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주간(苦難主間, Holy passion week)

주께서 3년간의 공생애 끝에 이제 스스로 십자가 수난을 당하시기 위하여 나귀를 타시고 군중들의 환호속에 자신이 메시야이심을 공식 선언하시면서 예루살렘에 입성한 종려 주일로부터 주님이 장사되셨다가 부활하신 부활 주일 직전까지를 절기로 삼아 주의 수난의 노고와 은혜를 경건히 기리는 한 주간의 절기가 바로 고난 주간이다.

예수님 생애의 마지막 한 주간이었던 이 고난 주간에는 예루살렘 입성, 성전 숙청, 감람산 강화, 성만찬 제정,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체포와 심문, 십자가 처형과 장사 등 그야말로 예수 공생애의 절정을 이루는 사건이요 전 우주적 사건이기도 했던 대사건들이 숨막히게 전개 되었다. 이에 성도들은 주님의 사역의 모든 것이 응축적으로 담겨 있는 이 주간의 각 요일마다 그 요일에 있었던 사건들을 각각 기억하여 한 주간을 내내 엄숙한 절기로 보내게 된다.

'고난 주간'(Passion week) 또는 '성 고난 주간'(Holy passion week) 등으로 불리는 고난 주간의 원래 명칭은 큰 주간, 즉 하나의 큰 일주일이라는 뜻의 '대주간'(Great week)이었다. 이 명칭은 동로마 교회의 고난 주간 행사를 기록한 에게리아(Egeria)의 순례집 속에 언급되어 있으며, 서로마 교회에서도 이 주일을 대주간이라고 불렀다. 로마 교회에서는 오늘날까지도 이 주간의 공식 명칭으로, 대주간을 의미하는 'Hebdomada Magna)' 또는 'Hebdomada Major' 등을 사용한다. 이러한 '대주간'이라는 명치은 12세기에 이미 보편화되어 각종 기독교 전례 문서 속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한 의로운 인간의 고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태초부터 타락한 인간의 구원을 위해 세워진 구속(救贖)의 법을 성취하기 위해 구속주가 당하신 전 우주적 고난이었다. 태초에 인간은 선악과를 두고 맺은 언약을 어기고 범죄했다. 그리하여 원래의 규정대로 죽어 영벌을 받아야 했다. 더욱이 하나님은 절대 거룩한 공의(公義)의 하나님이시므로 그분이 세운 법은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사랑(Love)의 하나님이시기도 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일단 사람이 지은 죄에 대해서는 공의의 원칙대로 처벌하시면서도 끝없는 사랑으로 죄를 지은 인간 자체에게는 구원받을 새로운 기회까지 주신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을 믿고 회개함으로써 구원을 얻게 되는 법을 궁극적으로 성취하기 위한 대속 희생으로서의 고난이셨던 것이다.

한편 주님은 이런 구속의 법을 가장 처절한 사형수단이었던 십자가(the Cross)위에서 마침내 하나님에게까지 버림받은 영육간의 처절한 고난을 통하여 성취하셨다. 고로 우리는 본래 제 2위 성자 하나님으로서 영광과 주권을 버리고 죄인을 구하기 위하여 수난(the Crucifixion)을 당하신 주님의 사역에 담긴 공의와 사랑을 마음 속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창 3:15; 사 53:1-12).

1. 시기

사순절의 마지막 한 주에 해당하는 고난 주간은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으로 승리의 입성을 하신 종려 주일로부터 시작하여 부활 주일 전까지의 기간 즉, 주일에서부터 토요일까지를 말하다. 대속 사역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고난받으심을 기리는 사순절 가운데서도 그리스도께서 대적들에게 잡혀 십자가에서 죽으시며 장사당하신, 성자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의 절정기인 고난 주간내에는 종려 주일, 세족 목요일, 성 금요일, 성 토요일 등이 포함되어 있다.

희랍정교에서는 종려 주일 다음날인 월요일부터를 고난 주간으로 지키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동,서로마 교회에서는 보편적으로 종려 주일부터를 고난 주간에 포함시켜 기념하고 있다.

