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16:9-14,요20:24-29,21:1-7

제가 지난 두 주일 설교를 하기 전에 서글픈 마음으로 야단치는 말을 여러 번 했습니다. 우리신앙의 선배들에 비할 때 ‘우리는 모두 가짜’라는 말을 여러 번 했습니다. 그래서 무거운 마음으로 설교를 듣고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간 사람들이 있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분들에게 참으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사실 가짜라는 말은 우선적으로는 저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었고 그리고 오늘의 한국교회 전반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지난 주일 설교의 첫 부분을 다시 들어보았는데 제가 저 자신을 가리켜 ‘가짜의 괴수’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솔직한 저의 심정이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저는 지금도 주님 앞에서 ‘저는 가짜의 괴수입니다’ 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 구역장 모임에서 구역장들이 제가 교인들을 책망하면서도 칭찬을 좀 해 주면 좋겠다는 말들을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칭찬을 좀 하려고 합니다. 1) 우선 우리 성가대원들을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아마 강변교회의 성가대만큼 은혜롭고 감동적인 성가를 하는 성가대도 별로 없을 것입니다. 시간을 들여서 기도와 정성으로 준비하고 찬양하는 성가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가대원들 잠깐 일어서기 바랍니다. 성가대원들에게 감사와 칭찬의 박수를 보내주시기를 바랍니다. 2) 그 다음 교사들을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주일마다 아침 일찍이 교회에 나와서 어린이들과 학생들을 사랑과 기도와 정성으로 가르치는 교사들은 참으로 귀하고 아름다운 분들입니다. 어느 중학생은 불만이 많았는데 최근에 중등부에 나오면서 자기는 지금 가장 행복하다는 말을 엄마에게 했다고 합니다. 시간과 정성을 들이며 수고하는 우리 교사들과 교역자들과 부장들 모두 잠깐 일어서기 바랍니다. 교사들에게 감사와 칭찬의 박수를 보내주시기를 바랍니다. 3) 그 다음 제직회 21개 부서들 중에서 특히 전도부 봉사부 안내부원들을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전도부와 봉사부원들은 주중에도 교회에 나와서 손으로 발로 입으로 몸으로 수고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안내부원들과 주차안내부원들은 매 주일 아침 일찍이 나와서 성도들을 맞고 인사하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전도부 봉사부 안내부원들 그리고 방과후 학생들 지도하는 분들 모두 잠깐 일어서기 바랍니다. 이분들에게 감사와 칭찬의 박수를 보내주시기를 바랍니다. 4) 그 다음 새벽마다 교회에 나와서 함께 기도하는 분들을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여러분들이 우리 강변교회를 만민의 기도하는 집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한 주간 동안 한 번 이상 새벽기도회에 나오신 분들은 모두 일어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에게 감사와 칭찬의 박수를 보내주시기를 바랍니다. 칭찬은 그만 하고 이제부터 설교를 시작합니다.

첫째로, 멸시와 싫어 버림을 당하신 주님을 잠깐 생각해 보겠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오실 메시야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그는 멸시를 받아서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사53:3) 라고 기술했습니다. 영어로 표현하면 더 분명해집니다. “He was despised and rejected” 입니다. 저는 대학생 때 헨델의 메시야를 감상하면서 “He was despised and rejected” 라는 대목에서 큰 충격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 충격은 지금도 저의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죄악에 빠진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인간 세상을 찾아오셨는데, 그리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고 무덤에서 부활하셨는데, 그 분이 인간에게 불신과 멸시를 받으시고 인간에게 싫어 버린 바가 되셨다니! “He was despised and rejected.” 저는 그 말에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로마인들과 헬라인들과 유대인들에게 불신과 멸시를 받으시고 싫어 버림을 받으셨을 뿐 아니라 자기 제자들에게까지 불신과 멸시와 배신과 싫어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한 청년이 예수를 따라오다가 베 홑 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막14:50-52).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마26:72).
