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8-14


한국식으로 인사하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성경적으로는 샬롬입니다. 2006년 처음인 이날은 이렇게 올 한해 제가 잘 되면 무조건 당신 덕입니다. 2006년 여러분에게는 어떤 의미입니까? 여러분에게는 2006년이 어떤 해였으면 합니까? 목사 개인적으로는 2006년이라는 날들 속에서 우리 온 성도들의 삶의 현장에 에덴의 축복이 넘쳤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 사람을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에 살게 하셨습니다. 처음 사람에게 하나님께 축복으로 주신 에덴은 어떤 동산입니까? 에덴동산의 에덴은 행복, 기쁨, 즐거움, 풍성함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연 에덴 안에는 행복이 있었습니다. 기쁨이 있었습니다.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풍성함이 있었습니다. 처음 아담과 하와는 이 모든 것을 마음 것 누리며 살았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도 하와와의 관계에서도 자연과의 관계에서도 말입니다. 우리 모두는 에덴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에덴의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에덴이 에덴 되는 원리는 장소보다는 관계에 있습니다.

에덴이 에덴되는 원리는 장소보다는 관계입니다. 무엇이 에덴의 삶이겠습니까? 어디에 에덴의 삶이 있겠습니까? 미국에요? 분당에요? 에덴이 에덴 되는 축복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있어지는 것입니다. 절대로 에덴은 더 출세해서 더 부자가 되어서 더 좋은 장소여서가 아닙니다. 물론 에덴에는 풍성함이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행복 그리고 풍요를 누릴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장소가 중심이 되고 에덴이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에덴 안에는 마귀가 있습니다. 옥에도 티가 있습니다. 알곡속에 가라지는 있습니다.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동산이지만 마귀가 있었습니다. 또 하나 에덴안에는 여전히 에덴이 에덴되게 하는 생명나무과실도 풍성했지만 에덴을 에덴되지 못하게 하는 선악과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로봇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모든 동물은 본능안에서 태어나 본능안에서 살게 하셨지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 된 사람에게는 선택권을 주셨습니다. 신학적으로 이야기하면 자유의지입니다. 에덴중앙에 있는 선악과 앞에서 순종과 불순종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주신 것입니다. 오늘도 사람은 무엇이라도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던지 마귀의 간교한 유혹 앞에 무너지든지 입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까? 하나님은 어떤 곳에서라도 에덴이 에덴되게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 마귀의 유혹앞에서 자신을 지켜야합니까? 마귀는 어떤 에덴마져도 무너트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에덴이 에덴되어지는 원리가 장소보다는 관계에 있다면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아담이 언제부터 불행이 시작되었는가를 살펴보면 됩니다. 아담은 에덴에서 쫓겨나서 불행이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선악과를 취한 후 에덴안에서 불행이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단절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지니 자연과도 가시엉겅퀴를 내며 관계가 무너집니다. 에덴이 에덴되어지는 원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잊지마십시오 하나님과의 관계만 잘 붙들면 하나님은 그 어떤 곳에서도 우리 삶에 에덴이 에덴되게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에덴의 풍성함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에덴이 풍성할 수 있는 이유는 강이 있다는 것입니다.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강이 되어 흐르는 것입니다. 그 처음이 비손강입니다. 그리고 기혼과 힛데겔 유브라데입니다. 에덴에서 시작되니 온 세상을 적시는 강들입니다. 비손은 뛴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혼은 은혜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힛데겔은 결실의 뜻을 그리고 유브라데는 능력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올 한해 비손의 뛰는 한해가 되길 바랍니다. 기혼의 은혜가 넘치는 한해, 힛데겔의 결실이 있는 한해, 유브라데의 능력이 있는 한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에덴에서 시작된 강들이 흘러 흘러 성도들의 가정에 사업체 그리고 자녀들에 그리고 우리교회에 조국강산에 넘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비손의 뛴다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뛴다에는 적극적, 왕성함, 그리고 열심의 뜻이 있습니다. 누워있는 것보다 앉아있는 것이 더 왕성합니다. 앉아있는 것보다 걷는 것이 더 활발합니다. 걷는 것보다 뛰는 것이 더 왕성합니다. 사람들에게는 문제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삶의 목적을 편하게 눕는데 두고 있습니다. 더 편해지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더 편하기 위해 더 게을러지기 위해 목표를 둔 것 같습니다. 제 아내가 진공청소기대신에 이젠 혼자 알아서 구석구석 청소하는 로봇청소기에 관심을 두기시작했습니다. 사람은 누울 려 하지 말고 더 뛸 려 노력해야 합니다. 뛴다는 것은 활동적인 것을 의미합니다. 부지런함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열심히 뛰며 일하는 자에게 축복을 주십니다. 에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축복의 에덴 안에는 비손강이 있습니다. 하나님부터가 열심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사9:7절에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들 이루리라 열심이 특심이신 하나님이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온갖 능력을 가지고 있으시면서도 절대로 게으르지 않으셨습니다. 학생들도 일하는 사람들도 뛰고 싶어서 뛰는 것처럼 뛰어야 생산적입니다. 억지로 하는 사람은 뛰는 것 자체가 불행합니다. 신앙안에서도 비손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히11:6절에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였습니다. 상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목표가 분명한 사람이 뜁니다. 여기에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갔노라 하였습니다. 목적이 없는 사람은 뛰지 않을 뿐 아니라 뛰며 살아가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시계적 삶보다는 나침반 적 삶이어야 합니다. 변하지 않는 것 말입니다. 부지런한 물레에는 이끼가 끼지 않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내안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보고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원하심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비손의 은혜는 과거보다는 미래를 사는 사람에게 있습니다. 뛴다는 것은 높이보다는 앞으로 달려가기 위함입니다. 뒤엣것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마귀는 과거에 메이게 합니다. 주님은 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것이 되었도다 미래입니다. 비손의 은혜를 입은 사람은 미래에서 해답을 찾는 사람입니다. 이제 우리는 새롭게 출발하는 것입니다. 좋은 글이 하나있어 소개합니다. 마지막과 처음이라는 글입니다.


