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애국성도의 기도  (하박국3:1-4)                                                    

                
기도의 사람, 고아의 아버지 영국의 ‘죠지 뮬러’의 기록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1857년 11월 하순경, 첫 번째 고아원의 난방 보일러가 샌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 고장 난 보일러로 겨울을 난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보일러를 수리만 한다고 해도, 일주일 이상 소요된다고 하니 새 보일러를 시공한다면 공사 기간이 최소한 몇 주는 걸릴게 분명했습니다.····· 나는 아이들이 차가운 방에서 떨지 않게 할 수 있는 방책만 있다면 100파운드라도 기꺼이 지불할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마침내 보일러 수리공들의 방문 일정이 잡혔고, 우리는 보일러 수리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물론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보일러를 꺼야했습니다. 그런데 수리 일정을 잡은 날로부터 황량한 북풍이 몰아치기 시작했습니다. 12월 초하루, 본격적인 겨울이 찾아 왔음을 알리기라도 하듯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추위가 기승을 부렸습니다. 그렇다고 보일러 수리를 미룰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결국 나는 이 문제를 은혜와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의 손에 전적으로 맡기기로 하고 두 가지를 구했습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따라 북풍을 남풍으로 바꾸어 주십시오.”
“수리공들에게 ‘일 할 마음’을 허락하셔서 속히 일을 마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수리공들이 와서 보일러를 꺼야만 하는 전날 저녁까지도 황량한 북풍은 누그러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께 기도했던 그대로 남풍이 불기 시작했고, 보일러를 켜지 않아도 될 만큼 날이 푸근해 졌습니다. 보일러 제조사에서 보낸 수리공들은 조심스레 벽돌을 허물었고, 벽돌을 허물자마자 문제점을 찾아내 곧 바로 수리에 들어갔습니다.
나는 그 길로 현장으로 달려가서 한시라도 빨리 수리를 끝내 아이들이 추위에 떠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간부에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수리공들이 들을 수 있게 큰 소리로 외쳤다.
“오늘 밤늦게까지 일하고 내일 아침 일찍 다시 시작할겁니다. 밤을 꼬박 새우는 일이 있더라도 내일까지 모든 일을 마치겠습니다.”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맨 처음 우리가 예상했던 것과 달리 만 하루 만에 수리를 끝낸 것이다.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포근한 기온이 계속되어 별도의 난방은 필요가 없었습니다. 기도와 믿음으로 우리는 또 하나의 난관을 극복했습니다.  
그의 기도는 대단히 구체적이고 실제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 믿음의 기도로 일생 동안 5만 번의 응답을 경험하였다는 것이다.
죠지 물러 평생 기도 수칙 6가지를 이렇게 말했다.
1. 예수님을 의지하라.
예수님의 중보 사역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이다.
요한복음14:13,14의 말씀을 깊이 숙고하였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2. 죄를 버려라.
시편66:18이다.
“내가 죄를 내 마음에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3. 믿어라.
하나님께서 맹세하신 약속의 말씀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4. 인내로 기도하라.
기도하는 이들은 계속 하나님을 섬기며 기다려야 한다.
5.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라.
경건한 동기를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
요한일서5:14이다.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자신의 뜻을 포기하라. 느낌을 신뢰하지 말라. 성령과 말씀을 바라보라. 환경을 고려하라. 하나님의 뜻을 보여 달라고 기도하라. 결정했을 때 마음이 평온한지 점검하라. 할 수 있는 한 새벽에 기도하라.

시편65:2에 기도의 사람 다윗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

하박국 선지자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그 말씀을 전하던 시기는 국내적으로나 국제 정세가 대단히 어려운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국내적으로는 요시야 왕이 종교개혁 운동이 시작한지 13년이 지나면서 영적인 상황이 상당히 안정된 듯이 보였다.
그러나 국제 정세는 상당한 긴장관계 속에 바뀌어가고 있었다.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가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난 다음, 여기 저기 앗수르 잔군들이 남아있는 상황이었을 때, 애굽왕 바로느고가 앗수르를 공격하기 위하여 먼 길을 진군해 왔다. 그 때 유다의 요시야 왕이 그 애굽의 팔레스틴의 진출을 막기 위하여 므깃도에서 전투를 벌였다가 요시야가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역왕기하 23:29)
애굽의 세력들이 요시야 왕의 대를 이어 여호아하스가 왕을 세웠다가 석달 만에 옥에 가두고, 애굽으로 잡아갔다가 죽었다. 그리고 그 아들 여호야김을 왕으로 세우고, 많은 것을 늑탈하여 갔다. 그리고 여호야김이 왕이 되고 난 다음은 바벨론을 3년 동안 또 섬기다가 배반하자 바벨론이 애굽의 전역을 접수하고 게 되었다. 바벨론이 다시 주변국들을 다 장악해 가는 과정에서 유다는 멸망으로 치닫고 있었다.
더욱이 안타까운 것은 국제 정세가 그렇게 큰 회오리가 불어치고 있는 와중에 국내적으로 왕들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우상숭배에 몰두하였다.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열왕기하23:32, 37, 24:9, 19)

