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증인이 되리라 (행 1:6-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사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는 본문 8절 말씀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
신 사명이자 지상 명령입니다 어쩌면 사도행전  전체에 걸쳐 가장 핵심되는 요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귀하고도 중차대한 부분입니다

형식상으로 볼 때 이 말씀은 주님께서 이 땅위에 계실 때에 주신 말씀으로 마지막 당
부 말씀입니다 곧 유언의 말씀 마지막으로 남긴  말씀이 됩니다 일반적으로 유언이라
함은 마지막 숨을 거두기 직전에 하는 말씀이지요 LAST WORD입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
면 예수님의 이 유언은 보편적인 사람들의 유언과  조금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예수님
유언은 숨을  거두기 직전에 하신 말씀이 아니라 승천하기 직전에  하신 말씀이기 때
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일지기 십자가를 지시기 전의 성만찬의 밤에 유언같은 말씀을
하시고  내용상으로는 어느 말씀이건 더없이 귀하고 중요한 말씀입니다 마는 굳이 형
식상으로 구분해  보고자 한다면 하늘로 올라가시기 직전에 감람원에서 남기신바 본문
8절 이 말씀이 진짜 유언이  된다고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무튼 우리는 비록 모
든 말을 다 잃어버린다 하더라도 주님의  이 마지막 말씀만은 반드시 기억하고 명심하
여야 할 것입니다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부모의 유언을 망각하는 자는 그
부모의 자녀라 할 수 없듯이 주님의 유언을 명심하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 아버지의 자
녀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히고 제자들이 끈질기게  질문을 하는데서
오늘 본문 말씀이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저희
들의 정치적인 관념에서 비롯된 질문입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은 예수님께서 세상
에 오시기 이전부터 저들이 간절하게 기다려왔든 소망이었든 것 같습니다  흔히 말하
는 메시야 대망사상은 이스라엘 혼이라 할만큼 끈질 것이었습니다 정치고 경제고 문화
고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엉망이어서 무엇하나 기대할 것이 없든 저들에게 남은 유일
한 소망이 메시야의 오심이었습니다 메시야만 오시면 모든 문제 문제가 다 해결될 것
이라고 그 때만 일월 구심으로 앙망하고 있었든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이 문제를 정치적인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라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나를 찾기를 소망했습니다 가난했기 때문에 부해지기를 소망했습니다 눌렸기
때문에 자유해 지기를 소망했습니다 흩어져 살았기  때문에 모여 살기를 소망했습니다  
하도 억울하게 살다보니 다윗의 권세를 회복하여 우리도 한번 빛을  보고 살았으면 했
습니다 간절하게 소망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욕망이라 하겠습
니다  그렇게 살아오든 저들인지라 예수님 공생애 3년 동안 기회있을 때마다 여쭈어보
지 않았습니까 이 때입니까 저 때입니까 언제가야 그런 일이 있겠습니까 이제나 저제
나 하고 메시야 나라가 하루속히 이루어지기를 애타게 고대하는 것이었습니다 엄연히
눈앞에 메시야 예수님을 뵈오면서도  저들은 정치적인 엄청난 변혁이 언제가야 있을지
세상이 뒤집히는 대사건이  언제가야 일어날지 몰라 그것만을  생각하고 조바심이 났
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다음에도  저들은 이 문제를 노골적
으로 말하게 됩니다 누가복음 24장 21절을 보십시요 우리는 이 사람(예수)이 이스라엘
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 그런데 실없게도 십자가에 죽으시고 말았다며 실망하는
두 제자 엠마오로 가는 그 제자들의 부활하신 예수님과 번연히 같이 걸어가면서도 예
수님을 알아뵙지 못하는 허약한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이 부활을 하셨습니다 잔뜩 기대하고 잇든 터에 덜컥 십자가를 지
심으로 크게 낙담했었든 저들의 눈앞에 예수님께서 버젓이  큰 권능으로 함께 다시 나
타나신 것입니다 저들은 다시금 이 때로다 싶었습니다 이제야 말로 기다리든 메시야
나라가 이루어지려나 싶고 마침 결정적인 때가 왔나 싶었습니다

