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부모를 즐겁게 하라   (잠언 23:15~26)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부모를 공경하고 자녀를 교육시킴으로 행복하고 축복 받는 가정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일찍이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부모님의 은혜를 모른다면 너의 친구가 되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이 좋은 친구도 생기고, 세상에서도 존경받고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명령입니다.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축복을 허락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자리에 있기까지 부모의 영향을 받고 살아왔음을 부인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 만큼 가정은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함에 틀림없습니다. 인간이 부를 수 있는 가장 고귀하고 복된 이름이 있다면 그것은 ‘아버지’요, ‘어머니’일 것입니다.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은 여러분 가운데에는 육신의 부모님이 이미 고인이 되셔서 사랑하는 부모님의 이름을 다시 부를 수 없는 분도 계시겠지만, 우리는 항상 부모님의 얼굴에서 주름살을 펴드리고 잃어버린 웃음을 회복하실 수 있도록 해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지만 동시에 “사랑을 나눠주기 위해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늘 사랑만 받고 자란다면 남에게 베풀 줄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부모 된 우리가 자녀들을 잘 가르쳐야 합니다.
성경은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언22:6)고 했습니다. 또한 자녀가 잘못할 때에는 엄하게 훈계해야 합니다.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잠언23:13-14).
이 시대의 부모들은 자녀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주지 못한다는 미안함 때문에 자녀들이 원하는 것을 다 해주려고 합니다. 잔소리는 많이 하지만 엄하게 훈계하여 바른 사람으로 자랄 수 있도록 사랑의 매를 들지 못합니다. 성경은 사랑의 매를 들게 될 때에 자녀의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부모의 바른 훈계를 받고 믿음과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만큼 부모님에게 기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요한3서 4절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 부모님을 즐겁게 행복하게 하는 자녀는 어떤 자녀인지를 함께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승리하는 자녀입니다(17절).

잠언서 전체의 주제는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얻는 복과 은혜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언1:7). 왜 성경의 여러 곳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특별히 하나님을 경외하라 말씀하셨을까 생각해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가서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 섬기지 말아야 할 대상을 섬기게 될 것을 아시고 각별히 명령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들이 필요한 물질을 섬기든지, 권력을 섬기든지, 쾌락을 섬기든지, 인생은 무엇인가를 섬기며 살아가도록 된 존재입니다. 그러나 무엇을 섬기든 진정 섬길 대상이 아닌 대상을 섬긴다면 그로 인해 인생이 불행해지고 더불어 가정과 사회까지도 부서지는 결과를 낳습니다. 우리가 항상 여호와를 경외함을 통해서 우리의 모든 문제들이 해결됩니다.
우리는 마음의 경영을 하나님의 자녀답게, 부모님의 교훈을 따라 바르게 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의 부모님들은 우리 자녀들에 대해 마음 든든하고 흐뭇해하실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삶의 원칙이 분명해집니다.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은 분명합니다. 남들이 다 넓은 길을 택한다할지라도 우리는 주님이 가신 좁은길을 믿음으로 걸어갈 수 있습니다. 삶의 올바른 길을 선택하는 진리와 훈계와 명철을 끝까지 붙잡으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뜻이며 우리 부모님들의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부모님이 우리와 자손들을 바라볼 때에 ‘믿음의 사람이구나’라는 마음에 확신을 가지고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쁘게 기대하실 수 있는 부모님이 되게 해 드려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왜곡된 가치관 속에서도 믿음의 정도를 걸어갑시다.
이것이 부모님을 기쁘게 하는 자녀의 길인 것입니다.



2. 대인관계에 성공하는 자녀입니다(20-21절).

“술을 즐겨하는 자와 고기를 탐하는 자로 더불어 사귀지 말라 술 취하고 탐식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요 잠 자기를 즐겨하는 자는 해어진 옷을 입을 것임이니라.”
우리의 부모들은 자녀가 잘되기를 바라고 또 바라고 있습니다. 자녀의 성공이 나 자신의 성공보다 더 기뻐하시는 분들입니다. 본문은 우리가 결코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할 자들에 대해 말합니다.
술을 즐겨하는 자, 탐식하는 자, 게으른 자들과 교제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이러한 사람들은 육적, 영적으로 황폐하게 될 뿐만 아니라 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대인관계의 품격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가족이나 영적 지도자 어느 누구에게도 떳떳하게 소개할 수 있는 사람들을 사귀십시오. 피해야 할 대상이 또 있는데 성적으로 유혹하는 음녀를 피하라고 말합니다. (27-28절).
성적인 유혹은 가정을 허물고 인생을 깊은 수렁에 빠뜨려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합니다. 가정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사단의 전략은 에덴동산에서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있어 우리의 가정을 믿음과 사랑으로 건강하게 지켜내야 합니다. 이것이 부모님을 기쁘게 하는 자녀의 길인 것입니다



