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6-8

1919년 3·1독립운동은 전 세계에 선포한 한국인의 긍지이며 자유민의 선언이었습니다. "吾等은  에 我 조선의 獨立國임과 自主民임을 세계 만방에 선언하노라" 이것은 독립선언문에 기재된 선언문입니다. 약소국민으로서 가지고 있는 민족의식과 애국심에 대한 발로로서 전 국민이 삼천리 방방곡곡에 터뜨린 민족의 함성이었고, 자유민의 갈구였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소명에 따라 유관순 열사는 어린 나이에 독립운동을 하다가 순국했습니다. 그의 순국운동은 철저하게 신앙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순국은 곧 순교에서 출발된 것입니다. 그는 천안에서 출생했으며 어렸을 때부터 신앙심이 두터웠고 성전에 가서 기도하는 것을 즐거워했습니다. 아버지는 고등 공민학교를 세워 인재를 양성하다가 일제의 탄압과 갖은 고문에 의해서 중병이 들게 됩니다.

그때 어린 관순은 성전에 가서 철야하면서 기도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를 살려주시옵소서." 그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밤에 관순에게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네 기도를 들었다. 네 아버지를 살려주리라" 드디어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아버지 방으로 들어갔을 때 여느때와 달리 아버지의 얼굴에 화색이 있고 일어나 앉아 계셨습니다. 어린 딸의 기도로 아버지를 살렸고 이 소문이 공주에 있는 선교사의 귀에 들어가서 선교사가 찾아와 관순을 공주로 데려갑니다. 공주 영명 중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영특해서 서울로 유학을 보내 이화학당에서 공부하는 중 3·1운동이 벌어집니다.

그는 3·1운동이 벌어졌을 때 고향 천안 아우내장터에서 독립만세 운동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는 독립만세 운동을 하기 전에 매봉이라는 산에 올라가서 겟세마네 기도를 합니다. 주님께서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떨어지도록 기도하던 그 간절한 마음을 품고 어린 나이에 두려움을 극복하고 산에 올라가서 온 밤을 지새우면서 "이 민족을 구원해 주시옵소서. 이 민족이 자유하는 나라가 되게 하소서." 하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장터에 주민들을 동원해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가 그 아버지는 현장에서 일본 총검에 의해서 순국하고 관순은 재판에서 7년형을 선고 받습니다. 그는 감옥에 들어가서도 끝까지 기도와, 찬송과, 독립만세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기도가 애국이고, 찬송이 애국이며 독립만세가 애국이다." 그의 입을 막으려고 했지만 "나는 죽는 날까지 대한독립을 외치다 죽을 것이니 내 입을 막지 못하리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끝까지 감옥을 기도원으로 삼았고, 감옥을 교회로 삼았으며, 감옥을 독립운동 현장으로 삼았습니다. 그는 18세의 어린 나이에 죽었지만 지금도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심이 우리 가슴속에 타오르고 있습니다.

그의 가슴속에 타올랐던 애국의 정신은 예수님에게서 배운 것입니다. 예수님은민족 이스라엘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으로 태어나서 유대인으로 살다가 유대인으로 죽었습니다. 그의 가슴속에는 조국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민족심이 있었지만 또한 전 세계를 하나님 나라로 품는 애국심에 불타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땅에서는 이스라엘의 애국자요, 넓은 의미에서는 전 세계를 가슴에 품은 하나님 나라의 애국자였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민족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언제나 조국을 잊지 않았습니다. 조국을 위해서 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예수님은 살아계시는 동안 세 번 크게 우셨습니다. 한 번은 나사로의 무덤에서 사랑하는 나사로가 무덤 가운데 죽어있는 것을 보시고 민망히 여기사 조용히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두 번째는 감람산에서 기도하고 내려오시면서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셨습니다.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눅 19:42-44) 그리고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에서 물건 파는 자들과 장사하는 자들을 다 내어쫓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눅 19:46) 하시며 채찍으로 장사하는 자들을 다 몰아내셨습니다. 민족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성전이 강도의 소굴이 된 것을 보시고 탄식하시면서 우셨던 것입니다.

세 번째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큰 소리로 우시면서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떨어지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전 인류를 구원할 하나님 나라의 애국자로서 눈물을 흘리셨던 것입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 5:7)
예수님께서 애국심에 불타는 정신으로 살으셨기에 그 뒤에는 민족주의자들이 따라다녔습니다. 제자들은 민족주의자들이었고, 애국심에 불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예수님의 뒤를 따르면서 이스라엘의 독립, 로마로부터의 해방을 꿈꿨습니다. 그들은 열심당으로 주님의 뒤를 따르면서 죽은 자를 살리고, 병든 자를 고치고 떡을 먹이면서 기적을 행하는 예수님을 보면서 '우리를 로마로부터 해방시킬 지도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민족의 해방을 위해서 그의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시고 굶주린 백성들에게 떡은 먹였으나 저들을 자유민으로 만들지 못한 채 로마의 권력에 의해서 십자가에 달려 초라하게 죽었습니다. 예수님의 그 모습을 보고 제자들은 좌절하고, 실망하고, 낙심했습니다.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로 알았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초라하게 죽자 그들은 모든 것이 끝장났다고 실망하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죽은 지 삼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습니다.

