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27:9-25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행선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저희를 권하여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행선이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가 있으리라 하되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그 항구가 과동하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과동하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편은 동북을, 한편은 동남을 향하였더라 남풍이 순하게 불매 저희가 득의한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가까이 하고 행선하더니 얼마 못되어 섬 가운데로서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대작하니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 가다가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저희 손으로 내어 버리니라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라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면 좋을뻔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 뿐이리라 나의 속한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행 27:9-25

인류의 조상인 아담의 가정은 에덴에서 추방되어 육체적인 고통과 의식주를 염려하고 죄악된 세상에 버려져 불안과 공포를 겪어야 하는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인간은 범죄 이후 악랄한 마귀의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마귀는 인간을 손바닥에 올려 놓고 제멋대로 가지고 놀았습니다. 마귀에게 놀아나던 사울이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되어서 위대한 하나님의 사역자 바울이 되었습니다. 그가 마귀에게 붙잡혀 있을 때는 스데반을 돌로 치고 사람을 죽이는 것을 예사로 알았는데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변화되고 난 후에는 사회를 정화시키고 가정을 바로잡고 개인에게 구원의 확신을 주었습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죄수 아닌 죄수가 되어 알렉산드리아의 배를 타고 이달리야로 갑니다. 바울은 채찍을 맞고 구금된 채로 로마 황제의 재판을 받으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는 같이 배를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레데를 떠나면 큰 풍랑을 만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항해사도 아니고 기상대원도 아닌, 더군다나 죄수의 말을 믿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 배는 바울의 말을 무시하고 그레데를 떠나고 말았습니다. 결국 바울 일행이 탄 배는 파선되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의 교훈을 발견하게 됩니다.

1. 인간은 풍랑 속에 살고 있습니다.

창세기 6, 7장에 나타난 노아의 배는 풍랑 없이 382일을 편안히 항해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다가 풍랑을 만났습니다. 신약에도 마태복음 4:22에 예수님을 모시지 않고 밤에 바다로 나갔다가 풍랑을 만난 사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4:35 이하에는 예수님을 모시고 가던 배도 풍랑을 만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바다와 풍랑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세상은 마치 바다와 같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잔잔하다가도 갑자기 풍랑이 밀어닥칠 때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언제 어느 때 어떤 풍랑이 밀려올지 아무도 장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건강하게 잘 산다고 해서 병이 든 사람을 멸시할 수 없습니다. 사업이 망했다고 비웃지도 말아야 합니다. 언제 어느 때 나에게 그 풍랑이 밀려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현실이란 풍랑을 피할 수 없습니다.

2. 앞일을 모르고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13절을 보면 바울의 말을 무시하고 남풍이 순하게 부니까 득의한 줄 알고 그들은 바울은 비웃었을 것입니다. 이 땅에는 바람이 쉬지 않고 붑니다. 전쟁도 쉬지 않습니다.

이 달에는 남북을 갈라 놓은 6·25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에 6·25를 체험한 사람이 30%밖에 안 된다는 통계를 보았습니다. 앞으로 10년이 지나면 20%, 더 지나며 5%밖에 남지 않아서 6·25가 무엇인지 모르는 세대가 올 것입니다. 우리 나라는 6·25 전에도 계속해서 정치 싸움, 경제적인 어려움, 또 대남 간첩단들의 침입 등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을 정도로 사건의 연속이었습니다. 지금도 일선에서 공산당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불철주야 지키고 있는 군인들을 볼 때 우리 믿는 자들은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안방에 앉아 자기만 생각하면 편안하고 잔잔한 것 같으나, 현실의 어지러운 바람은 계속 불어오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풍랑이 언제 닥칠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이때에 우리는 성서의 소리, 하나님의 소리, 선지자의 소리를 들어야 될 줄 믿습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소리를 인간에게 직접 들려주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신약 시대에는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소리를 들려주십니다. 이 말씀이 하늘의 소리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세에는 시대적인 징조를 통하여 말씀을 주시기도 합니다.

이 아침에도 풍랑을 만난 현실을 향하여 부르짖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전파되고 있습니다. 복음을 영접하는 귀한 기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인간은 위기를 만나면 동일합니다.