2. 유래

사순절은 부활절에 있을 성만찬과 세례식을 준비하기 위한 기간으로 교회 성립 초기부터 행해졌었다(사순절, 2.유래 참조). 고난 주간은 이 사순절 절기 내에 포함된 절기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 사역을 이루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겪으신 고난을 생각하며 지내는 주간이다.

이러한 고난 주간이 언제부터 지켜지게 되었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롬 6:3-5, 고전 11:23-26의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념하는 절기가 초대 교회 때부터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고난 주간이 전교인의 공식적인 절기로 공개적으로 지켜진 것은 A.D.313년 콘스타티누스 대제의 신앙 자유령이 포고된 이후였다.

그 밖에 고난 주간과 관련된 오래된 자료로는 에게리아(Egeria)가 집필한 순례집이 있다. 이는 385년 경의 자료로 다양한 절기와 그 전례의식을 수록하고 있으며, 수난절 기간에 포함된 절기로서의 고난 주간에 대해서도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은 고난 주간을 대주간(大主間)이란 명칭으로 언급하고 있는데, 이 기록에 의하면 동로마 교회의 하나임 에루살렘 교회에서는 부활 주일 전인 고난 주간 기간에 종려 주일 행진과 같은 엄숙한 경축 행사가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이 책이 집필될 당시인 4세기까지 어러한 동로마 교회의 풍습은 서로마 교회에는 생소한 것이었으나, 5세기 이후에 서방 교회에도 유입되기 시작했다.

고난 주간의 금식은 동,서방 교회에서 모두 행해졌는데, 고난 주간의 금식은 다른 절기 때의 금식보다 더 엄격하게 행해졌다. 그러나 사순절에서도 이미 언급된 바 있듯이 금식 기간과 정도는 교회마다 일정한 것은 아니었다. 어떤 사람들은 일주일 내내 금식하였고, 어떤 사람들은 4일이나 3일 혹은 성 금요일과 성 토요일 2일만 금식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밖에도 고난 주간에는 철야 기도회, 세족식과 성만찬등 많은 기념 행사들이 진행되었다. 또한 인간적 유희를 목적으로 한 모든 오락이 금지되었다(사순절, 2. 유래 참조).

중세에 있어 고난 주간의 금식을 비롯한 여러 의식들은 교회의 중요한 행사로 여겨졌다. 그러나 지나치게 많은 이러한 의식들은 형식화되어 그 본래의 의미에 대해서는 소홀해졌다. 이러한 연유로 1517년 루터의 종교 개혁 후 많은 형식적인 종교 행사들이 폐지되었는데, 이때 고난 주간의 많은 행사들도 축소, 혹은 폐지되었다. 이는 루터가 카톨릭 교회에 몸담고 있을 당시 깨달은 교회 의식과 관련된 많은 악영향을 근절하기 위한 조처의 하나였다. 이러한 의식의 축소화, 또는 폐지로 인해 루터가 살았던 비텐베르그에서는 일찍부터 고난 주간과 관련된 풍습이 사라졌었다. 그러나 예식에 대한 단호한 폐지와 축소에도 불구하고 종교 개혁 후 20여년간은 고난 주간 행사가 통일되지 않은 여러 형태로 계속 지켜졌다.

한편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들이 고난 주간 절기를 지키고 있기는 하지만 과거의 고난 주간 의식은 거의 행하지 않고 있다. 단지 몇몇 교파에서 성 금요일에 특별 예배 등을 드리고 있을 뿐이다.


3. 고난 주간 각 요일의 특기사항


(1) 종려 주일(Paim Sunday)

종려 주일 항목을 참조하라.


(2) 월요일부터 수요일

고난 주간의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은 특별 집회의 형식으로 모였다. 예루살렘 교회에서는 고난 주간 화요일에 철야 집회를 갖는데, 이때 주교는 감람산에 올라가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던 마 24:4이하의 성경을 낭독하기도 하였다. 또한 수요일에는 마 26:14-16의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는 부분의 말씀이 낭독되었으며, 이때 회중은 큰소리로 회개의 기도를 드린다. 한편 로마 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앞둔 이날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리는 엄숙한 미사를 드렸다.