감람원에서 모였을 때에 저 만치  예루살렘이 내다 보였습니다 주님께서 저들에게 예
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
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고 말씀하시는데
제자들이 여쯤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조바심이  나서
간절하게 여쭈어보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서 우리는 세가지의 관심사를 읽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는 타이밍에 관한 물음입니다 이 때입니까 즉각적입니까 바로 지금입니
까 하는 물음이요  또 하나는 이들의 선민 사상의 발로입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하고
말합니다 메시야의 나라라  하면 이스라엘 나라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
까 이런 마음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하나는 회복입니다 회복하심이 이 때니
이까 합니다 다윗의 왕국 솔로몬의 왕국 그 영광을 회복하는 결정적인 때가 지금입니
까 하는 질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저들은 정치적인 변혁 경제 사회적인 큰 변화를 눈에 보이는 그런 외적인
변화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천지개벽과도 같은 변화를 통해서 오는 민족의 영광을 그
회복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뜻밖이었습니다  저들의 메시야 대
망을 바라고 대고 꾸짓거나 비판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정치적으로 이스라엘  나라
가 회복되는 것과 같은 일이 없을 것이라고 짤라 말씀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쓸데없는
일을 기다리지 말라 메시야 나라가 어디있느냐라고 말문을 막으시는 것은 아닙니다 다
만  때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현상에 대하여 말씀하셨을 뿐입니다 때와 기한은 아버지
께서 자기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가 아니요 메시야 대망 사상 그 자체를 비판하
거나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어느 때에고 메시야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은 기정 사실이니까요 메시야 나라가 이루
어지고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고 교회가 건설되고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은 그 날은 당연히 있기  때문입니다 그 문제에 관하여 비록 그들에게  
다소간에 오해가 있더라도 그것을 비난하거나 꾸짓어시지 않는  것입니다 다만 예수님
께서 때와  기한을 말씀하실 뿐입니다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오늘인지 내일인지 아
니면 십년후인지 이 문제에 관해서 만은 너희의 알바가 아니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
다 여기에 귀중한 의미 깊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너희의 알바가 아니다 생각해
보십시다  조금 다르게 생각하면 이렇게도 됩니다 너희  수준이 아직은 그것을 알 때
가 못된다 그런 것은 너희가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요사이도 보면 결정적 종말론이니 시한부  종말론이니 하다가 실수하는 사람들이  많
습니다 이천년 역사를 통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실수를 했습니까 어느날  오신다
어느날 오신다 하다가 심지어 흰옷을 입고  산에까지 올라갔다가 공치고 내려온  사람
들이 많습니다 어느날이다 했다가 틀리니까 일년후에 했다가 또 안되니까 망신당한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저도 하나 격은 일이 있는데 30여년전 인천에서 목회할 때입니
다 12월 26일날에 예수님 오신다고 하는 분이 한분 있었습니다 자기가 계시를 받았다
는 것입니다 그렇다면서 김치해 두었든 것을 남들에게 다 퍼주고 입든 것도 남 주고
그  날만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할 수  없이 내기를 하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만
일 그날에 오시지 않으시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나는 분명히 안오실줄 압니다 그랬더
니 안오시면 제가 일생동안  아무 말도 없이 교회에 충성하겠습니다 라고  말도 했습
니다 이윽고 26일날이 되었습니다 그 분이 부끄러웠든지 그 다음 날로 이사를 가버렸
습니다

모름지기 겸손하게 생각할 일입니다 때와  기한을 우리가 아는 것이 좋겠습니까 모르
는게 좋겠습니까 더 쉽게 생각하십시다 내가 죽는  날을 내가 알아야 좋겠습니까 모르
는 것이 좋겠습니까 모르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오죽 알아서 하시겠습니까 별
것을  다 알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너희 알바 아니다 하셨으면 예하고 말 것입니다 주
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는데 왜 오늘이다 내일이다 하고 쫄삭 그릴 것입니까 어느 누
가  뭐라고 말해도 믿지 말 것입니다 너희 알바 아니요 주님의 이 말 한마디를 믿고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이 말씀에만 YES I DO 할 것입니다

제가 언젠가 실지로  목도한 일입니다 열 살박이 어린 아이가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
눕니다 엄마 내가 어디서 나왔어 내가 낳았지  어디로 낳았느냐니까 어머니가 설명해
주겠어요 그래도 눈치없는 아이가 자꾸만 물어봅니다 어머니가 어떻게  하나 보자 했
더니 딱 하고 아이를 쥐어박아요 그러면서 하는 소리가 자식아 너도 크면 다 알게되
입니다 자식 교육을 잘못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제가 그런 경우를 당해도 별 재주
가  없어요 여러분 이런 것이 대답할 수 있는 성격의 문제입니까 사람들이 주책없이  
알겠다는 것이 참 많습니다 필요없이 알겠다는  것이 참 많습니다 내 알바가 아닌 것
도 다 알겠다 합니다 몰라야  될 것은 모르는 것이 좋지요 묻지도 말 것입니다 호기심
부터 가지지 말 것입니다

너희의 알바가 아니요 하셨으니 알겠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관심을 가지지 않겠습니
다 하고 믿어둘 것입니다 이렇게 믿는 사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여기에 그리스도가
있다 하면 그리로 가보고 이 사람 이소리 저 사람 저  소리에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할
것이 아닙니다 대체로 꿈과 현실을 혼돈하는 사람이 문제입니다 정신병자가 따로 있나
요 그런 사람이 정신병자입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너희 알바 아니요 그
러니 그런줄 아십시요하나님 권한에 두었다고 말씀하셨으니 하나님께 위탁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면 알려주실 것입니다 몰라야
할 것이니까 모르는 것이 좋으니까 숨겨놓으신 입니다 하나님 권한에 속한 것이지 나
의 문제가 아니라고 믿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믿음과 인내로 소화할 것입니다 하나님
의 지혜에 맡길 것입니다 모르는 게 좋으니까 모르게 하시는가 보다 하고 받아드릴 것
입니다 시한부 종말론 따위에는 호기심조차도 가지지 말 것입니다 언제오실가 하는 문
제에 관심을 둘 것이 아니요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따로 있습니다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공연히 천지 개벽 따위에 마음 쓰지  말고 우주
가 어떻게 돌아가고 세계가 어떻게 망하고에 관심두지 말고 주께서 네게 맡기신 일에
오르지 충실 할 것입니다