이것을 본 제자들은 '이때다 분명히 죽음을 이기고 사신 이 부활의 주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회복하고 자유민의 축복을 이 땅에 내리실 것이다.'라고 기대를 걸고 "주여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라고 묻습니다. 그때 주님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7-8절)라는 말씀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을 꿈꾸는 제자들에게 간접적으로 애국에 대한 말씀을 교훈해 주셨습니다.

"너희는 좁은 국토 이스라엘만을 생각하고 있다만 이제 너희 마음을 넓혀라 이제는 민족에 국한 된 자가 아니고 예루살렘을 넘어서 유다로, 유다를 넘어서 사마리아로, 사마리아를 넘어서 땅끝까지 전 세계를 위한 애국자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자기 민족을 사랑하셨지만 그 민족을 뛰어넘는 애국자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민족의 국경을 넘어서 사마리아로, 사마리아에서 땅끝으로, 땅끝을 넘어서 천국으로 넓은 애국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한국 민족이라는 민족 의식에서 깨어나 하늘과 땅을 품에 안는 애국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조국은 있지만 국경은 없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자기 민족을 사랑하는 자라야 세계를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랑의 출발은 가정으로부터 이웃으로, 사회로, 민족으로, 세계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유명한 내촌은 "일본은 동양을 위해서, 동양은 세계를 위해서, 세계는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는 유명한 말을 남겨서 지금도 비문에 새겨져 넣었습니다. 그는 일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일본은 세계를 위해서 있는 것이지 일본 제국주의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동양을 침략하는 민족주의는 망한다"라고 외쳤습니다.

수많은 한국의 애국자들이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그들은 민족을 사랑하면서도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불교나 천도교에서는 그만한 애국자가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민족주의자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낳은 애국자는 민족을 사랑하면서도 세계를 사랑하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애국자였습니다. 그러기에 진정한 애국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 이것이 애국의 출발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사랑하고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을 꿈꾸는 제자들에게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애국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먼저 성령의 사람이 되라 먼저 하나님의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성령이 임하면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성령이 임하면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자기 조국을 사랑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자기를 버리고 이웃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진정한 애국심이 출발하는 것이며 민족을 살리는 위대한 정신이 창출되게 됩니다. 하나님 사랑 나라 사랑은 일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나라를 사랑해야 됩니다.

이승훈 선생님께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도산 안창호선생이 미국에서 돌아와 평양에서 민족의 자주독립을 외칠 때 14살이나 위에 있었습니다. 그는 도산 안창호 선생보다 14살이나 위에 있었지만 강연을 마치고 나오는 도산 안창호 선생에게 "선생님은 위대하시옵니다. 내가 선생님을 따를 것이옵니다." 하면서 독립운동을 같이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대전에 있는 감옥에 있을 때 일본 검사가 독립운동 동조자들을 찾아내려고 강하게 문초했습니다. "독립운동을 누가 시켰나" 그때 이승훈 선생은 딱 부러지게 대답했습니다. "시킨 사람이 있지" "누구냐?" "하나님이 시켰지" 하나님이 시켜서 하는 독립운동에만 진정한 애국이 있습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성령은 하나님이 주는 능력입니다. 당시에 로마는 막강한 힘을 가진 나라였습니다. 정치적인 힘, 군사적인 힘, 사회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기에 전 구라파를 재패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유행하는 말 가운데 "힘이 정의요, 힘이 평화다."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의 권력으로 평화를 유지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새로운 혁명적 선언을 하십니다. "권력을 가진 자 권력으로 망하고, 무기로 세운 나라 무기로 망하고, 힘으로 유지하는 나라 힘으로 망한다. 칼 든 자 칼로 망한다. 우리의 힘은 군사력이나 정치력이 아니고 하나님의 힘이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권능을 받는데 그 권능으로 나라를 세워야 한다."
이 힘은 국경을 넘어가는 힘이요, 전 세계를 하나의 국가로 만드는 하나님 나라의 힘입니다. 물질이나 권력이 나의 힘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가 나의 힘이 되어야 합니다.

조선총독부가 한국의 유명한 명사들을 초청해서 일본을 시찰할 때 그 자리에 독립운동가 월남 이상재 선생도 참석했습니다. '너희들이 독립운동을 한다만은 일본을 한번 보고 나면 기가 죽을 것이다.' 하면서 '너희는 힘이 없으니 더 이상 독립운동을 하지 말라'는 경고를 하려고 한국의 명사들을 동원해서 대포를 만들고 군함을 만드는 무기창을 구경시켰습니다. 그때 이상재 선생은 무기창을 보고 나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총독님, 성경은 칼 든 자 칼로 망한다고 했습니다." 일본 무기창을 구경하면 기가 죽을 줄 알았던 총독은 '칼 든 자는 칼로 망한다.'는 이 말 한 마디에 간담이 서늘했습니다. '조선 사람 그 가운데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막을 길이 없구나!' 성령의 권능이 무서운 권능인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사회가 어떻게 되든, 나라가 어떻게 되든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힘을 가지고 세상을 이기면 됩니다.

