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에서 구원 하신다   (마태복음 1:18 ~ 21)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마태복음 1:18-21.

   예수님이 나신지 2천 년이나 지났는데, 오늘 이 아침에도 세계 인구의 1/3이 여전히 그분의 탄생을 기뻐하며 그분을 구주로, 하나님의 아들로 경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북쪽 시골에서 태어나셨습니다. 30~33세까지 3년 동안 이스라엘에서 사역을 하셨습니다. 그분을 보통 ‘랍비’라고 불렀는데, 그 당시 많은 랍비들이 전국을 다니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당시 예수님은 지금 제 나이의 절반도 안 되고 옷도 한 벌밖에 없던 가난한 젊은이로 이스라엘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제자로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전 세계 사람들의 호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분의 순교정신 때문일까요? 하지만 예수님만 순교하신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종교와 사상을 위해 순교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이 동정심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일까요? 그것도 아닌 것 같아요. 예수님 당시의 요세푸스라는 역사학자가 ‘유대인들의 고대사,’ ‘유대인들의 전쟁사,’ 자서전 ‘나의 인생’ 등 책 3권을 남겼는데 거길 보면 예수님의 시대상황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에 달려 죽었고, 스스로 메시아라고 주장하고 나섰다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습니다. 그 중에 제일 유명한 사람이 바코츠바인데, 자기가 메시아라고 떠들다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 그를 따르던 수많은 사람들까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십자가 때문에 동정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인류 역사상 훌륭한 인물들이 - 종교지도자, 철학자, 현자들이 - 많았지만, 예수님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대부분의 지도자들과 사상가들은 진리를 찾아서 그 진리를 사람들에게 가르쳐주려 하는데 예수님은 자기 자신이 진리라고 주장하셨습니다. 석가모니는, 모든 생존이 다 고(苦)요 고는 욕심에서 오고 욕심을 여덟 가지 방법으로 다 제거하면 해탈하게 된다는 자기가 발견한 진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똑같이 가르쳐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진리를 가르쳐준다 하시지 않고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14:6).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이다”(요11:2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여러분과 저에게 인생의 진리 한 가지를 가르쳐주시거나 마음의 평안을 주시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아무리 마음에 평화가 있어도, 인생을 마치면 지옥에서 마귀와 함께 영원히 고통을 당하거나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거나 둘 중의 하나입니다. 예수님은 진리로 오셨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이 진리를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일이 무엇입니까?” 이런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은 “선교사로 가는 것, 교회에 헌금을 많이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나를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다.” 이렇게 말씀하신 다른 분이 세상에 없습니다. “나를 믿는 것보다, 나를 받아들이는 것보다, 나를 아는 것보다 더 큰 하나님의 일은 없다.” 즉 예수님이 진리요, 생명이요, 부활이요, 그분을 믿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용서를 구합니다. 용서하는 방법, 용서받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들 앞에서 “네 죄가 사함을 받았느니라.” 선언하시며 용서해주셨습니다. 하나님 밖에는 죄를 용서할 자가 없는데 자기 자기가 하나님인 것처럼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이런 죄를 범하지 말라.”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분, 이분이 도대체 누구입니까? 오늘 우리가 탄생을 축하하는 예수 그리스도, 바로 그분입니다.

