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6:12-16
새해를 맞았습니다. 희망을 가지고 새해를 출발합니다.
2007년 첫주일입니다. 2007년이라는 말이 어색하죠? 새것은 다 어색한 것입니다. 신던 신발이 편하고 입던 옷이 편합니다. 그러나 편한 것만을 좋아하는 사람은 새로운 것을 도전하지 못합니다. 오늘 희망과 함께 배화여대에서 새해 첫 예배를 드리게 됨을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예배자리는 좀 불편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새성전 건축이라는 희망의 슬로건을 걸고 이 물편을 믿음으로 감수하고 오히려 감사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얼마나 좋습니까? 넓은 운동장 넓은주차장, 새로운 예배장소 . .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학교당국에 감사를 드릴 뿐입니다.
누구나 희망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희망은 단순히 쉽고 재미있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희망은 고난과 함께 오는 것입니다. 만일 희망이 로또같은 것이라면 허황된 것입니다. 벼락맞아 죽을 정도의 확률이라면 우리 가운데 희망을 가지지 못할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주님이 주시는 희망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다 가질 수 있게 열어놓으신 것입니다.
일어나서 걸어다니면서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인사합시다. “올해는 형통의 사람 되십시오”
다시 한번 인사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새해 인사를 나눕시다. 금년 표어는 좀 깁니다. “큰 믿음 한 마음으로 새성전을 건축하라”(학1:8,15) 표어 속에 우리의 모든 소망과 계획과 꿈이 다 들어 있습니다. “큰 믿음, 한 마음으로 새성전을 건축합시다” 인사나눕시다.
성전건축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아무에게나 성전건축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위대하게 쓰신 다윗에게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솔로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놀라운 특권을 받으신 복된 성도들입니다. 금년은 새성전 건축의 해가 될 줄 믿습니다.
그동안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모든 일이 쉽게만 되기를 바래서는 안될 것입니다. 위대한 일일수록 고난이 큰 것입니다. 위대한 사람일수록 고난을 통과합니다.
본문은 이삭이 백배의 복을 받은 내용입니다. 형통의 복을 받은 내용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형통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형통’ 이라는 말은 쉽게 말해서 통하는 것입니다. 길리 열리는 것입니다. 좋은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잘되고 번영하는 것입니다.
어떤 부모든지 자녀가 잘 되는 것을 원합니다. 그리고 나눠주고 봉사하는 것을 원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가 잘되고 형통하고 나눠주는 존재들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것, 소원하는 것을 주십니다. 원하지도 않는 것을 주시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가 형통을 원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하고 찾는 자에게 주십니다.
여러분 새해에 정말 형통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형통했던 사람들을 연구해야 합니다.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그들의 사고방식은 어떤지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람은 이삭입니다. 이 이삭은 특별하게 뛰어난 부분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평범한 보통 사람입니다.
이삭의 복받는 내용을 보면 고난과 위기부터 시작합니다. 창26장을 보면 이삭이 흉년을 만납니다. 그래서 블레셋으로 내려갑니다. 블레셋사람들이 이방인 같은 이삭에게 좋은 땅을 줄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형통하게 된 것입니다. 요셉도 형통한 사람이 되기까지 얼마나 그의 삶이 억울하고, 비참한 사람이었습니까? 다니엘도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지 않았습니까? 형통한 사람은 환경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삭은 형통의 비결을 배운 사람입니다.
모든 것은 배움을 통해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지식과 지혜는 함께 있어야 합니다. 지식이라는 것이 뭡니까? 한마디로 정보입니다. 오늘 세상은 정보시대입니다. 새 정보를 누가 많이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라지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명문학교를 다닐려고 합니다. 남들이 다 알고 보편화 되어버린 정보를 늦게 알아 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남들이 알기 전에 새로운 학문, 새로운 정보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 정보를 지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잘 활용하지 못하면 소용없습니다. 바르게, 잘 활용하는 것을 지혜라고 합니다.
성경은 이 지혜를 강조합니다. 복을 받는 것도 이런 지식과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럴려면 이런 지혜와 지식을 가진 사람을 잘 만나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지식은 가지고 있습니다. 알기는 잘 아는데 자기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지식만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알기도 많이 알지만 자기가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공을 하고 복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만나야 합니다.