(3) 세족 목요일(Maundy Thursday)

세족 목요일(Maundy Thursday)의 Maundy는 율법을 뜻하는 라틴어 Mandatum에서 말로, 수난을 당하기 전 목요일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주심을 기념하는 데서 유래하였다(요 13:24). 또한 세족 목요일은 '성 목요일'(Holy Thursday) 또는 '녹 목요일'(Green Thursday)이라고도 불린다. 녹 목요일이란 명칭은 독일에서 불리워지는 것인데 그 유래가 확실하게 밝혀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성 목요일에 병마를 막기 위해 먹었던 녹색의 약초나 이날 미사때 사용되었던 파라먼트(parament)의 색을 지칭하던 데서 유래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한편 이날에는 과거 예수께서 12명의 제자들과 마가의 다락방에서 드셨던 최후의 만찬을 기념하여 성만찬이 행해진다. 그리고 이날은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던 것처럼 자기 죄를 회개한 사람들의 발을 씻기는 예식을 행하는 것은 회중이 회개한 자와 화해함으로써 그들을 받아 들인다는 의미로, 이 관습 역시 동로마 교회로부터 유래된 것이었다. 또한 이날 밤은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핏방울 같이 될 정도로 기도하며 다음날 있게 될 십자가 지심을 대비했던 것을 기념하는 예배를 드렸다. 이밖에도 중세 교회에서는 이날 성유(聖油)의 축성의식 등이 거행되었다.


(4) 성 금요일(Holy Friday)

성 금요일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보내신 그리스도께서 마침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죄인들의 죄값을 대신 치루어 주시고 인간들을 죽음에서 생명으로 이끄신 날이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슬픈 일이지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생애를 통해 인간을 위한 구속 사역을 성취하셨다는 의미에서 이날을 Good Friday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날은 역시 모든 성도들에게 슬픈 날임에 틀림없다. 즉 성 금요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죽으심을 기리는 날이기 때문에 새벽부터 밤까지 애도의 시간을 가졌다. 또 이날에는 가장 엄격한 금식과 철야가 행하여 졌으며, 교회의 집회도 가능한 한 제한 되었다.

3세기 중엽의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성 금요일과 성 토요일에 금식이 행해졌고, 7세기 스페인의 일부 지방에서는 성 금요일에 아예 교회 문을 열지 않았으며, 성도들은 이날 철저히 기도에만 전념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교회들은 이날 성경 낭독, 중보 기도, 십자가의 베일 벗기기, 찬양 등의 내용으로 간소화된 예배 형식의 애도 예식을 거행했다. 또한 중세에는 이날 엄숙한 장례식이 거행되기도 했다.

(5) 성 토요일(Holy Saturday)

대 안식일, 즉 그리스도께서 무덤에 머무셨던 동안인 성 토요일은 성 금요일보다도 더 엄숙한 날로 아침부터 해질 무렵까지 경건한 분위기 아래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되심이 기념되었다. 따라서 이날은 교회력 가운데 가장 엄격한 금식의 날이기도 했다.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는 이날 새로운 불, 부활절 촛불, 물 등을 성별하는 의식과 참회와 애도의 미사가 드려졌다.


4. 풍습


고난 주간은 사순절 기간 중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준비하는 기간과 죽으심 그리고 무덤에 머물러 계신 기간을 기념하는 절기이기 때문에 엄숙한 가운데서 진행되었다. 그러므로 이 기간 동안에는 금식과 기도가 행해졌으며, 일정한 규울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스스로를 자제하여 난잡한 행동과 현란한 옷차림을 삼가하였다. 그리고 중세 시대에는 세속적인 연극, 음악회 등의 공개적인 오락 행사들이 금지되었고, 공공 기관도 휴무하였다. 또한 죄인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기억하며 죄인들을 방면하였다. 또한 이 기간 동안 노예들은 여러 면에서 유리한 대우를 받았으며 특별히 해방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듯 종교 개혁 이전까지만 해도 다양한 고난 주간 행사를 가졌으며 풍습이 행해졌었다. 그러나 종교 개혁 이후 고난 주간과 관련한 행사들이 폐지 또는 간소화되면서 그 풍습들도 많이 자취를 감추었다. 여기서는 대표적인 것만 살펴보기로 한다(3. 각요일의 특징 참조).