이 민족을 살리는 힘이 무엇입니까? 복음입니다. 민족 역사에서 이 나라의 애국자가 누구였습니까? 이 땅에 태어난 사람만 애국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외국 사람 가운데도 이 민족의 애국자가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이 땅에 복음을 주었던 선교사들입니다. 그들은 이 역사의 최고의 애국자입니다. 아펜셀러, 언더우드 목사는 1884년 미국 태평양을 건너 한국 땅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이 이 땅에 복음을 줌으로 말미암아 미개한 이 나라가 우상에서 자유를 얻었습니다. 미신을 타파했습니다. 우매한 국민들이 깨어났습니다. 그래서 이조말엽 이 민족을 깨운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므로 이 민족을 살려놓았습니다. 대원군의 폐쇄 정책 속에서 나라가 어지러울 때 이 민족을 끝까지 살려놓은 정신이 기독교 정신이며, 왜정 때 독립운동을 일으켜 나라를 살려놓았던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또한 해방 후 전쟁으로 인하여 나라가 폐허가 되어 살 길이 없을 때 교회가 마지막까지 하나님을 의존하고 기도하면서 이 땅을 지켜왔습니다. 그리고 60년대 군사 독재로 인하여 이 나라가 자유를 잃고 민권이 박탈당할 때 끝까지 민주화 운동에 생명을 걸고 자유를 지켰던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기독교야말로 민족을 살려내는 위대한 정신이요, 위대한 진리요, 복음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이 나라를 사랑한다면 복음을 전해야 됩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민족을 살려내는 위대한 애국이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나라는 소망이 없다'라고 말합니다.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은 누가 정치를 잘해서 소망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이 나라가 정치를 잘해서 여기까지 왔습니까 경제를 잘해서 여기까지 왔습니까 교육을 잘 시켜서 여기까지 왔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까지 살아온 것입니다.

똑같은 한반도지만 삼팔선을 사이에 두고 북한 땅은 새들도 굶주려 노래를 부르지 못하고, 산천도 메말라 시들어 버리고, 남한은 기름지고, 나라가 번영하고, 자유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북한은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폐쇄하고, 기독교인들을 탄압하고, 주의 종들을 처단했기 때문이요, 남한은 하나님을 영접하고 복음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빌리그레함 목사는 80년대에 한국에 와서 여의도 광장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카나다에서 숲속의 새 소리에 잠을 깼다. 나는 일본 토쿄에서 이른 아침 자동차 엔진 소리에 잠을 깼다. 그리고 일본의 번영을 보았다. 나는 한국 서울에서 교회당 새벽 종소리에 잠을 깼다. 새벽에 깨어 기도하는 나라 한국은 세계의 희망이다" 새벽을 깨어 기도하는 여러분은 이 민족을 살리고 세계를 살릴 것입니다.

일본 사람들이 70년대에 한국을 돌아보면서 두 가지에 놀랐습니다. 하나는 대학이 많은 것을 보고 놀랐고, 또 하나는 교회가 많은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이 나라가 무질서한 것 같으나 십자가의 불빛은 민족의 질서를 잡아주는 희망의 빛입니다.십자가 든든히 붙들고 끝까지 나아가는 자의 가슴속에 타오르는 애국이 민족을 살려내고 있습니다.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증인이 뭡니까? 목숨 걸고 예수로 사는 순교자입니다. 한국 역사는 순교자와 순국자가 일치했습니다. 찬송하며 애국가를 불렀고 하나님과 민족을 일치시키면서 살아갔습니다.
우리가 이 민족을 사랑하고 '나는 예수로 인해서 산다.'는 정신 위에 자기를 세우면 가정에 들어가든지, 사회에 들어가든지, 어느 곳에 들어가든지 민족 양심을 지키면서 애국자가 될 수 있습니다.

수유리에 가면 이준 열사의 묘소에 이런 글이 씌여 있습니다. "국토가 넓어 큰 나라가 아니고 인구가 많아서 대국이 아니다. 세계 양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나라가 대국이니라." 그리스도의 증인 된 심정으로 살아가는 양심적인 사람, 예수를 위해서 끝까지 목숨을 걸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애국자요, 세계를 살리는 하나님 나라의 애국자가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 유대, 사마리아,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된다" 증인은 예수의 증인,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 나라의 증인입니다.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애국자로 살다가 천국에 들어갈 때도 예수님께서 '아 애국자가 들어오는구나!' 이렇게 맞이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이중표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