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의 기본이 되는 효도  (출애굽기 20:12)  

1. 효도는 모든 윤리의 기본이 됩니다

윤리가 무너지면 사회도 무너지고 가정도 무너지고 나아가서 국가도 무너지고 맙니다. 윤리란 “인간관계의 이치”라고 했습니다. Karl Barth는 윤리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위해서 자유를 문제 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아니므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생각지 않고 제멋대로 살 수 없기 때문에 자유를 문제 삼는 것이라고 봅니다.
Bartin Baber란 유대인 학자는 “나와 너”(Ich und Du)라는 유명한 책을 썼는데 모든 문제 “나와 너”의 관계 속에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윤리란 인간과 인간 사이에 지켜야 할 규범을 말하는 것인데 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규범 중에 가장 기본이 되고 첫째가 되는 규범은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효도라는 것입니다.
효도는 모든 도덕의 기본이 되고 모든 윤리의 기본이 됩니다. 우선순위를 본다면 아내 사랑이 먼저가 아니고 자식 사랑이 먼저가 아니고 부모 사랑이 먼저입니다. 자식 사랑이 먼저가 아니고 부모 사랑이 먼저인 것입니다. 자식을 희생해서라도 부모를 먼저 사랑하라는 것이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중앙청 뒤에 효자동이라는 동네가 있는데 그 이름이 붙여진 유래가 이렇습니다. 한 할아버지가 손자를 옆에 누이고 잠을 자다가 어떻게 잘못해서 아기가 이불에 덮여서 질식해 죽었습니다. 밭에서 일하던 아들이 그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아버지를 책망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어린 아들을 추켜들고 뺨을 때리면서 부모님을 걱정시킨 못된 자식이라고 책망을 했더니 뺨을 몇 대 맞은 그 아기가 숨을 내쉬고 다시 살아났다고 합니다. 이 소문이 온 장안에 퍼져서 그 동네를 “효자동”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현대인들에게는 이해가 안 되겠지만 이것이 동양의 예의지국이라고 하는 한국의 전통적인 사상이요, 공자의 가르침인 유교의 사상입니다.
  
  ① 인륜 계명의 첫 계명입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대로 구약 성경의 계명이 모두 613계명인데 그것을 10개로 간추린 것이 10계명입니다. 그 10계명을 둘로 나누면 1계명부터 4계명까지는 하나님께 대하여 지켜야 하는 계명이고 5계명부터 10계명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켜야할 인륜 계명입니다. 이 대인 계명 중에 첫 계명이 본문 말씀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하는 계명입니다. 이 계명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라는 계명보다 먼저 와 있습니다. 이는 효도가 모든 윤리의 첫째 되는 계명이며 기본이 되는 계명임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② 축복의 약속이 붙은 계명입니다
  이 계명을 지키면 장수하고 복을 받게 해주겠다는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6장 1~3절에도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했습니다. 축복의 약속이 붙은 첫 계명이라고 했습니다. 충신이나 위대한 인물은 다 효자의 가문에서 나온다는 말도 예부터 전해져 내려옵니다.

  ③ 효도는 질서의 기본입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며 권위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정이나, 교회나, 사회나 모두 질서 있는 가정, 교회, 국가가 되기 원합니다. 그런데 질서 있는 세상이 되려면 부모의 권위를 인정하고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요한 웨슬리의 어머니 수산나는 말하기를 자식은 두 살 때부터 자기의 고집을 꺾고 순종하는 법을 가르쳐야지, 부모에게 순종할 줄 모르고 제 고집대로 하게 버려두면 다음에 자라서 하나님께도 순종할 줄 모르게 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가문이 잘 되고 이 나라가 잘 되기를 원한다면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하여 질서 있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로마서 13장 1~2절에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고 했습니다. 부모님은 가정에서 최고 권위자입니다. 잘났든 못났든, 유식하든 무식하든, 하나님이 권위자로 세우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순종하고 공경해야 합니다.
  효자는 사회에서 좋은 시민이 되고 회사에는 좋은 사원이 되고 교회에서는 좋은 교인이 되는 것입니다. 효도는 질서의 기본이 됩니다.
  ④ 부모의 은덕이 가장 크기 때문입니다
  무슨 은혜, 무슨 은혜, 해도 생명을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부모님의 은혜와 사랑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겠습니까?
  옛날 부모님들은 그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먹이시고 입히시고 공부시키느라고 정말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오늘날은 옛날에 비해 살기도 좋고 자식도 많이 안 낳는데도 힘들다고 하는데 옛날에는 얼마나 고생을 많이 하셨겠습니까?
  부모의 마음은 자식들의 기침소리에도 가슴에 화살이 박히는 것 같고 이마에 손을 대서 따끈하게 열이 좀 나도 가슴이 철렁하는데, 다 제 자식 키워봐야 아는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효도는 가장 중요한 윤리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시대가 어떻게 변천해도 변함이 없는 진리입니다. 약 15년 전에 들은 통계인데 자식들이 제주도나 동남아시아에 부모님 모시고 가서 버리고 오는 건수가 800여 건이나 된다고 합니다. 옛날 고려장과 다를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2. 참 된 효도는 어떤 것일까요?

