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부모를 공경하라  (에베소서6:1-4)


시인 이경주 씨의 글, “그렇게 사시는 것이 어머니인줄 알았어요.” 입니다.
어머니는 언제나 그렇게 사시는 게 어머니인줄 앓았어요.
헐벗고 굶주리는 그 시절,
낮에는 고픈 배를 참으시며 일을 하시고,
헌 옷을 밤새워 기워 입히시던 어머니!
어쩌다 있는 별식은 우리만 먹이고,
더운 여름철에는 검은 보리쌀을 문질러 닦고
이랑을 일구어 김을 매느라
손톱이 다 닳아 깎을 것도 없다고 하시던 어미니
겨울철에는 도랑의 찬물에 빨래를 해
손등이 다 트신 우리 어머니의 손
거룩한 손길에 자라 온 우리들!

어머니는 항상 그렇게 사시는 줄로만 알았어요.
출가를 보내고, 있는 것 없는 것
보따리를 챙겨주시는 우리 어머니!
이제야 깨닫고 보니 어머니는 안 계시고
내가 늙어 가네요.
누군가가 말했지요. 부모님은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철없는 나는,
어머니는 항상 그렇게 사시는 게 어머니인줄 알았어요.
지금의 좋은 여건 속에 살아가는 어머니들과
비교할 수 없는 우리 어머니의 희생은
언제나 인자하고 강하셨지요.

따뜻한 어머니의 사랑을 그리워하며
어머니~! 사랑합니다.

이 땅에서 해방과 6.25를 지나온 부모님들은 힘들게 사는 것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셨습니다. 가난, 고생 속에 자신을 돌볼 겨를도 없이 자식들을 겨우 거두며 사셨던 이 땅의 어머니들은, 저의 어머니이며, 여러분들의 어머니입니다.
부모의 사랑의 돌봄 속에 어느 새 훌쩍 크고 나면, 재 각각 다 제 잘나서 저절로 큰 줄로 여기지만, 어느 누구 한 사람 부모의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이 있겠습니까?
오늘은 우리 교회가 지키는 어버이 주일입니다. 부모님에게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이런 기념 주일을 기해서 다시 한 번 그 의미를 되새기며 삶의 다짐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은 이 땅의 모든 자녀들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1)
“자녀이신 여러분, 주 안에서 여러분의 부모에게 복종하십시오.”
이 세상에 부모 없이 태어난 사람이 없으니 모든 사람은 자녀입니다. 이 명령은 우리 모두에게 하시는 말씀하십니다.  
1.여러분의 부모에게 복종하십시오.
남의 부모에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날 낳아주시고, 키워주시고, 오늘의 나를 여기에 있게 하신 내 부모에게 순종하라 하십니다.  
1)내 부모는 내가 아니면 책임 있게 돌볼 사람이 없습니다.
남의 부모에게는 가끔 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구나 한두 번쯤은, 또 생색내는 일에는 깍듯하고 넉넉하게 할 수 있습니다. 간혹 지속적으로 책임을 져야하는 일에 잘못하는 사람들이 한두 번 다른 사람에게 잘하는 것은 혹시 보상심리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부부의 관계에서도 그렇습니다. 자기 남편에게나, 아내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남에게는 깍듯이, 예의를 갖추고, 교양 있는 자세로 대합니다. 사실은 지금 있는 내 가족에게도 처음에는 다 그렇게 하였었지요. 그런데 같이 살다보니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사람인 것처럼 생각해 버린 것입니다. 사실은 갈수록 더 소중한사람이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인데도 말입니다.
