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폭을 넓히라   (골 4:2-6)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있으라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
게 열어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 그리하면 내
가 마땅히 할 말로써 이 비밀을 나타내리라 외인에게 대해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골로새서 4장 2-6절)


1. 기도는 성도들의 본분 중에 본분입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기도 없는 신자는 신자일 수 없습니다.
기도는 아무리 강조해도 다함이 없습니다.
성경 말씀에도 ‘항상 기도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보면 우리가 그렇게 항상 기도하지 못하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도 대신 염려, 근심, 걱정, 불안해 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많습니다.


일명 기도는 하나님과 대화라고 합니다.
대화란 나 혼자 말하는 것이 아닌 상대가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 혼자만의 기도는 자기 독백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독백이 아닙니다.
나의 말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그 뜻을 이뤄가는 행위가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내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에 맞추어 살아가는 것
이 신앙생활입니다.
보혜사 성령의 하는 일은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고, 깨닫게 하십니다.


오늘 크리스천들의 기도의 폭이 너무 자기  중심적이 되기 쉽습니다.
자기 중심적이란 하나님의 뜻은 생각지 못하고 자기의 요구사항만 아뢰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다른 종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미신종교에서는 더욱 더 심합니다.
미신 종교에서는 자기 소원만 아뢰는 것이 저들의 기도입니다.
물론 우리의 기도도 먼저는 나의 소원을 아뢰는 것으로 시작되지만, 다음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뜻을 깨달아 알게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도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줄 때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먼저 너희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였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 거기에 나의 소원과 뜻을 맞추어 나가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처음부터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영적 성장과 함께 기도도 달라져야 합니다.
마치 어린 시절에는 부모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고, 자기 것만 주장하고 요구하지만 차차 성장하면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2. 기도의 폭을 넓히면 중보기도(中保祈禱)가 되어집니다.
중보기도란 나만을 위한 기도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나보다 약하고 나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이웃에게 눈길을 돌리게 됩니다.
중보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살피게 됩니다.
중보기도는 자기의 욕심이 배제된 기도이기 때문에, 남을 위한 진지한 기도이기에 기도의 폭이 넓어집니다.


또 중보기도를 통하여 자신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중보기도는 결국 자기에게 축복으로 되돌아옵니다.
중보기도를 할 때 당사자가 믿음으로 수용하지 못하면, 그 기도의 축복이 모두 자기에게 돌아옴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도 이 땅에 계실 때 중보기도를 했습니다.
제자들을 파송하면서 저들에게 이렇게 부탁하였습니다.
어떤 마을에 들어서든지, 또 어떤 집에 들어서든지 먼저 그 마을과 그 집을 위하여 기도해 주라고 하였습니다.
만일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다 너희에게 돌아온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교회의 목사님이 기도의 영역을 넓히라고 설교를 했습니다.
평소에 신앙생활을 열심히 잘 하는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특별 새벽기도회를 실시했는데, 이 청년은 매일 열심히 자신을 위하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혼기가 넘친 이 처녀는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제게 좋은 남자를 만나게 해 주십시오’
‘금년에는 꼭 결혼하도록 신랑감을 보내 주~시옵소서’
너무나 간절하게 기도하는 모습을 목사님이 보았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이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기다렸다가 그 처녀를 불러서 조용하게 말해 주었습니다.
‘너의 기도는 너무 자신만을 위하는 기도이니 좀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를 해 보라, 그러면 너의 기도의 응답이 있을지 모른다’
이 말을 들은 처녀는 다음 날부터 이렇게 기도를 바꾸었습니다.
‘하나님! 제 부모님에게 정말로 좋은 사위가 필요합니다.
저희 부모님을 위해서 근사하고 멋있는 사위를 보내 주~시옵소서’ 라고....