예수님 대답은 문법상으로 보면 매레 수동태입니다 단어는 두단어 입니다 능력을 받게
되라 증인이 되리라 입니다 두 말씀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능력을 받게 되리라 그리하
면 증인이 되리라 하심입니다 문제는 세상이 아니고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고 우주적
인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권능를 받고 또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심입
니다 가끔 우리는 성경에 없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증인이 되라 라고 비성서적으
로  받아드립니다 증인이 되라는 말은 성경에 없어요 증인이란 되라고 되는 것이 아닙
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이 부족하기에 우리 보고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성경
을 똑바로 보아야 합니다 증인이 되리라 입니다 마가복음 16장 15절에 너희는 온 천하
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하라 라고  말씀합니다 전파한다는 말과 증인이 된다는 말은
다릅니다 증인이 되리라 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가끔 보면 별 생각없이 그
저 증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렇
게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증인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TO DO  가 아니고 TO BE DONE
입니다 주동자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되게 하시리라 하나님께서 너희로 증인이
되게 하시리라 그래서 증인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으로 증인이 될 것입니
다 이 말씀인 것입니다

문제는 그렇게 되기 위하여 권능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권을이 문제입니다 증인이
되기 위해서 권능을 받아야 합니다 권응을 받고야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헬라어로 뒤
나미스 하는 이 권능를 내가 받고자 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께서 네
게 임하심으로 저절로 받아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권능의 성격을 한번 깊이 생
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세상을 개혁한다거나 혁명한다는 권능이 아닙니다 천
지개벽을 시키는 권능이 아닙니다 외적인 변화를 일어키는 권능리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권능의 내용은 제자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제자들 자신안에서 일어나
는 변화의  권능입니다 비겁한 제자 도망간  제자 형편없는 제자를 변화시켜서 능력의
증인이 되게 하는 권능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권능 최고의 권능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가만히 보십시요 성경이  말하는 권능이 무슨 권능입니까 이것은 원수
를 때려부수는 권능이 아닙니다 세상을 둘러엎는 변화가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권능
은 자기를 이기는 권능 자기를 변화시키는 권능입니다 비검한 사람들이  변해서 용기
있는 사람이 되는 핍박도 죽음도 두려움이 없이 답대히 받아드리는 그리스도의 참 증
인이 되는 권능인 것입니다 너희가 권응을 받고 얼마나 귀중한 말씀입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세상이 잘못되었습니까 여러분은 무엇을 위하여 기도하십니까 중
요한 문제는 나 자신을 이기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나 자신에 대한
문제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돈버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이기지 못합니다
그래서 옛날 어르신들이 산중에 있는  도적은 잡기가 쉬워도 자기 마음속에 있는 도적
은 잡기가 어렵다고 했지요 참 옳으신 말씀입니다

좀더 깊이 생각해보십시다  이 권능은 자기를 이길 뿐더러 하나님의  사람으로 굳게
서게 합니다 이 권능은 핍박 있는 세상을 넉넉히 이기게 할 뿐더러 원수도 용서하게
합니다 악한 세대에 절망도 하지않고 저들을 사랑합니다 사랑해야  복음을 절할 것이
아닙니까 미워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악한 세대이지만 그래도  여기
에 소망을 걸고 조금도 낙심하지 않고 저들을 향하여 복음을 전합니다 이것은 뜨거운  
사랑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이
사랑으로  원수를 사랑합니다 핍박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뜨거운 사랑이 마음속
에서 끓어오르는 것 이것이 권능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권능입니다

우리가 권능을 받아서 권능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좀더 근본적인 좀더 원천적인 것
이 필요합니다 먼저 성령께서  임하심으로 우리가 권능의 사람이 됩니다 오늘  본문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받으면
권능을 받고 권능을 받으면 주인이 됩니다 이것이 순서입니다 문제는  성령입니다 여
러분 성령이란 무엇입니까 성령은 곧 권능입니다 성령은 단순한 깨닭음이 아닙니다 우
리는 성령으로 지식만 얻는 것이 아닙니다 감동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기쁨만 얻는 것
이 아닙니다 성령이 말씀하는 성령은 곧 권능입니다 그렇습니다 뒤나미스는 능력입니
다 POWER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는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복음은
여기에  있습니다 무엇을 좀 배우고 깨닭고 지식을  얻었다고 해서 기뻐하고 감격하고
할렐루야 할 것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을 받았으면 당장 문간에 나서서 원수를 사랑할
수 있고 나를 핍박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네게 더는 원수가 없
고 네게 더는 미워하는 사람이 없고 질투도  없고 실망도 없어야 합니다 이것이 권능
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을 받고 성령을 받았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풀지 못한 문제
가 많고 쉽게 화를 내고 섭섭해 하고 원망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권능이
아닙니다 권능에 가까히 조차도 가지 못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임하심으로 권
능을 받습니다  성령은 곧 권능이요 능력을 주시는 존재입니다 권능으로써의 성령 능
력으로써의 성령 이것을 깊이 깨닭아야 할 것입니다

본문에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권능을 받고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성령을 못받으면 증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권능을  못받으면 증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증인이란 되란다고 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성령을 못받는 분이 무슨 증인이 되겠습
니까 그럴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성령을 받아야 권능을 받고 권능을  받아야 증
인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증인이란 헬라어로 말투리아라 하는데  아주 재미있는
말입니다 말투리아를  영어로 옮겨놓으면 말터가 됩니다 마터는 순교자라는 뜻이 있습
니다 프랑스  파리에 가면 몽마르트라는 잘 알려진 언덕이 있습니다 몽마르트라는 몽
은 산이라는  뜻이고 마르트는 순교자라는 뜻입니다  옛날에 그 자리에 사람들이 순교
를 당했다고 합니다 순교자의 마을이라고 해서 몽마르트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입니다

