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처사 (약혼1)

마1:18-21       342,339.344


성도는 모든 일을 신중하게 행하고, 특히 중요한 문제일수록 서두르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한다. 본문은 마리아에 대한 요셉의 현명한 처사를 가르친다.



1. 주의 뜻을 물어야 한다.
정혼자의 부정에 관한 문제로 주의 뜻을 묻는다는 것은 기도의 권위를 손상시키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더러 있을지 모른다. 결흔과 같은 인륜지 대사를 앞두고 발생한 문제들을 처리하기 위해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기도하는 것 뿐이다. 먼저 주의 뜻을 일아야만 행동 방향을 올바르게 잘을 수 있다.



2.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
요셉이 마리아와의 관계를 가만히 끊으려 했던 것은 마리아의 입장을 고려한 신중한 처사였다. 우리는 흔히상대방의 입장은 안중에도 두지 않고 자신의 입장만 내세우려는 경향이 있다. 조속히 버려야 할 이기심이다.?입장이 중요하다면 상대방의 입장도 중요함을 알아 신중히 처리하는 지혜를 배우도록 해야 하겠다.



3. 자신의 부족힘옳 인정해야 한다
상대방의 허물이 확연히 드러나게 되면 근엄한 얼굴로 정죄하려 드는 사람들이 많은데. 주를 경외하는 성도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그의 허물을 덮어 주도록 힘써야 한다.  마치 자기 자신은 완전하기라도 한 것처 처세하려는 사람은 사람은 위선으로 가득찬 표리분동한 사람이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주의뜻을 묻고 남을 먼저 생각하고 자신의 부족을 인정해야 한다.





의무에 충실하라  (약혼2)
창24:63-65            379,370.372



자신의 의무를 소흘히 하는 사람은 훌륭하다는 평가를 내릴 수가 없다. 본문은 이삭과 리브가의 만남을 통해서 의무의 중요성에 관하여 교훈해 준다.



1. 주께 대한 의무틀 다해야 한다.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서 묵상한 것은 그의 경건 생활의 일면을 잘 보여준다. 모든 사람은 주께 대한 의무를 지고 있으며. 이에 충실할 때 을바른 인간 관계의 유지도 가능하게 된다. 일이 많고 시간을 내기가 어려워도 성도들은 항상 주께 대한 자신의 의무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이에 충실하도록 힘쌔야 하겠다.



2. 주의 명히신 질서에 순복해야 한다.
리브가는 눈을 들어 이삭을 바라보고 약대에서 내렸다. 현대의 여성 운동가들 중에는 그의 이러한 행동을 불만스럽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주께서 명하신 가정의 질서는 조화를 위해서 필요불가결한 것이므로 시대의 변천과 관계없이 순복해야만 하겠다. 아내들의 남천에 대한 복종은 창조 질서에 의한 하나님의 통치 방법이다.



3. 때가 되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리브가가 이삭을 보고 면박을 취하여 스스로 가리운 행위는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교훈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소중한 것일수록 귀하게 간직할 줄 알먼서도 유독 남녀관계만큼은 서두르는 경향이 있어서 사회 문제로까지비화되었다. 때가 되기까지 기다리는 지혜를 성도들만이라도 가져야 하겠다.
성도의 의무는 통치를 받고 창조 질서에 따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정을 이루는데 있다.





리브가의 약혼   (약혼-3)
창24:57-70             286.287.288



약흔이나 결혼은 누구에게 있어서나 성스러운 예식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생에 단 한 번 분인 것으로받아 들이고 있다. 이는 우리에게 몇 가지를 교훈해 준다.



1. 주의 뜻에 복종하였다.
리브가는 얼굴 한 번 본 일이 없는 사람임에도 이삭과 결혼하는 것이 주의 뜻임을 알고 묵묵히 좇기로 결심했다. 주의 뜻에 대해 인간이 취할 치상의 태도는 복종뿐이다. 이의를 제기하거나 불만을 터뜨리는 것은 올바른 일이라 할 수가 없다. 어떤 이들외 주의 뜻을 선별적으로 좇는 것은 합당치 못하다.



2. 패물과 의복을 선물로 받았다.
리브가는 약흔 선물로 금은의 패물과 의복들을 받았다. 약흔식을 고급 호텔에서 지나칠 정도로 화려하게 치르는 것은 옳지 않지만 신부에게 선물을 주는 것은 과소비라 할 수는 없타. 분에 넘치게 해서는 안되지만 신랑이 신부에게 약혼 선물을 주는 것이 옳다.



3. 시일을 지체치 아니하였다.
리브가는 주의 뜻을 알고 난 후에 시일을 지체치 아니하고 신속히 행했다. 모든 일에는 우선 순위라는게 있게 마련인데 우리가 가장 먼저 힘써야 할 일은 주의 뜻이다. 결흔 문제도 주의 뜻인줄 알거든 조건을 따지지말고 신속히 행하는 것이 옳고 합당하다. 또한 모든 절차를 은혜롭게 하도록 힘써야 하겠다.그리스도인의 약혼은 주의 뜻에 따라 결정하며, 덕을 세우며 행래야 한다.





아름다운 웨딩 마치  (약혼-4)
잠15:22-24              28,286.287


배우자를 선택하는 문제나 그밖에 결혼에 수반되는 모든 문제들을 경솔히 취급함이 없도록 주의 해야 힌다. 본문에서 결흔에 대해 큰 교훈을 한다.



1. 독신주의에 대해 경고한다.
최근들어 독신으로 살기를 고집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그들이 결흔을 거부하는 이유는 여러지일 것이나 주를 위해 자신을 드리기로 서원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하나님의 질서에 대한 도전이다. 성년이 되면 결흔을 하는 것이 순리이며, 모든 사람은 이 순리에 따르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다.



2. 결흔은 축복이다.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라는 말은 결흔이 얼마나 복되고 영괌스러운 일인가를 입중해 준다. 때문에 결혼 적령기의 남녀는 결흔을 하는데 특별한 하자가 없는한 이 축복을 누리도록 해야하겠다. 가정은 하나님 나라의 축소판임을 깨달아 행복한 삶을 누려야 하겠다.



3. 결흔을 귀히 여겨야 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결혼만 약속하면 동거를 시작하는 경우들이 허다한데 이는 결혼을 경시하는 그릇된 풍조요 죄악이다. 여건이 맞지 않으면 좀 기다렸다가 결혼을 한후에 함께 사는 것이 순리이다. 무슨 일이든지 성급하게 시작하면 많은 시행 착오가 빛어지게 마련임을 명심해야 하겠다.
결혼은 창조질서에 합당하므로 영광과 축복된 일로써 귀중하게 여기자.





남편의 의무 (결혼-1)
말2:14-16    434,28,287



두 사람이 결혼하여 하나의 가정을 이루게 되면 서로에 대한 의무가 주어지게 마련이며, 각자가 이 의무에충실할 때 원만한 가정, 행복한 가정이 되게 된다.



1, 결혼 서약에 충실해야 한다.
사람이 약속을 하고도 쉽게 망각하거나 잘 지키지 않는 것들이 세례시의 서약, 임직시의 서약. 그리고 결흔 서약 등이다. 가장 귀한 서약들을 쉽게 잊어 버린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서약 내용을 주께서 기억하심을 명심하여 이를 잊어버리거나 파기함이 얽도록 주의해야 하겠다.



2, 궤사를 행치 말아야 한다.
가부장제의 사회 환경예서는 여자들이 불이익을 당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것은 하나님의 법칙에 어긋나는 일이다. 주안에서는 남녀가 평등하므로 성도들은 여자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모순된 일이 있마서는 안된다. 행복한 가정을 위해서 서로의 마음을 열어 진실을 나누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3, 이혼이나 학대를 금해야 한다.
여권이 상당히 신장되었다고 보는 오늘날에는 매맞는 아내들이 있다는 말은 선뜻 납득이 가지 않으나 부인할수 없는 현실이다.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야 여러 가지 변을 늘어 놓겠지만 성도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이를 금하도록 해야 한다. 이혼이나 학대는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는 오만한 행동임을 알아야다.
남펀의 의무는 결흔 서약한 대로 이행하며 궤사와 이혼이나 학대를 금해야 할 것이다.




가나의 결혼 축제
요2:1-11         28.500,287


가나의 혼인 잔치는 유대에서 행해졌던 일반 혼인 잔치이나 주께서 기적의 포도주를 사람들이 마셨다는 점에 있어서 독특하다.



