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  (유다서 1:3-4)
  

유다서는 예수님의 동생인 유다가 기록한 말씀입니다. 부르심을 입고, 사랑을 얻고, 지키심을 입은 자에게 곧 주의 이름으로 구원 얻은 자에게 당부하는 말씀입니다. 사도 유다는 우리들에게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워라"고 간곡히 당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교회 안에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선지자들, 즉 이단사상을 가진 자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가만히 들어온 이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좀 벌레와 같이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성도들의 믿음을 야금야금 해칩니다. 믿음의 병인 불신과 원망과 파당을 일으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멍들게 합니다.


유다서에 나타난 거짓 선지자 곧 이단의 무리들은 영지주의(그노시스)로서 이들은 선과 악, 물질과 정신, 영혼과 육체 등 이원론을 주장합니다. 영지주의에는, ①영혼은 참된 것이고 육체는 악한 것이라며 육신적 삶을 부정하고 죄악시하는 금욕주의가 있고, ②또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얻은 영혼은 육체적으로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다는 쾌락주의가 있습니다. 유다서에 나타난 이 잘못된 이단사상은 오늘날에도 있고, 더욱이 우리 주위에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거짓 선지자와 이단사상의 특색을 살펴봄으로 우리에게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해 힘써 싸워 자신을 지켜 나가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일러주시는 '가만히 들어온 이 사람들은' 어떤 특색을 가지고 있습니까?

1. 받은 은혜를 바르게 사용하지 않습니다.

본문 4절에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라 했습니다. 이단사상을 퍼뜨리며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소위 말하는 은혜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것도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고 자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어그러진 길로 가다가 멸망 받고 후세에 거울이 된 사람들도 은혜 받은 사람이요 뛰어난 사람들입니다. 쫓겨난 천사도, 가인도, 발람도, 고라도 받은 은혜가 너무도 큰 자들입니다. 여러분, 주님이 왜 나에게 은혜를 주십니까? 나의 욕망을 채워 주시기기 위해서입니까? 아닙니다. 주님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라고 주신 은혜인데, 주를 위해 충성 봉사하라고 주신 은혜인데, 우리는 자신의 영광을 위해 잘못 사용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욕심을 위해 잘못 사용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자랑하기 위해 잘못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자랑하고 뽐내도 그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것입니다. 내 것으로 알고 잘못 사용하기에 어그러진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히려 주의 영광을 가리우고 마는 것입니다.


2. 자신의 위치를 지키지 않습니다.

본문 6절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라고 했습니다. 여기 '지위'라는 말은 '위치'를 의미한 것입니다. 이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히 1:14). 하나님과 구원 얻을 후사들을 섬기는 것이 천사들의 할 일입니다. 그러나 자기 처소를 떠나 "하나님의 자리에 오르며 하나님과 비기리라"며(겔 28:16-17, 사 14:12-17) 교만해졌을 때 범죄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징벌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문제를 일으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받은 은혜로 교만해져서 자신의 위치를 지키지 않고 날뛰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① 교회의 권위를 업신여깁니다(본문 8절). 자제하기를 권유하는 권고를 업신여깁니다. 더욱이 교회의 책벌을 업신여기고 받아 드리려 하지 않습니다. ② 자기 자랑(본문 16절)만 늘어놓습니다. 남의 신앙은 무시하고 자기만이 옳고, 자기만이 은혜 받은 사람이고 최고이다라고 생각하는 오류 투성이인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다윗의 삶의 자세를 배워야 합니다. 일찍이 왕으로 택함을 받았고 기름부음을 받았지만(삼상 16:1, 13) 그 일이 이루어지기까지 사울의 신하로서 충성을 다합니다. 사울의 생명을 자기 손에 주었지만 사울을 죽이고 왕위에 오르려하지 않는 다윗의 삶의 모습을 보십시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다릴 줄 아는 모습을 보십시오. 내가 받은 은혜가 아무리 크더라도 지금의 내 자리에서 충성하고 봉사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사울은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하고 교만한 마음으로 자신이 제사장의 일도 해치우는 삶이 되고 만고로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삼상 13:7-15).


3. 당을 지어 분열을 일으킵니다.

본문 19절에 "이 사람들은 당을 짓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가만히 들어온 이 사람들'의 최후 목적이 그렇습니다. 적 그리스도들, 거짓 선지자들, 거짓 교사들 그들이 전하는 이단 사상은 당을 지어 갈라져 나감으로 가만히 숨어 들어온 그들의 모습을 들어내 놓습니다. 그때까지는 양의 가죽을 쓴 이리와 같아서 알아보기 힘듭니다. 그들의 열매를 보고서야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마 7:15-16). 그들은, ① 항상 원망합니다(본문 16절). 항상 제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불평하며 원망합니다. 자신의 잘못이 없나하고 돌아보지 않고 언제나 남의 잘못만 찾고 비난합니다. ② 훼방을 일삼습니다(본문 8, 10절). 화합하고 하나 되기 위해 감싸 안으려하면 그들은 더욱 날뜁니다. ③ 자기 자랑을 많이 합니다(본문16절). 어떻게 하든 제 자랑으로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자신의 이익과 목적달성을 위해 아첨하는 일도 서슴치 않습니다.


분열은 죽음을 의미하고 패망을 뜻합니다. "너 죽고 나 죽자"고 하는 것은 소위 말하는 물귀신 작전입니다. 혼자 망하기는 억울하니 같이 망하자는 것입니다. 성도는 언제나 같이 살자고 해야 하고, 그렇게 안될 때는 오히려 자기를 희생하는 길을 택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갚아주시고 오히려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지혜를 대표하는 명 판결의 이야기를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잘 아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이 사건에서 산 아이를 쪼개고 둘로 나누자고 하는 여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내 것도 되게 말고 네 것도 되게 말고 둘로 나누자!" 그 여인은 바로 자기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면서 산 아이를 죽이자고 합니다. 그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입니까?


'가만히 들어온 이 사람들'은 육신의 소욕을 좇아 살아가며 이성 없는 짐승과 같이 행동합니다. 그러다 결국 멸망 길로 치닫습니다. 그들은 육에 속한 사람들이요 성령에 속한 자가 아니기에(19절) 열매가 없습니다(12, 13절). '가만히 들어온 이 사람들'은 후세에 거울이 되고 본보기가 된 그 열조들의 어그러진 길에서 떠나지 못하고 멸망 길을 걷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들을 가리켜 '꿈꾸는 자'라고 했습니다(8). 또한 벧후 2:15-16절에는 '미혹하는 자', '미친 자'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제 정신을 잃어버린 상태를 가리킵니다. 받은 은혜의 참 뜻은 모르고 감정에만 치우쳐서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변화산 위의 주님을 바라봅시다. 베드로는 그 놀랍고 영광스러운 은혜를 체험하고는,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자기의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고 했습니다(눅 9:33). 그러나 주님은 베드로를 대리고 하산했습니다. 결코 베드로의 말에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황홀경에 빠져 제 정신을 잃은 상태로 베드로를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오늘 우리가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워야 할 상대인 이단 사상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의 삶은 어떻습니까?

1. 받은 은혜를 바르게 사용하지 않습니다.

2. 자신의 위치를 지키지 않습니다.

3. 당을 지어 분열을 일으킵니다.

여러분, 우리는 주님께서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워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가 싸워야만 하는 이단 사상의 정체를 바로 알고는 그러한 사상을 단호하게 물리쳐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과는 달리 정결하고 아름다운 믿음의 삶을 살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