클레멘트 교부는 순교자를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피흘리기까지 증거하는 사람이 순교
자이다 순교자만이 증인이다 여기서 증인에 대하여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증인이 무엇입니까 증인은 자신의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닙 니다 일반적으로 지식을 공
급하는 사람을 증인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재판정에 증인을 세우고 재판할  때
에 한번 보십시요 증인으로 나온 사람이 내 생각에는요 내가 느끼기에는요 라고 말하
였다가는  대번에 판사가 저리 가라 합니다 증인은 간단합니다 보았습니다 들었습니다
하면 끝나는 것입니다 경험한 바를 그대로 말하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증인이
란 어떤한 진리를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진리의 사실성을 말하는 사람입니다 사실
이냐 아니냐 보았느냐 못보았느냐 경험했느냐 안했느냐 그 진실만을 말하는 것이 증인
입니다 때문에 증인은 반드시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경험이 없는 사람은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 일생동안 책을 읽었다고 해서  증인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간증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증인에게는 내가 위하여 증거하는 분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내가 보았다고는 하지만 끌려가서 증인이 되는 것은  사실 귀찮지 않습니까 그래서 흔
히들 내가 못봤다고 하고 맙니다 그렇습니다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사랑하는 저
분이 억울하게 고생하고 있기 때문에 부끄럽지만 귀찮지만  그것을 떨치고 증인으로
나설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증인은 사실을 사실이라고 말함으로써 오는 불이익을
손해를  핍박을 받을 각오가 되어있어야 합니다 이 굳건한 결단이 있을 때에야 증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요즈음에도 가끔보면 도둑맞은 집 강도당한  집은 많은데 신고는 잘하지 않는 모양입
니다 신고를 왜 안하느냐고 물어보면 신고했다가는 그  다음에 당할 보복이 두렵고 귀
찮아서랍니다 그래서 손해를 보고 맙니다 때문에 고발 정신이 점차 희미해지는 것입니
다 아무리 손해가 나더라도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실을 사실대로 밝혀
야 하겠다는 용기가 있어야 하는데 사람들은 대게가 그렇지 못합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사건의 진실을 진실대로 말함으로써 오는 모든 불이익과 손해를 내가 위하여 증거하는
그분과 함께 할 수 있는 마음이 있을 때에야  증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증인이 되었다고 할 때에도 그렇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운명을 함께 할 마음이
없으면 증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나아가 증인에게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담력이  필요
합니다 목이 떨어져도 할말은 해야 합니다 옳은 것은 옳고 그런 것은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심 내가 본 것은 질리입니다 이것을 증거해야 합니다 바로 이러한 용
기와 담력이 있어서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그 증거하는 방법을 알아보십시다  첫째는 말로 증거합니다 이것은 이렇고 저
것은 저렇다고 말로 증거합니다 둘 째는 몸으로 증거합니다 행동으로 증거합니다 예수
님의 제자가 되어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기에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기에 몸으로 증
거할 수 있습니다 세째는 죽음으로 증거합니다 여러분 증거 가운데 가장  큰 증거가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우리는 부활의 증인입니다 부활의 증인은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증거함으로 오는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예수님의 제자
들은 거의가  순교했습니다 부활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 사실을 증거하기 위햇 저들
은 서슴치 않고 기쁜  마음으로 죽을 수 있었습니다 보십시요 증인은 순교로 연결됩니
다 순교가 아니고서는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이 천국을 부활을 믿는다는 사람이 죽을 때가 되어서는 벌벌 떱
니다 안죽겠다고 살려달라고 바둑  바둑 소리를 질러됩니다 이런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입니까 가끔 임종을 앞둔 분을 병원으로 차자가 만난 본 일이 있습니다 예수를 잘
믿는 사람들은 이미 준비를 다해놓고 기쁜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럴  때면 저
는 내일 아침에 다시 만납시다 죽어서 천당가서 만납시다 라고 인사를  건냅니다 그러
면 그 분은 그럼요 제가  조금 먼저 갈 것이니까 나중에 오세요 하고 되받습니다 이쯤
되어야  예수 믿는 사람이지요 천당이 어디있어요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예수를 믿고 내세를 믿고 부활을 믿는  사람은 평안을 맞을 수 있습니다 순교마쳐도
기뻐게 받아드릴 수 있습니다 그 속에 증거가 있는 것입니다 순교가 아니고서는 증거
가 될 수가 없습니다 결국 순교는 증인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 돌아 맞아 죽
어가면서도 천사의 얼굴을 할 수 있었든 스테반도 칼로 목베임을 당한 야고보도  심자
가에 꺼꾸로 못밖힌 바울도  그 죽음이 순교였기에 증인이 될 수 있었든 것입니다 로
마에 가보면 사도 바울을 목베어 죽일 때에 사용했든 도구를 전시해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보니 옛날 우리나라에서 처럼 앉혀놓고 칼로 친 것이 아니라 커다란 절구통
같이 생긴 나무토막을 가져다  놓고 그 위에 목을 걸치게 해서 도끼질을 했더군요 이
렇게 비참한 죽음이었으나 바울은  이것 조차 기뻐게 받아드렸습니다 부활이 확실하게
때문에 예수님과 함께 부활할 것을 믿었기 때문에 기쁨으로 죽을 수 있었든 것입니다
이런 자가 증인입니다

