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8:13-22

풍요로운 가을입니다. 거기에다 한국민속 고유명절 추석주간입니다.
추석은 지금부터 약 2천년전 유리왕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유리왕은 백성들이 기쁜 마음으로 즐겁게 살기를 바라는 ‘도솔가’를 지어 부르게 하면서 길쌈을 하게 했다고 합니다. 진편에서는 그 동안 별 미 음식을 마련하여 이긴 편을 대접하였다고 합니다. 오늘날 추석은 한해동안 농사한 햇곡식 과 햇과일로 조상님께 감사하는 차례를 지내고, 여러 민속놀이를 즐기면서 가족의 단합을 이루었던 절기입니다.
한국사회는 1970년대부터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급격히 바뀌면서 가족의 개념이 대가족에서 부부중심으로 바뀌었습니다. 결혼의 정년기가 늦어지고, 결혼을 안하므로 아이가 생기지 않는 가정들도 늘어나 출산율은 줄어들고, 반대로 고령화는 세계에서 유래 없이 빨라지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가정은 가족을 보듬어 주고 정서적 안정을 주는 휴식처였습니다. 우리 사회의 가정은 이혼과 자살(생계비관형 가족 동반 자살, 노부모 부양기피) 등 심각한 문제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가정이 살아야 교회가 산다 그리고 국가가 산다’는 주제는 많이 사용한 표어지만 사실은 정부도 교회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점점 곪아가고 있는 상태입니다.
무늬만 부부인 가정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한 지붕 아래, 한 방에서 잠을 자지만 이혼한 것이나 다름없는, 사실상 남남, 사실상 이혼 부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의 가정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기독교인의 가정도 물질문명의 발달과 함께 개인이기주의로 인해 해체되는 가정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효’라는 말은 이름뿐이지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가평에서 살고 있는 한 김씨라는 노인은 고향의 모든 전답을 정리하고 서울에서 살고 있는 아들과 함께 생활하기 위해 상경했습니다. 김노인은 아들의 집에서 생활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첫째는 전통적인 가정의 질서가 깨지고 있다는 것을, 둘째는 한국가정의 도덕성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아들의 가정에서 첫 번째 어른은 손자이고, 둘째는 며느리이고, 셋째는 김노인의 아들이고, 네 번째는 애완동물이고, 다섯째는 식모이고, 마지막이 자신이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김노인은 서울생활을 포기하고 고향인 가평으로 다시 돌아갔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가정이 있습니다. 그 가정은 노아의 가정입니다. 노아의 가정은 특별한 복을 받은 가정입니다.
노아시대는 죄악이 관영한 시대요, 사람의 마음이 악하여 하나님을 탄식케 하여 근심케한 시대였습니다. 사람의 마음 악함과 세상의 죄악은 하나님을 슬프게 했고 탄식케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와 만물과 사람을 처음 창조하신 때는 “보시고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는데 그렇게 좋아하셨다는 말씀이 창1장에 7번이나 나옵니다.(1:4,10,18,25,31).
그러나 이제는 반대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기뻐하시던 것을 보시고 슬퍼하셨습니다. 죄악이란 이처럼 흉악한 것입니다.
1. 노아의 시대를 보십시오.
노아 시대는 그러한 죄악이 세상에 차고 넘쳤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암흑한 때에 노아는 하늘의 별같이 더욱 빛나게 살았습니다. 모든 백성들이 다 하나님을 탄식케 하는 그러한 시대에 오직 노아만은 하나님을 기쁘게 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악한 시대를 슬퍼하시며 탄식하심이 사실이었으나 의인 노아, 그 한 사람으로 인하여 그는 지극히 기쁘셨던 것입니다.
노아 당시의 시대의 상황은? 창세기 6장 11절에 보면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했다고 했습니다.
여기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라고 한 것은 ‘하나님께 외람되게도’라는 의미로 자신의 마음대로 서슴없이 죄를 지었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불순종, 거역, 방종 등 온갖 악으로 인해 악취가 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강포’는 ‘빼앗다’, ‘해치다’란 의미로 살인, 약탈, 강간, 등 온갖 폭력이 난무하는 무법상태를 가리킵니다.
성적인 타락이 극도화 된 때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았습니다. 육의 본능대로, 죄의 본성대로 살았던 것입니다.
강포가 땅에 충만했습니다. 법과 질서보다는 힘과 주먹이 우선이 되는 무정부 사회였습니다. 그리고 생각과 모든 계획이 악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죄를 지을까? 어떻게 하면 인생의 본능을 따라 재미있게 살아볼까? 어떻게 하면 욕망을 따라 신나게 살아볼까?’ 이것이 그들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모습을 보시고 한탄하시고, 후회하셔서 “이 땅을 쓸어버리리라. 홍수로 쓸어버리리라.”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말로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계획하신 것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당신의 자녀들에게는 미리 알려 주십니다.