   예수님은 예배의 방법을 가르쳐 주신 분이 아니라 예배를 받으신 분입니다. 자기를 경배하라 하셨고 자기 앞에 모두 무릎을 꿇고 경배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기 때부터 사람들의 경배를 받으셨습니다.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경배했습니다. 나중에 사람들이 예수님께 엎드려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여!” 고백하며 경배했을 때 예수님은 “왜 나에게 경배하느냐? 하나님께만 경배해야지” 라고 하시지 않고 그 경배를 당당하게 받으셨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사도 요한이 자기에게 나타난 천사를 보고 놀라 엎드려 경배하려 하였습니다. 그 때 천사가 경배받기를 거부하며 말했습니다. “나에게 경배하지 마시오. 내가 인간보다는 더 높고 위대한 천사이긴 하지만 난 하나님이 아니니 절대로 내게 경배하지 마시오. 일어나시오. 당신과 나는 같은 동역자요.” 한편 헤롯 대왕은 목소리가 얼마나 좋았던지 모두들 하나님의 목소리라고 했습니다. 헤롯이 연설을 하면 사람들이 “아, 저 사람이 하나님이 아닌가!” 할 정도였습니다. 이에 교만해진 헤롯이 “아! 내가 정말 하나님인가 봐!” 하고 하나님인 척하다가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죄 있는 인간이 하나님처럼 경배를 받으면 안 된다는 것을, 그리고 경배를 받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사람들이 자기 앞에 엎드려 경배할 때 서서 경배를 받으셨습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16:16)라고 고백하였을 때 그대로 받으셨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성전과 안식일, 모세오경(토라)이 중요했는데, 예수님은 그들에게 “내가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에게 보통 충격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이 거짓말을 했거나 실제로 하나님이거나 둘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만약 거짓말이라면 거짓말하는 사람을 어떻게 20억의 인류가 따르겠습니까? 실제로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요, 성전의 주인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친히 채찍을 들고 성전 안에서 돈 바꾸는 자들을 몰아내어 성전을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모세와 함께 계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1500년 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광야를 다닐 때에 예수님이 그와 같이 계셨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예수님은 “아브라함이 있기 전에 내가 있느니라”(Before Abraham I am)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 예수님은 자기가 곧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런 분입니다. 그분이 바로 2천 년 전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기 전에 여섯 번이나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죽음을 당할 것이며 사흘 후에 부활할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당시에 십자가에 달려 죽은 사람이 많았고 스스로 메시아라고 주장한 사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십자가에서 다시 살아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신 대로 죽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계셨고, 제자들 500여명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셨습니다.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6:35). 예수님은 어떤 진리를 가르치거나 하나님 만나는 방법을 안내하려 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을 만나게 해주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누군지를 분명히 알고 믿고 이해하고 그분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말씀 한마디를 깨닫고 ‘아, 그 말씀 괜찮다!’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괜찮은 말들이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 중에는 “죽는 자는 살 것이요, 살려 하는 자는 죽으리라”처럼 알쏭달쏭한 말들도 있어요. 이 말들이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바로 그분이 문제입니다. 그분이 대답이요, 그분이 생명이요, 그분이 영생입니다. 아무도 예수님의 생활 속에서 죄를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분의 권위는 과거 어떤 종류의 권위와도 다르다고 제자들이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은 한 번도 두려워한 적이 없었고, 죄를 범하고 죄의식 속에서 헤맨 적도 없었으며, 잘못을 저지르고 후회하면서 낙심한 적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여러분과 저의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어떤 문제? 죄의 문제입니다. 인간의 문제들 중에 가장 큰 문제가 무엇입니까?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육체적, 심리적, 정서적, 환경적 문제들이 있지만 그 모든 문제들의 중심에는 죄가 있습니다. 죄를 가슴에 품은 인간이 있습니다. 세상의 어떤 문제보다 죄의 문제가 제일 큰 것입니다. 이 죄의 문제가 해결된다면 정치적, 사회적, 환경적 문제는 물론 건강의 문제까지 해결될 것입니다. 죄 속에 빠져 헤어나질 못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죄 속에서 잃어버린 자를 찾아서 구원하러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죄의 문제는 남녀노소, 빈부귀천, 학식과 전혀 상관없습니다. 오래 전에 제가 미국 중부의 한 도시에 살 때의 일입니다. 이웃에 사는 의과대학 교수 한 분이 자기 아내를 자동차로 치어 죽이려고 했습니다. 제가 아는 분인데, 인물도 참 좋고 의학박사 학위에 갖출 것을 다 갖춘 교수였습니다. 그런 사람이 아내를 죽이려고 했으니 온 동네가 소란스러웠습니다. 다행히 그 아내가 죽지는 않았지만 저는 그 일로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그 점잖은 분이 어떻게 자기 아내를 자동차로 밀어버리나? 어떻게 박사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나?’ 저는 그 때 30대 초반으로 막 목사가 되어 사람을 잘 몰랐어요. 인간의 죄는 교육, 학위, 사회적 지위와 전혀 상관없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지금은 제가 알지요. 그럴 수가 있지요. 인간의 가슴 속에 박힌 죄성은 인간을 파멸로 몰고 갑니다. 고통과 미움을 불러일으킵니다. 죽음을 초래합니다.

   예수님이 왜 오셨습니까?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1:21). ‘예수’라는 단어가 ‘구원자’(Savior)라는 뜻입니다. 인간에게는 구원자가 필요합니다. 무엇으로부터의 구원입니까? 인간의 가장 심각하고 보편적인 문제, 즉 죄로부터의 구원입니다. 이것이 크리스마스의 의미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8절에 보면 지옥 가는 사람들의 명단이 나옵니다. 혹시 여러분이 거기에 들었는지 보세요. 들었다면 정신 차리고 빨리 나가야 됩니다.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첫째로, 두려워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겁쟁이를 말합니다. 왜 겁쟁이입니까?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무한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라면 벌벌 떨면서 살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적은 자들아,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굳건한 믿음,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있어야 지옥의 유황불에 안 들어갑니다. 믿음이 있어야 힘차게 살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이 조금만 어떻게 되어도 겁이 나서 굿하는 사람들은 지옥에 갑니다.

   둘째로, 믿지 아니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영생을 믿지 않고, 예수를 믿지 않고, 죄 사함과 부활과 영생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불과 유황 못에 들어갈 것입니다.

   셋째로, 흉악한(abominable)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혐오하시는 부류입니다. 이런 자들 중에 동성애를 행동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이를 ‘abomination’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깨뜨리고 여자와 여자가, 남자와 남자가 성행위를 하면서 부부라고 떠드는 것이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민주주의는 동성애를 괜찮다고 합니다. 서양에서는 남자와 남자끼리, 여자와 여자끼리 결혼해도 된다고 법으로 정하고 있어요. 한국에서는 이와 같이 하나님이 혐오하시는 법이 절대로 만들어지지 않기를 원합니다. 동성애의 경향이 있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동성애의 경향을 행동으로 옮기는 자들이 흉악한 자들입니다.