1, 하나님이 선물하신 최대의 축제이다.
결혼 제도는 인위적인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므로 혼인 잔치야말로 지상 최대의 축제라고 할수 있다. 따라서 음식을 만들어 잔치를 베푸는 것은 허비가 아니라 마땅한 일이다. 다만 그 정도가 지나쳐서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것은 자체가 필요하지만 잔치의 의미는 충분히 살리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다.



2, 모든 시람과 함께 즐거워해야 한다.
잔치에는 하객이 있게 마련이며, 그들이 특별히 선별된 사람들이어서는 안된다. 친척과 친구들을 비롯하여 근방에 거주하는 이웃들이 모두 모여서 즐거움을 나누는 축제가 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위층의 영향력있는 사람들만 불러서 자신의 위치를 과시하려는 태도는 진정한 결흔 축제의 의미와 거리가 멀다.



3,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셔야 한다.
가나의 혼인 잔치는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셨으므로 기쁨이 더해졌다. 이상적인 결흔이라 할 지라도 그리스도를 제외하면 행복할 수가 없다. 따라서 성도들은 결흔의 모든일에 있어서 세상 풍속을 좇지 말고 주의 뜻을 따르도록 해야 하겠다. 주님이 축복하시는 부부라야 이상적인 한 쌍인 것이다.
가나의 혼인 잔치는 하나님이 주신 최대의 선물이며, 사람과 함께 즐거워해야 한다.





결혼과 경건   (결혼-3)
고전7:32-34        404,286,287



결혼하기 전에는 열심으로 주를 섬기던 사람들이 결혼 후에는 차츰 식어져서 구경꾼이 되는 경들듣을 우리는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1, 세상을 좇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결혼을 한 후 가정에 대한 책임감이라는 미명 아래 세상을 좇아서 행하게 될 구실이 생기는데. 이를 경계해
야 한다. 덫이란 걸리면 빠져 나오기가 립지 않으므로 걸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해 있어서 근본적으로 악하기 때문에 세상을 좇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대적이 되게 된다.



2, 가정이 우상이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신흔 부부들이 빠지기 쉬운 마귀의 함정이 바로 가정이라는 우상이다. 주의 일보다 남펀의 일이 더 우선 순위에 놓여지고, 주의 명령보다 남편이나 아내의 말이 더 가깝게 느껴지기 시작하면 그들의 영적 상태는 매우 심각하게 병들어 가는 것이다. 따라서 성도들은 언제든지 주의 말씀과 주의 일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3, 자신을 거룩히 하도록 힘써야 한다.
이 세상은 우리를 더럽게 하는 악한 요소들로 가득차 있기 때문에 부단히 노력하고 애써야만 이에 물들지 않게 된다. 아무리 특별한 사람도 불의와 짝하면 주의 기업에서 제외되므로 성도들은 모든 불의에처 떠나 주의 뜻을 좇도록 힘써야 하겠다. 축복된 결혼이 불행으로 결실되는 것은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
결혼 후 세상을 좇지 않고 주의 말씀따라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현모양처의 길  (결혼-4)
잠31:10-29      457,458,460



여자가 결혼해서 현모가 되고 양처가 된다는 것은 더이상 바랄수 없는 행복인데, 그 길이 결코 쉽지가 않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1, 근면하고 성실해야 한다.
사람이 제 몫을 다하려면 근면과 성실은 필수적이다. 탁월한 능력을 소유한 사람일지라도 근면함과 성실성이 없으면 자기 자리를 제대로 지킬 수가 없다. 아내의 길, 어머니의 길은 더욱 그러하다. 현숙한 어머니가 되고 총은 아내가 되려면 부지런해야 함은 물론 성실해야 한다. 모든 일에서 성실해야 한다.



2, 선행을 힘써야 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서로 도와야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셨다. 때문게 모든 사람이 이기십파 탐욕을 버릴 때 우리 사회가 보다 더 밝아지게 마련이다. 특별히 선행을 위해 주 안에서 새로 지으심을 받은 우리 성도들은 시류를 좇지 말고 선을 행하도록 힘써야 하겠다. 내가 뿌린 선행의 씨앗을 다른 사람이 거두게 되는 법은 없다.

3,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


현모양처가 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주를 경외하는 자가 지혜를 따라서 행하고, 주를 경외하는 자가 불의를 멀리하는 법이다. 따라서 남편과 자녀들의 미래를 참으로 염려하고 좋은 아내. 좋은 어머니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다른 무엇보다도 경건의 훈련을 힘쓰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사람은 근면하고 선행에 힘쓰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이다.




신성한 결흔 제도 (결혼-5)
창 2 : 21-25     28.286,287

모든 제도와 규례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주께서 세우신 것이요. 하나는 사람이 만든 것이다. 성격적 결흔제도는 어떤 것일까?

1. 서로에 대한 중요성을 인정해야 한다.
주께서 결혼 제도를 만드신 것은 서로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흔을 하고 부부가 된 사람들은 서로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서로를 귀하게 여기도록 힘쓰는 것이 필요하다. 부부가 서로 중요한 사람. 귀한 사람으로 인정될 때 원만한 부부 관계가 유지되고 행복한 가정이 이뤄지게 마련이다.

2, 일치와 조화를 위해서 노려해야 한다
둘이 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은 완벽한 일치. 완벽한 조화를 의미하며, 이를 위해서는 서로간의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오케스트라가 완벽한 연주를 하기 위해 많은 시간 동안 연습을 하듯이, 부부 간에도 충분한 시간을 갖고 대화를 나누며 이견을 좁혀서 일치와 조화를 이루도륵 힘러야만 화목한 가정이 되는 법이다.

3. 주례자가 하나님이심을 인정해야 한다.
아담과 하와의 결혼은 하니님의 주례 하에서 이루어졌다. 우리의 결혼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주 앞에서 행한 서약을 파기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겠다. 이흔이나 측첩 행위. 일부다처, 성적 타락으로 인한 탈선으로 주께 행한 서약을 고의적으로 파기해서는 아니되겠다.
부부는 하나님이 주신 사람으로 인정하며 연합된 공동체로서 살아야 한다.




한 몸됨의 신비  (결혼-6)
(마 19 : 5-6)      21.28.276

한 몸이 된다는 것은 가정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자신들의 자리를 찾아 정착해야 하고, 일치와 조화를 위해 자아를 끊임없이 죽여야 한다.

1, 결흔 제도의 신성함을 교훈함.
결혼은 서로 좋아하는 두 사람이 결합하는 단순한 인간적인 의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드신 신성한 제도이다 따라서 모든사람은 이 제도를 귀히 여기고 순결을 지키도록 힘액야 한다. 혼인을 서약한 사이라 할지라도 서로 세워주며 지켜주며 질서에 따라 행동해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2, 일부다처제의 부당함을 교훈한다
구약 시대에 흔히 볼 수 있었던 일부다처제는 하나님이 정하신 결혼 제도에 위배되는 것이므로 우리는 이를 정당화하거나 현대에 접목시키려고 시도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에서 아담의 배필로 주신 여성은 하와 한 사람뿐이다. 그러므로 일부다처제의 부당함을 명심해야 한다.

3, 이흔제도의 부패성을 교훈한다
율법은 음행의 경우 아내를 내어버리는 것을 허용하고 있는데, 이는 인간의 완악함 때문에 만들어진 제도이다. 물론 여자가 불륜의 관계를 맺는다든가 합당치 못한 일을 한다는 것은 을지 못한 일이지만. 여타한 일로 주께서 명하신 제도를 파기하는 것도 칭찬 받을 일은 되지 못함을 깨달아야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결혼-7)
(엡 5 : 22-37)    286.511.411
부부가 권리를 주장하기 전에 의무를 이행하는 지혜를 배을 때 부부사이는 보다 더 원만해질 것이다. 본문은 서로의 의무에 관해 언급한다.

1, 아내의 의무는 남편에 대한 복종 .
부부라는 공동체 안에는 남편과 아내의 위치가 있다. 아내의 위치는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다. 이는 물론 남펀의 부당한 명령까지도 복종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질서상 남펀의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며. 남펀을 주관하려는 태도는 옳지 못함을 교훈해 준다.

