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는 말

세례 요한은 성신님의 세례를 받는 자만이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다고 선포했다(마 3:11-12). 이런 점에서 요한이 베풀고 있는 물세례는 성신님의 세례를 예표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요 1:26; 32-34). 요한이 요단 강 베다니 근처에서 물세례를 베풀기 시작하자 예수께서는 요한으로부터 물세례를 받기 위해 찾아 오셨다.

예수께서는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마 3:15)고 말씀하시자 요한은 비로소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풀게 되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자 하늘이 열리고 성신님이 비둘기같이 내려 예수 그리스도께 임하셨다. 그리고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3:17)는 음성이 들려 왔다.
이 음성은 마치 시편 기자가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시 2:7) 하며 장차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아들에게 굴복할 것을 선언하신 장면을 연상케 한다. 시편 2편의 사상은 이미 이사야에 의해 온 세상이 하나님의 아들에게 복종하게 될 것이라는 신학으로 완성되어 계시된 바 있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사 42:1-4).
이사야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여호와의 종'이 온 세상을 통치하시되 그 날에는 공의로 온 세상을 다스릴 것이며 그의 통치는 쇠하지 않고 영원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아들에게 성신님의 세례가 임할 것에 대하여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사 11:1-2)라고 이미 예언한 바 있다. 이 분은 이사야 42장의 '여호와의 종'으로 묘사된 분이시다.
마태는 시편 기자의 노래와 이사야의 예언에 따라 이제 예수님에게 성신님의 세례가 임한 것임을 증명하기 위해 예수님이 성신님의 세례를 받으실 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는 하늘의 음성이 들렸다고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예수께서 물세례를 받으심으로써 성신님의 세례를 받으신 것과 하나님의 의를 이룬다고 요한에게 하신 말씀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알기 위해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구원의 날'을 상징하는 예수님의 세례 받으심

이사야 11장의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난다'는 사상은 이미 이사야 7장에서부터 꾸준히 언급되어 오고 있었다. 이사야는 여자에게서 한 아이가 날 것이며 곧 그가 임마누엘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사 7:14). 또한 '그 아이는 기묘자요 모사요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사 9:6-7)이시라고 선언하고 있다.
그분은 이새의 줄기에서 나오실 분이시며(사 11:1) '만민의 기호'(사 11:10)가 되어 이 세상에 나타나 장차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 모든 만민들 위에 특별한 표가 될 것이다. 여기에서 이사야는 지혜와 총명, 모략과 재능 또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분 위에 임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이사야는 그 분이 장차 임하시어 하나님을 위해 이루실 일의 성격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예언하였다.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아니하며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사 11:3-5).
이와 같이 온 세상을 공의로 다스리게 됨으로써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종은 지금까지 이 세상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없었던 새로운 나라를 건설할 것이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사 11:6-9).

그분이 세우실 나라는 이 세상과 같이 힘의 방법으로 유지되지 않고 오직 여호와를 아는 지식, 즉 여호와의 신이 충만한 평화의 나라가 될 것이다. 이사야는 이 분을 가리켜 평강(Shalom)의 왕이라고 하였다(사 9:7). 그리고 이사야는 여호와의 신이 그 왕, 곧 이새의 줄기에서 태어날 하나님의 아들이신 임마누엘에게 임하게 될 것이며 그 날에는 세상의 법칙이 통용되지 않는 새로운 나라가 건설될 것을 예언하였다. 이 날을 가리켜 '구원의 날'이라고 하였다.

이 날에 대해 이사야는 옛적 출애굽 사건을 상기시키며 하나님의 백성이 아브라함의 언약에 따라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애굽에서 해방되었던 것처럼 '그의 남아 있는 백성을 위하여 앗수르에서부터 돌아오는 대로가 있게 하시되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게 하시리라'(사 11:16)고 함으로써 그 날은 제 2의 출애굽 사건과 같은 성격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바로 그 날이 '구원의 날'로 임마누엘에 의해 한 나라가 새롭게 건설되는 날이다. 이사야는 이 사상을 이사야 32장에서 다시 언급하고 있다.

'보라 장차 한 왕이 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공평으로 정사할 것이며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우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 보는 자의 눈이 감기지 아니할 것이요 듣는 자의 귀가 기울어질 것이며 조급한 자의 마음이 지식을 깨닫고 어눌한 자의 혀가 민첩하게 말을 분명히 할 것이라'(사 32:1-4). 여기에서 '한 왕' 즉 의로 통치하실 왕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그 분은 임마누엘(사 7장)이며 기묘자이며 영존하시는 아버지이며(사 9장) 이새의 줄기에서 출생하실 분이다(사 11장).

