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있는 첫 계명 (엡6:1-4)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법도 안에서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모세를 통해서 계명을 주셨습니다. 모세가 받은 계명은 두개의 돌 판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 첫 번째 돌 판은 하나님에 관한 계명이며 그 두 번째 돌 판은 사람에 관한 것인데 그 두 번째 계명의 첫째 계명이 곧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는 말씀입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우리는 평상시에 마땅히 효도해야 하겠지만 우리의 지난날들이 주님의 교훈에 비춰 볼 때 부끄러움이 없었는가? 반성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면서 이 말씀을 드립니다.

1),약속 있는 계명의 내용
본문 6:2절에 보면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라고 했습니다. 즉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첫째  계명의 내용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부모가 어떻든 상관없이 공경해야 합니다. 그러나 순종은 주안에서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자신이 부모님께 순종하는 본을 보이시면서 우리더러 순종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네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명령을 부모의 품안에 있는 어린아이들에게 하신 말씀이라기 보다 장성한 자녀들이 부모님들에게 순종하며, 효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보면 부모를 공경하는 태도를 일종의 종교적 의무로 생각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효도는 기독교의 중요한 덕목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가진 일부 사람들에 의해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조상도 몰라보고, 부모에게 효도도 않는다고 비난을 하는데 이는 잘못된 일입니다. 우리 나라는 오랫동안 유교 문화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유교의 영향을 받은 탓이라고 생각됩니다. 유교의 중심 도덕은 효도입니다. 증자란 사람이 전한 효경에 보면 공자는 말하기를 '효도는  하늘의 날이요, 땅의 의의요, 사람의 행실이라'고 했으며 또 밝히 다스리는 왕은 효도로써 천하를 다스린다'고 했습니다. 위에서 말한 효경에서는 부모를 섬길 때 "멀리 떠나 있는 때에는 부모를 공경하므로 섬기고 가까이서 봉양하는 때에는 부모를 즐겁게 하며, 부모가 병들었을 떼에는 위하여 근심하고, 부모가 세상을 떠났을 때에는 슬퍼하고, 제사하는 때에는 엄숙히 하라"고 했습니다. 위에서 본 것처럼 유교에서는 효행을 도덕의 원천으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잘못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륜에 있어서 부모가 자식 보다 높고 귀하지만 부모가 하나님 보다 높고 귀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바로 알지 못하고 지키는 효도는 진정한 효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에서의 효도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라 행하는 효도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행하는 효도라야 영적 근거가 있으며 진실하고 생명력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효행이 사람 앞에 보이기 위한 일시적이고 형식적인 효행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는 진실한 효행이라야 합니다.

2),약속 있는 계명의 요구
계명은 우리에게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실천을 요구합니다. 이 계명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거리에 붙여진 표어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방법으로 부모를 섬겨야 하겠습니까? 본문에서는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고 레19:2에 보면 부모를 '경외하라'고 했습니다. '경외'라는 부모의 좌석을 점령하지 않으며, 그 언사에 반항하지 않으며, 그 이름을 부르지 않고 '어머니'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며, '공경'이라는 말은 어머니 아버지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드리고 또 시종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를 종합해서 말하면 효도란 부모의 권위에 합당하게 존경하며, 그들에게 순종하여 그들의 은혜를 갚는 것을 말합니다.
  
부모님께 효도하라는 말은 단순한 말이 아닙니다. 자식들은 마땅히 부모님의 권위를 존중하며 순종해야 합니다. 반항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작금 우리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존경보다는 불손한 태도를 볼 수 있으며, 순종보다는 일마다 반항하고 거역하는 것을 봅니다. 참으로 마음 아픈 일들입니다. 부모님들께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준비해 드려서 시종은 못할지라도 마음이나 상해 드리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순종치는 못할지라도 반항이나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어버이 살아 실제 섬길 일란 다 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닮다 어이 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 이뿐인가 하노라"(정철 송강가사 중에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부모님들께 진정으로 효도를 해야 합니다. 잠언에 보면 지혜로운 아들은 부모에게 즐거움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혜 있는 사람들은 정성을 다하여 부모를 공경했습니다. 그러나 불효하면 엄히 책망을 했습니다. 잠3:17에 보면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우니라"고 했습니다. 부모님들이 자식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것 같이 자식들은 부모님들을 행복하게 해 드려야 합니다. 부모님들은 자식들이 가문을 빛내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가문을 빛내 주고 있습니까? 부모의 지혜로운 삶은 자식들에게 자랑이 되고 자식들의 지혜로운 판단은 부모님들에게 기쁨이 되는 상오 관계가 있습니다. 잠7:25 "미련한 아들은 그 아비의 근심이 되고 그 어미의 고통이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3),계명에 대한 약속
부모를 공경하는 자는 허락한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허락한 땅이란 이스라엘 백성이 앞으로 들어갈 가나안 땅을 말합니다. 가나안은 축복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가나안은  언제나 축복의 허락으로 적용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모두 축복의 나라 천국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부모님께 효도하는 사람에게 축복이 허락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장수한다고 약속되어 있습니다. 사실 이 땅에서 효도하는 분들을 보면 대체로 장수합니다. 믿는 자들이 효행 하면 이 땅에서도 장수하지만 영생에 참여할 수 있게 되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가 잘 아는 나오미의 며느리 되는 룻을 보십시오. 남편도 없는 시댁에서 다만 시어머니 한 분을 위해서 이국 땅 까지 따라가서 시종하고 받들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축복하여 예수 님의 16대 할머니가 되게 했습니다. 효도한 여인의 후손 중에서 구세주가 났으니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후한의 곽기란 몹시 가난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가족은 연로한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세 살 난 아이가 있었습니다. 곽기의 어머니는 자라나는 손자가 배고프지 않게 하려고 매끼마다 자신의 몫을 손자에게 주곤 했습니다. 곽기는 그것이 마음이 아팠습니다. 자식을 구덩이에 묻어 버리고 말자. 자식은 다시 낳을 수 있지만 부모는 다시 얻을 수 없으니까...하고 뒤뜰에서 구덩이를 파는데 두어 자 가량 땅을 팠을 때 땅속에서 덜그렁 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이상히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파보았드니 큰 금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속에는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효자 곽기에게 하늘이 내리는 것이니 누구도 빼앗을 수 없을 것이니라고 ......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자녀들은 마땅히 주안에서 부모를 공경하고 기쁘게 해 드려야 하며 효도해야 합니다. 효도는 못할 망정 걱정을 끼쳐 드리고 무시하고 대항하여 부모를 슬프게 하면 하나님은 그들을 용서치 않을 것입니다. 형식적인 효도가 아닌 진실한 효도를 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