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라  (고전15:50-52)

할렐루야! 오늘은 우리 주님께서 죽은자 가운데에서 사셔서 부활하신 날입니다. 성경은 이 놀라운 사실을 증언하고 있으며 우리에게 다시 살아날 것을 약속하시며 비밀을 말하노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비밀이란 것은 사실이나 숨겨져 있는 사실이며, 찾아 발견하고 아는 자만이 알게 되며, 소유하여야만이 자기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에 숨겨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마 13:14).

이제 우리는 부활 주일을 맞이하여 비밀로 숨겨진 부활의 신비를 혈과 육이 아닌 믿음으로 벗겨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1.부활에 대한 증언

부활 사건에 대한 신.불신의 논란은 오늘날에만 있는 일이 아니며 초대교회에서부터 기독교 역사 속에서 계속 하여 왔습니다.

이방인이나 불경건한 교회 밖의 사람들이 부활의 진리를 부정하는 것은 이상하게 보이지 않으나 교화 안에 들어온 교인들과 소위 신학을 논한다는 신학자들 주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난 부활의 사실을 부인하려 하고 있음은 놀라운 일입니다.

어떤 이들은 부활의 교리를 하나의 은유로써 해석하려 하며 혹은 이성과 과학에 모순되어 불합리하다고 외면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어떻게 인간의 이성 속에 하나님의 능력을 잡아넣으려고 하며, 불완전 속에 완전을 끌고 들어가려 합니까? 작은 것을 큰 것 속에 집어 넣어야지, 작은 것 속에 큰 것을 집어 넣으려함을 커다란 모순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부활을 의심하는 반대자들 앞에 성경에 명시된 부활 사건에 대한 증언을 밝히고자 합니다.

(1) 천사의 증언입니다
"너희는 무서워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찾고 있으나 그는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마28:5-6). 천사야말로 거짓을 모릅니다. 거짓이라면 천사가 아니라 사탄입니다.

(2) 목격자들의 증언입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인들이 빈무덤을 목격하고 다시 사신 예수님을 만나본 후에 갈릴리로 돌아가서 열 한 제자들에게 고하였습니다(눅 24:9).

수직하던 파수군 중에 몇이 성으로 들어가서 무덤의 현장에서 일어난 모든 부활의 사건을 제사장들에게 고하였습니다(마 28:11).

의심많은 도마도 부활하신 주님의 손과 옆구리를 만져 보고 확인한 후에 진실로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라고 증언하였습니다(요 20:28).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도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고 그가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 그들의 마음이 뜨거웠다고 증언하였습니다 (눅 24:35).

게바(베드로), 열두 제자, 5백여 형제 야고보(주님의 동생 야고보), 바울에게도 나타나 보이셨으며 이들은 모두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고전 15:4-8).

(3) 예수님 자신의 증언입니다
생존 시에도 증언하시기를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만에 다시금 세우리라(요2:19) 하셨으며 부활하신 후엘 도마에게 친히 말씀하시기를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 20:29) 하셨습니다.

말로만 아니라 몸으로 나타내 보이셨고 한번만 아니라 여러번 나타내 보이셨으며, 나타내신 것 뿐만 아니라 식사도 함께 하셨습니다(요 21:13).

2. 부활에 대한 가정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부활의 교리를 확립시키기 위하여 가정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였으리라는 것입니다.

(1) 그리스도의 부활이 부인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살지 못하였으리라(고전15:13).그리스도의 부활은 엄연한 사실인데 사실이 부인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2) 교회의 선교활동과 믿음이 허물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 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고전15:14)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시지 아니하였다면 우리가 증거하는 복음은 껍질 뿐이며 우리가 가진 믿음도 허구나 허상에 불과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3) 사도의 공신력이 추락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고전 15:15) 하나님은 사도들을 당신의 대사로 세우시고 쓰시고 있는데 참도신 하나님께서 당신이 쓰시는 대사들을 거짓말장이로 세우실 수 있겠느냐고 하는 반증입니다.

(4) 속죄도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고전 15:17).

"예수는 우리의 법죄함을 인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에게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기 위하여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롬 4:25). 우리가 믿음으로 영생에 이르는 기초는 부활 사건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5) 우리는 가장 불쌍한 자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전 15:19) 그렇습니다. 동물 중에 오래 사는 거북이는 수백년, 식물중에 오래사는 은행나무도 수백년 혹은 천년 사는 것도 있다고 하는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겨우 100년 내외로 수명이 제한된다면 인간이 가장 불쌍할 것이며 더우기 모든 향락과 세상적인 안일을 버리고 희생하는 기독교인들에게 영생이 보장되지 아니하였다면 얼마나 불쌍한 존재이냐는 말입니다.

기독교인의 신앙은 윤리나 도덕으로 붙잡을 수가 없는 것이며 끌고 갈 수도 없는 것입니다. 오직 영생을 믿는 부활 신앙으로써만 우리의 신앙을 견고하게 유지하며 계속될 수 있는 것입니다.

부활이 없다고 가정된다면 우리의 모든 신앙은 헛되게 되며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의 환란에 견딜 수는 없거니와 하나님을 향하여 진정한 충성을 기울일 수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3. 부활의 실체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속의 진리를 확실히 믿으며, 그리스도의 부활을 확실히 믿는 것처럼 또한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재림도 약속대로 믿고 있습니다 (행 1;11).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늘의 비밀을 열어놓고 계신데 마지막 나팔 소리에 (주님이 오신다는 신호) 순식간에 그리고 홀연히 죽은 자들은 썩지 아니할 몸으로 다시 살고 살아있는 사람들은 변화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고전 15:52).