베드로는 늘 말합니다 사도행전 2장 32절 3장 15절 5장 32절 10장 39절을 보십시요 우
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다 라고 거듭 거듭  말씀합니다 우리가 보았고 우리가 경험했다
고 증거합니다 배드로는 입버릇처럼 말씀합니다 내가 눈으로 보았고 손으로 만졌다고
분명히 예수님과 함께 했다고 말입니다 다 경험한  것이요 우리가 증인이라고 말입니
다  신학적으로 의미를 생각한다면 증인이란 증거함으로 그 사건을 나의 것으로 만드
는 것입니다 엄연한 사실이지만 이것이 다시 사실적인 현실로 재연되기 위해서는 능력
화 되기 위해서는 증인 필요합니다 증거가 되면서 이것이 현실화 하고 능력화 하고 새
명화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증거와 함게 믿어지고 믿어지는 그 순간에 마음속에
서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증거는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성령은 곧 증거의 영입니다 다신 한번  본문 말씀을 보십시요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
인이 되리라 공간적으로 온 세계에 이 복음이 전파될 것이요 시간적으로는 주님께서
재림하는 이 세상 끝날까지 이 복음이 전파 될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임하심으로 우리가 권능을 받고 권능을 받음으로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주님
의 마지막 당부 말씀이요 마지막 약속의 말씀입니다

                       내 증인이 되리라
                                   행 1:6-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
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오늘 주신 본문의 이 8절 말씀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자 마지막 지상 명령입니다. 어쩌면 사도행전 전체에 걸쳐 가장
핵심되는 요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형식상으로 볼 때, 이 말씀은 주님께서 이 땅위에 계실 때에 주신 마지막 당부의 말
씀, 곧 유언의 말씀이자 마지막으로 남긴 말씀이 됩니다. 일반적으로 유언이라 함은
마지막 숨을 거두기 직전에 하는 말씀입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예수님의 이 유언은
보편적인 사람들의 유언과 조금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유언은 숨을
거두기 직전에 하신 말씀이 아니라 승천하기 직전에 하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님께서는 일찌기 십자가를 지시기 전, 성만찬의 밤에 유언같은 말씀을 하셨기에 내용
상으로는 어느 말씀이건 더없이 귀하고 중요한 말씀입니다 마는 굳이 형식상으로 구분
해 보고자 한다면 하늘로 올라가시기 직전에 감람원에서 남기신바 오늘 본문 8절 이
말씀이 진짜 유언이 된다고 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아무튼 우리는 비록 모든 말을 다 잊어버린다 하더라도 주님의 이 마지막 말씀만은
반드시 기억하고 명심하여야 할 것입니다.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부모
님의 유언을 망각하는 자는 그 부모의 자녀라 할 수 없듯이 주님의 유언을 명심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하고 제자들이 끈질기게  질문을 하는
데서 오늘 본문의 말씀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
이까?" 저희들의 정치적인 관념에서 비롯된 질문입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은 예수
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이전부터 저들이 간절하게 기다려왔든 소망이었든 것 같습니
다. 흔히 말하는 메시야 대망사상은 이스라엘 혼이라 할만큼 끈질긴 것이었습니다. 정
치고 경제고 문화고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엉망이어서 무엇하나 기대할 것이 없든 저
들에게 남은 유일한 소망이 메시야의 오심이었습니다. 메시야만 오시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것이라고 그 때만 일월 구심으로 앙망하고 있었든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이 문제를 정치적인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라를 잃어버렸
기 때문에 나라 찾기를 소망했습니다. 가난했기 때문에 부해지기를 소망했습니다. 눌
렸기 때문에 자유해 지기를 소망했습니다. 흩어져 살았기 때문에 모여 살기를 소망했
습니다. 하도 억울하게 살다보니 다윗의 권세를 회복하여 우리도 한번 빛을 보고 살았
으면 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그들의 간절한 소망이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너무
나도 자연스러운 욕망이라 하겠습니다. 그렇게 살아오든 저들인지라 예수님 공생애 3
년 동안 기회있을 때마다 여쭈어보지 않았습니까? 이 때입니까? 저 때입니까? 언제가
야 그런 일이 있겠습니까? 이제나 저제나 하고 메시야 나라가 하루속히 이루어지기를
애타게 고대하는 것이었습니다. 엄연히 눈앞에 메시야 예수님을 뵈오면서도 저들은 정
치적인 엄청난 변혁이 언제가야 있을지? 세상이 뒤집히는 대사건이 언제가야 일어날지
몰라 그것만을 생각하고 조바심이 났든 것입니다. 그래서 심지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다음에도 저들은 이 문제를 노골적으로 말하게 됩니다. 누가복음 24장 21절을 보
세요 "우리는 이 사람(예수)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 그런데 실없게도
십자가에 죽으시고 말았다며 실망하며 엠마오로 가던 그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과
엄연히 같이 걸어가면서도 예수님을 알아뵙지 못하는 허약한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이 부활을 하셨습니다. 잔뜩 기대하고 있든 터에 덜컥 십자가를
지심으로 크게 낙담했었든 저들의 눈앞에 예수님께서 버젓이 큰 권능으로 함께 다시
나타나신 것입니다. 저들은 다시금 이 때로다 싶었습니다. 이제야 말로 기다리든 메시
야 나라가 이루어지려나 싶고 마침 결정적인 때가 왔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감람원에 모였을 때에 주님께서 저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
었으나 너희는 몇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이 말씀을 하시자 제자들이
이렇게 여쭈었습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조바심이
나서 간절하게 여쭈어보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서 우리는 세가지의 관심사를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타이밍에 관한
물음입니다. "이 때입니까?" 즉각적으로 바로 지금입니까? 하는 물음이요. 또 하나는,
이들의 선민 사상의 발로입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하고 말합니다. 메시야의 나라라
하면 이스라엘 나라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마음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회복입니다.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합니다. 다윗의
왕국, 솔로몬의 왕국 그 영광을 회복하는 결정적인 때가 지금입니까? 하는 질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저들은 정치적인 변혁, 경제 사회적인 큰 변화를, 눈에 보이는 그런 외
적인 변화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천지개벽과도 같은 변화를 통해서 오는 민족의 영
광을, 그 회복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뜻밖이었습니다. "때
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가 아니요" 저들의 메시야 대
망을 대고 꾸짓거나 비판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정치적으로 이스라엘  나라가 회
복되는 것과 같은 일이 없을 것이라고 짤라 말씀하시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쓸데없는
일을 기다리지 말라 메시야 나라가 어디있느냐라고 말문을 막으시는 것도 아니었습니
다. 다만 때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현상에 대하여 말씀하셨을 뿐입니다.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가 아니요" 메시야 대망 사상 그 자체를
비판하거나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어느 때에고 메시야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은 기정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메시야 나라가 이루어지고,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고, 교회가 건설되고 그리고 하나
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그 날은 당연히 있기 때문입니다. 그 문제에 관하여
는 비록 그들에게 다소간에 오해가 있더라도 그것을 비난하거나 꾸짓어시지 않은 것입
니다. 다만 예수님께서 때와 기한을 말씀하실 뿐입니다.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오
늘인지 내일인지 아니면 십년후인지 이 문제에 관해서 만은 너희의 알바가 아니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에 깊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너희의 알바가 아니
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조금 다르게 생각하면 이렇게도 됩니다. 너희 수준
이 아직은 그것을 알 때가 못된다. 그런 것은 너희가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라는 것입
니다.

