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   (잠언 16장 16절 ~ 20절)

이러한 우스개 소리가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에서 무슨 일에든지 성공하려면 ‘ㄱ’으로 시작되는 여섯가지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꿈, 꾀, 꼴, 끈, 끼, 깡”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이 무엇인가 하면, 꿈은 이상이고 꾀는 지혜고 꼴은 외모이고 끈은 연고이고 끼는 소질이고 깡은 끈기를 의미합니다.  글쎄올시다.  하버드 대학의 대니얼 골맨(D. Goleman) 교수는 성공하는 사람들을 나름대로 사회학적으로 잘 분석을 하고 요약하여 딱 두가지로 말합니다.  I.Q.가 20%, E.Q.가 80%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 기대와 좀 다릅니다.  우리 생각에는 I.Q.가 높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I.Q.라고 하게 되면 지식, 재능, 기술을 다 포함한 것입니다.  머리가 좋아야, I.Q. 이것은 20%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E.Q. 입니다.  Emotional Intelligence, 감성지수가 높아야 된다.  그저 우리가 쉽게 말해서 마음이 좋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씨가 좋아야 된다는 것은 의외입니다.  바로 어제도 어떤 예쁘게 생긴 탤런트 아가씨가 텔레비전에 나왔는데 인터뷰를 하면서 “장차 어떤 남자와 결혼을 하겠습니까?”하고 물었더니 대답하기를 “제가 어렸을 때는 누구누구같은 미남, 뭐 키가 얼마고 머리가 좋고, 이렇게 생각을 했는데 요새 나이가 30이 넘으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저 마음이 좋은 사람이면 좋습니다.” 그래서 제가 ‘철이 났구나’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분, 이 마음씨라는 것, 이 감성지수가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지능이 높아도 감성이 낮으면 그 지능이 소용이 없습니다.  그 머리 좋은 것 가지고 자신도 고생하고 남도 고생합니다.  성공이 그것에 있는 것이 아니고 감성에 있다, 하는 것입니다.

글렌 힐슨(Glann Hinson)이라고 하는 현대 영성학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현대인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가까이 귀담아 듣지 못하는 이유가 두 가지가 있다, 그렇게 말합니다.  첫째가 Too Busy, 너무 바쁘다는 것입니다.  ‘일 자체에 몰두하고 성과주의에 빠져서 그저 성공에만 급하고 성공이 무엇인지도 생각하지 못한다.  의미도 깊이도 없이 그저 뛰고 있는 것이다.  생각하고 뛰는 것이 아니고 뛰면서 생각하는 것이다.  열심히 뛰고 바쁜데 왜 바쁜지도 모르겠고 이 바쁨의 결과가 무엇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다.  그러니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을 수밖에.’  두 번째는 Noise 라고 했습니다.  너무 산만하다고 했습니다.  많은 볼거리가 있습니다.  많은 들을 거리가 있습니다.  여러분, 요즘에 우리는 많이 보고 듣고 삽니다.  요즘에 휴가 가는 사람들을 보니까 강릉까지 두시간 십오분이면 가는 것을 요새 여덟시간, 열시간을 간다고 합니다.  열시간이 얼마나 힘듭니까?  텔레비전에 해운대가 나오는 것을 보니 목욕탕이 아니고 죽탕입니다.  물은 하나도 안보이고 사람만 보이더라고요.  도대체 그래야 되나?  “이 사람들이 왜 이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네”라고 했더니 제 말을 들은 사람이 제게 말하길 “목사님, 모르는 소리 하지 마세요.  그 재미에 가는 겁니다.”  시끄러운 재미에 가는 것이랍니다.  와글와글 해야지 쓸쓸하면 사람들이 가겠습니까?  그것도 또 말이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요새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들어야 합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이 보아야 됩니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도 만나야 됩니다.  겪고 싶지 않은 일도 겪어야 됩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제가 제일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아주 산천 경치가 좋은 유원지에 좀 조용했으면 좋으련만 거기다 대고 식당에서 스피커를 틀어놓고 흘러간 노래를 크게 들려대는데 참 유감스러웠습니다.  시장님께 전화를 좀 걸든지 해 보아야지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좀 조용한 곳을 찾아왔는데 서울 시내보다도 더 복잡하고 더 시끄러웠습니다.  듣고 싶지 않아도 들어야 합니다.  보고 싶지 않아도 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세월이 흘러가면서 우리들의 마음이 산만해졌습니다.  어느 사이에 그만 산만해졌습니다.  깊은 명상도 깊은 생각도 없습니다.  이제 인간 궁극에서 하나님의 만나게 돼있는데 조용하게 이 모든 관계를 끊고 하나님과 만날 수 있으려면 어떠해야 할 것 같습니까?  미안하지만 병원에 입원하기 전에는 안됩니다.  엄청난 사건을 만나기 전에는 제정신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냥 맞물려 돌아가는 것입니다.  시끄럽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도 보니까 기도하는 시간이 없습니다.  