(1) 고난 주간 철야제

고난 주간의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에는 특별 예배의 한 형태로 철야제가 거행됐다. 이때는 제자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가룟 유다의 배반 사화(史話)등이 낭독되었고,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되새기는 한편 바로 자신이 죄인임을 큰소리로 자복하며 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말씀을 통해 자신을 살피고 새로운 각오를 다짐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이러한 의식은 희랍 정교회에서 아직까지도 고난 주간의 주요 행사로 행해지고 있다.


(2) 성만찬 의식

성만찬 의식 때 사용되는 떡은 우리를 위해 죽으셨던 그리스도의 몸을, 포도주는 그가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이 의식은 그리스도의 피흘림을 통한 성도의 깨끗케 됨을 의미한다. 이에 교회에서는 거룩함을 입은 자로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한다는 의미에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심을 기념하는 성 금요일을 예비하는 성 목요일에 성찬식을 행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최후의 만찬을 드심을 기념하여 성 목요일에 성찬식을 행하는 풍습은 동로마 교회 전역으로 확대되었으며, 5세기에는 아프리카에서도 행해졌다고 한다.


(3) 세족 의식

이 풍습은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에 의해 팔리시기 직전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던 것에서 유래된 것으로, 동로마 교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원래 이 의식은 봉사와 화해를 의미하는 것으로 대성당과 대수도원 교회에서 먼저 행하여졌으나, 후에 로마 교황 피우스12세에 의해 모든 교회에 추천되어졌다. 로마 교회의 세족의식은 미사 집행자가 그에게로 인도된 그리스도의 12제자를 상징하는 12명의 발을 씻기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중세 교회처럼 엄숙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세족 의식을 행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섬기는 종으로 오심을 기념하는 교회가 많이 있다.


5. 주요 행사

(1) 고난 주간 기도회

고난 주간 기도회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나 인간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의 생애를, 특별히 고난 주간 동안 당하신 그리스도의 수난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갖는 기도 모임이다. 그리스도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었으나 인간의 몸을 입으셨을 뿐 아니라,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데까지도 철저히 순종하셨다. 기도회는 순번을 정해 돌아가며 모든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 함께 모여 기도하기 힘든 경우, 기도 시간을 약속하여 서로 다른 장소에서 기도회에 참여하게 할 수도 있다.

주일 학교의 경우, 주임이 쓰셨던 가시관 등 고난 주간과 과련 자료를 어린이들에게 보여 주며 주님의 고통과 구속 사역에 대해 설멍한 후 기도회에 동참할 수 있도록 인도하기도 한다.


(2) 성찬식

고난 주간 성 목요일에는 성찬식이 행해진다. 이때 나누어지는 떡은 우리를 위해 찢기셨던 그리스도의 몸을, 포도주는 그가 십자게에서 흘린 피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이는 자신을 죽음에 내어 주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신 주님의 희생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성만찬에 참여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난 자로서 자신을 살피며, 주 안애서의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에 대해 대시 한번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도록 한다.

(3) 세족식

제자들이 잠시 후면 당신을 배반할 것을 아시면서도 친히 그들의 발을 씻어 주심으로 서로 사랑하라고 명하신 주님을 생각하며, 서로의 발을 씻어 주는 세족식을 세족 목요일 즉, 성 목요일에 행한다. 이는 선생님이 제자의 발을 남편이 아내의 발을 씻어 주며 서로가 섬기며 봉사하는 삶에 대해 묵상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되라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의식이라 할 수 있다.


(4) 가정 금식 예배

고난 주간내에는 가정 예배 시간 중에 예수의 고난에 대한 성경말씀을 읽도록 한다.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고난을 명상함으로써 예수님과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로 삼으며 특별히 기도하는 시간을 더욱 늘리도록 한다. 이때 가족 전체가 금식을 계획하고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마음을 가지고 정성으로 실천한다. 그 방법으로는 하루 한끼의 음식을 절제할 수도 있고, 한끼를 아주 간단하고 값싼 음식으로 먹을 수도 있다. 또한 고난 주간 동안 불필요한 음식을 삼감으로 모인 돈을, 가족 전체의 특별 헌금으로 드릴 수도 있겠다.


