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교회  (행 2:42 - 47)


지상에 있는 교회는 두 종류로 대별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다운 교회와 교회답지 못한 교회입니다. 교회답다는 것은 교회의 본질을 지키는 교회를 말하고 교회답지 못하다는 것은 교회의 본질에서 벗어난 교회를 말합니다.
교회의 본질이란 신학적 명제이기 때문에 한마디로 이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다운 교회가 어떤 교회이며 그 교회가 지니는 특성들이 무엇인가를 초대교회를 통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초대교회 모습 속에서 몇 가지 원리를 찾아보겠습니다.

1. 교회는 주님이 세우셨습니다.

마태복음 16:18을 보면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고 했습니다. 주님이 세우셨다는 것은 교회의 주인이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뜻입니다.
천주교는 교회의 주인을 교황으로 보고 있습니다. 교황이 베드로로부터 천국열쇠를 부여받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적 해석이 아닙니다. 통일교는 문선명 교주를 하나님으로 받들고 교회의 주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도도 예수 이름으로 하지 않고 "참 부모님 이름으로 합니다. "라고 말합니다.
이단 종파나 사이비 집단일수록 교회의 주권을 그리스도에게 두지 않고 사람에게 둡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전체 교회 수를 4만 교회로 봅니다. 전 세계 기독교인수는 브리태니커에 의하면 17억으로 봅니다.
교회숫자가 수천만개가 넘고 거기 모이는 사람의 숫자가 수십 억을 넘는다해도 교회를 세우신 주인은 한 분입니다.
사람이 주인 노릇 하는 교회 치고 건전한 교회도 없고 부흥하는 교회도 없고 평안한 교회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인이 되시는 교회는 평안하고 행복하고 부흥합니다. 이유는 교인모두가 "우리는 주님의 종입니다. "라고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이 주인이 되시는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아담과 하와의 가정을 파괴했습니다. 마귀는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를 우상숭배와 불신앙 풍조를 일으켜 무너지게 만들었습니다. 마귀는 베드로를 넘어뜨리고 예수를 세 번씩이나 부인하게 했습니다.
마귀는 오늘도 그 여세를 몰아 교회를 파괴하기 위해 파상공세를 펴고 있습니다. 신학을 가장해서, 사회정의를 가장해서, 교회개혁을 가장해서, 교회를 공격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는 음부의 권세나 사단의 권세가 넘어뜨릴 수도 없고 해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만들고 세운 교파나 선교단체는 없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영원합니다. 교회의 뿌리는 에덴동산 아담과 하와의 가정교회로부터 시작됩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이어지는 족장교회를 거쳐 이스라엘 민족 교회로 그리고 오늘의 교회로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동독이 공산화되면서 교회마다 출입문에 못질을 했습니다. 러시아도 70년 동안 교회를 폐쇄 했습니다. 북한도 전시용으로 두 군데만 보이는 교회를 세워 놓았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죽지 않습니다. 문빗장은 걸 수 있고 철장을 칠 수는 있겠지만 교회 자체를 죽일 수는 없습니다. 왜냐면 교회는 살아 숨쉬는 공동체이며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2. 회개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사도행전 2:37 - 38을 보면 베드로가 모인 사람들에게 설교를 했습니다. 그 설교를 듣고난 사람들이 "마음에 찔려 우리가 어찌할꼬 "라고 고백했고 그들에게 베드로는 "너희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계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리라 " 고 했습니다.
교회는 죄없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닙니다. 교회 역시 죄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인데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죄를 회개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누구나 다 죄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죄를 회개한 사람이 있고 회개하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는 자기 죄를 낱낱이 드러내 놓고 회개한 사람들이 모여 죄 사함 받고 그 감격으로 주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입니다.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작곡가 슈베르트는 호주머니의 돈이 떨어지면 주머니를 밖으로 뒤집은 바지를 창밖에 걸어 두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나는 주머니가 비었다, 돈이 떨어졌다는 표시였다고 합니다.
기독교인은 하나님 앞에 있는 그대로 다 드러내 놓아야 합니다. 감출 것도 없고 숨길 것도 없습니다. 슈베르트 주머니처럼 그 속내를 다 드러내야 합니다.
회개하면 용서받고 새 사람이 됩니다만 숨기고 감추면 버림받고 맙니다.