창세기 18장 17절에 보니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고 하셨습니다. 믿음이 있는 자에게 하나님은 그 뜻을 숨기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미리 알려 주셨고 노아는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의 계획을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숨기지 않으시고 알려주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셨음을 크게 후회하시고 천하인간과 모든 생물들을 다 심판하셨습니다. 그런데 노아와 그의 식구들과 방주에탄 모든 생물들만이 구원을 얻었습니다.
창6: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불의의 물결이 홍수 같이 밀려드는 그런 때에 홀로 그것을 경건히 살아 간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그것을 감당했습니다. 그것이 결코 노아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때문이었습니다. 죄악이 관영한 시대에 홀로 의롭게 산다는 것은 큰 고통이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가 큰 믿음을 지킨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그가 구원을 얻은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히11: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죽은 물고기는 몸에 소금기가 배지만, 산 물고기는 바다의 소금기가 몸에 배지 않습니다. 생명이 없는 썩은 나무조각은 물에 떠내려가지만 손가락 만한 작은 송사리라 할지라도 생명이 있는 것은 물길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생명이 있다는 것은 참 신기한 것입니다.
우리교회 모 집사님이 요플레를 쉽게 만들어 먹는 비결을 알려 주셨습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저는 참 신기했습니다. 우유를 조그만 통에 넣고 살아 있는 유산균이 들어 있다는 우유(1,000)를 사다가 조금 넣고 뜻뜻한 전기밥솥 두껑 위에 올려 놓으니까 요플레가 된 것입니다. 저는 참 신기했습니다. 생명이라는 힘이 이렇게 놀랍구나 . . 여러분에게 믿음의 생명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를 보면 노아시대의 시대를 연상케 합니다. 자살, 폭력, 성폭력 소식, 뉴스마다 성폭력 소식들이 하루도 빠지지 않습니다. 살인과 인신매매, 온갖 악한 일들을 자행하는데 양심에 가책도 받지 않습니다. 한국이 인터넷 음란사이트 활동이 세계 1위, 교통사고 1위, 원유수입4위, 술 소비량 4위(알콜중독자200만명, 술중독으로 사회적 비용 10조)
보통 국민들도 처음에는 경악을 금치 못하다가 이것마저도 불감증에 빠지는 것 같은 생각을 갖습니다.
인문주의자들은 인간의 악이란 유전과 환경의 부산물이며 진보를 통해 근절될 수 있다는 견해를 펴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허구라는 것이 드러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21세기에 들어와서 사회가 진보했다고 악이 근절되고 제거되었습니까? 문명의 진보는 결국 악을 가속화하고 말았습니다. 악의 근절이 문명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증명한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를 기점으로 새마을 운동과 함께 산업화가 일어나면서 엄청난 경제적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그 뿐 아니라 지식의 수준도 상상을 초월 할 만큼 높아져서 지금은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교육은 사회의 질을 높이고 악을 근절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오히려 범죄는 늘어가고 범죄의 형태도 대부분 지능적인 범죄들입니다. 형사팀에도 지능범죄만 연구하는 팀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경제의 발전으로, 지식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민족복음화가 일어나야 하고 교회가 이 땅에 세워지고 교회가 이 세상에 빛이 되는 건강하고 살아있는 교회로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2. 노아의 120년은 오직 은혜로 산 기간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120년간 방주를 지었으며 노아의 가정은 비오기 7일전에 방주에 들어갔습니다. 비는 노아가 600세 되던 해에 오기 시작하여 150일 동안 물이 땅을 덮었으며 방주는 7월17일에 아라랏산에 정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노아가 601세 되던 해 1월1일에 방주의 뚜껑을 제쳤으며 그리고 방주에서 나왔으니 노아의 가정은 완전히 구원을 받았습니다.
왜 하나님은 노아가 600세 되던 해에 시작하여 120년 동안 방주를 짓게 하셨을까? 노아는 950세를 살았습니다. 12년 동안 방주를 지어도 다 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120년간 만들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살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배를 짓는 기능, 공사기간이 중요했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방주를 지으면서 오직 하나님의 명령만 생각하고 묵상하고 궁리하고 열정을 다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아무리 노아가 경건하게 사는 분이었지만 노아 홍수가 다 끝난 다음의 이야기를 보면 포도 농사를 지어 포도주를 먹고 벌거벗었던 사건을 기억합니다. 일이 없다는 것은 복이 아닙니다. 일이 없을 때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혼자 옥상을 거닐다가 죄를 범할 기회가 생겼고 그 기회에 사탄이 들어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기능적으로 인간의 계산적으로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평생 하나님의 뜻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생활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에녹을 사랑하셨기에 300년동안 세상에서 하나님과 동행하게 하시다가 산채로 데려가신 것입니다. 우리는 한때 은혜받고 펄펄뛰고 기적이 나타나는 것을 자랑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신앙은 날마다 삶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노아는 120년동안 방주를 지으면서 자기가 산 인생의 1/8정도를 방주짓는데 허비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그 1/8을 오직 하나님과 온전히 동행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낭비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하시다가 시간이 걸린다고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고난과 시련의 순간의 때에 우리가 늘 하나님 앞에 기도하게 되는 것은 은혜요, 복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3. 노아의 경건은 순종에서 왔습니다.