2, 남편의 의무는 아내에 대한 사랑
공평하신 하나님은 아내들에게 분만 아니라 남펀들에게도 의무를 주셨는데, 그것은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내를 사랑하되 주게서 교회를 위해 목숨을 버리신 것처럼 사랑하라고 하신다. 따라서 사랑이 없는 남편은 아무리 외적 조건들을 충족시켜 준다 할지라도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3, 둘이 아니라 하나됨을 기억해야 함.
결혼을 해서 부부가 된 사람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이기적인 생각들을 버리도록 해야 한다. 조금섹만 서로 양보하고. 조금만 더 생각할 시간을 갖는다면 이견을 좁히는 것이나 마찰을 해소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신의 입장만 내세우기 때문에 불행한 일들이 야기되는 법이다.
부부는 서로 복종하며 사랑하므로 한몸을 이루는 가정이 되어야 한다.




이상적인 부부상   (결혼-8)
[시 128 : 1-4)     512,28.287
부부상에는 이상형이란 가장 바람직한 부부를 일컫는 것으로 우리 성도들도 이와 같아걱야 한다. 본문은 이상적인 부부상의 제 조건들에 관괘 언급하고 있다.

1, 주의 말씀을 좇아서 행하는 부부
주의 말씀은 모든 사람을 성공과 승리로 이끌어 주는 유일한 노정기가 되기 때문에 이상적인 부부가 되고자하는 사람들은 먼저 주의 말씀을 좇아서 행하도록 힘써야만 하겠다. 주를 소외하는 사람들은 행복의 뿌리를 스스로 캐내어 버린 것과도 같아서 인위적으로 아무리 노력할지라도 참된 행복을 맛볼 수가 없게 된다.

2, 주께서 헝통케 하시는 부부.
요셉은 노예로 애굽에 팔려 갔음에도 주께서 형통케 하심으로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었다. 환경이나 여건이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오인으로 작용하지는 못한다. 물고기가 물을 거슬러서 올라가듯이 목표를 향해 악조건과 싸우면서 나아가는 것이 인생임을 알고 주를 의뢰하도록 힘써야 하겠다.

3, 후대가 복을 받는 부부.
부모의 죄가 자녀들에게 전가되지는 않을지라도 부모가 심은 선행의 씨앗들은 후대에게 풍성한 열매를 가져다
준다. 따라서 이상적인 부부란 후대가 복을 받도륵 좋은 씨앗을 많이 뿌리는 부부를 가리키며. 우리 모두가 이와 같이 되도록 힘써야 하겠다. 복이란 행위에 따르는 하나님의 상급이다.
주께서 원하시는 가정은주의 말씀을 좇아서 그의 법대로 행하는 가정이다.




  지속된 결혼 생활 (은혼-1)                    
(엡5:31-33)           286.287,288

성도들은 부부의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해로하는 부부들에게는 이 지혜가 있었으므로 위기의 극복이 가능했다.

1, 남편의 지속적인 사랑.
아무리 퍼댈지라도 마르지 않는 샘물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이라는 샘이다. 남편이 권태기를 극복할 수 있는 완전한 첩경은 아내에 대한 지속적이고 변함없는 사랑이며. 이것을 가진 사람들이 금흔식의 축복에 참예할 특권을 부여 받았다. 아내와의 백년해로를 원하는 남편들은 변함없이 아내를 사랑하도록 힘쓰라!              

2, 아내의 지속적인 존경
공산주의를 동경하는 사람들은 이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린다. 아내된 자들이 남펀에 대한 권태기를 극복하는 확실한 길은 지속적인 존경의 마음을 갖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에게서 염증을 느낀다거나 권태로움을 느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3, 주께 대한 외경심
결혼 생활의 원만함과 지속을 위해서 두 사람이 함께 힘써야 할 일은 주를 경외하는 것이다. 주께 대한 경외심은 제여건의 부족한 부분들을 보충하기에 넉넉하다.   따라서 해로를 원하는 부부들은 경건한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힘써야 하겠다. 힘쓰는 사람만이 원하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부부생활은 끊임없는 서로의 사랑과 주님에 대한 경외심으로 이룩될 수 있다.





금흔외 축복 (금혼-1)            
(름 12 : 10-11)      f 488,489.458

결흔한지 채 한 돌도 되기 전에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는 사람들이 급중하는 요즘 은혼식을 맞고 금흔식을 맞는다는 것은 엄청난 축7기요 특권이 아닐 수 없다.

1,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한 결과이다.
성도들은 부부 간의 해로를 위해 서로 노력하고 애써야 한다. 특별히 서로 존경하기를 먼저 하도록 힘쓰자. 아내는 남편을. 남펀은 아내를 그리할 때 부부 사이에 금이 갈 수가 없다. 사회적인 위치라든가 신분에 관계없이 두 사람을 이어주는 고리는 존경임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2, 자기 직무에 최선을 다한 결과이다
부부가 평생을 해로하며 아름다운 노년을 맞을 수 있는 것은 서로가 자기 직무에 최선을 다한 결과이다. 남펀은 남펀으로서, 아내는 아내로서의 직무에 충실했으므로 모든 갈등을 극복하고 오늘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의무를 소흘히 할 때 부부 간의 문제가 심화됨을 명심해야 한다.

3,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긴 결과이다
부부간의 해로를 인해 무엇보다도 먼저 감사하고 영광을 돌려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주께서 생명과 건강을 지컥주셨으므로 해로가 가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건강 관리를 위한 본인들의 배려나 자녀들의 효심보다 하나님의 은줴가 우선 순위임을 알고 백년해로를 원하는 모든 부부듣은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자.
금흔의 축복은 존경하기를 먼저 하며 자기 직무에 최선을 다하며 열심으로 주를 섬긴 결과이다.              





함께 사는 길  (은혼-2)                          
(창 26 : 12-13)      f 453.495,499                  
부부란 매우 특별한 관계로 맺어진 사람들로서 즐거움과 괴로움을 함께 나누며 인생의 여정을 함께 가는 유일한 동반자이다 .  

1, 주께서 놀라운 축복글 주셨다                        
이삭이 농사하여 백 배나 얻었다는 것은 노력의 대가보다 넘치는 분량을 주께서 주셨다는 말이다. 이것은 이삭 한 사람만의 수고외 결과가 아니라 리브가의 땀의 결실이기도 하다. 아담과 하와를 비룻하여 성경에 언급된 모든 부부들에게서 우리는 이것을 보게 된다. 부부간의 해로 또한 두 사람에 대한 주의 축복이다          

2,의로운 자에게 주어지는 삼귿이 있다.                
이삭의 창대함은 의로운 자들에게 주시는 주의 상급을 교훈해 준다. 의를 좇아 행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들은 이 세계에서도 다른 사람들이 누리지 못하는 특권을 부여 받게 되는 법이다. 은혼이나 금혼의 기쁨 역시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또상의 기준은 철두철미 행위에 근거됨을 명심해야 하겠다.
                              

3, 내세의 기업에 대한 보증이 있다.
이삭이 주께 받은 엄청난 축복은 성도가 내세에 받게 될 기업의 확실성을 보증해 준다. 남펀만 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 아내도 받게 될 영광의 기업을 위해 동일한 믿음으로 보조를 같이 하도록 힘써야 하겠다. 최고의 같진 금술은 경건생활의 동반자가 되는 것이다.
부부가해로하는 것은 주의 축복이며 상급이며 기업의 보증이다.  





주께 영광을 (금혼-2)
(수 14 : 17-11)     f 44,46,49
바울은 일생 동안 복음 사역을 위해 정열의 불꽃을 태웠던 사람인데, 그는 이 모든 것이 주의 은줴로 말미암았다고 고백함으로 영광을 주넘께 돌렸다.

1, 주께서 장수의 복을 주셨다.
부부 사이에 금술이 아무리 좋고 해로하기를 간절히 원할지라도 주께서 장수의 복을 주지 않으시면 불가능하게 된다. 갈렙이,자기와 함께 했던 모든 사람들이 황야에서 죽었음에도.약속의 땅을 밟을 수 있었음은 주께서 장수의 복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해로를 한 부부듣은 모든 영광을 주께 돌려야 한다.

2, 주께서 건강의 복을 주셨다.
갈렙은 팔십 오 세의 고령이었음에도 애굽을 떠나던 당시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기력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 이는 모두 주의 축복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건강을 잃으면 해로하기가 어렵게 되며. 병석에서 맞는 금흔식이나 은흔식은 축제의 성격을 완고 만다. 건강을 지켜 주신 주께 감사해야 하겠다.