부모님은 갈수록 소중하다기보다, 세월이 갈수록 더욱 자녀의 돌봄이 절실해집니다. 여러분 이 질문의 답을 아십니까? “처음에는 네 발로 기다가 장성하면 두 발로 걷다가 늙으면 세 발로 걷는 것은?” 세 발로 걸어야 하는 노인들은 반쯤은 어른이고, 반쯤은 아이인 중간 존재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아이 때는 밥을 먹을 때, 엄마가 턱 밑에 수건을 밭쳐줍니다. 음식을 먹다가 흘려도 괜찮게 말입니다. 그런데 노인이 되면 음식을 먹을 때에는 본인 스스로가 턱밑에 반드시 턱받침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옷을 버리고, 넥타이를 버립니다. 그래서 자식들에게 잔소리를 듣게 됩니다. “아이들처럼 줄줄 흘린다.”고 말입니다. 우리교회 권사님, 장로님들 가운데는 가방 속에 항상 턱받침을 가지고 다니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반쯤 아이가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자녀들은 이런 부모님을 마땅히 돌보아 드려야 합니다. 더 연세가 드시고 몸이 불편해지시면 더 아이다워지지요. 부모가 도와주지 않으면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듯, 자식의 도움이 없으면 돌아눕지도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2)복종하라는 말씀은 그 권위를 인정해드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실상 연세가 드시면 모든 것이 다 사라집니다. 젊을 때의 그 기력, 당당함, 의젓함, 능력, 아름다움, 올곧음 다 어디로 가버렸는지, 사라져버리고 추하고 초라한 모습만 남습니다. 그래서 무시당해도 아무런 저항조차 할 수 없는 힘없고 연약한 존재로 전락합니다. 스스로 당신의 권위를 유지할 능력이 없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바로 이때, ‘복종하여 권위를 인정해 드리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에 연세 드시고 능력이 다 사라져버린 분을 누가 존경하고 섬기겠습니까? 자기 자식이 아니면 누구도 그렇게 할 사람이 없습니다.
성경을 보면 목동으로, 장군으로, 정치가로, 시인으로, 음악가로, 신앙인으로 일생을 위대하게 살다가 마지막 순간을 맞이한 다윗이 아들 솔로몬에게 말합니다.
“내가 이제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게 되었다.”
죽음의 길을 말한 것입니다. 누구나 가는 길입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먼저, 다윗이 걸어온 길이 있었습니다. ‘노쇠의 길’이었습니다.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누구나 이 길을 걷습니다. 바로 이때 어른의 권위를 인정해 드림으로 복종하라 하십니다.