제자들의 불신과 멸시와 배신과 싫어 버림이 십자가 사건에서 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계속되고 또 계속되었습니다. 십자가 사건 이후 부활하신 주님께서 여러 사람들에게 여러 번 나타나 보이신 다음에도 제자들은 여전히 주님을 불신했고 멸시했고 배신했고 싫어 버렸습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 보이시고 엠마오로 가던 두 사람에게 나타나 보이신 다음 저들에게 열 한 제자들에게 가서 부활의 사실을 전하라고 하셨지만, 열한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믿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살으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막16:11). “두 사람이 가서 제자들에게 고하였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막16:13). "그 후에 열 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사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막16:14). 여기 제자들이 믿지 않았다는 말이 세 번이나 계속해서 나옵니다. 제자들은 마음이 완악해서 부활하신 주님을 믿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부활 사건 이후에도 계속해서 자기 제자들에 의해서 불신과 멸시를 받으셨고 싫어 버린 바가 되셨습니다. 소리를 지르고 대들면서 믿지 않겠다고 맹세를 한 제자도 한 명 있었습니다.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에 못 자국을 보며 내 손 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요20:25). 믿기 싫으면 조용히 믿지 않아도 될 터인데 소리를 지르고 떠들면서 주님에 대한 불신과 멸시를 나타내 보였습니다. 기가 막히는 일이었고 통곡할 일이었습니다. 도마뿐이 아니었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여러 번 만나본 베드로와 여섯 제자들은 조금 후에는 주님을 등지고 고기 잡으러 바다가로 갔습니다. 기가 막히는 일이었습니다.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요21:3). 주님께서는 지금도 상당수의 한국교회 신자들에 의해서 불신과 멸시를 받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의 마음이 완악하고 교만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의 마음이 세상을 너무 좋아하고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서글픈 일이고 통곡할 일입니다.

둘째로, 다시 또 다시 나타나시고 만나주신 주님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주님께서 도망치고 배신하고 멸시하고 싫어 버린 제자들에게, 믿지 않겠다고 소리지르면서 대든 못된 제자들에게 다시 또 다시 나타나시고 다시 또 다시 만나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설교 제목을 "만나고 또 만나주신 부활의 주님 이야기" 라고 정했습니다. 서글픔과 고마움이 뒤 섞여 있는 설교 제목입니다. 이 이야기는 열 한 제자들의 서글픈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들의 서글픈 이야기도 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일 먼저 나타나시고 만나주신 사람은 무덤가에서 슬피 울고 있던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막16:9, 요20:16). 믿음은 믿음과 통하고 사랑은 사랑과 통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마리아에게는 그 누구에게서도 찾아 볼 수 없었던 주님에 대한 뜨거운 믿음과 사랑이 있었습니다. 주님에 대한 막달라 마리아의 뜨거운 믿음과 사랑이 부활의 주님으로 하여금 제일 먼저 마리아에게로 향하게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막달라 마리아야말로 부활하신 주님을 참으로 믿고 참으로 사랑하고 분명히 전할 것이라고 주님께서 생각하셨기 때문에 막달라 마리아를 제일 먼저 만나주셨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 나타나시고 만나주신 사람은 주님을 사모하며 따르던 여인들이었습니다(마28:9). 남성들이 아닌 여성들이 주님을 향한 간절한 믿음과 사모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골고다를 향해서 걸어가실 때도 남자 제자들은 요한을 제외하고는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을 쳤는데 여자들이 예수님을 사모하며 따르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는데”(막15:40). 무덤을 찾아 간 사람들도 여자들이었습니다. “매우 일찍이 무덤으로 가며 서로 말하되”(막16:1-3). 여기서도 믿음은 믿음과 통하고 사랑은 사랑과 통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마28:9).