3, 주께서 화평의 복을 주셨다.
어려움과 고난의 생애 가운데서도 은흔식이나 금흔식을 맞았다는 것은 주께서 화펑의 복을 주신 결과이다. 인위적인 여건들이 충족되었을지라도 주께서 지켜주지 않으신다면 평화가 지속되기란 어려운 일이다. 주님 나라이르기까지 화평한 가정이 이뤄지도록 주께 대한 신뢰를 더욱 견고히 해야 하겠다.
장수의 복과 건강과 화평의 복을 주셨으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





힘써 싸우라  (회갑-1)                      
(딤후 4 : 7-8)       f 384,393,397      
성도의 싸움은 어떤 것인가? 본문은 위대한 승리자 바울이 노년에 기록한 회고록이며, 우리에게 몇 가지를 교훈하여 준다.  

1, 인생의 싸움.
사람에게는 반드시 싸워야만 할 불가피한 싸움이 있다. 이것은 인생의 목적지를 가로막는 장애물이기 때문에  싸움을 포기하는 것은 곧 목적지를 포기하는 것과도 같아서 반드시 싸워야만 하는데, 바울은 우리의 싸움이  선한 싸움이라고 말해 준다. 따라서 성도들은 일생 동안 전장에 임하는 군사의 자세로 살아야 한다.

2, 성도의 고난.
바울은 자신의 달려갈 길을 마치기까지 숱한 고난을 경험한 사람이었다. 특별한 은사와 소명이 있다고 고난이 피해가는게 아니다. 오히려 은사가 귀할 수록 고난의  강도도 큼을 알아 고난에 을바르게 대처하는 법을 배우도록 해야 하겠다. 고난이 따르지 않는 신앙, 어려움의 요소가 배제된 경건에는 반드시 문제가 있다.        

3 . 주님의 상급.
바울은 자신이 주님께로부터 받게 될 상급에 관해 확신하고 있었다. 그만큼 주의 뜻을 좇아서 충실했음을 보여준다. 주의 보상 기준은 행위에 근거된다. 즉 일한대로 갚아 주시는 것이다. 따라서 주님의 상급을 원하는 사람들은 주어진 기회를 십분 활용 좋은 열매들을 내도록 힘써야 하겠다.  
성도는 구별된 백성으로써 영적으로 싸우며 하나님의  상급만을 바라며 살아야 한다.





백발의 영화 (한갑-2)      
(잠 16: 31,20: 27)    f 399.400.401
늙는 것은 신앙적으로 인격적으로 성숙해지는 단계이며, 주님 나라에 가까워지는 단계이기도 하기 때문에  슬퍼하는 대신 기뻐하고 감사함이 마땅하다.

1, 의를 행해야 한다.
사람은 루군나 늙게 되어 있다. 마음이야 항상 젊을수도 있겠지만, 몸이 늙어가는 것은 아무도 퍼할 수 없는 질서요 조화이다. 때문에 우리의 하루 하루를 의라는 내용으로 채워가도록 힘쓸 것이 요구된다. 늙는다는 것은 그만큼 이 땅에서의 생을 마감할 날이 가까움을 뜻하기 때문에 기회를 잃기 전에 의를 행하자.

2, 행위에 따르는 주의 보상이 있다.
주의 보상은 각자의 행위에 근거하므로 가장 공정하다.  모든 사람은 자기가 일한 대로 받게 되어 있기 때문에 불펑의 여지가 도무지 있을 수 없다. 죄를 멀리하고 선과 의를 행하도록 힘쓰자. 이 세계에서의 영광은 잠시 뿐이다. 이를 위해 영원을 포기하는 어리석음을 범치 않도록 주의해야 하겠다.

3, 백발의 영화로움을 간직하자.
백발의 영화란 의의 길로 달음질한 사람들에계 주어지는 영광스런 칭호이다. 죄와 더불어 사는 사람들은 그 백발이 영화로을 수가 없다. 우리의 하루 하루를 거룩함으로 채워서 우리의 백발의 자녀들에게 영광스러운 무엇보다도 주의 은혜에 감사하기를 잊어서는 안된다.
백발은 하나님이 주는 영광이므로 삶을 의롭고 경건한 생활로 장식하자.





새 힘을 얻으라  (한갑-3)  
(사 40 : 78-31)             394.390.389  
그리스도인들의 생애는 주의 주시는 특별한 은혜로 말미암아 일반적인 현상들을 충분히 극복해 나갈 수가  있다.                                              

1, 주의 전능하심 .
하나님은 능력이 심히 크셔서 인간의 필설로 올바르게 표현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분이시다. 그분은 자신의 뜻을 행하심에 있어서 아무나 아무것의 제한을 받는 일도 없으시다. 무엇이든지 주께서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성취된다. 따라서 성도들은 주의 말씀, 주의 약속을 온전 히 신뢰하고 그 안에서 행하도록 힘써야 하겠다.      

2, 참된 능력의 원천 .  
주께서 새 힘을 주신다는 말은 참된 능력의 원천이 주께 있음을 중거한다 성도가 성도다움을 유지하고, 교회가 교회다움을 유지하는 비결은 인위적인 어떤 요인들로 인함이 아니라 주의 능력의 역사로 말미암은 것임을 알아 항상 검손함 가운데서 행하도록 힘써야 하겠다.  

3, 주를 의지하는 자의 축복 .  
주를 의지한다는 것은 심리학적인 관점에서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 교제의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따라서 주를 의지하는 자들이 얻게 될 새 힘이란 담력이나 그  밖에 심리적 작용에 의한 인위적인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공급괴시는 영적 능력이다. 성도들은 주 님 올때까지 이 능력을 소유하도록 힘써야 하겠다.    
성도는 하나님만 의지하며 주께서 주시는 힘을 공급받으며 살아야 한다.





욥의 경건   (회갑·진갑-4)    
(욥 1 : 20-22)                f 404.408.409

노년기에 접어든 사람들은 욥이 겪은 고난의 의미와 인내의 아픔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본문은 공경 중에서 욥이 보여준 경건을 언급하고 있다.

1, 고난 중에도 주께 감사하였다.
일이 잘되고 어려움이 없을 때 주께 감사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일이 안되고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할 때 주께 감사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때문에 참된 신앙은, 곤경 가운데서 빛나게 되는 법이다. 욥은 필설로 다할 수 없는 극심한 곤경 가운데서도 주께 감사했으며. 주께 영광을 돌렸다.

2, 주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였다.
욥은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이 주께로 말미암은 줄 알고 묵묵히 순종했다.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것만 순종하고 원치 않는 것들에 대해서는 의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적지않게 있는데 올바르지 못한 태도이다. 주의 뜻은 무조건적인 순종을 요구했다.

3, 죄와 불의를 멀리하였다 .
욥은 까닭없이 맞는 매를 인하여 원망이나 불펑을 터뜨릴 수도 있었을 터인데, 오히려 주를 찬송했다. 곤경은 우리로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을무가 되기 쉬운데 이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시작을 잘했으면 끝도 좋아야 한다. 주님 나라에 이르기까지 주와 동일한 보조를 취하는 것이 성도의 본분이다.
성도는 고난중에도 감사하며 순종하며 죄와 불의에서 멀리해야 한다.                                            





견고히 서리라  (회갑-5)
(시92:12-l5)           377.40e,402

함정과 올무가 많고 대적하는 자들이 많은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할 성도들에게는 견고한 보장이 절실하게 요
구되는데, 본문은 이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1 의인은 번영한다.
의인은 번성할 뿐만 아니라 강하다. 비록 그들이 세상에서 핍박과 고난을 당하는 경우들도 많이 있지만 그들의 부리가 뽑히거나 가지가 꺽이는 일이란 도무지 없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펀에 계셔서 그들을 보호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악인의 형통이 잠시 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의를 행하도록 힘써야 하겠다.

2, 노년은 영광스럼다.
사람이 늙으면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들이 허다하나 경건한 사람들이 노년은 풍족하고 영광스럽다. 바울이 증거했듯이 겉 사람은 후패하지만 속은 날로 새로워지기 때문이다. 인간의 아름다움은 외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웃ㄱ한 신앙과 인격에 있음을 명심하고 진정한 미를 가꾸도록 힘서야 하겠다.

3, 인생은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
높고 규모가 큰 건물일수록 기초가 견고해야 하듯이 인생도 기초가 견고해야 실패함이 없게 된다. 의인이 늙어서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한 까닭은 그들의 인생 뿌리가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기초가 되시는 인새은 영원토록 견고하여 흔들림이 엇으며 실해하게 되는 법이 도무지 없음을 알아야 한다.
의인은 하나님의 보호아래 있으므로 견고하여 영광스러움이 들어난다.





