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 13:7·17

교회는 스승을 존중해야 하고 좋은 스승을 두어야 합니다. 스승이란 말을 쓸 때에는 꼭 가르치는 교사만 말하기보다는 자기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사람들은 모두가 스승인줄 믿습니다. 본문 7·13절의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오늘이 있기까지 좋은 스승이 있음을 기억하고 또 우리 스스로 신앙적으로 좋은 스승이 되어야할 줄 믿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제일 좋은 스승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보통사람과 견준다는 것 자체가 잘못이지만 예수님은 보통사람이나 학자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능력있는 선생님이었습니다(마 7:29). 사실 세상의 학문이 줄 수 없고 덕망이 줄 수 없는 일을 예수님은 우리에게 주셨고(마11:29)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요 13:15). 세상에 어떤 스승도 할 수 없는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심으로써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고 천국에 들어가도록 해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좋은 스승이십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우리 삶의 방향을 바꾸어서 새로운 삶을 살게 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정말 좋은 스승을 만났습니다. 모두 예수님의 좋은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부모님 특히 어머님이 좋은 스승입니다. 예수님 다음으로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친 사람은 우리의 부모님입니다. 분명히 훌륭한 사람 뒤에는 반드시 훌륭한 어머니가 있습니다. 찬송 234장 ‘나의 사랑하는 책’ 작사자는 어머님이 훌륭한 스승이었다고 믿습니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이 찬송을 부를 때마다 가슴이 찔리지 않습니까? 무릎 위에 자녀를 앉히고 성경을 가르쳐줌으로써 신앙을 물려준 어머니는 분명 좋은 스승입니다.
어느 교사가 시골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징검다리를 건너다 잘못 놓인 돌을 디뎌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옷을 갈아 입기 위해 집으로 급히 달려 왔습니다. “물에 빠졌구나. 그래 그 돌은 바로 놓고 왔느냐?” 어머니의 물음에 그는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아뇨.”“이녀석,그래서 무슨 선생이냐. 빨리 그 돌부터 바로 놓고 와서 옷을 갈아 입어라.” 그는 그날 이후 ‘돌을 바로 놓고 왔느냐’는 어머니의 말씀을 늘 새기며 교육에 임했다고 합니다. 인성과 신앙교육은 어머니가 맡으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소명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좋은 교회 지도자가 좋은 스승입니다. 오늘 본문 7절의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은 과거의 지도자들을 말합니다. 아마 이들은 순교하며 지금은 생존치 않지만 그들이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죽었는지를 마음에 새겨 기억하고 본받아라는 것입니다. 17절의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은 현재의 지도자들을 의미합니다. 이분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분들은 오늘의 목회자들을 말합니다.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축복이 더하고 은혜로운 생활을 하려면 좋은 스승을 두어야 합니다. 성도들은 목회자를 잘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영혼이 건강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의 신앙이 올바르게 성숙해집니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스승은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의 어머니이십니다. 그리고 좋은 교회의 지도자이십니다. 괴로움으로 하지 않고 기쁨으로 할 수 있도록 순종하고 따라야 합니다(갈 6:6). 그렇지 않고 날마다 탄식하도록 하신다면 우리에게는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좋은 스승의 기억을 되살려서 그들의 신앙과 삶의 행보를 따라가며 닮아가야 하며 우리도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스승으로, 잊혀지지 않는 스승으로 남으시기를 바랍니다.
(창녕제일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