이삭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형통의 비결을 배웠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삭은 모리아 산에서 결박당한 채로 하나님 앞에서 순종하는 아브라함의 형통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독생자를 바치라고 말씀하실 때 아버지 아브라함은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아들을 바쳤던 것입니다.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창22:18) 아브라함이 복을 받는 이유는 “준행”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오 세였더라”(창12:4) 순종이 형통의 비결입니다. 순종하면 복이 따라 오는 것입니다. 자석과 같습니다. 복을 좇아 갈 필요가 없습니다. 순종하면 복이 따라 오는 것입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배웠습니다. 긍정적인 태도를 배웠습니다. 형통한 사람들의 특징은 긍정적입니다. 이삭이 아브라함에게서 가장 많이 배운 자리는 모리아산 위입니다. 책상에서 배운 것도 아니고 학원에서 배운 것도 아닙니다. 순종의 현장에서 배웠습니다. 이것이 산교육이요 이것만이 오래 기억에 남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순간에 “이에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창22:5) 사환에게 하는 말을 보면 믿음이 풍겨납니다. 영어성경에는 “우리가 너희에게 돌아오리라”라고 기록합니다. 거기에는 아브라함과 이삭 두 사람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돌아온다는 말은 이삭이 부활할 것을 믿는 믿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언제나 말도 태도도 긍정적이었습니다.
이삭에게는 아브라함이 그의 아버지라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 모릅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배운 것입니다. 늘 함께 살다보니 저절로 아브라함의 삶을 배우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복이 있는 사람입니까? 새해에 여러분들이 형통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그런 사람을 가까이 해야 복을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주위에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을 가까이 하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시73:28)
록펠러가 76세 때 아내를 기념하기 위해 시카고 대학내에 시카고 교회를 건축하고 헌당할 대 기자가 . . . 성공 부자 비결을 묻습니다. 그는 어머니로부터 받은 세가지 신앙유산을 말합니다.
십일조생활, 교회가면 맨 앞자리 앉는 것, 교회일에 순종하고 목사님의 마음을 아프지 않게 하는 원칙을 지키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습니다.
형통에 대한 집중된 관심을 가지십시오.
세상 사람들도 성공하기 원하는 사람들은 성공에 대한 책을 읽습니다. 부동산에 대한 책을 늘 봅니다. 증권에 대한 소식지를 봅니다. 관심만큼 되는 것입니다.
형통에 대해 소원하십시오. 늘 입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집중된 관심은 엄청난 에너지가 되어 놀라운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돋보기로 햇빛을 모아 보십시오. 종이를 태웁니다. 산도 태우게 되는 것입니다. 산만한 생각은 아무열매도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형통을 기복신앙이라고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마치도 신앙의 수준이 높은 것처럼 착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아닙니다. 성경에 보시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형통한 사람이었습니까? 부동산으로 단번에 부자가 된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공짜, 맨입 너무 좋아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주시는 형통은 댓가를 지불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니 여호수아의 명성이 그 온 땅에 퍼지니라”(수6:27)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같이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삼하7:9)
이삭은 형통의식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면 형통한 사람이 된다는 믿음으로 충만해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형통의 복을 받습니다.
형통한 사람들은 미래지향적이며 도전적입니다.
아브라함은 모험적인 사람이었고 미래를 향해 도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명령을 듣고 고향 갈대아 우르를 떠났습니다. 계속에서 장막을 치고 옮겨다니면서 살았습니다. 한곳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편안하고 안락한 살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도전을 좋아했고 모험을 좋아했고 변화를 좋아했습니다. 인생의 사건에 반응만 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조그만 성공에 만족하지 마십시오 스위스 알프스 산자락에는 산악리조트가 있다고 합니다. 많은 단체들이 여기에 와서 훈련을 받고 등반을 합니다. 강의를 듣고 훈련을 받고나면 흥분이 되어 어서 빨리 정상을 정복하고 싶게 된다고 합니다. 그들이 중간 쯤 올라가면 점심시간 쯤 되는데 거기에는 기묘한 식당이 있다고 합니다. 배경의 설산 기묘한 바위 . . 거기에서 차를 마시고 식사를 하는 동안 사람들은 작은 성공에 젖어 버립니다. 등반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절반이나 된다고 합니다. 힘이 모자라서도 아닙니다. “이만하면 됐지”라고 . .현재에 만족 작은 성공에 만족함 때문에 포기한것입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히11:8) 여러분 형통한 삶을 살려면 안주하지 마십시오. 물이 고이면 썩게 되어 있습니다. 자전거는 달리는 순간에는 넘어지지 않습니다.