이렇게 되면 이미 믿고 죽은 자들이나, 믿으며 살던 자들은 모두 다 공중으로 들림받아(휴거) 올라가게 되고 땅 위에는 불신 세력만 남게 됩니다. 이것이 곧 불신 세력이 버림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방을 쓸때 귀중품은 간직하여 놓은 곳에 올려 놓고 쓰레기는 버리는 것과도 같이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롬 8:9) 육에 속한 자들은 버림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땅에 임하는 환란 시대이며, 성도들은 들림받아 올라갔으니 땅의 환란을 면케되며 지상에는 불만이 남아서 고통을 겪게는 되는것입니다. 그러더가 환란 시대가 지나면 그리스도께서 휴거된 성도들과 함께 지상으로 오셔서 왕노릇 하며 군림하게 되는데 이 시대가 천년 왕국시대인것입니다.

이때에는 사단의 세력이 무저쟁으로 쫓겨나고 음부에 갇혀지고 말게 됩니다. 그리고 지상에 천년 왕국 시대가 끝나면 영원한 심판이 오는데 믿는 자는 생명의 부활로 축복에 이르고 불신자는 심판의 부활로 멸망에 이르게될 것입니다(요 5:29).

그러면 이 때에 성도들이 부화하는 실체는 어떠한 몸으로 부활할 것이냐고 하는 문제입니다.

(1) 썩지 아니할 몸으로 부활하게 됩니다(영원한 몸).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고전 15:42).

우리 몸이 죽어도 썬지 않는다는 말은 이단 사실의 거짓말입니다. 일단 죽으면 썩어서 흙이 되고 없어지며 물속에서 죽으면 물고기의 밥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흙속에 씨가 묻히면 썬어서 없어지나 새로운 싹이 나서 또 다시 새로운 열매를 맺는 원리와도 같이 옛날에 육체는 썩어서 없어지나 새로운 열매로서의 부활체가 사는 것입니다.

(2) 욕되지 않는 몸으로 부활합니다(영광스러운).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고전 15:43).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육의 시력이나 청각과 같은 지체는 범죄할 가능성을 지닌 욕된 육체이나 그 날에 다시 사는 부활체는 죄를 지을 충동을 가지는 몸이 아닌 것입니다.

(3) 약하지 않는 몸으로 부활합니다(강하고 완전한).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고전 15:43).
현재 우리의 몸은 약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 하나만 감염되어도 병들어 죽어 넘어지는 몸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날 다시살게 될 우리의 몸은 아픔도 죽음도 없는 강하고 완전한 몸으로서의 부활인 것입니다.

(4)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삽니다(육의 몸이 아님).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고전 15:44).

지금의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육의 몸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고 있으나 그때에 다시 사는 부활의 시령한 영체는 주께서 다시 사신 후 문을 잠그어 놓은 곳에도 들어가시고 문을 열지 아니하여도 나갈 수 있었던 몸과 같이 자유자재로 활동하며 살 수 있는 몸입니다.

모든 육체는 그 자체에 필요하고 편리하도록 피조되어져서 수중에서 사는 물고기의 육체, 공중에서 사는 새의 육체, 산중에서 사는 짐승의 육체, 땅에서 인간의 육체가 모두 다른 것처럼 부활하게 될 우리의 몸은 천상에서 살아야 함으로 지상에서의 육체 그대로가 아니라 그곳에 알맞도록 다시 살게 될것입니다.

4. 부활의 의미
예수께서 다시 사신 부활은 땅에 살고 있는 우리 모든 인간을 향하여 절대적으로 중요한 의미들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1)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 그리스도의 부활은 마침내 그가 하나님의 아들 (Son of God)이심을 확증해 주고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울고 찾고 있던대로 예수께서 무덤속에 시체 그대로 계셨다고 하면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가 될 수는 업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사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검은 구름이 태양을 가리우나 일시적일 뿐 태양은 그대로 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으나 결코 하나님의 아들이 죽으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2) 대속성업의 완성을 확증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인류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종지부를 찍었다면 동정이나 감상주의에서 끝난 인도주의에서 더 나가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죄를 속량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그리고 다시 사신 부활로 인하여 마침내 대속 사업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3) 만민의 부활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부활에 대한 소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하고 있는것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그리스도의 위대함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나를 위하여 죽으시고 나를 위하여 다시 사신 구주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4) 우리들의 생에 변화를 가져옵니다.
당시 사도들이 180도로 변한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확신하면서부터 였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당신을 믿지 않던 야고보 (예수님의 동생)에게 나타나심으로 순교하는 자리에 이르도록 하였으며, 배신자인 베드로에게 나타나심으로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으로 세우셨으며, 박해자인 사울에게 나타나심으로 복음의 불사조로 재창조하셨으며, 사모하며 기다리는 무리들에게 나타나심으로 위로와 소망을 안겨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오늘도 그리스도의 부활을 체험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삶에 있어서 새로운 변화를 창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부활 주일에 하늘에서 말씀하시는 "비밀의 선포"를 들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출처/ 김우영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