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를 즐겁고 기쁘게 합니까? (잠 23:22-26)

통계청이 18일 밝힌 자료에 따르면 2003년 자살자 가운데 60세 이상 노인이 33%인 3천612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2년보다 무려 900명이 늘었고, 1998년 1천519명보다는 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더욱 눈 여겨 보아야 할 사항은 노인 자살이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난다는 것이다.

10년 전인 95년엔 786명이 자살했고, 그 중 노인자살자 비중은 16%였다. 이도 결코 적지 않은 것인데 자살 비율이 배가 넘었다.

한 해에 자살하는 노인이 3천 600명이 넘는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 사회가 잘못되어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다.

왜 이렇게 자살하는 노인이 늘어나는 것일까?

자살하는 노인들의 유서를 통해 보면 - `자식들에게 짐 되기 싫어서`

- `더 이상 치료비를 마련할 수 없어서`
- `병의 고통을 이길 수 없어서`
- `아무런 즐거움이 없는 세상이 싫어서`
- `가난한 노후가 지긋지긋해서` 등이 그 이유다.

2003년의 자살자 3분의 1이 60세의 이상의 노인이다.
노인은 남이 아닌 바로 우리의 어버이들이 아닌가?
우리의 어버이들이 자살이 - 자살자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매우 충격적이다.
10사람이 자살했는데 그 중에 3사람이 우리 부모라고 생각해 보자.
이거 통탄할 일이 아닌가?

사회가 잘못되고 자식들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 아닌가?

우리 부모님들이 왜 자살하는가?
한마디로 말하면 - 아무런 즐거움이 없다는 것이다. 사는 낙이 없다는 것이다.
인생이라는 것이 즐거움이 있어야 살맛이 나고 행복한 것이지, 아무런 즐거움이 없는데 살맛이 나겠는가?

- 자식들을 바라보아도 즐거움이 없고
- 자기 인생을 바라보아도 즐거움이 없고
- 세상을 바라보아도 즐거움이 없고

아무런 즐거움이 없는 인생 - 어찌 살맛이 나겠는가?
아무런 즐거움이 없는 인생 - 살맛 없는 세상에 무슨 미련이 있겠는가?
아무런 즐거움이 없이 외로움과 고독 속에 몸부림치다가 결국 세상을 포기하고 자기 목숨을 포기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할 일이 있다면 어버이에게 즐거움을 드리는 것이다.

효도가 무엇인가?
효도하는 방법은 사람 나름대로 다를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효도는 부모님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드리는 것이다.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다시 한번 어버이를 즐겁게 해드리는 자녀가 되자.
어버이를 즐겁게 해드리므로 우리 사회에 노인의 자살이 사라지게 하자.
노령인구가 증가하고 장수하고 있지만 우리의 어버이들이 살맛나는 인생을 살아가게 하는 자녀가 되자.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 즐거움이 4번, 기쁘게 1번 나온다.
25절 -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왜 우리가 부모를 즐겁고 기쁘게 해야 하는가?
- 부모를 즐겁게 하며 기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다.

하나님께서 명령하는 것은 무조건 지키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십계명 중 5명 계명으로 - "네 부모를 공경하라”
십계명을 인간이 반드시 지켜야 할 명령이다.
그러므로 부모공경도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명령이다.

왜 하나님께서 부모를 즐겁게 하라고 명령하시는가?
- 그것은 우리가 부모님을 즐겁게 해 드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다.
하나님의 명령은 성도들이 반드시 지켜할 말씀이요, 생명과 축복의 말씀이다.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그 어떤 말씀보다도 너 낳은 어비를 기쁘게 하라는 명령을 지키는 성도가 되자.
정말 살아계신 어버이, 외롭게 사시는 노인들을 기쁘게 하는 성도가 되자.

어떻게 부모를 즐겁고 기쁘게 할 수 있는가?

첫째로, 청종해야 한다.

22절 -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라”
청종 - 듣다, 순종하다의 의미
경히 - 무례하게`대하다:- 얕보다, 멸시하다,

청종은 부모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라는 말씀이다.
왜 부모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라고 명령하시는가?
- 부모의 말씀을 듣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는다.
그러나 반항기인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부모의 말씀에 반항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고분구분 부모의 말씀을 잘 듣던 자식이 잘 듣지 않고 자기 주관을 내세운다.
청, 장년기에 들어서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면 이제 완전한 성년이 되었기 때문에 자기 주관대로 살지 부모의 말씀을 듣지 않게 된다.

