 것 만큼이나 그들은 생명과 구원으로부터 먼 거리에 있는 것입니다.(하나님이시여, 이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5. 이런 이유 때문에, 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이 세상에 선포될 때마다 그 원수는 그처럼 격노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는 이 교리를 처음으로 설교했던 이들을 파멸시키려고 땅과 지옥을 휘저어 놓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동일한 이유때문에, 믿음만이 그의 왕국의 기반들을 전복시킬 수 있음을 원수는 알고서, 이 교리를 소생시키지 못하도록 그의 모든 힘을 동원하고 온갖 거짓의 술책과 비방을 사용하여 만군의 주의 영광스러운 투사인 마틴 루터를 위협하였던 것입니다. 그 위협을 우리는 상상키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시는 사람으로서 루터는, 무장을 갖춘 거만하고 강한 자를 분노케 하였으며, 그 장사는 결국 손에 갈대 하나를 쥐고 그를 대항하여 나오는 어린아이에 의해 제지당하고 무시당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특히 그 어린 아이가 분명히 자기를 타도하고 짓밟을 것이라는 것을 그가 알았을 때에 말입니다.
예수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지요! (계22:20) 그처럼 ' 약할 때에 ' 당신의 힘은 언제나 '완전해지는 것입니다!'.(고후12:9)
그러므로 주를 믿는 작은 아이와 같은 당신은 전진하십시요. '주의 오른 팔이 놀라운 일을 가르치실 것입니다'!(시45:4) 당신이 지금 어린 아이와 같이 약하고 무능할지라도 그 강한 자가 당신 앞에 설 수 없을 것입니다. 당신은 분명코 저를 이기고 정복하며 타도하여 마침내는 당신 발아래 그를 짓밟을 것입니다. 당신 구원의 위대한 대장(히2:10) 밑에서- '정복, 정복하여'(계6:2), 마침내는 당신의 모든 원수들이 파멸되고, '죽음이 승리 안에서 삼키워질'(고전15:54) 때까지- 당신은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십시다.(고전15:57)

성부, 성자, 성령께 복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영예와 능력과 전능이 영원토록 있으시기를............아멘(계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