그 왕이 통치하게 될 때 '필경은 위에서부터 우리에게 성신을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삼림으로 여기게 되리라'(사 32:15)고 이사야는 예언함으로써 그 날에는 임마누엘의 통치를 받게 될 새 나라의 백성이 모두 성신님의 세례를 받게 될 것을 말하고 있다.

그 때에는 공평이 광야에 거하며 의가 아름다운 밭에 있을 것이며 의의 공효는 화평이며 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 될 것이다. 그 나라의 백성은 여호와께서 예비하신 화평한 집과 안전한 거처와 종용히 쉬는 곳에 있을 것이지만 그 날이 오기 전에는 그 삼림이 우박에 상하고 성읍이 파괴되는 것과 같은 고난이 임할 것이라고 이사야는 예언하고 있다(사 32:16-20). 이 나라에 참여한 자는 복 받은 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여호와의 신이 그 백성에게 부어지게 됨으로써 비로소 구원의 날이 완성될 것을 예언하고 있다.

2. '새 하늘과 새 땅'의 임재를 상징하는 예수님의 세례 받으심

구원의 날이 시작될 때 그 나라의 왕이신 여호와의 종이 먼저 성신님의 세례를 받아야 할 것을 이사야는 밝히 말하고 있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사 42:1). '여호와의 종'에게 성신님의 세례가 임하게 됨으로써 구원의 날이 시작될 것이며 그 날은 마침내 여호와의 종에게 속한 모든 백성에게 성신님이 임함으로써 완성될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이사야는 여호와의 종에게 임할 성신님의 세례에 대해 모든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다. 이사야 42장 이후부터, 이 부분을 이사야의 '종의 노래'라고 하는데, 이 '종'에게 어떻게 성신님의 세례가 임할 것인가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고 있음은 특징적인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이사야가 소개하고 있는 이 종은 하나님이 택하신 바로 그 사람으로 임마누엘이시다. 하나님은 이 종을 가리켜 '내 백성, 나의 택한 자'(사 43:20)라고 호칭하셨다.

이 종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분이시다.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이스라엘아 이제 들으라 너를 지으며 너를 모태에서 조성하고 너를 도와 줄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여수룬아(여수룬은 이스라엘의 애칭이다) 두려워 말라 대저 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신을 내 자손에게, 나의 복을 내 후손에게 내리리니 그들이 풀 가운데서 솟아나기를 시냇가의 버들 같이 할 것이라'(사 44:1-4).
하나님은 이 종에게 신(聖神)을 부어 주실 것이라고 이사야는 예언하고 있는데 그 종이 성신님의 세례를 받는 것은 그에 속한 모든 여수룬 곧 영적 이스라엘(사 44:21-23 참고) 역시 성신님의 세례를 받게 됨을 예표하는 것이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아들에 대하여 임마누엘, 평강의 왕, 나의 종 등으로 다양하게 전개시켜 나가는데 한결같이 그에게 여호와의 신이 부어질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더 나아가 그 분 자체가 이스라엘이면서 동시에 이스라엘 공동체를 상징하는 분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부르실 때에는 메시아이신 그 분만이 아니라 그 분에게 속해 있는 공동체, 즉 그 분 안에 있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도 함께 부르신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참 이스라엘이신 메시아를 통해 그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구속하실 것이다(사 44:23).

이사야는 이 사람(야곱이라고도 불리고 이스라엘이라고도 불리는 이 사람은 또 전 이스라엘의 대표자이기도 하고 또 그 나라 안에 들어 있는 모든 사람이기도 한데)이 그의 백성을 어떻게 구속할 것인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이사야 53장에서 예언하고 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4-5).
여기에서 여호와의 종은 고난을 받는 인물로 부각되고 있다. 그의 고난은 그에게 속한 백성의 허물 때문에 주어진 것으로 그가 대신 징계를 받음으로써 그의 백성은 하나님과 화평(Shalom)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원하신 일이다.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사 53:10).
이것은 마치 시원적(始原的) 복음인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여기에서 고난을 받고 죽으시는 '여호와의 종'은 이사야 52장에서부터 그의 백성을 구속하기 위해 고난과 죽음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이사야는 여호와의 종에게 최고의 영광이 주어질 것을 선포하고 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사 60:1-3).