저도 어머니를 모시고 살지만, 어버이의 말씀을 잘 청종하지 못한다.
무슨 말씀을 하시면 듣기 싫어서 예하고 대답해버리고 말 때가 많다.

왜 우리가 부모의 말씀을 듣지 않는가?
- 부모의 말씀을 잘 듣지 않는 이유는 경히 여기기 때문이다.

4-50대에는 그렇게 젊잖으시고 의젓하시던 분이 노인이 되니 추해진다.
사리가 분명하고, 행동에 권위가 있으시던 분이 노인이 되니 사리가 희미해지고, 행동도 실망스러울 때가 있다.
눈이 어두워지고, 귀가 잘 들리지 않고, 기억력도 없어진다.
방금 했던 말을 또 하고, 방금 물었던 말을 또 묻는다.
금방 가르쳐 준 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잊어버린다.

시골 동네에 있는 작은 지점이라 다들 식구처럼 알고 지내는 그런 은행이 있다.
일을 보고 은행을 나오려는데 뒤에서 왠 할머니 한분이랑 은행 직원이랑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할머니~ 비밀번호가 뭐예요?”
그러자 할머니 입을 손으로 가리시더니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비둘기”
황당한 은행 직원이 다시 한번 물었다.
“할머니~~ 비밀번호가 뭐냐니까요”
그러자 역시 입을 가리신 할머니 한번 더 말했다.
“비..둘..기”

“할머니. 비밀번호 말씀하지 않으면 돈을 찾을 수 없어요. 비밀번호요. 네?”
그래도 변함없이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비둘기” 하시자, 더 이상 인내하지 못한 직원이 좀 화가나 소리 쳤다.
“할머니! 바쁜데 지금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왜 이러세요. 빨리 비밀번호 대라구요!”
그제서야 비밀 번호를 말하시는데 온 은행이 웃음 바다가 됐다더군요.
“9999” - 비둘기 우는 소리 ‘구구구구’

성도 여러분!
이것이 노인들의 모습이다.
연세가 많이 드시면 다 이렇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노인을 경히 여기지 말고, 더욱 노인을 존중히 여기고 섬겨야 할 것이다.
현대어 성경에는 - “너를 낳아주신 아버지가 이르시는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 늙으신 네 어머니를 우습게 여겨서는 절대로 안 된다”.
부모의 말씀을 잘 들어 부모님을 즐겁게 해 드리는 자녀가 되자.


둘째로, 의인으로 살아야 한다.

24절 -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는 자는 그를 인하여 크게 즐거울 것이니라”
의인, 지혜로운 자식이 무엇인가?
의인은 - 짜다크에서 유래 - 올바르고 깨끗한 사람
지혜로운 사람 - 하나님을 잘 경외하는 사람

부모의 즐거움이 어디 있는가?
자식이 공부할 하는 것, 자식이 돈을 잘 버는 것, 자식이 성공하는 것 등 모두가 즐거움이다.
그러나 공부 잘하는 것 이전에 올바르고 깨끗한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이 더 큰 즐거움이 아닌가?
돈을 잘 버는 것 이전에 올바르고 깨끗한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이 더 큰 즐거움이 아닌가?
성공하는 것 이전에 올바르고 깨끗한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이 더 큰 즐거움이 아닌가?

일진회’ 파문이 채 가시기도 전에 서울 지역 94개 중·고교학생 300여명이 가입한 학교폭력 연합서클이 경찰에 적발됐다.
더 놀라운 일은 서클가입자를 조사했더니 공부 잘하고 용모 단정한 ‘모범생’이 상당수였다는 사실이다.
학부모 모임에서 “댁의 자식은 괜찮습니까?”라고 안부를 묻는 게 조금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도대체 요즘 우리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충북도교육청은 학교 폭력 예방을 위해 도교육청은 일선 희망학교의 신청을 받아 32개 학교에 폐쇄회로(CC) TV를 설치키로 했다.
‘스쿨폴리스’(School Police· 학교경찰)가 교육계 안팎의 논란 속에 부산에서 전국 처음으로 공식 활동에 들어갔다.
퇴직 교원과 퇴직 경찰관 등 2인1조로 구성된 학교경찰은 이날부터 3개월간 부산시내 7개교(초등 1곳, 중·고 각 3곳)에서 시범 운영된다.
이것이 오늘의 학교 현실이다.