  요사이도 보면 결정적인 종말론이니, 시한부 종말론이니 하다가 실수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천년 역사를 통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실수를 했는지 모릅니다. 어느
날 오신다 어느날 오신다 하다가 심지어 흰옷을 입고 산에까지 올라갔다가 공치고 내
려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느날이다 했다가 틀리니까 일년후에 했다가 또 안되니까
망신당한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이장림 목사 총신 이야기)

  모름지기 겸손하게 생각할 일입니다. 때와 기한을 우리가 아는 것이 좋겠습니까 모
르는게 좋겠습니까? 더 쉽게 생각하십시다. 내가 죽는 날을 내가 알아야 좋겠습니까
모르는 것이 좋겠습니까? 모르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오죽 알아서 하시겠습니
까? 별 것을 다 알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너희 알바 아니다" 하셨으면 예하고 말 것
입니다.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는데 왜 오늘이다 내일이다 하고 쫄삭 그릴 것입니
까? 어느 누가 뭐라고 말해도 믿지 말아야 합니다. "너희 알바 아니요" 주님의 이 말
한마디를 믿고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이 말씀에만 YES I DO 입니다.

  열 살박이 어린 아이가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눕니다. 엄마 내가 어디서 나왔어. 내
가 낳았지. 어디로 낳았느냐니까? 어머니가 설명해 주겠어요. 그래도 눈치없는 아이가
자꾸만 물어봅니다. 어머니가 어떻게 하나 보자 했더니 딱 하고 아이를 쥐어박아요.
그러면서 하는 소리가 자식아 너도 크면 다 알게되 입니다. 자식 교육을 잘못하고 있
는 것은 분명하지만 우리가 그런 경우를 당해도 별 재주가 있겠어요. 여러분 이런 것
이 대답할 수 있는 성격의 문제입니까? 사람들이 주책없이, 필요없이 알겠다는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네 알바가 아닌 것도 다 알겠다 합니다. 몰라야 될 것은 모르는 것
이 좋습니다. 묻지도 말 것입니다. 호기심부터 가지지 말아야 합니다.

  언제 오실까 하는 문제에 관심을 둘 것이 아니요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따
로 있습니다.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신 말씀입니다. 공연히 천지 개벽
따위에 마음을 쓰지 말고, 우주가 어떻게 돌아가고 세계가 어떻게 망하고에 관심두지
말고 주께서 내게 맡기신 일에 오르지 충실 해야 하는 것 뿐입니다.

  여기 예수님의 대답을 문법상으로 보면 미래 수동태입니다. 단어는 두 단어인데 능
력을 받게 되리라. 증인이 되리라 입니다. 두 말씀이 연결되어 있는데 능력을 받게 되
리라 그리하면 증인이 되리라 입니다. 문제는 세상이 아니고,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고
우주적인 문제가 아니라 중요한 것은 우리가 권능를 받고 또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
심입니다. 가끔 우리는 성경에 없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증인이 되라" 라고 비
성서적으로 받아드립니다. "증인이 되라"는 말은 성경에 없습니다. 증인이란 되라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이 부족하기에 우리 보고 증인이 되라고 말
씀하시겠습니까? 성경을 똑바로 보아야 합니다. "증인이 되리라" 입니다.