노아는 언제나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노아가 하나님 앞에서 칭찬을 받았던 것은 그 당시 단지 착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과 명령대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창7:5)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히11:7)
참된 믿음은 즉각적인 순종이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노아는 지체없이,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방주를 짓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상식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명령이었지만 순종했다. 세계 어느 곳을 가든지 조선소는 바닷가에 있지 산 속에 있지 않습니다.
노아는 바다에서 800km 떨어진 곳. 아라랏산 중턱에서 배를 지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비웃었을 것입니다. 노아의 믿음은 듣고 행하는 순종의 믿음이었습니다.
오늘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 공허함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말씀을 많이 듣고, 은혜를 많이 받아도 행함이 없기 때문이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 ”(약2:26) 노아의 믿음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순종한 믿음이었습니다. 듣고 순종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노아가 세상 사람들과 같은 삶을 살았더라면, 그는 분명히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온 관심을 하나님께 돌리며 날마다 자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려고 애썼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노아에게는 경건하게 살려는 몸부림이 있었습니다. 노아도 육신을 가진 인간인지라 죄짓고 싶은 충동이 얼마든지 일어났을 것입니다. 화가 나면 자기도 주먹질하고 싶고, 때로는 음욕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죄를 지으면 망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그는 경건하고 거룩하게 살고, 의롭게 살기 위해서 갖은 몸부림을 쳤습니다. 바로 이 몸부림치는 모습이 하나님 보시기에 노아의 의로운 모습이었습니다.
노아가 의를 전파했습니다.(벧후2:5) 즉 노아가 전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노아는 죄악이 난무한 상황 속에서도 전도했습니다. 전도를 하면서 세상을 본받지 않고 무너지지 않고 자신의 영적 자존심을 지켜갔던 것입니다. 노아처럼 몸부림치시기를 바랍니다.
4. 노아의 믿음은 가정을 구원했습니다.
대 홍수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노아의 여덟 식구를 구원하신 것은 이 노아의 경건한 신앙과 하나님과 동행한 신앙 때문이었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노아는 가장입니다. 가장 한 사람 한 사람의 경건한 신앙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빌립보 감옥의 간수네 가정이 가장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온 가족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16:31)
여러분 가장들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가정은 삽니다. 왜 우리나라에 가정문제가 심각한지 아십니까? 그리고 교인들의 가정도 가정문제가 심각한지 아십니까? 가장들이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가장 여러분들 믿음안에 굳게 서시기를 바랍니다.
노아의 가정은 온 가족이 모여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들은 방주를 만들 때도 함께했습니다. 그리고 그 방주를 다 지은 다음 가족들 모두 함께 방주에 들어갔습니다. 방주에 나와서도 함께 예배드렸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창9:1)라고 했습니다. 예배를 드릴 때 온 가족이 함께 드리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이번 추석에는 온 가족이 빠짐없이 예배를 드립시다. 그리고 가정예배를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예배를 잃은 가정은 다시 예배를 살리시기 바랍니다.
홍수 심판을 겨우 빠져 나온 노아의 가정은 제일 먼저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 예배를 드렸습니다. 전에 하던 습관대로 정성껏 제물을 드렸습니다. 노아의 가족이 홍수 심판을 견디고 나와 자신들을 위해 할 일도 많았을 것이고, 궁금한 것도 많았을 것입니다. 예전에 살던 집은 어찌 되었을까? 예전에 알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정말 살아난 사람은 아무도 없을까? 등 관심이 많았을 텐데 이들은 오직 하나님께 먼저 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정결한 짐승과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택해 번제로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이 노아의 감사예배를 받으시고 그 가족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예배에 우선순위를 두는 가정이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시리라”(마6:34)
감사예배를 드린 노아의 가정에 복을 주셨습니다.(창9:1). 노아의 가정이 예배를 잘 드렸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 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창8:21)
‘흠향하시다’- 노아가 드린 번제의 향기를 숨을 들여마신 것처럼 믿음과 정성으로 먼저 드린 노아의 제사와 제물을 하나님이 열납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열납하시도록 예배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노아의 가정은 예배중심의 삶을 살다고 복을 받은 가정입니다. 하나님이 예배를 받으시면 용서하시고 복을 주십니다.
어떤 남편은“너는 기도해라, 나는 돈벌테니 . . ” 하고 아내에게만 대표로 예배하라는 식 . . 이것은 안됩니다.
예배를 잘 드린 가정은 복을 받음을 믿고 우리 가정들은 언제나 예배를 정성껏드려 복을 받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우니 먼저 예배를 철저하게 드리자.
이번 추석에는 가정구원의 대 작전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노아의 가정처럼 예배하는 가정, 하나님의 복을 받는 가정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임경택 목사 설교 중에서

출처:한국교회 부흥설교 설교 정보수집 편집위원 협조와 추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