사방을 둘러보아도 여느 쪽으로도 길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영적인 혼란까지 겹쳐서 나라가 구제 불능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던 때였다. 외부적인 강대국들의 압력도 힘에 겨운데, 내부적으로 영적인 혼란까지 겹치면서 백성들은 갈팡질팡하며 어찌할 줄을 알지 못했다. 바로 이 때 하나님 앞에 나가 깊이 기도하며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한 사람이 있었으니 하박국 선지자였다.

지금 우리들이 처해있는 상황이 이보다 덜하지 않지 싶다.
그 동안 우리는 기적 같은 경제성장을 이루어 세계10위권에 진입하는 쾌거를 이루어 냈다.
1. 국내적으로는 그러나 나라 안은 계속되는 양극화를 만들어 진보와 보수 간에 파여진 골은 다시 아물지 못할 만큼 깊이 파이고 말았다.
2.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는 정치에 대한 염증이 지난 지방선거에서 여당의 참패로 수렁에 빠진 여당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가 하면 반대급부로 무조건 야당을 선택했던 국민들은 야당마저 국민의 대안적 희망이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국민들은 좌절을 맛보고 있는 실정이다.
3. 거기다가 그 동안 국가의 안보에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던 한미일 공조의 관계가 단절로 나가면서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고아처럼 되어가면서도, 우리의 안보의 최대의 위협이 되었던 북한과의 관계를 화해의 관계로 만들어 가면 우리끼리 민족공조로 세계와 소원해진 관계에 대한보상을 받지 않을까 생각하였던 그 모든 관계가 깡그리 무너지고 있는듯 한 상황에 접하게 되었다.
4.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내에서는 장마로 여러 지역이 물난리를 겪음으로 수십 명이 생명을 잃고 재산을 잃은 사람들의 신음소리가 하늘을 진동하고 있다.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박국 선지자의 기도가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한지를 생각한다. 선지자는 두 가지 질문을 먼저 하나님께 던지고 있다.
1) “하나님 어찌하여 유다의 죄악을 벌하지 않으십니까?”(1:1-4)
잘못된 나라가 망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나라를 징계해서라도 깨닫게 하시어 돌아오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까? 하는 정말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의 하소연이다. 더욱이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을 지켜보았던 하박국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대한하나님의 대답은 바벨론을 심판의 도구로 예비해 두셨는데, 신속히 팔레스타인으로 이동시킬 것이라고 하셨다.(1:5-11)

북한에 대하여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시작한 후 5년 동안 남북 사업에 투입한 돈이 무려 3조 5800억 원, 그리고 현 정부 3년 반 동안 쏟아 부은 3조 6800억 원, 그리고 민간 차원의 지원도 6200억 원이 넘는다. 그런데 북한 주민들의 생활은 여전히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 반면, 선군정치로 남한의 안보를 든든하게 해주기 위하여 남쪽에서 올려 보낸 돈을 다 군에다 쏟아 부었는지, 군 고위간부들에게 주어지는 혜택은 상상할 수도 없는 호화생활이라는 보도는 우리를 아연실색하게 만들고 있다.
그런데 지금우리는 북한의 핵문제로 불안해해야 하고, 북한이 쏘아올린 미사일 문제로 세계가 북한에게 고운 시선을 보내지 않는 가운데, 비료와 쌀 지원이 안 된다는 이유로 남북관계는 그 동안 마치 순풍에 돛을 단 듯 보이든 관계가 하루아침에 찬바람이 쌩쌩 부는 관계로 뒤집히고 있다.
실로 이것은 북한이 우리와의 관계의 한계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우리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남쪽은 그 동안 보아라. 이 만큼 관계가 발전이 이루어진 것이 얼마나 대단하냐는 식으로 상호 전쟁의 위협도 사라지고, 이젠 주적이라는 개념조차 없애할 정도라고 여겨왔던 관계가 그 동안 쌓아올린 민족공조라는 공들어 만든 탑이 자국의 요구에 응하지 않는다면 한 순간에 모든 탑을 뿌리 채 흔들어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상황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민족의 역사에 동일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북한이 망하기를 바라며 외면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그 동안의 우리가 드려온 기도 때문이다. 1945년 이후 한국교회는 하루도 빠짐없이 남북통일을 위하여 기도하야 왔다. 다시는 전쟁이 없는 평화의 통일을 소원하며 기도하여 왔다. 그리고 북한을 향한 햇볕정책이 시행되면서 가장 적극적으로 앞장서서 북한으로 들어가 구제활동을 한 단체들 가운데 적지 않은 기독교단체들이 있어왔다. 북한을 살리자는 이유 때문이었다. 정권이야 어떻던 북한의 주민들의 실상이 너무 처참하여 돕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여러 단체에서 나서서 도와왔다. 그런데 상황이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 북한의 선군정치는 더욱 막강해 진 듯 보이는데 비해 북한주민들의 생활은 도무지 개선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좌절을 깊이 공감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 우리는 하박국 선지자의 기도를 기억한다.
어찌 저렇게 하는데도 망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망하기를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북한 정권을 잡은 자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손을 대시고 바로 잡아주시기를 기도하는 간절함 마음이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식을 바로 잡기 위해서 매를 드신다. 그러나 그 자식보다 매가 더 귀한 것이 결코 아니라고 하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잘못되는 유다를 하나님은 멸망이라는 뼈아픈 고통으로 다스리시기를 결심하셨다는 것이다. 자식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목적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아픔을 통한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는 자가 복이 있다.  