물어보았더니 딱 세 번 기도한다고 합니다.  식사할 때.  그러니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기회가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영혼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영혼이 황폐해질 수 밖에요.  그래서 영혼에 병이 생기고 마음에 병이 생깁니다.  이기심이 있고 자기 우상화가 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짜증이 나고 교만해집니다.  낙심도 절망도 다 교만에서 옵니다.  끝없는 욕심의 노예가 되어 모두가 피해자입니다.  비참합니다.  큰 전쟁을 치른 다음에 오는 패잔병의 모습입니다.  이제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역사의 음성을 들어야 하고 양심의 음성을 들어야 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는데 들을 길이 없습니다.  너무 바쁘고 너무 시끄럽습니다.

여러분, 이보다 더 무서운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다는 것, 들려지지 않는다는 것은 심판입니다.  기도할 때 성경 볼 때 설교를 들을 때, 나의 마음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지지 않는다면 이미 현재적으로 심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현재 어디로 가고 있느냐 말입니다.  여러분, 멸망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실패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사람들은 교만을 즐기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이 말하기를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라 그랬습니다.  교만하면 멸망합니다.  그런데 멸망은 싫지만 교만은 즐기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번 월드컵이라는 큰 행사 속에서 배운 것이 무엇입니까?  가장 크게 배운 것이 무엇인가 하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신다는 것입니다.  오만한 사람은 다 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교만을 즐기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멸망을 자초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내가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내 마음의 성향이 어디로 기울어지고 있습니까?  점점 겸손해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점점 교만해지고 있습니까?  구약성경에서 예를 들어봅시다.  가장 큰 예가 아마 사울왕에 대한 것일 것입니다.  사울왕이 겸손할 때, 스스로 작게 여길 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고 높여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교만하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셨습니다.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기 때문에 “내가 너를 버리노라” 이렇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사울왕은 전쟁에 성공하였습니다.  승전했습니다.  싸움에서 이겼습니다.  전쟁에는 이겼는데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데 있어서 실패했습니다.  교만해지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하나님께서 크게 책망하셨습니다.  그런가 하면 은사를 모독하였습니다.  제사는 사무엘 선지자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입니다.  그 외에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왕이라고 하더라도 왕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 대신 자신이 제사를 드렸습니다.  교만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모독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크게 책망하십니다.  그 뿐입니까.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닙니다.  가만히 상상해 보십시오.  다윗은 자신의 사위이고 게다가 충성된 신하입니다.  그런데 그 다윗을 죽이겠다고 쫓아다니는 이 늙은 사울을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비참하고 얼마나 한심합니까?  무엇에 씌웠지 않습니까.  악령에 씌워서 이렇게 행동을 하다가 결국엔 죽었습니다.  얼마나 비참합니까?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작은 성공이 미래를 망친다.’  그는 전쟁에 이겼습니다.  차라리 패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전쟁에 이겼다는 것 때문에 아주 망가지고 말았습니다.  교만해지면서 그와 그 가문, 그 족벌이 다 망했습니다.  이 얼마나 비참한 이야기입니까?  문자 그대로 교만은 멸망의 선봉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성경말씀은 말하십니다.  “삼가 주의 말씀을 들으라.”  