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다스리심   (사무엘상 5:1~5)


블레셋 하면 골리앗이 생각납니다. 골리앗이 이스라엘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지만 다윗의 물 멧돌에 쓰러진 역사를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블레셋은 300년 이상 이스라엘을 아주 괴롭게 한 족속입니다.

사무엘상 4장을 보면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아벡이라는 지역에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전투에서 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 패해 군사 4천명이 죽습니다. 이 전쟁의 패인이 법궤를 전쟁터에 가지고 오지 않았기 때문에 전쟁에서 졌다고 판단 실로에서 법궤를 가져다가 아벡 전투 전장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전쟁을 벌였는데 이번 전쟁에서는 이스라엘 군사 3만명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법궤까지도 블레셋에게 빼앗겼습니다.

법궤를 가져왔음에도 블레셋 군대가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더나아가 블레셋은 성소까지 다 짓밟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신이라고 여기는 법궤까지도 자기들이 빼앗아다 자기들의 다곤 신전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곤 신전에 법궤를 가져다 놓았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다곤이라는 신이 그냥 엎드러져 법궤 앞에 코를 박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날은 다곤 신이 떨어지면서 목이 부러지고 양 손과 양 발이 부러졌습니다. 부러진 목과 손과 발은 문지방에 걸쳐있어서 지금도 블레셋 사람들이 다곤 신전 문지방을 넘지 않는다고 합니다.

블레셋은 이스라엘을 완전히 이기고 이스라엘 신까지 빼앗고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제 세상이 자기 마음대로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기 마음대로 될 줄 알았던 세상이 뒤죽박죽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궤를 다곤 신전 선반에 갖다놓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여호와의 법궤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하듯이 블레셋도 때를 따라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면 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엉망이 된 것입니다.

유럽 개신교회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독일이라든가 스위스를 가보면 왜 교회들이 연약해지고 있는가를 한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 유럽인들은자기 신상명세서 쓸 때 종교를 기독교라고 쓰지만 평상시에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모님 장례식 때나 자녀 결혼식 때는 꼭 교회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교회라는 창고 선반 위에 딱 얹어 놓았다가 결혼식이 있을 때 선반에서 예수님을 꺼내 오고 다시선반 위에 가져다 놓았다가 장례식이 일어나면 선반에서 예수님 꺼내 놓고 “우리 장례식 인도해 주십시오.” 하면서도 자기들이 크리스챤이라고 생각합니다. 블레셋도 똑같았던 것입니다. 법궤를 갖다 다곤 신전 선반 위에 얹어 놓고서 전쟁이 일어나면 이스라엘백성이 법궤를 가져다놓고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듯이 전쟁나면 법궤 가져다가 전쟁터에 가져다놓을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성공하면 모든 것이 다 자기 뜻대로 될 줄 생각합니다. 너도 내 마음대로, 당신도 내 마음대로, 하나님도 내 마음대로 될 줄 생각합니다. 이것은 블레셋이 법궤를 빼앗아다가 자기들 다곤 신전에 가져다 놓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리 마음대로 하려는 것은 불신이고 절대로 안되는 것입니다. 인간 마음대로 이랬다 저랬다 할 수 있는 하나님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느냐? 사무엘상 6장에 보면 법궤를 블레셋한테 빼앗겼다가, 법궤가 다시 가드로 갔다가, 오벧에돔의 집에 있다가, 예루살렘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문화가 조금 발달되었다고 수레를 새로 만들고, 젖나는 암소 둘을 세우고 법궤를 수레에 실고서 앞에는 아효가 서고 뒤에는 웃사가 섰습니다.

이와같은 방법으로 법궤를 옮기는데 나곤의 타작마당에 들어갔더니 소가 펄쩍펄쩍 뛰었고 소가 펄쩍펄쩍 뛰니까 수레에 있던 법궤가 바닥으로 떨어질 것 같아서 웃사가 법궤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그 즉시로 웃사가 죽었습니다. 다윗이 그것을 보고 ‘베레스웃사’라 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치명적인 실수를 깨닫게 됩니다. 법궤는 사람의 어깨로 옮겨야 됩니다. 그것도 제사장들이 어깨로 옮겨야 하는 것이 법궤입니다. 법궤는 인간의 기계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몸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 것입니까? 말로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몸으로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데 말로 섬기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로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몸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 몸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섬기는 방법은 하나님 말씀대로 섬겨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너희 몸을 산 제물로 바치라”고 했습니다. 말을 바치라는 것이 아니라 분명 너희 몸을 바치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어떻게 나아가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아 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갈 수 없습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것입니다. 십자가 없이는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갈 수 없습니다.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고난 받으신 것입니다. 이 은혜와, 이 사랑을 깨닫고 나도 십자가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 없이는 주님께 나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까? 내 몸으로 순종하며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내 몫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을 바르게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대로 선반에 놓았다 내렸다 할 수 있는 하나님이 결코 아닙니다. 아무쪼록 성도 여러분들 우리 주님을 몸으로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순종함으로 섬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고 내 몫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시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강용규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