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아! 두려워말라! (사도행전 27:21-44 )

사람은 누구든지 한 두번쯤은 실수를 하게 되고, 또 사람은 누구든지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절망할 때가 있습니다. 왜 두려운가? 일반적으로 죄를 지은 사람은 마음이 두려움에 가득차
있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도적이 제발 저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죄를 지으면
두렵고 걱정이 생기고 불안이 생기는 것입니다. 선을 행할 때에도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
다. 두려움이란 어떤 기대나 소망이 사라진 상태요, 더 이상 노력해 볼 수 없는 절망적인 상태
에 빠졌을 때 우리는 갑자기 두려워지고 좌절감이 생기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탄 배에는 276명이 타고 있었는데 근 14일동안을 밤에는 별을 볼수가 없고, 낮
에는 햇빛을 볼 수 없는 칠흑같이 캄캄한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유라굴로라는 대광풍이 일
어나서 언제 이 광풍이 끝날지 몰라 물결이 계속해서 파도가 넘실대는 상황에서 이제는 두려
움에 사로 잡히게 된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며칠동안 굶주렸습니다.
이때였습니다. 한 사람이 그 절망 중에서 일어나서 소리치기 시작합니다.

21절입니다.
여러분, 누가 지도자입니까? 모든 사람이 절망에서 갈길을 잃어버렸을 때 홀연히 일어나
난관을 헤치고 길을 보여주며 인도해주는 사람을 가리켜 지도자라고 말합니다. 사도바울은 모
든 사람이 좌절했을 때 그는 한가운데서 서서 담대하게 그들의 갈길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
다. 그사람이 죄인인가 죄인이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실제적으로 누가 이 어렵고 절망
적인 상황에서 그들을 건져내서 소망을 주고 갈길을 인도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그 절망 속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는 먼저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경솔히 항해
를 하게 된 결과 재산을 잃어버리고, 배도 손상을 입게 된 것에 대해서 그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말하려고 일어선 것이 아닙니다. 그가 일어난 이유는 불안과 초조와 절망
속에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을 향해 '여러분들이여, 안심하십시오. 당신들의 머리카락 하나도 건
들어지지 않습니다. 당신들은 죽지 않습니다. 한 사람도.' 안십하십시오. 이 말을 하기 위하여
사도바울이 일어납니다.

22절,
물건을 잃어버렸다든지, 배가 깨졌다든지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집이 불났
다든지, 사업이 파업했다든지, 물론 그것이 아깝지요. 그러나 사업하다가 부도날 수도 있습니
다. 가장 증요한 것은 사람의 생명입니다. 오늘 네 생명을 뺏어가면 네것은 다 누구의 것이 되
겠느냐? 이렇게 말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지금 배는 부서진다. 모든 재산도 없어진
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라, 안심하라, 너희 생명은 하나님이 지켜주신다. 이렇게 말합니다. 어
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별빛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 햇빛이 보이는 것도 아
닙니다. 수위가 낮아진것도 아닙니다. 고난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절망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위기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어떻게 바울이 이런 상황에서 일어나서 '여러분 안심하
십시오. 절대로 죽지 않습니다.' 이렇게 담대하게 말할 수가 있을까요? 놀라운 일이죠.