2.복종의 태도를 가르칩니다. “주안에서” 하라 하십니다.
아주 오랫동안 이 말씀을 순종의 범위로 이해하여 왔습니다. 이를테면 주님의 가르침 안에서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부모의 말씀이라도 주님의 뜻에 어긋나면 불순종할 수도 있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이 이렇게 해석하면 언제든지 불순종할 수 있는 요인을 인정하는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내 스스로가 완전치 못하듯 부모도 역시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삶, 그 가르침, 그 명령이 완전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자식은 부모가 말할 때마다 이것은 순종해야하는지, 하지 않아도 되는지를 판단해야할 것입니다. 이주 피곤한 인생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복종의 태도라고 해석하면 전혀 그 뜻이 다릅니다.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을 주님께 하듯 하라’는 뜻입니다.  
본문의 말씀이 계속이어 지고 있는 에베소서6:5-7에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종이신 여러분,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것같이,
육신의 주인에게 두려움과 떨림과 성실한 마음으로 복종하십시오.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들처럼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같이, 진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십시오.
사람에게가 아니라, 주님께 하듯이, 기쁜 마음으로 섬기십시오.”

종의 신분으로 일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마음으로 육신의 주인에게 하라” 하십니다. 이 얼마나 타당한 교훈입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윗사람을 섬기는 자세를 압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윗사람을 섬기고 복종한다면 얼마나 신뢰와 사랑과 존경을 받겠습니까!
요셉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방나라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로 생활을 할 때나 이집트의 바로 왕의 총리로 일을 할 때나 그는 하나님을 섬기듯 일했습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되 주님께 순종하듯이 하십시오.”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시지만 구체적인 삶에서는 그 말씀을 적용합니다.
“어떻게 하면 주님께서 기뻐하실까? 이 상황에서 주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실까?”  
이렇게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부모님을 어떻게 하면 기쁘시게 해드릴까? 내가 부모라면 이 상황에서 무엇을 원할까?”  
자녀이신 여러분,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둘째, 보모를 공경하십시오.
약속 있는 첫 계명입니다.(2)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딸려있는 첫 계명입니다.”
얼핏 보면 앞의 말씀을 반복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말씀의 강도가 전혀 다릅니다. 우선 ‘공경한다는 말은 존경하고 경외하는 것을 뜻합니다.
1.부모를 존경하십시오.
존경하라 할 때에 우리는 항상 조건을 먼저 붙입니다. 존경할만하냐를 묻습니다. ‘능력이 있느냐? 인격은 되냐? 나를 얼마나 사랑했냐?’
금년 73세이신 공주 우성교회 이화수장로님의 이야기가 화재가 되고 있습니다.
23살에 우상숭배가 가득한 부자 집에 시집왔습니다. 얼마 후에 알콜 중독자이신 시아버지가 쓰러졌는데 일주일밖에 살지 못한다는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다가 마지막으로 간 곳이 전주기독병원이었습니다. 그 곳에서 병원에 전도하러 온 전도사님으로부터 이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시아버지 살리려면 예수 믿어야 돼” 이 말에 귀가 번쩍 뜨인 이 며느리가 ‘시아버지 살릴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하겠다.’는 마음으로 교회에 가서 “시 아버지만 살려 달라”고 매일 밤낮으로 울면서 기도하다가 성령체험을 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님의 기적으로 시아버지는 건강이 회복되어 구원받고 15년을 더 사셨습니다. 남편을 위하여 10년을 기도한 끝에 구원받고 교회 충실한 봉사자가 되었고, 이런 신앙으로 6남매를 다 믿음으로 양육하였습니다. 그리고 시집와서부터 삯바느질을 시작하여 50년을 일하면서 세 아들은 신학대학공부를 시켜서 훌륭한 목회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지금은 그 동네 모든 사람들이 가잘 부러워하는 가정이 되었습니다. 장남 목사님이 말합니다. “어머니의 복음의 씨앗으로 우리 가족 모두 구원을 받았다. 우리 6남매의 기둥이신 어머니가 건강하게 오래 사시는 것이 우리 가족의 바램이다. 어머니 당신은 희망입니다.”
그래 이정도의 어머니라면 마땅히 존경을 받을만하지요.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다 그렇지는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네 부모를 존경해야합니다.” 주님의 명령입니다. 이 명령은 부부에게 명령하시는 기조그대로입니다.
“아내들이여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십시오.”
“남편들이여 아내 사랑하기를 주께 하듯 하십시오.”
아내의 남편에게 하는 복종의 조건이 남편의 지극한 사랑에 있지 않습니다.
남편의 아내를 사랑하는 조건이 아내의 지극한 복종에 있지 않습니다.
사랑할만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존경받을만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내 아내이기 때문에, 내 남편이기 때문에 사랑하고 존경하라하십니다. 실로 그리해야합니다. 아내를 진실로 사랑하십시오. 지속적으로 한결같이 하십시오. 아내의 마음을 정복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진실로 남편을 존경하고 복종하십시오. 남편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 역시 시간문제입니다.
자녀들이여, 부모를 무조건 존경하십시오. 거기에는 어떤 조건도 붙일 수 없습니다. 내게 충분한 사랑을 주지 않았어도 그리하십시오.

2.더 나아가서 당신의 부모님을 경외하십시오.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신앙적인 자세입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누구의 선택도 아니었습니다. 내가 태어나면서 부모를 선택할 수 없듯이 내가 이런 자식을 낳겠다고 선택할 수 없습니다. 요즈음 복제 기술이 극도로 발달되면 앞으로 맞춤인간의 시대가 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설령가능하다해도 인간됨의 과정에는 변수가 너무너무 많습니다.  
나를 어떤 사람으로 낳아주셨든지, 내가 세상에 존재하도록 해주신 부모님을 경외하십시오. 경외 받아야 할 자격은 나를 낳아주어 부모가 되었다는 그 사실 하나입니다. 낳은 정, 기른 정이라는 말을 하곤 합니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부모는 부모입니다.  