2) “공의로운 하나님께서 어떻게 더 불의한 갈대아를 들어서 유다를 칠 수 있습니까?”(1:12-2:1) 이에 대한 대답은유다가 자신들의 죄 때문에 징계를 당하는 것처럼 갈대아 역시 그들의 죄 때문에 궁극적으로 심판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북한이 중국의 동북공정에 의하여 중국의 손으로 넘어가야 한다는 것에 대하여는 우리 마음이 흡족하지 않다. 그래서 진퇴양란이다. 6자 회담이 열리면 마치 모든 것이 해결될 것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나 그 동안 몇 차례의 6자회담이 그 문제를해결하지 못한 채 지금 중단되어 있는데 과연 그것이 해결의 최선이 되는 것인가?  

그러면서 이런 상황에서도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권면하였다. 주변의 강대국들이 일어나고 나라의 미래는 풍전등화 같은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바로 이때에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것이다. 세상이 온 통 어두워져버렸는데 믿음의 사람들마저 어둠속으로 침몰되어 버린다면 세상은 소망이 사라지고 만다. 믿음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믿음으로 살아라.”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 베드로 마지막으로 만나고 계셨을 때이다. 예수님이 사랑하는 제자 요한을 보면서 물었다.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있기를 바란다고 한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라 오너라.”(요한복음21:21,22)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우왕좌왕하지 말고 너는 믿음으로 길을 가라 하시는 말씀이다. 언제부터인가 목회자로서의 관심이 상당히 현실화되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사실 교단의 선거제도가 바뀌기를 간절히 바라고 제비뽑기 운동을 시행하기를 호소하고 추진하여왔으나 별로 소득이 없음을 보면서 여간 안타깝지가 않다. 그러면서 솔직히 내 마음 한구석에서는 “너나 잘해라!” 라고 하는 책망의 소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 내 목회의 현장의 사역도 제대로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일에 “대추 놓아라, 밤 놓아라.” 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기도 하다.