세 번째로 나타나시고 만나주신 사람은 베드로였습니다(눅24:34,고전15:5).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베드로는 수제자는커녕 제자의 자격을 상실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한가지 귀한 점이 있었다면 가슴을 치며 뉘우치는 회개였습니다. 통곡하며 회개하는 제자 베드로에게 나타나서 그를 만나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수제자 베드로의 체면을 보아주신 것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고전15:5). 너무너무 황송하고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네 번째로 나타나시고 만나주신 사람은 의심과 슬픔에 쌓여 고향으로 돌아가던 이름 없는 두 사람이었습니다(눅24:15). 여기 두 사람들은 이름 없는 평신도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두 사람은 언제부터인가 주님을 따르다가 십자가라는 엄청난 사건 이후 슬픔과 절망에 쌓여서 고향인 엠마오라 하는 시골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찾아오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방황하는 한 마리 양을 찾아가시는 목자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슬픈 빛을 띠고 힘 없이 걸어가는 두 사람에게 주님께서 나타나서 그들을 만나주셨습니다. 너무나 황송하고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다섯 번째로 나타나시고 만나주신 사람들은 부활하신 그날 저녁 두려움에 쌓여 문을 닫아걸고 함께 모였던 열 제자들이었습니다(눅24:34,요20:19). 그들은 십자가를 등지고 도망친 사람들이었고 두려움에 쌓여 문을 닫아 걸고 방 구석에 숨어 있던 괘씸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요20:19). 그들은 또한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는 막달라 마리아의 말을 듣고도 믿지 않던 못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신의도 없고 의리도 없는 괘씸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믿지 않고 의심하는 괘씸한 그들에게 나타나서 그들을 만나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너무나 황송하고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여섯 번째로 나타나시고 만나주신 사람은 안 믿겠다고 고집하던 도마였습니다(요20:26). 도마는 열 제자들의 말을 듣고서도 소리를 지르고 대들면서 믿지 않겠다고 맹세를 한 괘씸한 제자였습니다. "믿지 아니하겠노라"(요20:25). 그런데 주님께서는 일 주일 후 괘씸한 도마에게까지 나타나서 그를 만나주셨습니다. 너무나 황송하고 너무나 황송한 일이었습니다. 부활의 주님은 못 박힌 손과 창에 찔린 옆구리를 도마에게 보여주시고 만지게 해주시므로 도마의 불신앙을 깨트려 주셨고 주님 앞에서 무릎을 꿇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일곱 번째로 나타나시고 만나주신 사람은 디베랴 바닷가에서 고기 잡던 일곱 제자들이었습니다(요21:1). 부활의 주님께서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여러 번 나타나시고 만나주셨는데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여섯 제자들을 데리고 고기잡이 하러 디베랴 바다로 갔습니다. 옛날 직업으로 세상으로 돌아간 것이었습니다. 가소롭기도 하고 기가 막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와 같은 못된 제자들에게 다시 또 다시 나타나 보이시고 만나주신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또 제자들에게 나타내셨으니”(요21:1).
여덟 번째로 나타나시고 만나주신 사람은 500여 형제들이었습니다(고전15: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오백 여 형제는 당시 세상에 있던 모든 믿는 사람들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유명한 사람들에게만 관심을 기울이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린 양 한 마리 한 마리 모두에게 꼭 같은 애정과 관심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온 교회와 온 성도들에게 나타나셨고 온 교회와 온 성도들을 만나 주신 것이었습니다. 너무너무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아홉 번째로 나타나시고 만나주신 사람은 야고보였습니다(고전15:7). 주님의 형제 야고보는 유대주의의 전통에 서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후에 예루살렘 교회의 대표적인 지도자가 될 사람이었고 교회의 첫 번째 공의회의 의장이 될 사람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야고보에게 나타나 보이시므로 앞으로 모든 교회의 어머니 교회가 될 예루살렘 교회와 야고보의 권위를 굳게 세워주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마운 일이었고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열 번째로 나타나시고 만나주신 사람은 다시 열한 제자들이었습니다(마28:16). 장소는 갈릴리의 산이었는데 갈릴리는 소외된 주변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마지막으로 열한 제자들에게 또 다시 나타나셨고 만나주셨습니다. 하늘로 승천하시기 바로 전에 부활의 주님께서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열 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저들을 만나주시고 마지막 부탁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구름 타고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셋째로, 부활의 주님께서 40일 동안에 10번씩이나 나타나 보이신 목적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는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부활 사건을 믿게 해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믿지 않으면 구원도 없고 천국도 없기 때문에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 주님께서 나타나시고 또 나타나셨습니다.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눅24:25). “네 손 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20:27). 깨어졌던 믿음을 다시 싸 매어주시고 깨어졌던 사랑을 다시 싸 매어주시기 위해서 제자들을 만나주시고 또 만나주셨습니다.
둘째는 증인의 사명 곧 전도의 사명을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주님께서 세상에 와서 하시던 일을 저들에게 맡기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가 다른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막1:38). 전도와 선교의 대위임령을 부여하시고 저들을 세상으로 내어 보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사명은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세상에 증거하는 일인데 그 귀한 사명을 맡기시기 위해서 나타나시고 또 나타나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첫 증인이 되었고(요20:18), 엠마오의 두 사람들도 증인이 되었으며(눅24:35), 베드로와 11사도들도 모두 나중에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행2:32).