(5) 고난 주간 음악 예배

기도문이나 성경을 음악에 맞추어 낭송하는 것은 이미 히브리 민족의 회당 예배에서도 행해졌었다. 그러나 고난 주간 예배에서 이러한 형태가 도입된 것은 로마 예전서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즉 다잇의 로마 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록한 복음서를 음율을 가미하여 낭송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음악 예배가 보다 발전적인 형태를 띄기 시작한 것은 12세기경 3명의 사제가 그 역에 따라 테너, 바리톤, 베이스, 등으로 수난 기사를 노래한 것으로, 이것이 수난고의 기원이 되었다. 오늘날에도 로마 카톨릭 교회와 성공회에서는 이처럼 각자의 역을 나누어 노래하거나 수난 가사를 낭송하기도 한다.

교회에서 소그룹이나 전교회적으로 드릴 수 있는 고난 주간 음악 예배는 고난 주간 중의 예수님의 행적과 수난사를 입체 낭독하며 사이사이에 관련 찬송을 부름으로써 간단하게 꾸며 볼 수도 있다.


(6) 촛불 예배

촛불 예배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신 성 금요일을 즈음해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에 행할 수 있는 특별 예배 프로그램이다. 이는 예수님의 가상 칠언에 기초한 셩경 말씀을 읽고 그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드리는 예배이다. 이때 사회자는 예배 전에 8개의 촛불을 준비해 가상 칠언의 성경 봉독과 찬송이 끝날 때마다 촛불을 하나씩 끈다. 그러면 맨 마지남에 촛불 하나만이 남게 되는데, 이것은 죽음을 이기시고 살아나실 그리스도의 부활을 암시하는 의미를 가진다. 또한 이 예배에서의 어둥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이땅을 덮었던 어둠을 상징한다.


(7) 가상 칠언(架上七言) 묵상 예배

인간의 구원 사역을 위해 이땅에 오신 주님은 십자가에 달려 6시간 동안 참기 어려운 고난을 받으시면서 우언과도 같은 가상 칠언을 남기셨다. 이 가상 칠언을 묵상하는 가운데 십자가 상에서 당하신 주님의 그 고난을 깊이 생각하면서 겸허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도록 한다. 묵상 예배의 형식에 대해서는 '부활절 주요 행사'를 참조하라.

가상 칠언은 눅 23:28, 23:43; 요 19:26,27; 19:28; 마 27:46; 눅 23:46; 요 19:30에 기록되어 있다. 예배를 통하지 않더라도 고난 주간 동안에 개인적으로 이 말씀들을 묵상하도록 해야 한다.

(8) 기타

이밖에도 고난 주간에는 특별 예배와 전도 집회, 절식 형식의 금식 기도회 등이 행해진다. 이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에 하신 7가지의 말씀을 찾아 묵상하는 시간과 예수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부터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의 고행의 여정을 되새기기 위한 성극등을 공연하면 좋을 것이다.


6. 관련 성경 자료

(1)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묘사

침밷음을 당하심(마 26:67)
채찍에 맞으심(마 27:26)
옷벗기우심을 당하심(요 19:23,24)
멸시를 당하심(막 15:29-30)
비웃음을 당하심(마 9:24)
귀신 들렸다함(요 10:20)
행악자라 불리움(요 18:30,31)
이스라엘 백성으로부터 거절당하심(마 27:16-21)
가시관을 쓰심(마 27:29)
강도와 함께 못박히심(요 19:18)

(2) 그리스도의 고난의 목적

하나님과 인간의 화목을 위함(롬 5:1-21)
죄사함으로 새 피조물이 되게 함(마 26:28)
구속받은 자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함(벧전 3:18)
죄인으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게 함(빌 3:10)
완전한 상태에서 영생하게 함(계 21:3,4)

(3) 그리스도의 고난의 성격

출생부터 죽음까지 전생애의 수난(마 27:46)
영육간의 전인적 수난(히 5:7)
사단의 시험으로 인한 수난(마 4:1-3)
신적 계획에 의한 수난(창 3:19)
신적 진노에 의한 수난(롬 5:8)
수치와 저주로 인한 수난(갈 3:13)
인간을 대신하여 받은 수난(롬 4:25)