  한 해의 마지막은 겨울이다

  그리고 한 해의 시작 또한 겨울이다

  겨울 속에는 마지막과 처음이 함께 있다

  겨울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세상이치가 그러하다

  마지막과 처음

  사랑과 미움

  실패와 성공 불행과 행복이 항상 공존한다.


저는 이 글을 읽고 나서 너무 좋아 내용을 이어보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겨울이 좋다

  그 겨울 안에 생명의 끝도 시작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생명의 끝만 보인다

  시작의 겨울은 보이지 않는다

  아니 시작의 겨울은 보기보다는 믿을 뿐이다

  나는 오늘도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사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겨울을 좋아 하련다

  겨울 속에 새로운 시작이 있다.

  나는 이제 또 한번의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될 것이다.

  주님은 또 한번의 기회를 우리에게 주셨다.

  선물이다 2006년,

  여전히 2006년도 겨울부터 시작되었다

  내게 있었던 인생의 겨울 언젠가 돌이켜 보니 그 안에서 주님은 시작하셨다.

  그래서 나는 겨울이 좋다.


멋있지 않습니까? 인생의 겨울속에 새로운 사역 2006년을 맞는 성도님들이여 주님을 믿고 달려가 봅시다. 해답은 미래에 있습니다. 뛰는 사람은 해답을 미래에서 찾습니다. 뛰는 사람은 자신만 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뛰게 합니다. 뛰는 사람은 리더가 되는 것입니다. 영향력입니다. 함께 잘해야 합니다. 나만 잘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 비손의 은혜를 입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영향력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뛸 수 있을까요? 건강해야합니다. 건강하지 않으면 뛸 수 없습니다. 건강하지 않으면 마음은 있지만 안 되는 것입니다. 육적으로도 건강해야합니다. 운동도 하고 아프지 말고 아픈 성도들에게 올 한해에는 비손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신앙 안에서도 건강해야합니다. 젊어야 뛸 수 있습니다. 늙으면 뛸 수 없습니다. 마음이 늙어버리는 것은 위험합니다. 신앙도 늙어버리는 것은 위험합니다. 신앙의 조로현상들이 많이 있습니다. 나는 늙었대요 나는 아무것도 못한대요 교회도 늙은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비손의 교회여야만 합니다. 갈렙처럼 “내 나이 85세로되” 하나님을 마음에 품고 47년을 참았다 말씀이 말씀되는 것을 보고 싶은 것입니다. 신앙안에서 늙었는가요? 늙은 닭의 특징이 있습니다. 싸납습니다. 그리고 모이는 많이 먹고 알은 잘 못 낳습니다. 잘 좁니다. 그리고 고기가 질기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에덴의 축복은 비손을 통해 흘렀습니다. 뛰어야합니다. 뛰는 사람에게 기회가 옵니다. 하나님의 복도 뛰는 사람에게 있습니다. 앉아서 기다리는 사람에게 오지 않습니다. 우리도 뛰게 하는 능력은 어디서 옵니까? 에덴은 하나님의 신이 운행하시는 곳이었습니다. 성령 충만 해야 뛰는 능력이 있습니다. 올 한해에는 적극적이고 열심이 그리고 왕성함이 있는 신앙이기를 바랍니다. 복음에 분명한 사람이 되어 과거보다는 미래를 사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자신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뛰게 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성령 충만 하여’ 말입니다.

                                                                    
출처/유재명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