갈햅의 기업  (환갑-6)
(수 14 : 9-12)    534,535,539

갈렙은 여호수아와 함께 하나님의 특별하신 축복에 참예한 사람이었다. 불의를 좇는 자의 장수는 욕이 되
지만 경건한 자의 장수는 복이 됨을 잘 보여준다.

1 , 주를 졸는 자는 복이 있다
주를 좇는 길. 경건한 삶에는 적지 않은 어려움들이 따르는게 사실이다.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되었던 바울의 생애는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걸어야 할 험난한 길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잇다. 하지만 이 길은 영광의 길이다. 우리의 인생은길고 또 전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길인 것이다.

2 주의 익속은 확실하다
갈렙이 나이가 많음에도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고 약속의 땅을 보게 된 것은 주의 약속이 확실함과 불변함을 잘 입증해 준다. 순전히 인간적인 관점에서만 평가한다면 우리 약속들 중에는 수용하기 힘든 것들이 많이 있지만. 믿음으로 수용하는 자가 거기 참예하는 축복을 누리게 된다.

3, 성도가 잇게 될 영광의 기업이 있다
갈렙이 상속받은 가나안의 기업은 성도가 잇게 될 영광의 기덥에 관해 교훈헤 준다. 그 나라는 순종하는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고 힘써서 싸우는 사람들만 기업을 dlyrp 된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굴러 들언ㅇ오는 것이 아님을 명심하고 우리의 모든 시간들을 그 나라를 위해서 아낌없이 사용하여 잘 사용토록 힘T서야 하게TEk.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대로 사는 자는 천국을 기업으로 얻게 된다.





보장된 미래  (한갑-7)
시84 : 9-12)               541.542,543

누구에게 있어서나 현재의 풍요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래에의 소망이다. 본문은 경건한 성도들의 보장된 미래에 관해 언급하고 잇다.

1 . 주의 보호가 있어야 한다.
주 안에 있는 경건한 성도들은 살든지 죽든지 그리고 자신의 생애 가운데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든지 항상 주의 보호 아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모든 두려움을 극복하도록 해야 하겠다. 주는 자신의 소유를 안전하게 지키시며 원수들에게 빼앗기는 법이 없으시다(요10:28-29)

2,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0마 한다.
성도는 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아 주께 속한 특별한 사람들이므로 세상과 구별
된 삶을 살도록 힘써야 한다. 세속을 좇아 행하거나 세상과 짝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하나님을 향해 등을 돌리는 것이며 자신에게 부여된 특별한 축복의 기회를 스스로 포기해 버리는 것이다.

3 . 소망 통해 즐거워해야 한다
성도의 삶 가운데서 특징적인 요소들 중의 하나는 소망을 인하여 즐거워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소망이 확실하
고 견고하다면 현실적인 곤난이나 역경으로 인해 슬퍼 한다든가 좌절하는 것이 온당치가 못하다. 바울은 감당하기 힘든 고난의 와중에서도 이 기쁨을 잃지 않았다.
주의 백성은 그의 보호하심과 소망중에 즐거워하며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영광을 위한 디딤돌  (한갑-8)
(시91 : 14-16)                13.21,36

유대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매우 특별한 위치를 부여 받았음에도 실패한 까닭은 디딤돌을 잘못 선택했기 때문이다.

1, 주를 사랑해야 한다
우리가 받은 여러 계명들 가운데서 가장 큰 것은 주를 사랑하는 것이며 주께 대한 사랑의 구체적인 표현을 주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아무도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영광의 기업에 참예함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 나라를 사모하는 모든 사람은 마음과 뜻과 힘과 정성을 다하여 주를 사랑하도록 힘써야 하겠다.

2, 영적 지식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영혼의 지식이다. 학문이 많고 지혜가 Eenldjsks 사람도 영혼의 지식이 없으면 실패하게 될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의 지식은 저명한 신학자들의 저술 속에서 찾게되는 것이 아니다. 성경 연구와 성려의 도우심만이 이를 가능하게 해주낟.

3, 주께 긴구해야 한다.
기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연결괸 진정한 능력의 통로이다. 따라서 기도를 경시하거나 기도 생활을 소홀리 하는 사람들은 영적 건강을 우지할 수 없음은 물론 영광의 기업을 잇게 되지도 못한다. 그 나라가 rkRK이 다가올수록 우리에게 더욱 적실하게 요망되는 것은 경건한 기도 생활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주를 믿고, 그를 알아가며 통치를 받는자이다.





  죽음이 문밖에서 있을 때
  (살전 4 : 13-18)   165.168.289                  
임종은 우리 인생에게 있어서 가장 엄숙하고도 가장 중요한 순간이므로 조금도 낙심할 필요가 없이 조용히 그리고 확신 가운데 서서 그것을 맞이해야 한다.      

1, 가장 위대한 순간.                              
어떤 사람은 죽음에 대한 공포중에서 도저히 헤어날 수 없어 낙심천만한 가운데 있고 또한 그 죽음을 모면하기 위하여 얼굴을 찡그리고 악을 쓰면서 고통스런 표정을 짓는 경우도 있다1 하지만. 믿는 우리는 복된 생애를 다 청산하고 천국에 간다는 확신으로 오히려 그것을 감사하면서 주님의 영접을 받는 가장 위대한 순간이다.    

2. 새 생활의 출발.                                    
믿는 자의 임종은 임종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로 도약하는 위대한 삶의 새로운 전기임을 명심해야 하겠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임증 때 부를 찬송과 기도로 언제나 연습하고 준비해 두어야 한다.  

3. 마귀 권세를 물리치 때 .                          
내세에 대한 소망이 불투명해질 때 마귀의 유혹은 더욱 커진다. 하지만 예수님을 굳게 붙잡고 그를 의지하는 자들은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여서도 오히려 초연해 지며, 마귀의 권세를물리치고, 숭리와기쁨과구속을 찬양할 수 있다. 그러므로 천국71 대한 확실한 소망으로    
마귀의 권세를 물리쳐야 한다.  
죽음은 약속된 하나님 나라 입성이므로 엄숙하고 확신있게 맞이해야 한다.  





사망율 이기는 능력                  
(고전 15 : 55-57)     152,222.289
인간에게 죽음이란 달갑지 않는 불청객이다. 이것은 우리의 공동체 안에 찾아와 마음을 한껏 흔들어 놓곤 한다. 그러면 이 죽음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1, 죽음의 본질 .
모든 생명체는 죽음을 증오하는데. 그러면 이 죽음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것은 죄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 역사하는 인류 최대의 원수이다. 하지만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 죽음을 이기고 부활의 영광을 맛볼 수 있다. 때문에 믿는 자에게 이 죽음은 더 이상 원수일 수가 없다. 오히려 이것은 평안한 안식의 길로 인도하는 앞잡이가 될 뿐이다.

2 . 죽음을 이기는 힘 .
이것은, "우리 주 라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에 의해서 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죽음을 맛보셨지만. 죽음이 그를 억류할 수 없자. 그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그를 믿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생명의 원천이 되셨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이 땅에서 죽음이 와도 당황하거나 떨지않고 담담히 그것을 기다리며 환영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로버트 눈톤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 '나는 가노라, 저 영광의 세계로, 죄여, 이제는 안녕, 죽음이여,
이제는 안녕"이라고 외쳤다. 실로 죽음을 정복한 자만이 이 땅에서 가치있는 삶을 살았다고 할 것이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성도의 부활이므로 사망을 이기는 것이다.





선한 목자되신 주님                
(시23:3-6)          444,453,476

하나님은 우리의 어떠한 정황 가운데서도 언제나 선한 목자가 되어 주신다. 그는 항상 우리를 푸른 목장. 잔잔한 시냈가로 인도하신다.                        
1, 사망의 음침한 곯짜기에서 보호하신다.            
이 성도는 한 평생을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받으면서 살아왔다. 오늘까지 인도해 주신 그 하나님께서는 이제 사망의 음침한 골각기에서도 능히 인도해 주실 것이다. 여기 참석한 우리 모두도 잔잔한 물가, 푸른 초장으로  인도해 주실 것이다. 주님의 강한 능력의 팔은 어떠한  원수 마귀외 권세도 물리칠 수 있으시기 때문이다.    