  ① 중심에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일본에 소문난 효자 대학생이 있어서 하루는 그의 친구가 어떻게 효도하는지 보자하고 시골집에 따라갔습니다. 가자마자 샤워를 하는데, “어머니, 비누 좀 주세요” 또 “어머니 수건 좀 갖다주세요”, “어머니, 물 좀 더 주세요” 하며 자꾸 어머니를 시켜먹는 것을 보고 효자 자식이 뭐 이렇게 어머니를 시켜만 먹나 하고 실망했습니다. 그래서 조용할 때 친구를 불러 물어봤습니다. “나는 네 행동에 실망했네. 효자란 놈이 엄마를 부려만 먹는데 효자가 아니라 불효자 아닌가?”라고 했더니 “자네, 우리 어머니의 뜻을 몰라서 그러네. 어머님은 그런 심부름 하시는 것을 큰 기쁨으로 알고 있네. 내가 그것을 하기 싫어서 시키는 것이 아니라네” 하더랍니다.   좌우간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데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해야 하는 것같이 참 된 효도를 하려면 부모님이 중심에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아서 그것을 충족시켜드려야 할 줄 믿습니다. 우선 용돈이 궁하면 용돈 한 푼이라도 더 드리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전에 말씀드렸습니다만 저의 모친이 살아계실 때 큰아들네나 작은아들네에서 모시겠다고 해도 굳이 싫다고 하시면서 중간쯤에 작은 아파트라도 사서 거기서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작은 아파트를 사드렸더니 고생하는 막내딸의 이름으로 해주시는 것을 보고 그 어머님의 중심의 뜻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몇 년도 안 가서 그 막내딸이 장사한답시고 다 날려보냈습니다.
  그후 돌아가실 때가 가까우니까 또 집을 사달라고 하셔서 그 여동생이 밉지만 어머니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구리시에 연립주택을 사드렸는데 그때까지도 우리 4형제 아무도 집이 없을 때입니다. 결국 못 사는 막내딸에게 주었는데 지금은 그 집이 어디 갔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여동생이 괘씸하지만 어머님 기쁘시게 하느라고 그렇게 해드렸습니다.
  
  ② 공경심이 있어야 참 된 효도입니다
  뼈 빠지게 일해가며 자식들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켰더니 어머니를 파출부 정도로 알고 아버지는 머슴 취급하며 부모님을 멸시하는 것은 불효막심한 자식입니다. 레위기 19장 32절에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고 했습니다. 부모가 아닌 다른 노인도 공경해야 하는데 자기의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잠언 30장 17절에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고 하셨습니다. 자기를 가르쳐준 스승에게도 같은 마음으로 존경하고 공경해야 합니다. 요사이 선생님이 좀 책망하고 벌을 줬다고 선생님을 구타하고 경찰을 부르는 사건이 비일비재합니다. 심지어 교수의 머리를 깎는 참담한 현실을 보게 되는데 이것이 모두 효도의 사상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크리스천들은 영혼을 구원받게 하고 영혼이 잘 되도록 지도하는 영적 지도자를 더욱 공경하고 잘 받들어야 합니다. 천주교에서는 사제를 “신부”라고 부릅니다. 신부란 아버지(father)란 뜻입니다. 장군이라도, 대위라도, 신부의 신발 끈을 매주고 무릎 꿇고 손에다 입을 맞춥니다. 교황을 pope라고 하는데 “papa”, 아버지란 말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천주교 신부가 이런 잘못했다, 저런 잘못을 했다고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았습니까? 절대로 없습니다. 개신교 목사에 비해서도 대단한 존경을 받습니다.

  ③ 대화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요사이 아들딸이 있는 노인들도 고독을 못 이겨 자살하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리고 부모가 돌아가신지 열흘, 한 달 돼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부모에게 무관심해서 찾아보지도 않고 전화도 안 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는 것 아닙니까? 늙으신 부모님들은 자식들이 찾아오고 대화하는 것을 그렇게 기뻐하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름휴가 떠나면서 개는 개 호텔에다 맡기고 가면서 부모님은 찾아보지도 않는 자식들이 많습니다. 휴가 다녀와서도 개는 찾아오면서 멀지 않은 양로원에 계신 부모님은 찾아보지 않습니다.
  자주 찾아뵙고, 그럴 시간이 없을 때에는 편지나 전화라도 드리고 할 수 있는 대로 용돈도 자주 드리도록 해야 합니다. 돌아가신 다음에는 후회해야 소용없습니다. 전에 오신주 목사님이 부친이 살아계실 때는 제일 크고 좋은 방을 연로하신 아버님께 드리고 TV도 그 방에 들여놓고 밤마다 가족이 모여 즐겁게 지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서는 정글 속에 사는 어느 부족이 성인식을 할 때에는 그 전에 그  남자의 용기를 테스트한 다음에 성인식을 한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느냐 하면 성인이 될 소년의 아버지가 밤에 깊은 산속에 데리고 가서 그 아들에게 칼 하나만 주고 떠나온다고 합니다. 그 소년은 사방에서 무서운 짐승들의 소리가 들려오는데 가슴을 조이면서 있다가 밤이 지나고 동이 트면 내려오는데 환하게 밝은 다음에 둘러보니까 아버지가 멀지 않은 곳에 완전무장을 하고 아들을 지키고 있었던 것을 알고 아버지 품에 안겨 울었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그와 같은 것입니다. 부모의 그 큰 사랑은 자식이 다 이해를 못합니다. 효
도한다 해도 부모님 은혜의 10분의 1, 100분의 1도 안 되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중심을 헤아려 기쁘시게 하고, 부모를 멸시하지 말고 공경심(honor)을 가져야 하고, 자주 만나 대화의 시간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효도는 모든 윤리의 기본이 되고 기초가 되는 것이며 축복의 약속이 붙은 첫 계명이며 효도는 질서의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의 은덕을 생각해서라도 반드시 공경해야 합니다.

할렐루야!

출처/김홍도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