   넷째로, 살인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형제를 미워하는 것이 바로 살인이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을 증오하고 배척하며 사는 사람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갈 것입니다.

   다섯째로, 음행하는 자들입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도 아내와 자식을 두고 간음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고도 주일에는 와서 예배를 드립니다. 지옥 갈 일을 계속 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를 드리다니요.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왜 오셨습니까? 우리를 죄에서 구하러 오셨지 죄 속에서 살라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여섯째로, 술객들입니다. 즉 귀신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무당들, 무당을 섬기는 사람들,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의 피조물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우상숭배자들이 지옥에 들어갑니다.

   일곱째로,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입니다. 사기꾼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갈 것입니다.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예수님께서는 이런 죄인들을 변화시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새 삶을 살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21절). 어떻게 구원하시나? 친히 우리의 죄를 그 몸으로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심으로써, 그 보혈로 아까 보았던 여러분의 모든 죄를 덮어주셨습니다. 다 용서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었을 때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를 한 번에 용서해주셨습니다. 우리에게 해방과 자유와 죄 사함을 주셨습니다.

   어쩌면 여러분은 아까 제가 나열했던 죄들 속에 사셨는지도 모릅니다. 지금도 그 가운데 빠져 있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을 왜 여기 부르셨습니까? 예수님은 지금 여러분의 죄를 사해주셔서 여러분이 죄로부터 완전히 회개하고 새사람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가정에 신실하고 충성스러운 식구들이 다 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가 죄를 회개하면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성을 깨끗하고 정결케 만들어주십니다. 여러분이 회개할 때마다 예수님의 피가 깨끗이 씻어줍니다. 찬송할 때마다 정결케 해줍니다. 예배드릴 때마다 새롭게 만들어줍니다. 말씀을 읽을 때마다 우리는 점점 변화됩니다. 재미있다고 따라다니던 죄가 싫어지기 시작합니다. 죄를 멀리하게 되고 죄와 싸우게 됩니다. 우리의 가슴이 예수님 때문에 점차 깨끗해집니다.

   예수님은 또한 여러분을 마음속의 죄의식으로부터 해방시켜주십니다. 죄의식이 무엇입니까? 자기가 자기를 처벌하는 것입니다. 죄를 범하는 순간 내 가슴에 고통과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창피하고 수치스럽습니다. ‘내가 왜 그런 짓을 했나?’ 자기를 정죄하고 죄의식을 갖게 됩니다. 여러분의 가슴에 죄의식이 있다면, 오늘 아침 예수님께서 그것을 제거해주시기 원하십니다. 해방시켜주시기 원하십니다. 예수님 앞에 죄를 고백하고 십자가의 보혈로 씻어달라고 기도하면 예수님께서는 용서해주시고 죄의식을 없애주십니다. 마음에 평화와 기쁨이 일고 죄 사함을 받은 감사가 가슴에 넘치면서 우리는 죄를 점점 멀리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죄를 범하지 않도록 도와주십니다. 옛날에는 죄성을 가지고 혼자 살면서 온갖 죄를 다 범했지요. 그러나 예수님이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인정하고 믿는 그 순간부터 예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여러분과 언제나 같이 하셔서 죄를 범하지 않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의 세력으로부터 우리를 건져주십니다. 죄는 힘이 있어요. 마귀가 우리보다 세지요. 세상이 우리 보다 셉니다. 내 죄성이 나보다 셉니다. 사도 바울도 “내가 선을 행하고 싶은데 왜 안 되나? 내가 악을 행하고 싶지 않은데 왜 악이 튀어나오나?” 고민하다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7:24)고 절규하였습니다. 인간은 죄를 알고 죄에서부터 건짐 받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죄의 세력을 파괴하십니다. 이제부터 우리 가슴속에 살아계신 예수님이 우리가 죄를 범하지 않도록 기도할 때마다 도와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의 결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주십니다. 죄의 결과는 사망입니다. 육신의 사망뿐 아니라 영원한 사망입니다. 둘째 사망, 즉 영원히 하나님과 분리되어 불과 유황이 타는 못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많은 현자들과 철학자, 사상가들이 우리에게 인생의 진리 한두 가지를 가르쳐 줄 수는 있지만, 예수님만이 우리를 영원한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셨기 때문에 우리는 죄 사함 받고, 죄의식에서 구원받았습니다. 우리의 죄성이 점점 정결케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죄를 범하지 않도록 도와주시며 영원한 자유를 주십니다. 이것이 크리스마스 의미입니다.

   여러분의 생활 속에서 아직도 죄가 여러분을 거느리고 있다면, 이 시간 예수님께로 오십시오. 피해 다니지 마세요. 핑계대지 마세요. 못 본 척한다고, 없는 척한다고, 거짓말 한다고 죄가 없어집니까?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보고 계십니다. 죄에서 돌이켜 예수님께 나아오십시오. 죄 사함으로 나아오십시오. 죄 사함을 받으십시오. 죄의 결과로부터 해방을 받으십시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아멘.


출처/김상복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