셋째 부모 공경은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이 따릅니다. (3)
“잘되고 오래 사는 것입니다.”(3)
사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이것에서 더 바라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이것은 많은 재산을 상속받았다는 것, 돈이 많다는 것, 건강하다는 것과 다소 상관이 있겠지만, 행복은 성적순도 아니고, 재산이나 지식의 많음의 순서가 아닙니다. 이 땅에서 하는 일들이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잘되고, 건강하여 장수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의 열매입니다.

최근 한 재벌그룹의 회장이 구속 수감되는 것을 보기가 몹시 씁쓸하였습니다.  아들이 술집에서 싸우다가 매 맞고, 얼굴에 상처가 났으니 얼마나 화가 났을까?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 앞으로 또 어떻게 일할 자식인데, 이렇게 만들어놓았으니, 당장에라도 뛰어가서 보복하고 싶은 것은 이 땅의 모든 부모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 마음을 그대로 실현해버린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조직 폭력배들 까지 동원해서 보복폭력을 행사하였습니다.
구속 수감되는 자리에서 회장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상대방을 탓하고, 분노하기 이전에 자식에게 먼저 회초리를 들어 꾸짖지 못했던 자신이 후회스럽고” “처음 사건의 발단 시 적법절차에 따라 신중하게 처신하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럽다.”  
자식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사랑의 방법이 잘못표현된 것입니다.

부모공경 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땅의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해봤는데 안 된다고요? 꾸준하게 하십시오. 계속하십시오. 하나님의 축복이 실현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극약처방 같지 않습니다. 아주 미미한 것 같지만 지속적으로 하다보면 나도 모르는 어느 새 그 자리에 이르러 있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순종하십시오. 일확천금을 얻듯이 노다지를 발견하듯이 그렇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그는 꿈을 꾸고 13년이 자나도록 그 꿈이 이루어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가슴에는 항상 그 꿈이 살아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3년이 지난 어느 날 그는 졸지에 그 꿈의 문턱에 확 들어서게 됩니다. 그리고 22년이 자난 어느 날 눈앞에 펼쳐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유대인 어머니들이 자녀들에게 반드시 가르치는 이야기 하나가 있습니다.
랍비 ‘아키바’의 이야기입니다.
큰 부잣집 머슴으로 일하다가, 주인집 딸과 사랑에 빠져서 마침내 결혼까지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주인의 반대로 두 사람은 내어 쫓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아키바는 가난한 살림 탓에 학교에 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글을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말했습니다.
“여보, 제게 단 하나의 소원이 있습니다. 부디 공부를 하시기 바랍니다.”
아키바는 ‘나이 마흔 살이 넘었는데 무슨 공부를 하겠냐?’ 며 포기하고 양을 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물을 마시러 계곡에 갔다가 놀라운 사실을 목격하였습니다. 물이 조금씩 흐르고 있는데, 그 아래 바위가 움푹 파여 있었던 것입니다. 아키바는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저렇게도 약한 물도 계속 흐르니, 바위도 파이는구나. 내가 비록 나이가 많고, 기초지식이 전혀 없지만 노력하고 공부하며 무엇이든 하겠구나.”
이리하여 그 늦은 나이에 어린 학생들과 함께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13년 동안의 학교 공부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는 이미 당대의 우수한 학자로 명성을 떨치게 되었습니다. 후에 그는 최초의 탈무드 편집자가 되었으며, 의학과 천문학에도 조예가 깊었을 뿐 아니라, 여러 나라 말을 두루 구사하였고, 로마에 유대인의 사절로 파견된 것도 여러 차레였습니다.
그는 가장 존경받는 랍비였고, 유대인들의 영웅이기도합니다.
유대의 어머니들은 자녀들에게 격려한다고 합니다.
“아키바를 보아라. 너의 성적이 올라가지 않아도 아키바를 본받아 계속하면 된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마땅히 이 땅에서 복을 받고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 빛으로, 소금으로 영향력을 발휘하여야합니다. 그리고 내세에 영생을 얻어야합니다.  
주님께서 그 길을 우리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이 명령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약속하신 그 모든 복을 받아 누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최이우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