  마가복음 16장 15절에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하라" 라고 말씀합니
다. 전파한다는 말과 증인이 된다는 말은 다릅니다. "증인이 되리라" 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가끔 보면 별 생각없이 그저 "증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증인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주동자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너희로 증인
이 되게 하시리라 그래서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으
로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까? 권능을 받아야 한다
고 했습니다. 권능이 문제입니다.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권능을 받아야 합니다. 권능
을 받고야 증인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헬라어로 [뒤나미스] 하는 이 권능은 내가
받고자 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께서 내게 임하심으로 저절로 받아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권능의 성격을 한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세상을 개혁한다거나 혁명한다는 권능이 아닙니다. 천지개벽을 시키는 권능
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외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권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권
능의 내용은 제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인데 제자들 자신안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권
능입니다. 비겁한 제자, 도망간 제자, 형편없는 제자를 변화시켜서 능력의 증인이 되
게 하는 권능인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권능이요 최고의 권능인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가만히 보세요. 성경이 말하는 권능이 무슨 권능입니까? 원수를 때
려부수는 권능, 세상을 둘러엎는 변화가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권능은 자기를 이기
는 권능, 자기를 변화시키는 권능입니다. 비겁한 사람들이 변해서 용기있는 사람이 되
고, 핍박도 죽음도 두려움이 없이 담대히 받아드리는 그리스도의 참 증인이 되는 권능
인 것입니다. "너희가 권능을 받고" 얼마나 귀중한 말씀입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세상이 잘못되었습니까? 여러분은 무엇을 위하여 기도하십니까? 중요한 문
제는 나 자신을 이기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나 자신에 대한 문제
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돈버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돈버는 사람이 다 자기를 이
기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옛날 어르신들이 산중에 있는 도적은 잡기가 쉬워도 자기
마음속에 있는 도적은 잡기가 어렵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옳으신 말씀입니다.

  좀더 깊이 생각해 보면, 이 권능은 자기를 이길 뿐더러 하나님의 사람으로 굳게 서
게 합니다. 이 권능은 핍박있는 세상을 넉넉히 이기게 할 뿐더러 원수도 용서하게 합
니다. 악한 세대에 절망도 하지않고 저들을 사랑합니다. 사랑해야 복음을 전할 것이
아닙니까? 미워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할 수는 없습니다. 악한 세대이지만 그래도 여
기에 소망을 걸고 조금도 낙심하지 않고 저들을 향하여 복음을 전합니다. 이것은 뜨거
운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
습니다. 이 사랑으로 원수를 사랑합니다. 핍박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뜨거운
사랑이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것,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권능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권능을 받아서 권능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좀더 근본적이고 좀더
원천적인 것이 필요합니다. 먼저 성령께서 임하심으로 우리가 권능의 사람이 됩니다.
오늘 본문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라고 말씀하십니
다. 성령을 받으면 권능을 받고 권능을 받으면 주인이 됩니다. 이것이 순서입니다. 문
제는 성령입니다. 여러분, 성령이란 무엇입니까? 성령은 곧 권능입니다. 성령은 단순
한 깨닭음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지식만 얻는 것이 아닙니다. 감동만 받는 것
이 아닙니다. 기쁨만 얻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성령은 곧 권능입니다. 그
렇습니다. 뒤나미스는 능력입니다. POWER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 우리가 믿는 복음이 바로 여기에 있습
니다. 무엇을 좀 배우고 깨닭고 지식을 얻었다고 해서 기뻐하고 감격하고 할렐루야 할
것이 아니라 오늘 말씀을 받았으면 당장 문간에 나서서 원수를 사랑할 수 있고 나를
핍박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게 더는 원수가 없고, 내게 더는
미워하는 사람이 없고, 질투도 없고 실망도 없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권능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을 받고, 성령을 받았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풀지 못한 문제가 많고
쉽게 화를 내고 섭섭해 하고 원망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권능이 아닙니
다. 권능에 가까이 조차도 가지 못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임하심으로 권능을
받습니다. 성령은 곧 권능이요 능력을 주시는 존재입니다. 권능으로써의 성령, 능력으
로써의 성령, 이것을 깊이 깨닭아야 할 것입니다.

  본문에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권능을 받고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
라" 성령을 못받으면 권능을 받을 수가 없고 권능을 못받으면 증인이 될 수가 없습니
다. 증인이란 되라 한다고 해서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을 못받는 분이 무슨
증인이 되겠습니까? 그럴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성령을 받아야 권능을 받고 권
능을 받아야 증인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증인이란 헬라어로 [말투리아]라 하는
데 아주 재미있는 말입니다. [말투리아]를 영어로 옮겨놓으면 [말터]가 됩니다. 말터
는 순교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프랑스 파리에 가면 [몽마르트]라는 잘 알려진 언덕이
있습니다. [몽마르트]라는 [몽]은 산이라는 뜻이고 [마르트]는 순교자라는 뜻입니다.
옛날에 그 자리에 사람들이 순교를 당했다고 합니다. 순교자의 마을이라고 해서 몽마
르트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입니다.