23-24절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폭풍 중에, 높은 파도 중에 바울이 이렇게 담대하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어제
밤에 하나님의 천사가 와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아 두려워말라. 염
려하지 말라. 너는 분명히 가이사앞에 서게 될 것이고 여기의 수 많은 사람들은 다 내가 네게
붙여 주었다. 그는 그 말을 들은 겁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사람은, 하나님을 만난 사
람은 칠흑같은 어두움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상황이 변하지 않아도 전혀 그것이 문
제가 되지 않습니다.
주님이 말씀을 통해서 내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보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십자가와 부활하
심을 증거합니다. '여러분, 세상이 아무리 악해져 가도 주 예수 그리스도만 믿으면 구원을 받
게 됩니다.' 라고 주님이 말씀을 통해서 내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담대하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젯밤에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셔서 내게 말씀하셨다. 이것보다 더 확실한 근거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이 메시지를 통해서 굉장히 중요한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비록 하나님
의 사람이었지만 계속되는 폭풍 속에서 바울도 우리와 똑같이 인간적으로 염려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만약에 바울이 염려하고 있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이 말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염려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햇빛이 계속 안보입니다. 별빛이 계속 안보입니
다. 이 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 떄 신앙인에게 의심이 오기 시작합니다. 흔들리
기 시작하는 겁니다. 바울도 두려움에 사로 잡혀 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도 이런
경험을 많이 합니다. 분명히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고 기적도 보았지만 어떤 한 상황에서 실제
로 어려운 일을 계속 겪고 있습니다. 문제가 풀리지를 않습니다. 한달이 가도 안풀리고 두달이
가도 안풀립니다. 이 때 누구든지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굳세게 잡았던 믿음이 흔들
립니다. 이것이 우리들입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하루 아침에 믿음의 사람이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기에는 무려 25년의 세월을 투자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엉망
이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위대한 것입니다. 아브라
함은 실수를 많이 했습니다. 부인을 뺏길뻔 했습니다. 첩에서 애기를 낳습니다. 그것이 아브라
함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25년의 시간을 투자하면서 그
를 고쳐간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으로 만든 것입니다.
모세는 홍해가 갈라질 때 현장에 있던 사람입니다. 물이 없을 때 바위에서 물을 내시는 하
나님의 기적을 본 사람입니다. 그는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40년동
안 반복되는 그 험한 여행에서 모세가 흔들린 겁니다. 모세는 젖과 꿀리 흐르는 가나안 땅에
못들어 갔습니다. 그것이 모세입니다. 모세도 인간적으로 고민했던 흐,ㄴ적을 많이 찾을 수 있
습니다. 여호수아도 그랬습니다. 예레미야도 더 이상 예언을 못하겠다고, 다시는 하나님의 일
을 하지 않는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붙들어 쓰십니다. 그런 사
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흔들리고 불안하다가도 어느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
다. 그 때 이사람이 변하는 것입니다. 그때 이사람이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이제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고난 속에서 이제는 고난이 두렵지 않
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면 현재 받고 있는 고난은 장차 올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
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어떤 때 하나님은 숨어 계십니다. 그러나 영원히 숨어계시지 않습니
다. 어떤 때 하나님은 침묵해 계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히 침묵하지 않습니
다. 하나님은 자신이 나타날 시간을 계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침묵하 않습니다. 이제 곧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영윈히 기다리지 않습니
다. 이제 곧 나타나십니다.

두 번째입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즉시 말하지 않고 하루쯤 뜸을 들였다
는 사실입니다. 그런 절말적인 시간이라면 우리는 당장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말할 것입
니다. 그런데 바울은 어젯밤에 하나님이 사자가 내게 말했다고 하는 것을 보면 24시간쯤 기다
린 겁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바로 이런 겁니다. 폭풍우가 계속되는 세상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사도 바울은 '안심하십시오. 여러분은 죽지 않습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의 여유를 봅니다. 폭풍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품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세 번째입니다. 바울이 믿는 하나님과 우리들이 믿는 하나님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23절의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은 '나의 속한 하나님, 내가 섬기는 하나님이' 이렇게 말합니
다. 바울이 섬기는 하나님은 멀리 있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안믿는 사람이 어디있습
니까? 다 믿는다고 하죠. 그러나 그 하나님이 어디 계시느냐 하는 겁니다. 저기 계시냐, 내 마
음에 계시냐. 나의 하나님이냐, 나의 아버지냐 하는 문제입니다. 돈이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내 아버지냐 하는 겁니다. 내 아버지가 아니면 나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내가 그에게 속했고 그분이 내안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존귀와 영광과 찬양을 돌립니다.
'내 안에 계신 그 하나님. 내가 섬기는 하나님.'이라고 바울은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우리는 23절과 24절에서 왜 하나님께서 폭풍속에서 이런 말씀을 하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24절을 다시 읽읍시다.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한다. 하나님의 의도는 분명히 나타납니다. 왜 내가 너를 살려주는
가? 왜 276명의 사람이 너 때문에 생명을 얻게 되는가?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하기 때문이다.
여러분, 사명있는 사람은 죽지 않습니다. 병들어도 안죽고 망해도 안죽습니다. 내생애를 통
하여 하나님 앞에 이루어야 할 그 사명이 있는 사람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유라굴로
광풍이 그를 죽일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무슨 꿈이 있습니까? 왜 세상에 태어났습니까? 세상에 태어난 사람마다 다 사명
이 있는 것입니다. 그냥 먹고 살다가는 것만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람이 아닙니다. 그것보다 더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하여 세상에 태어난 사람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이런 위대한 사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바울은 로
마를 정복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꿈을 가진 사람, 그는 영원히 외롭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절대 죽을 수가 없
습니다. 로마를 보기 전까지는.
또 한 가지 바울 한 사람 때문에 276명의 사람들이 산 것입니다.
예레미야 5장을 보면 의인 한 사람만 있으면 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말씀하십
니다. 한사람의 의인의 무게는 예루살렘 전체의 죄악의 무게와 같습니다. 의인 한 사람이 이렇
게 귀하고 가치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잘살게 된 것은 하나님이 봐주셔서 그렇습
니다. 의인 몇 사람 때문에 이렇게 살게 된 것입니다. 무룷꿇고 기도하는 사람이, 순교를 한
사람들의 피가 있기 때문에 이만큼 사는 겁니다. 한 사람 때문에 276명이 살게 됩니다. 여러분
때문에 여러분의 가정이 구원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한국교회 때문에 북한이 심판을 받지 않
고 구원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기 때문에 너는 죽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바울 너 한 사람 때문
에 276명을 살려 주겠다는 겁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입니다.