감리교세계선교대회에 가서 한 정의로운 목회자를 만났다. 한국기독교교계에 대하여 여간 걱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특히 목회자들의 경건성에 대하여도 상당한 비판적인 안목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계셨다. 맞다. 우리 것에 대한 확신의 결여,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하여 열등감에 싸여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그리고 있는 듯했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현실적인 비판의식은 깨어있는 예언자의 목소리처럼 뜨거웠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잘못을 잘못이라고 일러주어 깨닫게 하고 바로가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이러다간 우리라고 하는 의식조차 무너질 것 같아 걱정이다. 이것저것 싸잡아 비판하고 정죄하고 나면 속이야 시원하겠지만 남는 것은 극도의 절망감과 좌절감 밖에 무엇이 더 남게 될까?  
이제 우리가 서야할 자리에로 다시 돌아와야 할 때이다. 그리고 믿음으로 살면서 자기 자리를 정지가게 지키면서 하박구의 기도를 함께 드려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이 대답을 들은 하박국은 두 가지 기도를 드린다.
1.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3:2)
하박국 선지자의 기도는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라고 드려지고 있다. 여기서 “부흥케 하옵소서” 라는 기도의 의미는“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것을 다시 살려 주옵소서” 라고 하는 의미이다. 국제 정세의 회오리 속에 스스로 또 부패 되어 멸망하여 가는 다의 현실을 염두에 둔 회복을 비는 간절한 기도이다. 솔직히 말하면 유다가 망하는 것이 당연한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회복할 수 있도록 이 수년 내에 회복시켜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나라를 향한 하박국의 애절한 사랑을 표현하며 간절히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 하박국의 기도가 오늘 우리들의 기도가 되어야 할 상황이다. 북한의 상황을 보면 여러 가지 여건이 망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더욱이 우리나라까지 북한에 맞물려들고 있어 심히 걱정스러운 상황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는 북한이 망하기를 바랄 수는 없다. 북한이 망하지 않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우리의 기도가 중요하다. 그 동안 우리가 기도하던 대로 무엇을 주던지 그들이 복음으로 돌아올 수만 있다면 우리는 참을 수 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손에 맡길 수밖에 없다. 여호와여, 이 수년 내에 이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회복의 은혜를 주옵소서.  
국제 정세로 보나 국내 영적인 상황으로 보나 망할 수밖에 없는 현실 조국의 현실을 두고 다시 부흥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고난의 시절로 인하여 나라가 끝나지 아니하고 다시 하나님의 은혜로 일어서게 해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2.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3:2)
하박국의 나라사랑의 기도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비록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시기를 간구하고 있다. 현재의 이 불한한 나라의 상황을 보아서 나라가 바벨론에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손에 들려 있는 심판의 채찍을 보면서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진노 자체를 거두어 달라고 말하기조차 송구스러운 민족의 현실이다. 그러나 그런 상황이지만 나라의 미래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도이다. 이 하박국의 기도를 좀 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주여 마땅히 망해야하겠지만 그러나 진노의 채찍을 때리시는 중에도 자식을 사랑하는 아비의 심정으로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의 사랑을 잊지 말아 주시오.”
멸망이 예정되었던 민족이 하나님의 용서로 회복된 나라들이 있었다.
니느웨가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에 그 보다 먼저 경험한 하나님의 긍휼이다. 포기하려하셨던 하나님께서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을 멸망사키지 않으시고 그들을 구원하셨다.
탕자의 경우도 그러하였다.
아버지의 뜻을 무시하고 재산을 가지고 나가서 다 탕진하고 고생 죽도록 하다가 거지가 되어서 돌아오는 아들, 맡 아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 탕자는 죽어도 싸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아들을 매일같이 밖에 나가 기다리시다가 그가 돌아오자 맨발로 뛰어나가 그를 부둥켜안고 입을 맞추고 옷을 가라 입히고, 가락지를 끼워주고, 신발을 신기고 그를 가리켜 죽었다가 다시 살아온 아들이라고 동네 사람들을 불러다가 큰 잔치를 베풀었다. 이것이 긍휼이다. 하나님의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이다.

동양선교협회의 중국지부장으로 있던 해리우즈(Harry Woods)목사는 중국이 공산화된 후에도 중국교회를 지키기 위하여 얼마동안북경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가 중공인들에게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서서히 느끼기 시작했다. 따라서 그는 출국을 요청했다. 이에 그는 출국시키기를 주저하는 듯한 중공 경찰에 의해 조사를 받았다. 그 때, 우즈 목사는 “나는 중국을 사랑하오. 나는 중국을 위하여 매일 기도하고 있소. 그리고 나는 모택동 주석을 위하여도 매일 기도하고 있소.” 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경찰이 되물었다. “도대체 무슨 기도를 하고 있소?” 우즈 목사는 대답했다. “나는 하나님께서 그를 축복하시고, 그에게 이 거대한 나라를 다스릴 지혜를 주시라고 기도하고 있소.” 그리하여 우즈 목사는 결국 출국을 허락 받았다.

3.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하나님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고, 그 찬송이 세계에 가득하도다.”(3)
“그 광명이 햇빛 같고, 광선이 그 손에서 나오니 그 권능이 그 속에 감취었도다.”(4)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대한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을 읽을 수 있다. 세상의 역사 곧 한 나라의 역사는 주변 강대국에 의하여 좌지우지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역사를 주관하신다. 나라의 흥망성쇠도 하나님이 주관하신다. 심지어 공중에 나른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이 그 생명을 주관하신다. 하나님은 심히 크시고 심히 자상하시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세신바 되셨다고 했다.
하박국 선지자의 기도의 근거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사랑하심을 신뢰하는 믿음이 나라를 향한 기도를 가능하게 한다.
이 하나님이 계시기에 긍휼을 기대하며 기도하는 우리의 기도가 가능한 것이다.

출처/최이우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