  클레멘트 교부는 순교자를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피흘리기까지 증거하는 사람이
순교자이다. 순교자만이 증인이다" 여기서 증인에 대하여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
니다. 증인이 무엇입니까? 증인은 자신의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지
식을 공급하는 사람을 증인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재판정에 증인을 세우고 재
판할 때에 한번 보십시요. 증인으로 나온 사람이 내 생각에는요 내가 느끼기에는요 라
고 말하였다가는 대번에 판사가 저리 가라 합니다. 증인은 간단합니다. "보았습니다.
들었습니다" 하면 끝나는 것입니다. 경험한 바를 그대로 말하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증인이란 어떠한 진리를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진리의 사실성을 말하는 사람
입니다. 사실이냐 아니냐 보았느냐 못보았느냐 경험했느냐 안했느냐 그 진실만을 말하
는 것이 증인입니다. 때문에 증인은 반드시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경험이 없는 사람
은 증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일생동안 책을 읽었다고 해서 증인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반드시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증거가 있어야 하고 간증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증인에게는 내가 위하여 증거하는 분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
리 내가 보았다고는 하지만 끌려가서 증인이 되는 것은 사실 귀찮지 않습니까? 그래서
흔히들 내가 못봤다고 하고 맙니다. 그렇습니다.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사랑하
는 저분이 억울하게 고생하고 있기 때문에 부끄럽고 귀찮지만 그것을 떨치고 증인으로
나설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증인은 사실을 사실이라고 말함으로써 오는 불이익이
나 손해나 핍박을 받을 각오가 되어있어야 합니다. 이 굳건한 결단이 있을 때에야 증
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요즈음에도 가끔보면 도둑맞은 집, 강도당한 집은 많은데 신고는 잘하지 않는 모양
입니다. 신고를 왜 안하느냐고 물어보면 신고했다가는 그 다음에 당할 보복이 두렵고
귀찮아서랍니다. 그래서 손해를 보고 맙니다. 때문에 고발 정신이 점차 희미해지는 것
입니다. 아무리 손해가 나더라도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실을 사실대로
밝혀야 하겠다는 용기가 있어야 하는데 사람들은 대게가 그렇지 못합니다. 여기에 문
제가 있습니다.

  사건의 진실을 진실대로 말함으로써 오는 모든 불이익과 손해를 내가 위하여 증거하
는 그분과 함께 할 수 있는 마음이 있을 때에야 증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의 부활에 증인이 되었다고 할 때에도 그렇습니다. 예수님과 운명을 함께 할 마음이
없으면 절대로 증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나아가 증인에게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담력이 필요합니다. 목이 떨어져도 할말은
해야 합니다. 옳은 것은 옳고 그런 것은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내가
본 것은 진리입니다. 이것을 증거해야 합니다. 바로 이러한 용기와 담력이 있어서 증
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그 증거하는 방법을 알아보십시다.

  첫째는 말로 증거합니다.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렇다고 말로 증거합니다.
  둘째는 몸으로 증거합니다. 행동으로 증거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기에, 예수
님의 사랑을 받았기에 몸으로 증거할 수 있습니다.
  세째는 죽음으로 증거합니다. 여러분, 증거 가운데 가장 큰 증거가 예수님의 부활입
니다. 우리는 부활의 증인입니다. 부활의 증인은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증거함으로 오
는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거의가 순
교했습니다. 부활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 사실을 증거하기 위해 저들은 서슴치 않고
기쁜 마음으로 죽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보세요. 증인은 순교로 연결됩니다. 순교
가 아니고서는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이, 천국과 부활을 믿는다는 사람이 죽을 때가 되어서는 벌벌
떱니다. 안죽겠다고 살려달라고 바둑 바둑 소리를 질러됩니다. 이런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입니까? 예수를 믿고 내세를 믿고 부활을 믿는 사람은 죽음을 평안이 맞을 수 있
어야 합니다. 순교마져도 기뻐게 받아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속에 증거
가 있기 때문입니다. 순교가 아니고서는 증거가 될 수 없습니다. 결국 순교는 증인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돌아 맞아 죽어가면서도 천사의 얼굴을 할 수 있었든 스
테반도, 칼로 목베임을 당한 야고보도, 십자가에 꺼꾸로 못박힌 바울도 그 죽음이 순
교였기에 증인이 될 수 있었든 것입니다. 로마에 가보면 사도 바울을 목베어 죽일 때
에 사용했든 도구들을 전시해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보니 옛날 우리나라에서 처
럼 앉혀놓고 칼로 친 것이 아니라 커다란 절구통같이 생긴 나무토막을 가져다 놓고 그
위에 목을 걸치게 해서 도끼질을 했습니다. 이렇게 비참한 죽음이었으나 바울은 이것
조차 기뻐게 받아드렸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까? 부활이 확실하기 때문
에, 예수님과 함께 부활할 것을 믿었기 때문에 기쁨으로 죽을 수 있었든 것입니다. 이
런 자가 증인입니다.

  베드로는 늘 말합니다. 사도행전 2장 32절, 3장 15절, 5장 32절, 10장 39절을 보세
요.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다" 라고 거듭거듭 말씀합니다. 우리가 보았고 우리가
경험했다고 증거합니다. 배드로는 입버릇처럼 말씀합니다. "내가 눈으로 보았고 손으
로 만졌다"고 분명히 예수님과 함께 했다고 말입니다. 다 경험한 것이요 우리가 증인
이라고 말입니다. 신학적으로 의미를 생각한다면 증인이란 증거함으로 그 사건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엄연한 사실이지만 이것이 다시 사실적인 현실로 재연되기
위해서는, 능력화 되기 위해서는 증인이 필요합니다. 증거가 되면서 이것이 현실화 하
고 능력화 하고 생명화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증거와 함께 믿어지고 믿어지는
그 순간에 마음속에서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증거는 반드시 필
요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은 곧 증거의 영입니다. 다신 한번 본문 말씀을 보세요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공간적으로 온 세계에 이 복음이 전파될 것이요
시간적으로는 주님께서 재림하는 이 세상 끝날까지 이 복음이 전파 될 것이라고 말씀
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임하심으로 우리가 권능을 받고 권능을 받음으로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마지막 당부 말씀이요. 마지막 약속의 말씀입니다.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20)