3. 기도의 폭이 넓혀지는 것만큼 은혜의 폭도 넓혀집니다.
① 중보기도를 하면 그 얼굴 모습이 달라집니다.
스데반은 돌 탕에 맞으면서도 주님과 같은 중보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럴 때 그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 처럼 빛났습니다.
‘주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라고 기도할 때, 그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처럼 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얼굴들을 한번 처다 보기 바랍니다.
나의 얼굴에서 어떤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습니까?
아직도 혈기의 사람,
아직도 세상 욕심의 얼굴,
아직도 불안, 염려, 근심으로 차 있는 얼굴이라면, 중보기도를 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얼굴에서 광채가 나기위해서는 중보의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중보기도자는 원수까지도 기도하는 중에 불쌍하게 여기게 됩니다.
핍박하던 남편도 회개시킵니다.
가난했던 가정들이 살 길이 열려집니다.  


② 중보기도를 하면 죽을 병에서도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게 됩니다.
한경직 목사님이나, 김정준 목사님도 다 폐결핵으로 소망이 없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기적적으로 고침을 받고 주의 종으로 큰 역사를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중보기도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김정준 목사님은 마산 결핵요양소에서 자기 보다 더 심한 환자들이 쏟아내는 피를 다 닦아 주면서 기도했더니, 죽을 병동에서 다시 살아난 병동으로 옮기게 되었다는 간증을 기록한 것을 보았습니다.
자기 병만 고쳐달라고 기도하는 것 보다, 자기 보다 더 심한 환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였더니 자기 병이 나았다는 말입니다.
오늘부터 우리의 기도의 폭이 이렇게 점점 더 넓혀지기를 바랍니다.


③ 또 중보기도를 하면 하나님 앞에 담대해 집니다.
우리의 기도가 왜 힘이 없어지느냐?
자기의 것만 구하기 때문입니다.
기도자가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중보기도를 하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담대해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무엇을 달라고 요구하지 않음으로 하나님 앞에서도 담대해집니다.
그런 가운데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런 가운데 역사의 변화를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우리가 세상사에서도 보면 자기의 문제를 위해 돈을 달라면 비굴해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공공문제나, 사회복지 차원의 것을 위하여 남들에게 도와 달라는 것은 떳떳해 지는 것과 같습니다.


어느 농촌 교회를 시무하는 전도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열악한 농촌교회니 한 교회뿐 아니라 두 세 곳을 맡아 주일 설교를 돌아가면서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주일이 되어 교회를 향해 가는데, 그 교회는 나루를 건너야 갈 수 있는 교회이었습니다.
배는 건너 편에 있었기에 그 쪽에서 사람을 싣고 와야 다시 건너갈 수 있는 상태이었습니다. 예배 시간은 가까워오고 초조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몸이 불편한 장애자가 옆에 왔습니다.
그를 본 전도사님은 기도해 줄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기도해 주기 시작하였습니다. ‘주여! 저를 불쌍히 여겨 고쳐 주시옵소서’
얼마나 열심히 기도했던지 배가 와서 다시 떠나려는 참이었습니다.
배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였습니다.
허겁지겁 배에 오르려다가 그만 발이 미끄러져 넘어졌습니다.
옷이 다 젖었습니다.
젖은 채로 배에 올라서면서 혼자 말로 이렇게 중얼 거렸습니다.
‘하나님! 꼴 좋수다! 당신의 종이 기도하다가 이게 무슨 꼴입니까?’
‘당신 망신이지, 내 망신 아닙니다’
‘이런 꼴로 어떻게 강단에 서서 설교를 하랍니까?’ 그러면서 교회에 도착하였습니다.
교인들이 보니 물에 젖은 전도사님을 보고 발을 동동 구르는데, 그 날 마침 서울에서 친척집에 왔던 교인이 농촌 목회자의 모습을 보고는 당장 자기의 옷으로 갈아입혀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예배가 끝난 후 양복 한 벌 값을 지불해 주었습니다.
이것은 전혀 상상도 못했던 일입니다.
중보기도 하는 주의 종을 본 하나님은, 좋은 양복 한 벌 얻게 하기 위하여 물에 잠시 빠뜨렸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중보기도자들이 누리는 은혜입니다.
그 전도사님은 후에 목사가 되어 목회를 잘 하다가 은퇴하였습니다.
중보기도를 하면 하나님은 도리어 중보기도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 모두 금년에는 중보기도자들이 되어 새로운 변화를 체험하는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출처/김이봉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