회개란 돌아서는 것입니다. 방향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고 목적을 바꿔서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회개란 떠난 사람이 돌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 진리를 떠난 사람이 진리에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3. 성령 받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사도행전 1:5을 보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 고 했던 1:8을 보면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 이라고 했습니다.
2:4을 보면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라고 했고 2:33을 보면 "성령을 부어 주셨다 " 고 했습니다. 그리고 2:38을 보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의 다른 별명은 '성령행전 '입니다. 초대교회의 성령 충만했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령 충만했던 초대교회 교인들의 생활이 어떠했는가를 2:42이하가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 성숙한 교제가 시작되었습니다. 42절을 보면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 라고했고 44절을 보면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46절을 보면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 라고 했습니다.
날마다 한마음으로 모이고 만났습니다. 모이면 떡을 떼고 물건을 통용했습니다.
사도행전 4:32을 보면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 고 했습니다.
사회학자들은 초대교회의 이러한 생활태도를 원시 기독교 공산주의였다고 평합니다. 그러나 70년 동안 세계를 석권했던 공산주의는 무산대중, 노동자, 빈민계층은 더 가난하게 만들었고 권력을 가진 자들끼리 부를 독식하고 나눠먹는 제도를 답습했기 때
문에 결국 벽에 부딪쳐 망하고 만 것입니다.
모일수록 좋고 만날수록 좋고 주고싶고 나누고 싶은 마음은 성령 충만할 때 가능합니다.
사람의 감정은 상할 수도 있고 기분 따라 좌우됩니다. 어제는 친하고 오늘은 친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한 사람은 변덕부리지 않습니다. 영국 격언에 "새 친구를 사귀라 그러나 옛친구를 버리지 말라, 새 친구가 은이라면 옛 친구는 금이 된다 " 라는 것이 있습니다.
둘째 기쁨이 넘쳤습니다.
46절을 보면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 라고 했고 47절을 보면 "하나님을 찬미하며 "라고 했습니다.
악령을 받으면 불안하고 기쁨이 없어집니다. 안면 근육이 경직되고 심령이 강팍해집니다. 그래서 기쁨이 없어지고 찬송이 사라집니다. 어느날 부턴가 밥맛이 없고 불면증으로 시달리고 체중이 줄고 머리가 날마다 무거운 증상이 일어난다면 빨리 건강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신체 어느 부분이 이상이 생겼다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부터인가 말씀의 맛이 떨어지고 기쁨이 사라지고 찬송이 죽고 기도가 죽었다면 그것은 그 영혼이 병들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성령 충만하면 기쁨이 넘칩니다. 찬송이 회복됩니다. 영적 건강상태는 외적 현상으로도 부분진단이 가능합니다.
찬송 부를 때 멍하니 천정이나 건너편 바라보고 앉아있는 사람, 설교시간에 하품하고 졸고있는 사람, 기도할 때 아멘 못하는 사람, 그들은 영적 무관심이거나 탈진상태일 것입니다.
성령 받은 초대 교인들은 기뻤습니다. 찬송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기쁨과 찬송을 회복합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술을 많이 마신다고 합니다. 양주 소비량도 세계제일이라고 합니다. IMF이후 술 소비량이 더 증가되었는데 술 마시는 이유 중에 제일 많은 것이 "속상해서 " 라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속상해서 술 마셨는데 상한 속이 치료되기는커녕 더 속이 쓰리고 아파서 약을 먹고 병원 신세지는 사람의 숫자가 많아 졌다는 것입니다.
술을 제아무리 많이 마셔도 상한감정을 치유하지 못합니다.
어떤 주부가 남편과 심한 부부싸움 끝에 집을 뛰쳐나와 친정으로 갔습니다. 친정도 하루이틀이지 계속 머물 수는 없었습니다. 혼자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함께 강원도 바닷가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겨울바다, 그런대로 운치가 있고 멋이 있었습니다.
그 날 오후부터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뉴스에선 대관령 길이 막혀 교통이 두절됐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집엔 어떻게 가지? 애들은? 그리고 남편은? 난이게 뭐람, 집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남편이 받았습니
다. "여보 미안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길 뚤리면 바로 집에 갈께요 " 남편은 경상도 사나이입니다. "니 지금 어딧노? 미쳤나? 내가 니더러 집나가랬나? 용서고 나발이고 나 니 보고싶다. 빨랑 들어오거래이. " 그녀는 그 말에 엉엉 울었습니다. 상처받고 집떠났던 어느 주부의 고백이었습니다.
상한감정, 깊은 상처가 어떻게 치유됩니까? 성령 받고 기쁨과 찬송을 회복해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그런 교회였습니다.
오늘은 충신교회가 청파동에서 창립된지 44주년 되는 주일입니다. 대한민국 4만 교회가운데 평범한 하나의 교회로 머물수도 있고 위대한 교회로 할수도 웅비있습니다. 그런 교회가 되려면 초대교회가 지녔던 원천적 요소들을 확인하고 지녀야 합니다.
주님께 교회주인자리를 내드립시다. 회개하고 경건한 삶을 회복합시다. 성령 받고 잃었던 기쁨과 감격과 감사와 찬송을 회복합시다. 그리하여 위대한 교회를 지켜나갑시다.
아멘

출처/박종순목사 설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