어떠한 위기를 만나게 되면 사람들의 행동은 다 같아집니다. 1·4 후퇴 때 보니까 잘 사는 사람이나 못 사는 사람이나, 도시인이나 농촌 사람이나, 지식인이나 무식한 사람이나, 권력층이나 서민들이나, 밀려가는 것이 똑같았습니다. 군인도 대대장이나 일등병이나 계급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배를 타고 가던 이들 역시 풍랑을 만나 선장이나 선원이나 할 것 없이 모두 멀미를 하였습니다. 배 속에 잇는 자들은 똑같은 환경 속에서 아우성이었습니다. 지금 옷차림을 보거나 사는 주택을 보거나 이력서를 보면 차이가 많이 나지만 , 이 격차는 오늘일는지 내일일는지 어느 날 갑자기 없어질 때가 불원에 우리 앞에 닥칠 것입니다. 에스겔서 7:5에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재앙이로다, 비상한 재앙이로다 볼찌어다 임박하도다”라고 했고, 12절 역시 “때가 이르렀고 날이 가까왔으니 사는 자도 기뻐하지 말고 파는 자도 근심하지 말 것은 진노가 그 모든 무리에게 임함이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배가 탔습니다. 바울이 탄 배는 거센 풍랑을 만났습니다. 바울은 똑같이 14일 동안 밥을 먹지 않고, 똑같이 해와 달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죄수였기 때문에 자유가 없어서 누구보다도 환경이 더 나빴습니다. 사람들은 우왕좌왕 염려했으나 이상하게도 바울은 동요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구원의 여망이 없어서 다 죽게 된 그들을 위로한 것을 믿기 바랍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 점을 발견해야 합니다. 앞으로 우리는 엄청난 어려움에 부닥칠지도 모릅니다. 같은 어려움을 당할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한 자는 승리의 시대가 올 줄 믿습니다. 저는 6·25를 체험했습니다. 적들이 퍼붓는 포탄이 비오듯 쏟아지고 아군들이 여기저기서 죽어갔습니다. 살아 있는 아군들은 미친 사람처럼 서로 총을 쏘며 아우성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참혹한 상황중에도 언제나 주님을 사모하던 저였기에 그 순간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께 내 영혼을 받아 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를 하고 나니 제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바울도 똑같은 배를 탔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사도행전 27:20에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라”이들은 다 구원의 소망이 없어졌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은 구원의 여망이 없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은 구원의 여망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계 정세를 보아도, 우리 나라 경제 형편을 보아도 국제적으로 여망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경제 침체에 빠졌으므로 전 세계가 풍랑 속에 멀미가 난 상태입니다.

기름값 인하로 우리 경제가 회복되는 것 같지만, 불황은 더 심각해져 갑니다. 요즈음 대학생들의 데모로 인해 국가도, 정치가도, 학자도 멀미가 나고 있습니다. 교수와 학부모들까지 멀미를 합니다. 구원의 여망이 없습니다. 지금은 사회나 가정이나 개인이나 다 멀미가 났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 심겨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진절머리나는 환경이 변화될 수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여러분은 어떤 일로 멀미를 앓고 있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화평이 주어질 것입니다. 이러한 멀미가 난 환경 속에서도 바울은 21절에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면 좋을뻔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22절에서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구원의 여망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어려움 속에서도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해 줄 수 있는 위대한 지도자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앞에 어떠한 풍랑이 닥칠지 모릅니다. 그때에 우리는 바울과 같이 여망이 없이 쓰러져 있는 자들 가운데 서서 격려하고 위로하는 자들이 되어야 될 줄 믿습니다. 그들이 배속에서 14일 동안 먹지 못하고 풍랑까지 만난 것을 볼 때에 살아난 것이 기적입니다. 저는 이들이 배 속에서 살 수 있었던 것은 바울 때문이라고 믿어집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가라지를 뽑아서 불태우고 싶어도 택한 자들 때문에 아직 안 뽑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6·25이후에 현역군 60만 명과 예비군 민방위대가 총과 칼로 지켜서 이 나라가 지켜진 것도 있겠지만, 이 나라의 구국을 위해 밤까지 새워가며 하나님 앞에 눈물 흘리며 기도한 간절한 기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믿는 자들의 기도가 아니었다면 우리 나라도 벌써 월남같이 공산화되어 아시안 게임이나 올림픽 같은 행사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이 나라를 보호하신 줄 믿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보호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왜 배를 흔들어 놓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로마인들에게 바울은 죄수가 아니며, 하나님의 살아 계신 역사를 보여주시려고 흔들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죄수가 아니라 위대한 지도자요 권고자요 위로자가 된 것을 믿기 바랍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믿는 자였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 자였으며,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바라보고 있는 오늘의 교회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이 아침에 여러분은 교회를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교회에 죄인들이 모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죄인이 모이는 까닭은 죄사함을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이 살아 계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지성인들과 부유한 물질을 자랑하고 있는 현대인들이 교회를 어떻게 비판한다 해도 교회를 통하여 이 나라 이 민족이 보호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배 안에는 세 분류의 사람이 타고 있었습니다.

첫째, 과거를 생각하고 현실을 비관하는 과거형이 있습니다. 그들은 죄수들입니다.

둘째, 과거는 모르고 현재만 알고 현재에 도취한 현재인이 있습니다. 그들은 백부장과 선장입니다.

셋째, 현재도 알고 과거도 알고 미래도 아는 미래인(바울)이 같이 타고 있었던 것입니다.

현재인이나 과거인은 풍랑을 만나 구원의 여망이 없었으나 미래에 소망을 가진 바울만은 하늘의 소망을 갖고 오히려 그들을 안심시켰던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라의 빚인 줄 모르고, 풍요롭게 경제적으로 자유를 누리며 잘 사는 것 같지만 머지 않아 어려운 풍랑을 만날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때에  여러분은 풍랑 속에서도 바울과 같이 위로하는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예수를 믿어야 합니까? 개인이나 사회에서, 또는 가정에서 풍랑이 일 때 그 풍랑을 잔잔케 할 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는 계속해서 환난이 닥쳐오고 있습니다. 가난과 질병, 사업의 실패, 불안과 공포, 정치적 갈등 등 수많은 풍랑들이 가정마다 개인마다 몰아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는 그 소용돌이 속에서도 주위를 안심시키고 지금도 하나님이 살아 계셔서 역사하시는 증거를 보여주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세파에 시달리다 지친 우리 모두를 향하신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이 넘치는 은혜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김충기목사 설교 중에서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8: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