2,  여호와의 집으로 인도하신다.                    
우리의 영원한 인도자가 되신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영혼을 소생시키실 뿐만 아니라 그를 하나님의 영원한 집으로 인도하신다. 그의 인도와 보호는 잠시 잠깐 동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스런 나라에 오를 때까지 안전하게 보호하시고 인도하신다.              

3, 영원히 거하게 하신다.                          
이 땅에 사는 나그네는 잠시 잠깐 거하다가 거처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만 한다. 돈이 많아 좋은 집을 소유했다 해도 그 집은 나의 영원한 소유가 될 수 없다. 쉽게 말해 그것은 임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해 놓으신 집은 영원히 거할 수 있는 집이다.
하나님은 성도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시고, 한 천국을 기업으로 주셨다.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임종-4)              
(빌1:20-24)       231.471.474

바울은 네로의 죄수가 되어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인해 그 모든 고퉁도 다 이기며 승리하였다.

1, 죽음은 현세의 모든 악을 제거해 준다.
세상에 얽매인 자들은 많은 갈등과 시련을 당하기 마련이다. 왜 그런가? 그들은 세상의 유행 따라 이리저리 방황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땅 위에 있는 보화를 사랑하며 이것을 구하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해 있지 않기에 주어진 삶을 값있게 살다가 조용히 죽음을 맞이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죽음도 오히려 유익한 것이 된다.

2, 죽음은 고통과 슬픔에서 해방시켜 준다.
이 땅 위에는 언제나 슬픔과 고통의 한숨 소리가 그칠날이 없다. 음산한 거문고의 소리가 우리를 괴롭히고 우리를 심란하게 한다. 그러나 죽음 저 너머 저쪽 나라에 가면 밤도 없고 어둠도 없고 죄도 없다.

3, 죽음은 그리스도의 존전으로 인도한다.
그리스도는 십자가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약속하셨다. 그는 죽음의 관문을 통과하여 영광스런 낙원을 선물로 받았던 것이다. 그를 믿는 성도는 현세에서 끊임없이 고통을 다 당하였지만 장차 낙원을 선물로 받는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오히려 찬송을 돌려야 한다.
하나님의자녀는 부름을 받아 갈곳이 천ㄱ국이므로 엄숙하고 조용하게 감사함으로 맞이해야 할 것이다.





두 종류의 집  (입관-1)
(고후 5 : 1-10)     272,541,545

신자는 이 땅에 살고 있지만 장차 하늘 나라를 유업으로 이어 받을 자이다. 그래서 이 땅 위의 집과 하나님 나라의 집 즉 두 집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1, 장막집 .
하나님의 말씀은 땅에 있는 우리의 집 곧 이 땅의 삶이 '장막집'에 불과하다고 말씀하신다. 이 장막집은 야외에 다 치는 천막집을 가리킨다. 이것은 언제든지 이동하기 쉽게 만든 간이 집이다. 이것은 언제든지 거두기 쉽게 지은 집이므로 내구성이 전혀 없다. 우리가 학위에 소유하고 있는 집이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이것은 역시 장막집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가 이 땅을 떠날 때 이것은 모두 없어지고 아무 의미도 지니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2, 영원한 집 .
이 땅 위의 장막집과 반대되는 집은 곧 영원한 집이다. 그것은 하늘 나라에 있는 것인데. 그것이 하늘로부터 우리에게로 와서 우리를 덧입게 하는 것이다. 고인은 한평생을 살면서 이 하늘 나라에 있는 집을 사모하고 열망했다. 그는 이제 그토록 사모하던 집을 가기 위해 이 장막집을 떠나려 하고 있다. 잠시 후면 그는 그곳을 가기 위해 조용히 관 속에 들어가게 된다. 이것을 지켜보는 우리는 슬퍼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진지하고도 엄숙하게 바라보며, 앞으로 그가 거주할 영원한 집이 있음을 확신하자.
성도는 약속된 천국의 집이 있으므로 사모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주 안에서 자는 자의 복 (입관-2)
(살전 4 : 13-18)     165,291,545
본문에 자는 자리는 표현이 세 번, 쓱은 자라는 표현이 한번 나오는데, 특히 주 안에서 잠자는 자의 누릴 복락에 대해 강조되고 있다.

1, 영원히 깨는 복
주 안에서 자는 자만이 영원히 깨는 복락에 참여할 수있다. 이 땅에서 아무리 부귀 영화에 심취해 있을지라도 주님을 모르면 영원히 어두움 가운데 헤메일 것이며 사망과 흑암이 지배하는 곳에 들어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주님 안에 있는 자는 살아서는 물론이고 죽어서도 영원허 깨는 복을 받게 될 것이다.

2, 부촬에 침메하는 복.
본문에서 예수 안에서 자는 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산다는 말씀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사셨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고, 성도는 예수넘과 연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재림하실 때 모든 성도는 부활의 영광스런 몸을 입게 될 것이다.

3, 위로힘을 받게 되는 복.
오늘 본문의 말씀은. "소망 없는 다른 이아 같이 슬퍼하지 않게"하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우리는 죽음 이후의 영광과 안위를 보기 때문에 멸망당할 자와 같이 더 이상 슬퍼할 필요가 없다. 오늘 고인의 영광을 마응 속에 그려보며 우리 또한 위로를 받을 수 있음을 기억하자. 성도의 죽음은 영원히 사는 부딸의 복이므로 큰 위로와 소망을 갖게한다.





그리스도의 인의 죽음  (입관-3)
(롬 14 ; 7-9)          293.531,534

바울은 믿는 자들에게 권면의 말을 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위하여 살아야 할 유일한 대상은 오직 그리스도뿐이라고 선포하였다.

1. 이웃을 섬기는 삶.
그리스도인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이웃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한다. 이웃의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해서라면 거기에 따르는 회생이 어떠한 것이라도 그리스도인은 그것을 감내해야만 한다. 성령에서는 사도들에게 역사하셔서 굻주린 백성들에게 기쁨의 소식을 전하게 하기위해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여행을 하게 하셨다.

2, 그리스도를 섬기는 앎.
그리스도인외 목적은 그가 행하고 말하는 모든 것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사적인 생활에서 분만 아니라 공적인 생활에서도 밝히 표명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성도의 삶은 그리스도의 삶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보고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도 하고 하나닙의 영광을 가리기도 한다.

3. 죽을을 예비한 삶.
신자의 삶은 죽음을 잘 예비하는 데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오늘 고인된 OOO 성도는 죽음을 잘 예비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살았을 때 이웃을 위해. 주님을 위해 사는 삶으로 초지일관하였다. 이제 그는 펀안히 예비된 천국의 복락에 참예하게 될 것이다.
성도의 죽음은 이웃과 주님을 섬기며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야 한다.





성도가 얻을 안식   (입관-4)
(시7 : 13-17)  222,225,476

성도가 이 땅 위의 삶을 살 때 믿음을 지키고 충성된 삶을 살므로쌔 받는 복락은 무엇인가? 그것은 여러 가지 이겠지만. 본문에서는 안식을 얻으리라고 하였다.

1,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신다.
하나님의 장막 속에 있는 성도는 펀안한 안식을 누릴 것이다. 이는 마치 뜨거운 사막을 여행하는 나그네가 시원한 오아시스를 만나 그 곳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과 같다. 성도는 현생에서 얼마나 많은 고난 가운대서 방황했던가! 하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안식의 장악을 두르심으로서 위로와 안식을 공급해 주신다. 여기에서 성도는 영원한 안7과 위로를 얻게 된다.

2, 그들의 목자장이 되신다.
주님은 자신을 믿는 성도들의 대 목자장이 되선서, 그들을 영원한 생명 강가로 인도하시고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공급하신다. 고윽ㅂㅂ하신다.  이 EKd 위에 있는 지도자는 한결같이 흠이 많고 불완전하지만 주님만은 의로우시고 완전하셔서 결단코 실패하지 않으신다. 그는 또한 사랑이 풍성하신 분이시기에 고통ㅇ의눈물을 씻어 주시고 위로와 안위의 말씀을 들려주신다. 구분 안에 참 평화와 기쁨이 있다.

현생의 삶을 사는 성도는 언제나 찬바람이 휘몰아 치고 흔들리는 불안한 세상 가운데 처해 있다. 피러나 이러한 삶 속떼서도 고인은 믿음을 지키고 천국의 빛나는 소망을 바라보면서 충성, 헌신된 삶을 살았다. 그러므로 고인이 누릴 천국의 영광과 안위는 지극히 크다고 아니할 수 없다.