삼가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하라, 그 말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과 내가 직접 대면하는 바른 자세를 취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변 환경을 생각하지 마십시오.  남이야 어렵든 말든 상관없습니다.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 하나님과의 직선적이고 종말론적 관계가 가장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야곱이라는 사람을 보십시오.  그가 20년 동안 집을 떠나 다니다가 이제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압복강변에서 그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을 봅니다.  단독으로, 홀로 남았다고 했습니다.  홀로.  아내가 넷입니다.  위로가 되지를 않습니다.  자식이 열둘입니다.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많은 재산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제 하나님 앞에 일대일로 서서 밤새 기도합니다.  이러한 대면적, 하나님과 나와의 직선적인 관계가 필요합니다.  괜히 이 생각 저 생각, 세상이 어떻고... 그러지 마십시오.  남이 어떻고, 우리는 그런 생각을 할 시간이 없습니다.  순간순간 우리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딱 만나야 합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됩니다.  들으십시오.  나의 소원을 말씀드리고 내 욕망에 사로잡힌 기도가 앞서서는 안됩니다.  ‘주의 뜻이 어디에 있습니까?’ 주님께 물으십시오.  주님께서 말씀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해 주실 기회를 드려야 합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실 수 있도록 마음 문을 열어야 되는 것입니다.  듣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주의 말씀에 주의하는 것입니다.  구약에 보면 솔로몬 왕이 하나님 앞에서 지혜를 구합니다.  ‘하나님이여, 나에게 지혜로운 마음을 주십시오.’  히브리 원문으로 보면 ‘메부쉐 미드’라는 말입니다.  듣는 마음을 주십시오.  옛날 구(舊) 역에는 이렇게 나옵니다.  ‘Hearing heart’  요새 번역에는 ‘Understanding mind’  Hearing heart, ‘하나님이여 나에게 듣는 마음을 주십시오.  주의 음성을 듣는 그런 조용한 맘을 주십시오’ 바로 이것이 지혜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나의 고집 나의 형편에 메이지 말고 마음을 열고 주님이 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리고 또 한가지 있습니다.  이해에 겸손해야 합니다.  주의 말씀을 듣는 대로 자신의 멋대로 해석하지 마십시오.  해석에 너무 조급하지 마십시오.  조용히 기다리십시오.  유명한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인정하면서 너의 이성을 재현하라.”  이성, 우리에게 주신 이상과 판단이 참으로 중요하지만 그 판단을 서두르지 마십시오.  나의 이성이 완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 이성이 건강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너무 빨리 해석하고 빨리 판단을 내리지 마십시오.  기다리십시오.  우리는 기다릴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청교도 신앙에서 신앙 생활 원칙을 말할 때에 Waiting on the Lord라고 말합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마음입니다.  기다리는 마음.  ‘기다린다’ 하면 가장 대표적으로 꼽고 싶은 사람이 누구인가 하면 예수님께서 세상에 태어나실 때의 마리아의 남편, 요셉입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약혼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내가 관계를 한 일이 없는데 이 여자가 임신을 했다는 소문이 들려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떠하겠습니까?  난리가 나죠.  벼락이 떨어지죠.  이런 날벼락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답니다.  조용히 기다렸습니다.  ‘그럴 이유가 있겠지, 그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겠지’ 하고 조용히 물러나려고 했습니다.  얼마나 굉장합니까?  속단을 하지 마시고 너무 빨리 비판을 하지 마십시오.  기다리십시오.  그럴 수 있는 이유가 있겠지.  무슨 뜻인가가 있겠지, 하고 기다리십시오.  이해를 기다리십시오.  해석을 기다리십시오.  판단을 기다리십시오.  죠지 뮬러라고 하는 유명한 목사님께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보다 앞서지 말아라.  성령보다 앞서지 말아라.  기도보다 앞서지 말아라.”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뜻과 지혜를 앞세우십시오.  조용히 기다리십시오.  성령이 감화하여 문제의 해결을 주실 것입니다.  서두르지 마십시오.  성령의 역사를 기다리십시오.  무엇보다도 기도부터 먼저 하십시오.  기도하고 말하십시오.  많이 기도하고 기다리십시오.  그것이 성도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그러면 조용히 주의 음성이 올 것입니다.  기도하라.  기도보다 앞서지 말아라.  이 얼마나 참 명언입니까?