25-26절,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하나님이 반드시 하시리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실제로
사도 바울이 이렇게 선언한 후부터 광풍이 사라지고 변화가 일기 시작합니다.

27-28절,
육지가 가까워 온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빠져나오고 있는 것
입니다. 여러분 고난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바람에 밀려 가는 것 같아도
그 바람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29-32절,
여러분, 왜 상황이 변합니까? 바울때문입니다. 바울에게 말씀하신 하나님때문입니다. 여러
분, 거룩한 성도의 기도 때문에 다른 사람이 삽니다. 그런데 그들은 왜 잘살게 되는 지를 모릅
니다. 이 사공들은 상황이 좋아지니까 잔꾀를 부리기 시작합니다. '드디어 지금이야 말로 탈출
할 시간이다' 변화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고물, ㅁ이물이라는 것은 배의 앞뒤를 말합니
다. 거루는 구명 배입니다. 뒤에 닻을 놓는 척 하면서 구명보트를 타고 몰래 빠져 나가려고 합
니다. 바울이 그것을 다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군인에게 말합니다. 저사람들 가면 다 죽소.
그래서 그 거루를 짤라 버립니다. 다시 배안에 모든 사람이 있게 됩니다.

33-38절,
오천명을 먹이던 모습하고 비슷합니다. 이제 마지막 시간이 왔습니다. 그들이 비축해 두었
던 마지막 음식을 먹습니다. 그런데 재미 있는 것은 35절을 보면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먹으매" 무슨 생각이 듭니까? 여러분, 유라굴로 광풍이 아니면
감사하면서 먹겠어요? 잘난줄 알고 먹겠지요. 그러나 지금은 눈물의 음식을 먹고 있습니다.
사람은 눈물의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열심히 직장에서 일하면서, 땀흘리면서 먹는 그 음
식이 귀한 것입니다. 그 때에 감사가 있습니다.
여러분 이 사람들은 보름 동안에 그 지치고 피곤한 그 암흑 속에서 지내다가 밥을 먹게 되
었을 때 어찌 그들에게 감사가 없겠습니까?

39-41절,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배는 배는 인간의 노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깨진다는 사실입니다.
열심히 노력을 합니다. 안깨지게 해볼려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 배는 깨져 버립니다. 짐도 배
도 다 깨져 버립니다. 여러분 소유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지 못합니다. 의지할 것이 있
으면 그것이 사람이건, 돈이건, 권력이건, 인간이 의지할 것이 있으면 하나님을 의지할려고 하
지 않고 그것을 의지할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내
게 많은 소유가 있다 할지라도 그 소유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결국 그 배는 깨지게 됩니다. 배가 깨지게 될 때 사람들은 그 배에서 나와야 합니다. 물 속
으로 뛰어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죄수들이 탈추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기 때문입니다. 죄수가 탈출하면 간수가 대신 죽어야 합니다. 그래서 로마의 군
인들은 죄수를 죽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죄수를 죽이지 않으면 자기가 죽기 때문
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을 죽이고자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백부장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바울을 죽이지 못하게 합니다.
42-44절,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원을 얻으니라.
이것이 우리 인생의 결론입니다. 인생의 결론은 다 좋게 될 것입니다. 지금 고난이 있지만,
역경이 있지만 마침내 사람들을 다 구원한 것처럼, 짐은 다 없어 졌지만 구원을 받게 될 것입
니다. 하나님은 백부장을 이용하십니다. 유라굴로의 광풍도 이용하십니다. 그래서 당신의 영광
스러운 모습으로 우리를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마침내 그들은 다 구원을 받았더라. 바울 한
사람 때문에 276명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때문에 몇 사람이 구원을 받습니까?

[하나님 아버지 유라굴로의 광풍이 있지만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렸
을 지라도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만나게 하옵소
서]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