(4)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사도들의 증거

우리를 위한 고난이었음(고후 1:5)
죽기까지 순종하심(빌 2:10)
인간과 같이 시험을 받으심(히 4:15)
묵묵히 고난을 받으심(벧전 2:23)
의인으로 불의한 자를 대신함(벧전 3:18)

(5) 고난 주간 동안의 예수의 행적

일요일 - 예루살렘 성 입성(마 21:1-11)
월요일 - 무화과 나무 저주 및 성전 숙청(막 11:12-18)
화요일 - 메시야 논쟁 및 종말 강론(마 21:23-25,46)
수요일 - 기록 없음
목요일 - 최후의 만찬 및 겟세마네 기도(마 26:17-46)
금요일 - 십자가에서 죽으심(마 27:1-61
토요일 - 무덤에 머무심(마 27:57-66)
일요일 - 부활하심(마 28:1-15)

(6) 성찬의 의미

예수님과의 일치된 관계를 나타냄(눅 24:30)
하나님과의 관계가 새로워짐(눅 22:19,20)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함(고전 11:26)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을 갖게 함(마 26:29

(7) 예수의 겟세마네 기도의 특징

마음의 짐을 토로하심(마 26:38)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심(마 26:39)
자신의 뜻을 내세우지 않으심(마 26:39)
확신을 위해 거듭 기도하심(마 26:39-44)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며 구하심(마 26:42)
자신을 낮추며 겸손히 구하심(막 14:35)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며 기도하심(막 14:36)
혼자 외로이 기도하심(눅 22:41)
힘써 간절히 기도하심(눅 22:44)
하나님께 기도 응답받으심(눅 22:43)

(8) 예수의 재판 순서

안나스의 예비 심문(요 18:12-14)
산헤드린 공회에서의 비공식 재판(마 26:57-68)
산헤드린 공회에서?공식 재판(마 27:1,2)
빌라도의 1차 심문(마 27:11-14)
헤롯 안티파스의 심문(눅 23:8-12)
빌라도의 2차 심문 및 최종 판결(마 27:15-26)

(9) 그리스도의 가상 칠언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24)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요 19:26,27)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
내가 목마르다(요 19:28)
다 이루었다(요 19:30)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

(10)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 후의 사건들

지진과 성전 휘장이 찢어짐(마 27:51)
무덤이 열림(마 27:52)
백부장의 신앙 고백(마 27:54)
무리들이 뉘우침(눅 23:48)
강도들의 다리를 꺽음(요 19:38-42))
예수의 옆구리를 찌름(요 19:34)
무덤에 장사함(요 19:38-42)
무덤을 봉하고 파숫꾼을 세움(마 27:66)

(11) 그리스도의 죽음의 의미

대속의 죽으심(롬 4:25)
옛사람을 멸함(롬 6:6)
사단의 권세를 이기심(히 2:14,15)
세상을 십자가에 못박은 죽음(갈 6:14)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만든 죽음(히 10:19,20)
많은 생명을 낳기 위한 죽음(요 12:24,25)
성도들의 옛사람을 못박은 죽음(갈 2:20)

(12) 예수가 이 땅에 오신 목적

자기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함(마 1:21)
성령과 불로 세례 주시기 위함(마 3:11,12)
율법을 완전케 하시기 위함(마 5:17)
죄인들을 불러 회개시키기 위함(마 9:10-13)
하나님 아버지를 세상에 알리기 위함(마 11:27)
이방인들에게까지 구원과 심판을 알리시기 위함(마 12:18)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시기 위함(마 16:18)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시기 위함(마 20:28)
새 언약을 세우시기 위함(마 26:28)


(13) 고난 주간에 임하는 성도의 자세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함(빌 4:14)
자신의 죄를 깨달음(욥 36:8,9)
겸손하게 회개함(벧전 5:5)
자신의 고난을 인내함(살전 3:3)
절제하는 생활을 함(고전 9:25)
말씀을 깊이 묵상함(시 1:1,2)
경건한 생활이 되도록 힘씀(딤전 4:7)