그리고 삼가 순종하라.  듣는다는 말은 순종을 말하는 것입니다.  조용히 조심스럽게 말씀에 순종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스탠리 팜(Stanley Pam)이라고 하는 사업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사업에 크게 성공을 한 사업가입니다.  그가 젊었을 때에 사업을 시작할 때에 하나님 앞에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제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겠습니다.  나의 가장 좋은 것으로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  한평생을 주님 앞에 바쳐서 사업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합니다.  방법을 가르쳐 주소서.”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셨습니다.  “너는 평생 종업원으로 일하라.  언제라도 내가 주인이라고 생각을 하지 말아라.” “아멘” 그는 이렇게 받아들이고 “나는 종업원이다.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이 회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나도 종업원이고 너도 종업원이다.”  오로지 종업원 의식으로만 부지런히 일을 했습니다.  크게 성공을 하였다고 합니다.  여러분 삼가 조심할 것이요.  내가 주인이 아닙니다.  내가 목적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이 아닙니다.  내가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하실 것입니다.  나는 조용히 삼가 듣고 순종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주신 말씀과 같이 교만한 자와 함께 하면 화를 당합니다.  겸손한자와 함께 하면 은혜가 있습니다.

심리학자 아치발트 하트라고 하는 분이 ‘마음의 습관’이라 하는 책을 쓰셨습니다.  아주 재미있는 책입니다.  우리는 흔히 행동의 습관을 이야기합니다.  오랫동안 반복하면서 무의식 속에서 진행되는 것이 습관입니다.  그런데 습관이 마음에도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한 방향으로만 마음이 가게 됩니다.  이것을 진단해 보아야 합니다.  보십시오.  타인의 좋은 점을 보는가?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내가 다른 사람의 장점을 보는가?  만약 당신이 좋은 점만 보고 있다면 당신은 겸손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나쁜 점이 자꾸 눈에 들어오고 그것을 마음에 두게 된다면 그것은 교만한 것입니다.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또, ‘자신의 실패를 용납하라.’  이것은 중요한 말입니다.  내가 실패했을 때에 실수했을 때에 ‘그럼, 이 부족한 사람이 언제나 실수할 수 있는 거지.  하나님의 긍휼로 사는데’ 이렇게 생각을 해야지 가끔 보면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실패를 하다니, 내가 실수를 하다니 말도 안돼!” 참 웃기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찌 실수를 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교만입니다.  자기가 실패해놓고 자신을 저주하는 것입니다.  이럴 수가 없다고.  아니오, 그것이 교만입니다.  그쪽으로 기울어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실패를 인정할 줄 알아야합니다.  그런가 하면 양심이 맑아야 합니다.  양심이 흐려지면 무엇에 지금 붙들려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자신을 너무 가혹하게 대하지 마라.’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인데,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인데 자신에 대해 가혹해서는 안됩니다.  그것도 교만입니다.  또 ‘작은 은총을 소중히 여기라.’  그것이 겸손입니다.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대하라.’  하나님께서 합동하여 선을 이루게 할 것이니까.  그것이 믿음입니다.  ‘올바른 낙관론자가 되어라.’  다 합동하여 선을 이룰 것이다, 종국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것이다, 그것이 겸손입니다.  절망하는 것은 바로 교만입니다.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여라.’  여러분, 현실이 어떤 처지에 있습니까?  이 속에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조용하게 겸손히 받아들이십시오.  현실을 못마땅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바로 그것이 교만입니다.  또한 마지막으로 생각하십시다.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를 인정하라.’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여기에 함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못 알아보는 것, 그것이 교만입니다.  교만한 사람을 사랑할 줄도 모르고 사랑 받을 줄도 모릅니다.  사랑이 무엇인지를 모릅니다.  그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을 마음을 한 번 진단해 보십시다.  겸손 지향적입니까?  교만 지향적입니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교만해집니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점점 성숙하면서 겸손해지고 있습니까?  이것만을 잊지 마십시오.  사탄은 나를 교만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절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성령은 나를 겸손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감사하게 만듭니다.  성령이 나와 함께 할 때에 나의 마음이 낮아지고 겸손해집니다.  동시에 조용하게 주의 음성이 들려오는 것입니다.  그 마음에 주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말씀에 순종하는 순간, 더욱더 크게크게 말씀의 역사가 우리 영혼 안에 우리 실제 생활 속에 크게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너무 복잡해서 너무나도 흔들리고 있어서 너무 바빠서 주의 음성을 가까이 듣지 못함을 용서하옵소서.  주여 어느 사이에 나도 모르게 교만해져서 하나님께 원망하고 이웃에 대해서 불평하는, 자기 자신에 절망하는 사람이 된 것도 용서해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사 이제 겸손 겸손하게 하시고 삼가 주의 음성을 잘 듣고 그 음성에 응답하며 사는 주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곽선희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