  길이 살겠네   (발인-1)    
  고전 IS : 50-58          f 221,289.364  

고인은 그동안 고통도 많았고 수고도 많았던 이 세상의 삶이었지만 주님께서 예비하신 그 복락의 나라로 가게 되었다. 그는 영원한 안식에 들어간 것이다.        

1, 발인식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환송의이다.
김활난 박사는 죽으면서 내 죽는 장례식은 환송의 의식이 되게 해 달라고 유언했다. 그는 세상을 마지막으로  정리하면서. "길이 살겠네 나 길이 살겠네 저 생명 시냇가에 살겠네"라고 믿음의 찬송을 불렀다. 여기에 참석한 모든 분들도 주님이 오라 부르실 때 이 찬송을 힘
있게 부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2, 발인식은 경건해야만 한다.                                  
오늘 고인은 장지고 향하여 거기에 묻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의식은 거룩하고 경건해야 한다. 유족들은 혈육의 정으로는 섭섭한 마음 금할 수가 없겠지만 그 고인이 얻을 영윈한 생명의 면류관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위로를 받고 오히려 찬송을 불러야 할 것이  
다. 왜냐하면 천국이 파속됐기 때문이다              

3 . 발인식은 소망을 주어야 한다 .                  
발인식에 참여한 모든 조객은 고인의 발인을 보면서 우리가 사는 이땅의 생은 유한하여서 누구나 한번은 죽는 것이지만 그러나 죽음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영원한 세계가 있는 것을 깨닫고 소망을 가져야 한다. 육체의 죽음은 끝이 아니고 천국의 영원한 생의 시작이다.  
우리가 장차 갈 그곳은 영원히 살 수 있는 곳이다.    
축복과 기쁨이 언제나 넘치는 그곳이다.





  죽음 저 너머의 삶      (발인-2)            
  (욥 14 : 13-17)          f 168,791,545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다시 살 수 있겠는가 ? 이러한 질문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답변을 얻을 수 있다.

1 . 철학적인 논증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필요한 껏들을 준비해 놓고 계신다. 하나님은 죽음 이후의 생명을 사모하는 자들에게도 만족을 주기 위해 그것을 예비해 놓으셨다. 인간은 거의 대부분이 내세에 대한 소망을 갖고 있다. 문명인이든 야만인이든 그것이 모든 인류들 가운데 실제적으
로 역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의 말씀의 증거
인간 이성과 자연의 빗이 내세에 대한 실제성을 증거해주고 있지만,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그것을 확실허 볼수 없고 다만 회미하게 볼 뿐이다. 이것은 주로 인간의 전적타락에 의해. 고 실체는 볼 수 없고 또 보려고 해도 다른 것으로 비취는데 근거한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그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겠고"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요 11 : 25). 하나님께서는 영광과 존귀와 내세의 영광을 구하기 위해 믿음으로 행하는 모든 자들에게 그대로 갚아주실 것이다.
인간이 죽는 것을 볼 때 죄인이나 예수를 믿는자는 영생을 얻는다. 다만 영생의 질이 다를 뿐이다. 죄인은 영원한 지옥불에서 영벌을 받으면서 영생하는 것이요
의인은 하나님과 함께 영광의 세계에서 기쁨의 영생을 얻는 것이다.                                            





여기가 아니라 저기에      (발인-3)  
(신 12:9-10)       f 232.292,541
우리는 안식을 기대하기 쉬우며, 잠시 후에 썩어 없어질 것에서 만족을 기대하기가 립다. 하지만 요단강 저펀, 천상에 영원한 가나찬이 있다.

1, 여기에는 진정한 만족이 없다
여기에 있는 인생들은 모든 면에서 제한을 받고 있다.  진토에 앉은 거지도, 백만장자도, 평민도, 주권자도 만족을 얻지 못하고 피곤한 삶을 살고 있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못마땅한 듯이 바라보며 보다 더 나은 것을 얻고자 분주하게 허등대고 있다. 그렇기 때문  에 이 땅에는 참 만족이 없다.

2, 이 땅은 멸망되어가고 있다.
전능자께서는 목적에 따라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 목적이 끝났을 때 보다 새로운 목적을 위하여 새 창조를 하실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이 지구는 불에 타 없어지고 하늘은 큰 소리를 내며 떠나갈 것이다. 이로 보아 우리의 영원한 안식은 분명히 여기가 될 수 없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있다.  
3, 하나님은 천국에 살도록 요구하신다
우리가 세상적인 즐거움에 도취되어 제멋대로 살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는 슬퍼하신다. 우리는 분명히 여기가 아니라 천국에 목적을 두고 살아야 한다.  그때 우리의 삶은 보다 고상해지고 거룩해지며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만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제 고인은 여기가 아니라 저기로 가기 위해 출발을 하려 하고 있다. 우리들도 고인과 같이 천국으로 떳떳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겠다





영원한 생명을 향한 열정   (발인-4)
(시91 : 16)        f 220,221.543
불안한 현재와 불안한 미래에 사는 인생이지만. 이땅에서 영원한 생명을 사모하고 그것을 향한 열정을 가진다는 것은 참으로 위대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엄다.

1, 유한한 인생.
세상일은. 공적인 일이든사적인 일이든, 모두시간의 제약을 받고 있다. 오늘 본문은 인간과 인간의 행하는 일들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고 있음을 여러 가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 썰명하고 있다. 이와같이 시간적인 존재인 인간이 그 한계를 극복해 보려고 발버등치며 애써 노력해 보지만 역시 인간은 나약하다.

2, 영원하신 하나님
하지만 히니님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조금도 받지 않으신다. 그는 인간의 상상을 뛰어 넘어 영원 전부터 살아계신 분이시다. 그는 알파와 오메가가 되신 분으로서 시간 세계에 오셔서 영원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신다.

3,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불안한 인생을 사는 인간일지라도 하나님은 그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심어 주셨다. 그런데 인간이 현생에 급급함으로 이것을 바라보지 못하여 더욱 불안한 삶을 살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한계상황의 지배를 받고있는 인간이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품고 있을 때, 영원하신 하늘 나라를 유업으로 물려받게 된다.
죄를 깨달은 인간이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 영생을 사모하도록 은혜를 주셨다.                    





흙 속에 잠들 무렵 (하관-1)
(고전 10 : 1-4)        188,226,291
하나님은 인간의 시조 아담을 만드실 때 흙으로 빛어 만드셨다. 그러므로 인간은 일생동안을 흙과 더붙어 살아가다가 결국에는 다시 흙으로 되돌아 가는 것이다. -

1, 슬픔의 시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지니라"고 말씀하신 대로 모든 인간은 때가 되면 흙으로 되돌아 갈 수 밖에 없는 운명적인 존재인 것이다. 때문에 믿음의 눈으로 이를 지켜보는 자들은 슬퍼만 할 것이 아니라 보다 새로운 세계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하겠다.

2, 부활을 기약함.
주를 믿는 신자으 죽음이 복된 이유는 부활의 새 아침을 기약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자의'죽는다'는 표현은 '잠잔다'라는 표현으로 바꾸어야 온당하다. 불신자들은 육체의 죽음으로 영원한 죽음을 당하고야 말지만, 신자는 육신의 죽음으로 그의 삶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오히려 새로운 삶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3, 영원한 생명세계로의 전이
신자의 죽음은 삶의 종지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에로 들어가는 첫 단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신의 생명을 청산할 때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간세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 갑니다"라고 찬송부를 수 있다. 왜냐하면 천국은 이땅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죽음이 슬픈 일이지만 다시 부활하여 영원한 천국에 가는 것을 감사하자.





축복된 죽음   (하관-3)
(계14:13)   f 233.289.474
고인은 세상의 온갖 모진 풍파와 환난을 당하면서도 맡은 바 소임을 감당하기 위해 충성된 삶을 실아왔다.

1, 모든 수고플 그쳤다
인간은 이 땅에 올 때 수고하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다. 그런데 죄를 짓고난 이후 인간의 수고에는 고통이 뒤따랐고 땀을 흘려야 했다. 그러나 성도가 죽은 후에 가는 천국은 언제나 기쁨과 찬송이 있는 곳이다. 성도는 그곳에서 모든 수고를 다 바치고 주님의 위로를 받을 때지나간 고통을 꿈에 본듯 다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2, 안식을 한다.
이 땅에 안식이란 있을 수 없다. 돈이 많아 세상을 즐기며 산다 해도 마음의 초조와 불안과 고통은 그칠 날이 얼다. 하지만 성도가 그곳에서 얻게될 안식은 가장 완전한 안식이며, 영원한 안식이다. 때문에 성도의 현실의 삶은 영원한 안식의 처소를 향해 나아가는 순례자의 삶에 지나지 않는다.