(14) 예수를 쫓는 자가 본받아야 할 그리스도의 성품

그리스도의 이타심(막 10:45)
그리스도의 부모에 대한 순종(눅 2:51)
그리스도의 성도에 대한 사랑(요 13:34)
그리스도의 영성과 거룩(요 17:19)
그리스도의 원수에 대한 사랑(롬 5:10)
그리스도의 겸손과 자기 부인(否認, 고후 8:9; 빌 2:7)
그리스도의 성부께 대한 순종(빌 2:8)
그리스도의 순결과 인내와 온전하심(히 4:15; 12:2)

(15) 성도의 고난의 목적

겸손하게 함(신 8:3,16)
죄를 깨닫게 함(욥 36:8,9)
하나님을 찾게 함(시 78:31-34)
말씀을 깨달음(시 119:71)
주의 사랑의 확증이 됨(잠 3:11,12)
진실을 시험하기 위함(잠언 17:3)
기도하도록 함(사 19:20,22)
성화의 과정임(시 66:10
하나님 곁에 있게 함(겔 14:11)
정죄를 당치 않게 함(고전 11:32)
주의 능력을 알게 함(고후 4:8-11)
주의 고난에 동참케 함(빌 3:10)
순종을 알게 함(빌 2:5-8)
평강의 열매를 맺음(히 12:10,11)
상급 받을 기회가 됨(약 1:12)
믿음이 연단됨(벧전 1:7)
은헤를 더 받게 됨(벧전 5:9,10)
마침내 천국에 이르게 함(마 10:22)

(16) 성도가 기뻐해야 할 고난

의를 이루기 위하여 받는 고난(베전 3:14)
교회를 위하여 받는 고난(골 1:24)
복음을 위하여 받는 고난(딤후 1:8)
연단을 위하여 받는 고난(살전 3:3)
영광을 얻기 위하여 받는 고난(롬 8:17)


7. 고난 주간 기념 예배 설교 자료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마 26:69-75)


베드로는 주님의 제자 중 열심있는 수제자로, 예수께서 제자들의 배신을 예언하실 때도 자신만은 주님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 장담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도 예수님을 부인했을 뿐 아니라 저주까지 했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를 통해 우리 성도들이 알아야 할 교훈은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① 우리는 약한 자입니다(롬 5:6) - 우리에게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능력과 열심히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연약한 육신을 입고 있는 인간일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 자신의 능력만을 의지하고 승리의 주님, 도우시는 성령을 의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제라도 또다시 넘어질 수밖에 없는 약한 자들인 것입니다.

② 소망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넘어집니다(롬 8:24,25) - 우리가 복음을 인하여 핍박과 환난을 받지만 기쁭으로 인내하여 견디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질 천국에 대한 소망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에 대한 소망과 확신이 없다면 이 세상을 살아 나가는 도안 겪게 될 수많은 고난에 우리는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③ 실패해도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고후 12:9,10) - 우리는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의 삶 가운데는 크고 작은 실패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주님은 우리 자신들보다도 이 사실을 더 절 아십니다. 베드로도 주님을 부인함으로 실패자가 되었지만, 다시 회개하고 일어나 사도직을 잘 감당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실패의 아픔을 딛고 일어나는 용기와 결단이 있어야 최후의 승리자가 됩니다.


주님을 향해 가다 육신의 연약함을 인해 넘어졌습니까? 그렇다면 그 나약한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오십시오.그러면 승리의 주님이 연약한 당신을 이끌어 승리하는 삶을 얻게 하실 것입니다.

영원한 실패자 가룟 유다(마 27:3-8)


가룟 유다는 영광스런 주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은 삼십에 팔아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시게 했습니다. 결국 이 어리석은 자는 스스로 목매달아 죽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유다의 죽음은 어떤 것이었는지 살펴봄으로 주의 제자로서의 우리의 자세를 바르게 합시다.


① 육신이 비참하게 주었습니다(5절) - 주님을 십자가에 달려 돌아 가시게 한 가룟 유다는 양심의 가책으로 인해 스스로 목매달아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팔아 얻은 은 삼십은 그가 죽은 후 그의 묘지를 사는데 쓰여졌습니다. 때로 우리의 마음을 사로 잡는 세상적인 욕심의 결국은 이처럼 허무한 것입니다.