이것은 시편 2편의 예언이 성취되고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도다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저희를 놀래어 이르시기를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관원들아 교훈을 받을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시 2:1-12).

이 예언의 성취는 이사야 61장에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이는 성신님의 세례를 상징함)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年 : 희년을 상징)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사 61:1-3).

여기에서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였다'고 하는 '나'는 바로 이사야 7장에서부터 계속 연결되어 지칭하고 있는 임마누엘, 평강의 왕, 여호와의 종으로 불려진 분이시다. 그 분에게 여호와의 신이 임함으로 하나님의 평안이 만방에 선포되었다.
그의 백성을 곤고로부터 신원하시는 그 날은 마치 구약에서 희년이 되면 일곱 나팔을 불어 모든 종들이 해방되고 담보 잡힌 모든 영토가 원 소유자에게 돌아가는 것과 같이(레 25:8-17) 고통이 끝나고 새로운 날이 시작되는 날임을 상징하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죄로 말미암아 단절된 하나님과 그의 백성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이 완성될 것이다(사 61:10-11). 이 나라는 새롭게 창조되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묘사되고 있다(사 65:17-25 참고).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사 65:17-18)는 이사야의 말은 마침내 여호와의 종에 의해 새 나라가 건설되었음을 선포하고 있다. 이 나라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목적에 따라 완성된 나라이다.

이사야는 이 나라에 여호와께서 친히 강림하시리라고 함으로써(사 66:15) 진정한 임마누엘이 마침내 그 나라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예언하고 있다. 여기에서 이사야는 한 아기로 태어나실 임마누엘을 가리켜 바로 여호와 자신이라고 함으로써 임마누엘은 신적 존재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여호와의 종에 의해 건설될 새 나라에 여호와께서 친히 임재하심으로 이제 친히 여호와께서 그 나라를 다스리실 것이다. 그 나라에는 여호와의 종에 의해 구속된 백성이 영원토록 여호와를 모시고 살 것이다(사 66:22).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이기도 하다.

3. 새 나라의 왕으로 즉위하는 대관식을 상징하는 예수님의 세례 받으심

이상에서 구원의 역사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경영해 나가시는가를 볼 수 있다. 구원의 날은 임마누엘이신 한 아기가 태어남으로 시작될 것이다. 곧 그 분은 ①하나님 자신으로서 신적 존재이신데 ②그에게 여호와의 신이 임하게 됨으로써 ③그의 백성에게 성신님의 세례가 주어질 것이고 ④그 분에 의해 새 나라가 건설될 것이며 ⑤그 나라는 그 분에 의해 통치될 것이다.
이 나라는 '여호와의 종'이라 불리는 임마누엘께서 그 백성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실 것이지만 그가 다시 일어나서 빛을 발함으로써 영광스럽게 완성될 것이다.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불리어질 이 나라가 건설됨으로써 창조의 목적이 성취될 것이다.

그러므로 성신께서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임하셨다(임마누엘)는 것은 마침내 구원의 때가 이르렀고 그의 의로운 통치가 시작되었음을 상징하고 있다. 지금 예수께서 물세례를 받으시고 그때에 하늘로부터 성신께서 임하셨다는 것은 이제는 메시아이신 그분에 의해서 새 나라가 건설되고 통치될 것을 선언하는 사건이다.
이런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께 임한 성신님의 세례 사건은 예수께서 새 나라의 왕으로 즉위하는 대관식과 같다. 성신님이 비둘기같이 그의 머리 위에 임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권을 상징하는 왕의 홀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께 위임되었음을 상징하고 있다.

예수님은 '나의 택한 백성'이라고 불리던 진정한 이스라엘로 그리고 진정한 '남은자'(remnant)로 곧 이스라엘의 대표이시다. 그리고 예수님의 세례는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 역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신님의 세례를 받았음을 예표하고 있다. 예수께서 전 이스라엘을 대표해서 성신님의 세례를 받으셨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또한 이사야서가 예언한 바와 같이 그의 백성을 구속하기 위해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위한 결단을 내리는 장면이기도 하다.


본문을 해석할 때 본문을 기록한 마태의 의도를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의 세례 받으심에 대한 구속사적 의미를 돌이켜 보아야 한다. 마태는 이 본문에서 성령의 내주에 대한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예수님의 성령 세례 받으신 사건을 임의 해석하여 저자 마태의 의도를 벗어나 이 본문을 '성령의 내주'를 증거하는 자료로 인용해서는 안 된다.


출처/송영찬 목사, 기독교개혁신보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