그러기에 부모의 마음은 자식이 의인으로 살기를 바라고 있다.
자식이 올바르고 깨끗하게 믿음으로 살기를 바라고 있다.

현대어 성경 - “바르게 사는 자식을 보면 그 아비는 말할 수 없이 기쁠 것이요, 슬기롭게 사는 자식을 둔 아비는 한없이 흐뭇할 것이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부모의 마음이 아닌가?
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아무리 돈을 잘 벌고, 아무리 출세해도 바르게 살지 않는 자식을 보는 부모의 마음을 근심만 가득할 뿐, 절대로 즐거울 수가 없을 것이다.
바르게 살지 못하는 자식을 보고 즐거워하고 한없이 흐믓해 하는 부모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어떤 직장과 사업을 가지고 살든 바르고 깨끗하게 살고, 믿음으로 살자.
이것이 부모에게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이요 한없는 기쁨이 될 것이다.


셋째로, 마음을 주어야 한다.

26절 - “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
왜 아들에게 네 마음을 내게 달라고 하였는가?

한번 부모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 자식이 매달 용돈을 준다.
- 시시때때로 몸에 좋다는 보약도 지어준다.
- 좋은 옷도 사주고 관광도 시켜 준다.
이정도만 해도 정말 효자가 아니겠는가?
정말 부모님에게 잘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부모님은 이런 물질보다 더 원하는 것이 있다.

부모님이 가장 원하는 것은 마음이다.
왜 마음을 원하는가? - 어머니는 자식을 위하여 마음을 주었기 때문이다.

어머니 마음
낳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
어려선 안고 업고 얼려주시고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마음 -
사람의 마음속엔 온 가지소원 어머니의 마음속엔 오직 한 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을 위하여 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
하늘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어머니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

어머니의 마음이 어떤 마음인가?
기를 젠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자라선 문 기대에 기다리는 마음
자식을 위하여 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 - 이것이 어머니 마음이다.
하늘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 어머니의 마음보다 더 넓은 것이 없다.
그러기에 어느 시인은 - “세상에서 가장 짧고 아름다운 기도가 엄마”라고 하였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런 어머니의 마음으로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마음을 준 어머니는 우리에게 그 무엇보다도 마음을 원하고 있다.
-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마음을 주어 어버이를 즐겁게 하는 성도가 되자.

몇 년 전 모 생명보험회사에서 이색적인 광고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던 적이 있다.
“어머니의 광고”는 이렇다.

● 스물하나... 당신은 고개를 두 개 넘어 얼굴도 본적이 없는 김 씨댁의 큰 아들에게 시집을 왔습니다.

● 스물여섯... 시집온 지 오년 만에 자식을 낳았습니다. 당신은 그제서야 시댁 어른들 한테 며느리 대접을 받았습니다.

● 서른 둘... 자식이 밤늦게 급체를 앓았습니다. 당신은 자식을 업고 읍내 병원까지 이십 리를 달렸습니다.

● 마흔...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습니다. 당신은 자식이 학교에서 돌아올 무렵이면 자신의 외투를 입고 동구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자식에게 당신의 체온으로 덥혀진 외투를 입혀 주었습니다.

● 쉰둘... 자식이 결혼할 여자라고 집으로 데려 왔습니다. 당신은 분칠한 얼굴이 싫었지만 자식이 좋다니까 당신도 좋다고 하였습니다.

● 예순... 환갑이라고 자식이 모처럼 돈을 보냈습니다. 당신은 그 돈으로 자식의 보약을 지었습니다.

● 예순다섯... 자식 내외가 바쁘다며 명절에 고향에 못 내려온다고 했습니다. 당신은 동네 사람들에게 아들이 바빠서 아침 일찍 올라갔다며 당신 평생 처음으로 거짓말을 했습니다.

오직 하나 자식 잘되기만을 바라며 살아온 한평생, 하지만 이제는 깊게 주름진 얼굴로 남으신 당신...... 우리는 당신을 어머니라 부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어머니 모습이 아닌가?
오직 자식 잘 되기를 바라며 자식만을 위해 고생고생하며 살아온 어머니 ---
이제는 주름지고, 늙고 쇠약해진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려야지 않겠는가?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 모두 -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실천하는 성도가 되자. (유운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