3, 축복된 삶을 산다.
성도의 죽음이 귀한 것은 이 죽음의 현장에 많은 화환이 둘러쌓여 있기 때문이 아니요 조객이 많이 모여 들었기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성도가 믿음을 갖고 삶을 살았기 때문이며 주 안에서 죽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죽음이야말로 저주가 아닌 복된 죽음이며 피 이후 천국에서 새로운 축복된 삶을 살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성도의 죽음은 모든 수고를 다마치고 영원한 안식에 들어 감으로 축복인 것이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하관-4)
(약 4 : 13-17)      294,531,532

인간은 변화무쌍한 세상 삶을 살면서 여러 가지 시련과 고통으토 인해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 또 어떤 때는 인생이 무엇인가라고 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1, 안개와 같은 인생.
안개는 잠깐 있다가 아침 해가 돋을 때 사라지는 순간적인 것이다. 우리 인생이 바로 이와 같다. 천년만년 살고 지는 것 같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늙고 죽어야만 하는 존재가 우리 인간인 것이다. 안개와 같은 우리 인생일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할 때 보람있고 가치있는 삶을 살게 된다.

2, 인생의 목적
인생이 안개와 같다 할지라도 분명한 목적의식이 있을때 그 인생은 야름다운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목적의식을 정립할 수 있는가?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다. 인간이 이같은 거룩한 목적에 따라 자신의 의무를 수행할 때 결코 실패하는 법이 없는 것이다.

3, 인생의 의무
안개와 같은 인생이라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룩해진 영혼은 이 땅에서 거룩한 의무를 부여받았다 그러므로 이웃을 위해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섬기며 봉사하는 일을 해야 한다. 오늘 우리는 고 OOO 성도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과하여 많은 사람을 주께로 인도하는 성도가 되자.
안개와 같은 인생이지만 예수를 영접한 자는 영원한 삶을 약속받았으며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는 것이다





영생에 대한 열정  (하관-4)
(고후 5 : 4-7)   225,540,544
모든 인생들은 태어나서 각각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길을 미리 알 수가 없으며, 두려움이 깔린 산골짜기의 길을 추측할 수가 없다.

1, 하나의 길.
이 세상에서 인생이 걸어가는 길은 각자가 상이하지만 마침내는 모두가 하나의 길에 귀착된다. 빈부귀천 동서고금 장유노소 모두가 이 한 길로 내려가고 있는 것다. 이 길은 바로 오늘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바와 이 죽음이라는 길이다. 이 길은 어느 누구도 거부할 없고, 두려워하지 않을 순도 없다.

2, 영생의 길 .
인생이 거부 할수 없는 죽음이라 해도, 죽음 이후의 영생의 길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사모할 때, 죽음이 그의 원수일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영생의 길은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께서 선물로 주시는 것이다. 이 길은 간절히 믿음으로 사모하는 자에게 주
어진다.

3,사모하는 자의 열정
미지의 인생길을 걸어가지만 나그네의 삶을 사는 자들이 지만 영생을 사모하고 그것을 위한 삶을 사는 자들은 그 생애가 아름답고 귀하다. 그는 이 땅에서 부귀영화에 초점을 두지 않고 영생에 초점을 두고 살기 때문에. 다소 손해가 있을지라도 이를 즐겁게 감내하여 찬양 부르며 전진해 나간다.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지만 예수를 믿으므로 영생을 얻을 수 있다.





죽음의 근원  
  『삼상 20 : 1-3]     f 289,290.292  
모든 인생들은 나민은 이 땅 위에 천년 만년 살 것이라는 착각 속에 살고 있다. 하지만 죽음의 그림자는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들 위에 임한다.

1, 죽음의 때 .  
인간의 죽음의 때는 참으로 예측하기 어렵다. 오늘 건강하게 집을 나갔던 자가 저녁에는 시체가 되어 병원영안실로 직행하는 예가 우리 주위에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옛날 다욋이 체험했던 한 예이기도 하다. 그는 위기일발의 순간순간을 살면서 항상 죽음을 직감하였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 인생의 생애이다.

2. 죽음의 정의 .  
인간은 죽음을 육체적인 생명의 종지로만 생각하지만 성경은 세 가지로 나누어 표현하고 있다. 즉 겉육체적인 죽음, 건영흔이 하나님에게서 분리되는 죽음, 길 구원받지 못한 자의 생애. 이로 보건데 인간의 죽음은 그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멸절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에 로의 삶의 변이를 뜻한다.

3,. 죽음이 나에게 의미하는 것.
죽음은 빈부귀천 동서고금 누구를 막론하고 모든 인생들에게 임하는 가장 공굉한 손넘이기도 하다. 이 엄연한 사실을 목전에 두고 있는 인간은 죽음을 잘 예비하여야 한다. 실아 생전에 주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고 그 분 뜻대로 행하므로 복있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죽음의 때를 예측할 수 없으므로 예수를 믿고 영생을 준비하는 자들이 되자.



바울의 인생관  (입광-1)
딤후 4 : 6-8        231,402,544
우리 인생은 이 땅에 잠시 잠깐의 생애를 살다가 가야만 하는 존재이다. 언겐가는 모두다 이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데 바울의 생애를 통해 교훈을 얻고자 한다.

1, 과거의 생애 .
바울은 인생을 투쟁하는 전쟁터로 보았다. 그는 을바른 인생. 후회없는 생애를 살기 위해서는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고 했다. 싸움이란 적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면 우리는 싸움의 대상은 누구인가? 그것은 이생의 정욕. 육신의 정욕.세상의 자랑이다. 이것들은 우리의한펑생을 괴롭게 하다가 죽음과 동시에 사라진다.

2, 현재의 생애
바울은 지상 사역을 부7런씻 다 필하였다고,갈 준비를 온전히 갖추었노라고 확신했다. 이와같이 고백자 확신이야말로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나도 과연 숨을거둘 때 이와같은 아름다운 확신을 표현할 수 있겠는가? 바울은 부에 처할 줄로 알고 가난 속에서 자족할줄 알며 오직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푯대를 향해 살았던 바울이다.

3, 미래의 생애 .
바울은 죽음을 예상하고서,"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딘로'라고 표현하였다. 그는 미래에 받을 상급을 사모함으로 죽음에서도 오히려 위안과 용기를 받았던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나라의 소망을 바라보며 즐거움으로 사명을 감당한 것이다.
바울은 진리를 위해 싸왔으며 복음을 위해 생애를 다바쳤다. 그리고 본받을 만한 삶을 살았다.                  





죽음을 위한 준비   (임종-2)                
사 38 : 1-3           f 294,295,296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차별두지 않고 공평하게 임한다. 그리고 이 죽음은 어김얼이 숨김없이 조금도 오차 없이 사람의 생명을 잇아간다. 이 죽음으로 인하여 사람은 그가 생전에 행했던 그대로 심판을 받는다.      

1, 우리는 죽은 자의 영흔에 대하여 말할 수 없다
장례예식의 목적은 죽은 자의 상태를 진척시키기 위해 집행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도저히 불가능 한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영흔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살아 있을 때만 가능하다. 성경에는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하라는 말씀이 어느 곳에도 엄다. 우리는 친지들이나 이웃들이 살아있을 때 그들의 영흔을 위해 기도하고 권면해야 하지 그들이 이미 죽은 이후에 기도 한다는 것은 아무런 효능이 없다.                    

2, 유족들에 대한 권면의 말씀.
장례식의 중요한 목적은 남아있는 유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하고 그 말씀 위에 굳게 서게하기 위함에 있다. 비록 장례식이 우리 영혼의 상태와 영원한 운명을 결정짓지 못하지만 우리가 존경하는 자의 죽은 시신을 짐숭과 같이 아무렇게나 매장할 수는 없다. 장메식 의 또 하나의 목적은 죽음에 대한 교훈을 심어주기 위합에 있다.                                          
인간들은 자신들이 죽어야만 하는 존재라는 엄연한 진리를 망각하기 립다. 시간과 감각에 속한 것들에 열중하는 동안 세상 재리에 빼앗겼던 마음을 영원한 것들로 되돌아 오게 함은 중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