3. 부모님을 존중하는 자녀입니다(22절).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60 먹은 아들도 80 노모 앞에서는 재롱을 피워 즐겁게 해드린다’는 말이 전해 옵니다. 그만큼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구체적으로 우리가 부모님을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서는 자녀로서 부모님을 좋아해야 합니다. 부모님에 대해 따뜻한 마음으로 따르고 좋아하는 마음은 그분들을 즐겁게 해드리는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이지만 나이가 들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에 대한 사랑이 식어지기 쉽습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마음이 멀어져 있음을 봅니다.
오늘 본문 26절 말씀에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26절). 부모는 자식들에게 잊혀진 존재, 떠밀려진 존재가 아니라 자식들의 마음에 소중하게 자리잡는 존재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부모님의 사랑에 깊이 묵상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 먼저의 사랑, 끝까지의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지상에 있는 모든 부모님들은 자녀들에게 존중받아 마땅한 분들입니다.
성경은 부모를 조롱하며 순종하는 것을 싫어하는 자식은 그 인생이 실패하고 파멸할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잠언30:17).
부모를 존중한다는 것은 부모님의 생각을 존중하고 그 존재에 대해 깊은 연민과 사랑을 가지고 마음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자녀된 우리는 부모님이 높은 자존감과 자녀들에 대한 한없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실 수 있도록 도와드려야 합니다.
성 어거스틴이 그의 모친 모니카의 기도를 통해 늦은 나이에 회심하였습니다. 그는 그의 ‘참회록’에 “나는 너무 늦게 주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라고 고백하며 참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부모님께 “나는 부모님을 사랑하는 것에 너무 늦게 철이 들었습니다”라고 고백하며 부모님이 병드신 후에, 돌아가신 후에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4. 부모님 앞에 겸손히 무릎 꿇는 자녀입니다(26절).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
우리는 부모님들의 희생을 통해서 부모님들보다 더 많은 교육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부모님들의 사랑을 통해서 부모님들보다 더 많은 삶의 지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부모님들의 헌신을 통해서 부모님들이 살아오신 삶의 수준보다 더 높은 삶의 수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이 이만큼의 수준까지 이르기까지는 부모님들의 희생과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들은 우리들의 성장함을 바라보고 매우 기쁨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성장하는 반면에 우리들의 부모님들은 그대로 계셨습니다. 아니 그대로 계신 것이 아닌 점점 더 후퇴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하고 싶은 것 자식 때문에 하지 않았기에 후퇴하는 삶이었습니다. 잡숫고 싶은 것 자식 때문에 잡숫지 않았기에 후퇴하는 삶이었습니다. 입고 싶은 옷 자식 때문에 입지 않았기에 점점 더 초라해지는 삶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 인해 우리가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또 하나 알아야할 사실은 우리들의 부모님의 희생을 통해서 우리가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성장해 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결과로 지금의 우리와 부모님 사이에는 갭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수준차이, 생활의 차이, 생각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부모님들의 수준을 우리들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처럼 부모님들이 생각하기를 요구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 이전에 먼저 예수님이 이 땅에 내려오신 성육신이 있었습니다. 우리들을 하나님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이전에 우리와 같은 수준으로 내려오셨음을 기억해야합니다. 그리고 철저히 낮아지는 모습을 우리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 낮아짐의 극치가 바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주님의 모습입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기 위해 제자들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던 주님의 모습을 바라보십시오.
우리들을 위해 먹을 것을 참으셔야 했던 우리들의 어머님의 모습을 바라보십시오. 우리들을 위해 입을 것을 참으셔야 했던 우리들의 아버님의 모습을 바라보십시오. 우리들을 가르치시기 위해 수많은 희생을 감수하셔야 했던 부모님들의 모습을 바라보십시오. 우리들을 위해 한평생을 바치신 부모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효도입니다.
부모님들 앞에서 우리들의 수준은 이제 낮아져야 합니다. 그 분들의 생각으로 우리가 내려가야 합니다. 우리가 가졌던 모든 삶의 수준들은 부모님들 앞에서는 모두 낮아지는 섬김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부모님 앞에 겸손히 무릎 꿇는 자녀가 되어야합니다.
이것이 부모님을 기쁘게 하는 자녀의 길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복을 받아 오래 사는 비결입니다.

마지막으로 부모님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자녀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부모님께 해드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무엇입니까? 믿음의 자녀인 우리가 부모님에게 해드릴 수 있는 최고의 효도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부모님이 천국에 입성하실 수 있도록 믿음의 신발을 신겨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것은 몰라도 이 문제만큼은 실패해서는 안됩니다. 반드시 성공해야 합니다. 우리의 부모님이 믿음의 신발을 신고 천국에 기쁨으로 입성하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자녀의 근본된 도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 감사하듯이 부모님께도 감사해야 합니다. 부모님께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부모님을 경히 여긴 것이 있다면 회개합시다. 부모의 신앙의 유산을 잘 물려받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귀하게 쓰임 받는 인생이 됩시다. 우리 모두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자녀가 되어 모든 가정들이 지상의 에덴동산으로 쓰임 받도록 합시다.

출처/손상률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