② 명예가 죽었습니다(6-8절) -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욕된 이름은 그의 명예를 죽일 뿐입니다. 기룟 유다의 이름은 그의 죄악된 행동으로 인해 2000년이 지난 지금은 물론 영원히 저주의 대명사로 불려질 것입니다.

③ 영혼이 죽었습니다(약 1:15) - 예수님을 판 가룟 유다의 죄는 진정 용서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의 주님은 그가 돌이켜 주님 앞에 회개했다면 그를 용서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돌이키지도, 용서를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책감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죽음을 택했을 뿐입니다. 이에 그의 영혼은 영원한 지옥불에 던져지고 말았습니다.


가룟 유다는 결국 잠시 세상의 달콤한 유혹을 따라가다 돌이키지도 못할 인생의 영원한 실패자로 비참한 말로를 맞이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주님을 잘 따라 왔습니다. 앞으로도 주님만을 바라보며 따라갑시다. 혹 세상적인 유혹으로 인해 주님의 제자로서의 삶의 노선에서 잠시 빗나갔을지라도 즉시 회개하고 돌아옵시다. 승리의 삶을 주시는 주님께로.

고난의 종으로 오신 예수님(사 53:4-6)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도 피조물의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서 고난을 받으시며,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 도리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 고난 주간을 맞이해 이땅에 오신 주님이 당하신 고난은 어떤 것이었는지 생각해 봅시다.


① 고난 받은 예수님(4절) - 예수님은 아무 흠도 없는 거룩한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분이 그의 백성들의 더러운 죄로 인해 조롱받으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히는 육체적인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② 버림 받은 예수님(5절) - 죄인인 인간들을 사랑하셨기에 고난을 받으시는 예수님을, 인간들은 오히려 욕하며 배척했습니다. 똫나 주님을 따르던 제자들마저 주님을 버리고 도망감으로 처절한 배반을 경험하셨습니다.

③ 죽음을 당하신 예수님(6절) - 죽음은 범죄로 인한 심판입니다. 그런데 아무 흠도, 죄도 없는 깨끗한 주님께서 하나님께 버림받는 죽음의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이로 인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가 생명을 얻었습니다.


주님은 2000년전에 하나님의 종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대속의 사역을 다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이 대속의 십자가 죽음의 사역을 믿기만 하면 모든 자들이 다 영생을 얻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이러한 주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온전히 살지 못한다면 주님을 또다시 십자가에 못박는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바울이 경험한 전화 위복(행 9:4; 고후 12:7; 빌 1:13)



예수님은 외롭고 고통스러운 십자가 사역을 마치신 후에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때로 성도에게 고난을 허락하시고 고난의 과정을 통해 당신의 계획을 이루십니다. 자신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짐을 보고 감사했던 바울을 통해 고난을 주시는 깊은 하나님의 뜻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① 소경됨을 인해 영적 눈을 떳습니다(행 9:4) - 주님을 핍박하던 사울이 하나님의 섭리하심으로 잠시 소경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암울함 속에서 그는 오히려 빛이신 그리스도를 발견했습니다. 육체의 한 지체를 잃음으로 그는 영혼을 얻었습니다.

② 육체의 가시로 겸손을 배웠습니다(고후 12:7) - 하나님은 바울에게 육체의 아픔과 고통을 허락하셨습니다. 바울은 육신의 연약함을 통해 자신의 무능함과 크신 하나님의 권능을 깨달았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한 삶의 자세를 배웠습니다.

③ 감옥에 갇힘이 전도의 기회가 되었습니다(빌 1:13) -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전파하는 바울이 옥에 갇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잠시 잠깐 복음이 막히는 듯했으나, 이는 또다른 복음 증거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감옥에서도 담대히 복음을 전파하는 바울로 인해 많은 사람이 영혼의 해방을 얻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예기치 않은 고난이 임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 가운데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감추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고난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살펴 고난 중에도 감사하며 인내함으로 승리하는 삶을 사는 성도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