“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사43:19) 바울은 미래지향적인 의식으로 가득했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3:13-14) 하나님은 언제나 새일을 행하십니다.
언제나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멀리 바라보며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이삭이 백배의 복을 받은 궁극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당시 유목민들에게는 육축을 먹일 우물이 큰 재산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랄 사람들이 이삭의 우물을 빼앗아 메워버렸습니다.(15절) 그러나 이삭은 포기하지 않고 또 팠습니다. 이삭의 별명은 ‘우물 파는 사람’입니다. 얼마나 열받는 일입니까? 그러나 그는 계속 포기하지 않고 우물을 팠습니다.
성도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려움은 힘든 것이지만 지나고 보면 유익한 것입니다. “고난 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시119:71)
고난이 없으면 기도생활도 게을러지고, 교만해 집니다. 감사를 모릅니다. 순종을 잃습니다. 충성심도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그저 피하려고 하지말고, 고난 중에도 큰 은혜가 있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꿈과 비전을 가지고 나가다 보면 어려움도 생깁니다. 장애물을 만날 때가 많습니다. 또한 여러 가지를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재물을 잃는 것은 약간을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는 것은 많은 것을 잃는 것이지만, 용기를 잃는 것은 다 잃는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삭이 잘 되는 꼴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그 아비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15절)고 했습니다. 시기심이 참 무섭습니다. 얼마나 잔인합니까? 우물을 흙으로 메운다는 것은 “너 죽고 나 죽자!”는 태도입니다. 마귀의 생각입니다.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가라.”(16절) 땅을 내 놓으라!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이삭은 양보했습니다. 하나님은 양보하는 자에게 큰복을 주셨습니다.
마음이 삐툴어진 사람들은 파놓은 우물에 돌던지고 흙더미 넣어서 메꾸어 버립니다. 그런데 메꾸버린 우물을 다시 파는 이삭은 얼마나 용기가 대단한 것입니까? 이런 용기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칠전팔기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메운 우물을 다시 파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삭이 다시 우물 파는 용기를 가진다면 못할 일이 없는 줄 믿습니다.
19절을 보니 이삭이 다시 우물을 파자 샘이 터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삭이 양보할 수 있었던 것은 개척정신(창조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개척정신이 없는 사람은 남이 이루어 놓은 것을 얻으려고만 합니다. 수고도, 헌신도, 눈물도 없이 그저 열매만 따려고 합니다. 그러나 개척정신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마음이 넉넉합니다. 많은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이삭은 어떤 일에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양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이삭에게 100배의 복을 받게 하셨습니다.
성도는 포기하지는 말되 양보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남을 시기하면 자기 영혼이 망하게 됩니다. 남이 잘 되는 모습을 보면 축하해 주고, 도전을 받아야 합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박수를 쳐 줘야 합니다. 이웃이 잘 되면 축하해 주고, 본받아야 합니다. 만일 앉아서 헐뜯고 시기한다면 정말 쪼잔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삭의 정신으로 한해를 출발하시기 바랍니다. 쪼잔하지 마시고 믿음의 거인들이 됩시다. 그래서 이삭처럼 100배의 복을 받는 성도와 교회가 됩시다.
사람이 성공하는 데에는 성실함도 수완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축복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수완으로는 2배의 결실을 얻기도 힘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백배의 열매를 얻을 수 있습니다. 작은 부자는 본인이 노력하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큰 부자는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새해를 이삭이 가진 이런 믿음으로 형통의 해로 엽시다. 여러분들이 형통의 사람이 되고 형통의 새해를 여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임경택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