셋째는 양을 먹이고 치는 목양의 사명을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것도 주님께서 세상에 와서 하시던 일을 저들에게 맡기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10:11).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요21:15-17).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20). 이 세상에는 길 잃은 어린 양들이 세계 곳곳에 너무 많이 흩어져 있는데 길 잃은 어린 양들을 찾아서 저들을 먹이고 치는 목양의 사명을 주시기 위해서 제자들을 만나주시고 또 만나주셨습니다.
넷째는 순교의 사명까지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말씀은 수제자인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열한 제자가 모두 받아드린 말씀이 되었습니다. 사실 증인이라는 말 속에는 순교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증인이라는 말과 순교라는 말은 같은 말이기 때문입니다. 순교하므로 증인이 되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요21:19). 베드로는 순교하므로 로마에 교회를 세우는 씨앗이 되었습니다. 도마는 순교하므로 인도 교회를 세우는 씨앗이 되었고 다른 제자들도 자기들이 뿌린 순교의 피로 곳곳에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에 비추어서 우리 자신들을 살펴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들도 모두 주님을 멸시하고 싫어 버렸던 배신자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을 믿기 전에는 말할 것도 없고 믿은 후에도 주님을 무시하고 멸시하고 싫어 버렸던 일이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부활의 주님께서 우리들을 찾아와서 우리들을 만나주시고 또 만나주셨습니다. 백여 년 전에 ‘길선주야 길선주야! 이기풍아 이기풍아!’ 라고 부르시던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불러주시고 만나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지금 반드시 육체로 육성으로 오셔서 우리들을 만나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영적으로 오셔서 우리들을 만나주십니다. 조춘국씨를 만나주셨고 박달안씨를 만나주셨고 안흥규씨를 만나주셨습니다. 박종서씨도 만나주셨고 이목열씨도 만나주셨고 진덕순씨도 만나주셨습니다. 지금도 여러분들을 만나주십니다. 마음이 열리고 가슴이 열리고 영혼이 열리면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한국교회의 아버지 길선주 장로님을 만나주셨던 부활의 주님께서 길선주 장로님을 통해서 평양 장대현 교회당에 모였던 2천 여명의 조선 사람들을 만나주셨습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었고 일부는 믿지 않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길선주 장로는 “이상한 귀빈과 괴이한 주인”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설교를 했습니다. 우리를 찾아오신 주님은 존귀하신 분인데도 누추한 땅에 오셨으니 이상한 귀빈이시고, 귀중한 몸이신데도 밖에서 오래 기다리시니 이상한 귀빈이시고, 전능하신 분이신데도 간절히 두드리시니 이상한 귀빈이시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애하신 귀빈을 환영치 않으니 괴이한 주인이고, 간절히 두드리시는 음성을 듣지 않으니 괴이한 주인이고, 굳게 닫은 방문을 열지 않으니 괴이한 주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소리를 지르며 외쳤습니다. “문을 열라, 문을 열라, 문은 열라. 마음의 문을 열고 존귀하신 주님을 영접하라. 마음의 문을 열고 성령님을 영접하라.” 설교를 마치고 길선주 장로님이 기도를 시작했을 때 온 회중은 갑자기 ‘아이고 아이고’ 라고 소를 지르며 통회 자복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당은 금새 울음 바다가 되었습니다. 죄인 잡으러 왔던 순표가 회개했고, 기독교를 비판하러 왔던 중이 개종을 했고, 구경 왔던 신부도 은혜 받고 감격하여 염주를 길선주 장로님에게 주었다고 했습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1907년 1월 평양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길선주 장로님을 통해서 수 천명의 조선 사람들을 만나주셨습니다. 저들에게 참 믿음을 주셨습니다. 저들을 참 전도자들로 만들어주셨습니다. 저들에게 길 잃은 양무리들과 조선 나라를 먹이고 치고 키우는 목양의 사명도 감당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저들로 하여금 순교의 길로 달려가게도 해 주셨습니다.
부활의 주님은 지금도 우리들에게 나타나 보이십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 뵈옵는 일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래서 믿음을 분명히 가져야 하고 확실한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맡겨주신 양 무리들을 먹이고 기르고 치는 목양의 일을 하여야 합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일은 기독교 신앙과 기독교 선교의 기초와 핵심이 되는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날마다 새롭게 만나시는 축복 받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김명혁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